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47화 (147/175)

147 만남 (2)

“네, 네?”

경영지원실 직원은 당황했다.

“내가 말을 너무 빨리했나? 아니면, 목소리가 작았나?”

강철의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을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기에 직원은 곧장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강철은 직원을 뒤로하고 비행기 퍼스트클래스에 올라타며 생각했다.

‘직접 만나서 뭐 윽박지르기라도 하시겠다?’

강철은 씩 웃었다.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지. 노친네.’

3.

12월 1일 월요일 밤 10시.

“그 출신성분 고약한 놈이 실성을 했나. 뭐?”

자택 별채에서, 김대영은 잔뜩 화가 난 채 얼굴을 붉힌 상태에서 눈을 부릅뜨곤 구대준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 시간 아니면 안 만나? 나를?”

“죄, 죄송합니다.”

“아니 대통령도 내 한 번 만나려고 사정사정을 하는데 자기가 뭔데 내보고 그 시간 아니면 안 되니 뭐니 하는 거야? 이 출신성분 고약한 놈이 진짜 막나가는 거야, 뭐야?”

“저, 저희가 어떻게든 처리해보겠습니다.”

구대준의 말에 김대영을 그를 쏘아보았다.

“대준이 너 그 말 그냥 해보는 거면 주워 담아.”

자기 위로하려고 할 수 없는 일을 해보겠다고 하지 마라.

그 명확한 뜻에 구대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여간 이놈의 이 이 이 근본 없는 것들은 하는 짓이 다 그 모양이야.”

김대영은 다시 분노를 강철에게로 돌렸다.

“어른이 먼저 언제 보자 했으면, 냉큼 아이고, 먼저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고 예의를 차리진 못할망정 뭐? 그날은 안 되고, 이날만 된다? 이날이 안 된다면, 올해 안에는 못 만난다? 이게 도대체 어느 법이야? 왜정 시대에도, 상놈들이 죄다 족보 사서 설치던 이조 말기에도 이런 일은 없었어.”

김대영의 분노 앞에 구대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는 왜 또 꿀먹은 벙어리야?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봐야 할 거 아니야?”

그러자 구대준에게 김대영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 회장님께서 구태여 그런 근본 없는 놈에게 숙이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께서 먼저 자비롭게 손을 내미셨고, 그 고아가 거부했으니, 더는 회장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으로 응징해버려야 합니다.”

“응징은 할 수 있고?”

“그, 그게…… 조, 조만간 대통령과 함께 신년 기업인 간담회가 있으니까, 그 자리에서 이 일에 관해 따끔하게 대통령에게 한 말씀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대영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구대준을 바라봤다.

“대준이 너는 내가 노망이 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아, 아닙니다. 제,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면, 네가 벌써 노망이 난 거야?”

“…… 죄송합니다.”

“현성 주 회장한테 자기 후계자 후원해달라고 해놓고, 후계자가 서울시장 경선에서 톡 떨어지니까, 입 싹 닦는 손가 놈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먹힐 것 같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김대영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구대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고…… 내 이참에 이번 약속 건도 그렇고 그놈한테 따끔하게 어? 그놈을 따끔하게 혼구멍을 좀 내줘야겠어. 그놈한테 전해. 그날 거기서 보겠다고.”

“아, 알겠습니다. 미리 조치해두겠습니다.”

4.

처음 김대영이 만남의 장소로 골랐던 서초동 자하궁은 조선식 기방 컨셉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한식당이다.

그곳 VIP룸에선 미녀들이 마치 조선시대 기생처럼 곱게 차려입고 가야금 같은 전통 악기들을 연주하는 척하며, MR을 틀어놓고는 손님을 접대하는 식으로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강철은 딱 한 번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론 다시는 안 가게 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음식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전체적인 접대 분위기가 그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강철은 장소를 바꿨다.

그리고 강철이 고른 곳, 강남 압구정 번아웃은 노래연습장이었다.

접대부도, 술도 없는 진짜 순수한 노래연습장이었다.

“나는 낭만고양이♬!”

12월 7일 저녁 7시 15분.

김대영은 번아웃 입구에 서서 황당하단 표정으로 내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아알! 다알리자♬!”

가게 내부에선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알바생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홀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앉아서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대준아.”

김대영은 구대준을 불렀다.

“네, 네. 회장님.”

구대준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김대영에게 다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 우리가 제대로 온 거 맞지?”

“네, 네…… 그, 그렇습니다.”

“내가…… 정리해라 안 했었나?”

“그, 그게…….”

구대준은 시선을 홀에 있는 정장 입은 사내들에게로 돌렸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한 중년 남성이 나왔다.

그는 입구에 서 있는 김대영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저 일신에 김덕흠입니다.”

중년 남성 김덕흠의 인사에 김대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들어가시죠. 세팅 다 돼 있습니다.”

김덕흠의 말에 김대영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자네가 대준이 일하는 거 방해했는가?”

김대영의 물음에 김덕흠은 한 차례 구대준을 바라본 후, 다시 김대영에게 시선을 돌리며 씩 웃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구 사장이 이곳 영업 방해하려던 걸 제가 막은 겁니다.”

“뭐라고?”

“아무리 회장님이라고는 하지만, 자영업자에겐 하루하루 영업이 중요한데 통으로 저녁시간 영업을 못 하게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뭐, 우리가 여기서 방 하나 잡고 있는 들 그 매출이 하루 전체를 상회하는 거도 아니고.”

