148 만남 (3)
“이야. 우리 김대영 회장, 폼 아직 안 죽었네?”
강철은 권총을 손으로 잡았다.
“으윽-!”
강철이 힘을 줘 총구를 위로 들어 올리자, 김대영은 자신의 손아귀에 가해지는 힘에 강한 통증을 느끼며 그만 권총을 놓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까, 삼우그룹은 부자가 다 스포츠맨이네? 아버지는 왕년에 권총 사격 선수, 아들은 왕년에 수영 선수.”
강철은 그 자리에서 권총을 분해했다.
“왕년에 권총 사격 선수였던 분이 장난감 갖고서 개폼잡는 건, 좀 웃기지 않나?”
김대영은 참을 수 없었다.
그의 평생에 이런 모멸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는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일찌감치 삼우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된 이후론 늘 정점이었다.
IMF 외환위기 후로는 대통령조차도 그에게 함부로 하대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그는 이제 대통령조차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VVIP가 됐다.
그런 그에게 강철은 온갖 모멸감을 가져다주었다.
“난 말이야. 사람에게 걸맞은 대우를 해줘. 하대할 사람에겐 하대하고, 존대할 사람에겐 존대를 해. 그리고 당신처럼 생판 얼굴도 안 본 사람더러 출신성분이 이러니 출신이 저러니 하면서 함부로 지껄이는 인간한테는, 또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주는 거고.”
“그게 네가 출신성분이 고약하기 때문이고, 근본이 없기 때문이란 생각은 죽어도 안 하지. 그래서 네가 안 되는 거야. 너는 절대로 우리들 속에 끼어들 수가 없어!”
우리들.
그 단어에서 김대영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우월한 계층 의식을 드러냈다.
“재벌이 그냥 돈만 많으면 되는 거 아닌가?”
“돈 많은 상놈이 아무리 족보를 사고, 향안에 이름을 올리려고 해도, 상놈은 상놈이야. 뿌리부터가 노비인 것들이 어떻게 양반이 된다는 거야!”
“그게…… 삼우그룹을 이끌어오신 김대영 회장님의 진심이십니까?”
강철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지만, 김대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기에, 그것을 캐치하지 못했다.
“이건 진심이 아니라 진실이야! 세상의 이치고, 역사의 법칙이야!”
강철은 씩 웃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대영에게 말했다.
“더 할 말 있고?”
마치 개가 짓는다는 것처럼 반응하는 강철의 모습에 김대영은 다시 한번 뚜껑이 열렸다.
“너…… 이 근본 없는 놈…… 조만간 내가 근본 있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줄 테니까, 잘 보고 있어.”
김대영은 그길로 자리를 박차고 7번방을 나갔다.
강철은 그런 김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저기…… 괜찮으신 겁니까?”
김대영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김덕흠이 7번방으로 들어와 강철에게 물었다.
“아주 좋지. 아주 좋아.”
“네?”
김덕흠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일신그룹과 거목그룹을 합쳐본들, 삼우그룹에 비하면 그 규모가 절반이 안 됐다.
무엇보다도 삼우그룹이 보유한 광범위한, 돈과 지위로 만든 인적 네트워크의 힘은 재계 서열 2위인 현성그룹이나 3위인 태성그룹보다도 더 거대하고 강력했다.
‘미친 척하는 천재가 아니라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김덕흠은 강철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강철은 그런 김덕흠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은 종종 미친 새끼들이 바꾸는 거거든.”
그 말에, 김덕흠은 흠칫했다.
강철은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폰을 꺼내 서용태에게 전화했다.
“어, 녹음 품질 어때? 좋지? 그래, 좋을 거야. 러시아 방첩기관 애들이 쓰는 거니까. 그 뭐야, 편집할 때, 내 목소리는 한 부분 빼곤 다 잘라. 그 내가 갑자기 존댓말 한 부분이 있을 거야. 막 뭐 진심이십니까? 하고서. 그 부분 빼곤 내 목소리는 다 잘라.”
통화를 끝내고,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고 있는 애들한테 서비스 한 시간씩 더 넣어 주고, 나중에 걔들하고 같이 이 가게 싹 청소해주고 복귀해.”