그 말에 김대영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준아.”

“네, 회장님.”

“여기 주인장한테 현금으로 1억 주고 오늘 손님 다 치워라고 해라.”

“저, 저…… 그게……”

구대준이 자기 명령을 즉각 따르지 않자 김대영은 얼굴을 붉혔다.

김대영의 시선이 구대준에게 향했을 때, 김덕흠이 다시 그 시선을 자기에게로 빼앗고자 입을 열었다.

“월요일이 다가옴에 따라 쌓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민 여러분의 즐거움을 돈으로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김대영은 폭발했다.

“이 자식이 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인데 나한테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거야!”

느릿느릿한 말투 끝에는 앙칼진 고음이 나왔다.

구대준은 그냥 이대로 기절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김대영을 수행하던 삼우그룹 수행원들도 모두 울상이 됐다.

‘씨발…….’

겉으론 여유로운 모습이었지만, 실은 김덕흠도 속으로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찰나에 김대영이 성질을 내자, 그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김대영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가 약한 마음을 먹으려 할 때마다, 잘려나간 왼손 중지의 절단면이 아려왔기 때문이었다.

“남의 업장 앞에서 이러지 마시고, 들어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미 김덕흠은 강철에게 김대영을 돌려보내도 좋다는 명령을 들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그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김대영은 그런 김덕흠을 보며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신경질적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삼우그룹 수행원들이 곧장 김대영을 7번 방으로 안내했다.

7번 방에 들어선 김대영은, 그곳에서 무려 2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그리고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문이 열리며 강철이 들어왔다.

김대영은 도끼눈을 뜬 채 강철을 노려봤다.

“아, 쏘리. 차가 좀 막혀서 말이야.”

강철은 그런 김대영에게 손을 한 차례 흔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하곤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허!”

김대영은 그런 강철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들어보니 그쪽도 15분 늦었다면서? 그냥 서로 지각한 셈 치자고.”

“이 버르장머리 없는 양반이…… 자네 몇 살이야?”

“나? 보자…… 올해가 2014년이고 오늘이 12월 7일이니까…… 어째, 세는 나이로? 아니면 만 나이로?”

“어디 어른한테 버르장머리 없게 반말을 찍찍 내뱉고 있는 거야!”

“거 왜 고함을 지르시나? 응? 병원에서 혼수상태였다더니만 소리를 지르다가 그냥 성대가 잠시 혼수상태였던 거야?”

계속되는 강철의 무례에 김대영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새빨개졌다.

그리고 그가 폭발하기 직전이 됐을 때, 강철은 입을 열었다.

“그쪽이 먼저 나보고 출신성분 고약한 근본 없는 고아라고 했잖아. 그쪽이 날 그렇게 취급하니, 나도 그쪽 기대에 부응해줘야지. 안 그래?”

강철의 말에 김대영은 화가 나는 순간에도, 심장이 시려옴을 느꼈다.

‘우리 쪽에 사람을 심었어?’

강철에 대한 김대영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그의 최측근들에게만 한 말이었다.

공개적으로 김대영이 강철을 그렇게 평가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평가를 당사자는 알고 있다.

‘뭐 하는 인간이야?’

김대영은 덕분에 화가 좀 식었다.

‘역시…… 마냥 오만한 꼰대는 아니었어.’

그리고 그런 김대영의 내적 변화를 고스란히 읽고 있던 강철은,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하긴 이 정도 되니까, 그런 무지막지한 짓들을 해올 수 있었던 거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강철이 김대영을 갑자기 존경하게 됐다거나, 좋게 보게 됐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어쨌건, 김대영은, 본인이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강철의 적이 된 상태였으니까.

“그래, 자네가 그딴 식으로 나오니까, 좋아. 나도 이 아주 오랜만에 좀 막 나가 봐야겠어.”

김대영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히려 어조는 차분했다.

“최영일이한테 일신레코드 넘기는 거, 민국은행이 최영일이한테 대출해준 거. 다 자네 작품인가?”

강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환상적이지?”

“…… 최영일이랑은 언제부터 일하고 있었나?”

“글쎄? 음 보자…… 우리 김대영 씨가 연습생들한테 대접받고 극락 체험한 비디오가 공개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몰라 아무튼 올해 하반기인가 그 정도 되네. 아니다, 상반기인가?”

김대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캐치했다.

김대영은 잠시 화를 가라앉히고, 어금니를 꽉 깨문 채 강철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 자네가 그 비디오…… 인터넷에다가 그렇게 올린 건가?”

“어떤 비디오?”

“…… 내를 갖다가 굉장히 힘들게 만든 그 비디오.”

“아니, 그러니까. 한국인 연습생 셋한테 대접받던 거, 아니면 일본 야동배우 둘한테 대접받던 거. 어떤 걸 말하는 거냐고.”

김대영은 다시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김대영을 바라보고서, 강철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거 두 개 다 내가 올렸어. 어때, 잘 찍었지?”

그리고 김대영은 폭발했다.

“이 근본 없는 자식이!”

김대영은, 80세 노인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빠른 속도로,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 장착해 두었던 권총을 꺼내 강철의 이마를 겨누었다.

“이 돈 좀 만지니까, 세상이 다 네 것 같아? 어!”

권총으로 자신의 이마를 겨누며 호통치는 김대영을 보며, 강철은 치아가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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