김덕흠에게 그렇게 지침을 하달한 후 강철은 홀로 노래방을 떠났다.
5.
김대영은 차에 올라타고도 화를 풀지 못했다.
옛날 같았더라면 뺨을 갈겨 줬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늙어서 그 정도 기력은 없는 게 그에겐 너무나도 한이 됐다.
“고약한 놈…… 천한 놈이 말이야. 어디 어른한테……”
그가 뒷좌석에서 부들거리며 구시렁거리자 운전석의 운전수도, 조수석에 앉은 구대준도 모두 바짝 긴장했다.
“이천으로 돌려.”
한참을 구시렁거리던 김대영은 차를 돌리라 명령했다.
“이, 이천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 지금 야간개장이라서 당장에 만들기가……”
“야간개장이고 뭐고 다 비워내!”
“…… 알겠습니다.”
운전수는 차를 이천 방향으로 돌렸다.
구대준은 곧장 폰을 꺼냈다.
“어, 나 차기본 구 사장인데, 지금 당장 아스가르드 싹 비워. 트랙 주차장으로 쓰고 있으면 거기 차도 싹 비우고. 90분 내로 넘어갈 거니까.”
1시간 27분 후.
김대영의 차는 이천시 외곽에 자리한 삼우산업의 놀이공원, 아스가르드에 도착했다.
불과 1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야간개장으로 인해 바글거리던 곳은 고요에 잠겨 있었다.
“기구를 먼저 타시겠습니까, 아니면……”
“트랙으로.”
“네.”
차는 곧 아스가르드에 딸려 있는, 평소에 주차장으로 쓰이는 레이싱 트랙으로 이동했다.
레이싱 트랙에는 이미 수많은 고급 스포츠카와 오토바이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오토바이부터 가져와. 내가 애용하는 거. 밍키로.”
“네.”
김대영의 지시대로 곧 오토바이가 그의 앞에 도착했다.
“헬멧은 치워. 오늘은 이 내가 화가 나가지고 도저히 헬멧 못 쓰겠으니까.”
“하, 하지만 위, 위험합니다, 회장님.”
“대준이 너는 내 운전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거야, 뭐야?”
“아, 아닙니다. 하지만……”
“됐으니까, 비켜.”
사람들을 트랙에서 모두 치우고, 김대영은 그대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부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오토바이는 출발했다.
애초에 속도를 위한 오토바이가 아닌, 배기음을 위한 오토바이였던 만큼, 트랙을 도는 오토바이의 속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딱 그 정도 속도만으로도 김대영은 머리를 어느 정도 식히기에 충분했고, 구대준은 심장이 얼어붙기에 충분했다.
대략 시속 50km 정도로 트랙을 두 바퀴 돈 김대영은 이번엔 스포츠카로 차종을 바꾸었다.
[부아아아앙-!]
이번엔 배기음과 속도 모두를 위한 것이었던 만큼, 스포츠카는 순식간에 시속 250km를 찍었다.
엄청난 속도로 김대영은 안전벨트조차 매지 않은 채 미친 듯이 트랙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 새로 나온 SUV있지. 그거 한 번 줘 봐.”
트랙을 4바퀴나 돌고서야 멈춘 김대영은 이번엔 세계적인 슈퍼카 제조사에서 특별하게 만든 SUV에 올라탔다.
[구우우우우-!]
심연에서 끓는 듯한 배기음과 함께 SUV는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출발했다.
곧 그것도 시속 200km에 도달했고, 그 상태로 김대영은 묵직한 SUV를 몰고 트랙을 3바퀴나 돌았다.
그렇게 그는 트랙을 돌며 강철과의 만남에서 쌓인 울분을 모두 씻어냈다.
“이제 됐다. 가자.”
30분.
그 30분을 위해, 아스가르드 야간개장을 즐기던 고객을 모두 밀어낸 김대영은, SUV까지 몰고 나서야 후련하단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다.
‘이 출신성분 고약한 천둥벌거숭이를 어떻게 혼을 내 주지?’
격정을 가라앉히고, 김대영은 차분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신이랑 거목이면 그래도 여야 의원들한테 적당히 후원도 잘 해주고 있을 거고, 또 이 검찰총장부터 국세청장까지 중요한 것들한테도 다 약을 쳐 놨을 건데…….’
일신그룹과 거목그룹도 어쨌건 재벌이었다.
두 그룹의 자산총액을 합치면 40조 정도였고, 그것이 비록 자산총액 350조의 삼우그룹보단 못하다지만, 절대치로만 보면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자산총액에서 나오는 로비력은 삼우그룹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뒤처지진 않았다.
삼우그룹이 자산총액이 두 그룹의 9배 정도라고 해서, 로비하는 돈의 액수도 9배 더 많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김대영은 자신이 있었다.
강철 정도는 쉽게 담글 자신이.
‘일단 좀 잠잠해지고 나면 국가보안법이랑 여적죄 쪽으로 해서 한 번 더 찔러보는 것도 좋겠어. 그리고 그 대산인지 뭔지 조폭 깡패들하고도 어울린다고 하니까, 그쪽으로도 캐면 좋을 것 같고.’
92년생 20대 초반의 고아가 순식간에 재벌 2개를 장악했다.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김대영은 공격 포인트가 있다고 확신했다.
‘배후에 러시아가 있건, 중국이 있건, 단순히 조폭이 있건, 자기 혼자서 한 건 아니야.’
그 공격 포인트를 계속해서 때리다 보면 결국 강철은 무너질 것이다.
김대영은 그렇게 확신했다.
‘고분고분하게 숙이고 들어왔으면, 내 예뻐해 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이래서 근본 없는 것들하고는 어울리면 안 돼.’
그렇게 김대영은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본채로 가지 않고 별채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 서재에 자리한 금고를 열었다.
“어?”
금고에는 두툼한 장부가 몇 개 있었다.
그것은 지난 30년간 그에게 돈을 받은 고위 인사의 명단과 액수가 날짜별로 상세하게 적힌 장부였다.
근데 그 장부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뭐야, 다 어디 갔어?”
김대영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
‘내가 보다가 안 넣어 뒀나?’
장부는 총 4권이었다.
80년대, 90년대, 00년대 그리고 1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가 손수 적은 뇌물 상납 액수가 적힌 장부는, 깜빡하고 안 넣어둘 만큼 얇지도 않았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서재를 아무리 뒤져도 장부는 나오지 않았다.
“야! 다들 들어와 봐!”
급기야 김대영은 바깥에 있던 직원들을 모두 불렀다.
“그 내 없을 때, 여기 누구 들어온 사람 있어?”
김대영의 물음에 직원들은 손사래를 쳤다.
“누가 감히 회장님 허락도 없이 이곳에 들어오겠습니까?”
김대영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면 왜 내 장부가 금고에 없는 거야?”
당연히 거기에 대해 직원들이 해줄 수 있는 답은 없었다.
“당장 찾아봐. 집 전체를 다 뒤져서라도, 마당에 수풀부터 나무까지 다 뒤져서라도.”
“네, 네.”
직원들이 부산스럽게 장부를 찾는 것을 보며, 김대영은 김태준과 딸 김도은에게도 전화했다.
“태준아. 너 장부 손댔어? 안 댔어? 그럼 그게 어디 있을까? 와서 너도 찾아.”
“도은아, 지금 당장 내 집에 와서 장부 찾는 거 좀 거들어.”
그렇게 김대영을 포함한 삼우그룹 총수 일가까지 동원된 장부 찾기는 새벽 3시까지 이어졌지만, 그 어디에서도 장부는 나오지 않았다.
“도둑이 든 거야? 도둑이 든 거면, 도대체 너희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어?!”
김대영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당장에 찾아내. 어디로 누가 어떻게 침입했는지, 뭘 가져간 건지, 어떻게 가져갔는지 싹 다!”
CCTV를 뒤져도, 근무 일지를 봐도, 사람들을 닦달해도 나오는 건 없었다.
“너희들 전부 다 해고야!”
결국, 애꿎은 직원들만 해고당하고 말았다.
물론, 진짜 해고당하진 않았다.
김태준이 적당히 인사이동 하는 선에서 일을 끝냈기 때문이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