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만남 (1)
1.
김대영이 실제로 수사를 받는 일은 없었다.
시민단체에서 제출한 김대영에 대한 고발장이 검찰에 접수되긴 했지만, 검찰에서는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진 않았다.
“일단 동영상 속 남성이 김대영 회장이라는 확정적 증거는 없기 때문에.”
검찰에서는 그런 식으로, 동영상 속 남성이 김대영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를 하며, 어떻게든 그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대번에 사방에서 조롱이 쏟아져 나왔다.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습관도 같지만 아닐 가능성이 있다? 이상한 검찰의 잣대>
<해도해도 너무한 검찰의 삼우 봐주기>
<80년대 코미디보다 더한 검찰의 행태>
진보 언론은 물론, 보수 언론까지도 검찰을 질타했다.
<일각에선 김대영 회장이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삼우그룹 일가와는 사돈 관계인 무궁일보조차도 검찰의 그러한 궤변을 옹호하진 못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김대영이 동영상 유출 피해자라는 논리를 들고 나오며, 어떻게든 물타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하다못해 심의에 걸리지 않게 관계 장면과 나체 장면은 편집하고 오로지 전후의 대화 장면만이라도 본 상황에서 그러한 무궁일보의 김대영 옹호는 역효과만 불렀다.
<무궁일보 이 새끼들 저번에 몸캠 당한 놈들보곤 느그들도 잘못했다며 양비론 펼치더니 김대영은 씨게 옹호하네>
<아따 사돈이 남이가? ㅋㅋㅋㅋ>
그렇게 네티즌의 조롱과 주류 언론의 비판 속에서, 결국 검찰은 꿋꿋하게 김대영을 보호해주었다.
물론, 관련 사건 전체를 덮진 못했던 만큼, 검찰은 삼우병원 관계자들과 김대영과 관계를 맺은 여자들 그리고 그 여자들을 보낸 포주-최영일을 열심히, 김대영에게 쓰지 못한 힘까지 총동원해가며 족쳤다.
[오늘 검찰이, 소위 재벌 성매매 사건과 관련된 수사를 전원 무혐의 처분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그리고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검찰은 삼우병원 관계자 및 최영일과 그가 제공한 여성들 그리고 삼우그룹 차세대기획본부 이영민 전무를 모두 무혐의 처분함으로써 수사를 끝냈다.
<김대영보다 작으면 개추>
<일단 나부터>
그때쯤, 이미 대중은 정의구현이나 공정한 법 집행에 대한 기대를 모두 접은 상태였다.
대신 김대영은 대중에게 철저히 조롱거리로 전락한 채, 동영상 유출 직전까지 누렸던, 청년이 존경하는 50대 인물 중 하나로서의 명예를 모두 잃었다.
물론, 그게 김대영에게 딱히 큰 타격이 되진 않았지만.
“오늘 일신레코드 인수자로 와이아이엔터테인먼트가 최종 선정됐다고 합니다.”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이태원동 김대영의 자택 별채.
전체적으로 차분한 느낌의 인테리어 속에, 20세기 초를 풍미했던 아방가르드 미술품 4개가 4방위의 벽면에 각각 걸려 있는 서재에서, 김대영은 차세대기획본부 부본부장 구대준으로부터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와이아이의 인수자금은 민국은행에서 대출해주기로 했다 합니다.”
“민국은행에서?”
“네, 회장님.”
처음 보고에는 크게 미동조차 하지 않던 김대영이었지만, 민국은행이란 말이 나오자 그의 눈이 떨렸다.
“이…… 김 행장이 돌았어. 응? 어디 대출해줄 데가 없어서 그런 출신성분이 고약한 깡패한테 대출을 해줘? 이 양반이 지금…… 이 나를 갖다가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미처 막기에는 이미 누가 손을 써둔 상태였습니다.”
“손을 썼다는 게…… 돈을 줬다는 거야, 아니면은 자리를 약속했다는 거야?”
“거기까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굉장히 김 행장의 태도가 완강했던 것으로 보아 대단히 큰 것을 제공한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김 행장이 이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고 그런 무뢰배한테 대출을 줬을 리가 없지.”
김대영의 입술과 볼이 파르르 떨렸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다시 구대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무뢰배 자식을 어떻게 손을 좀 봐 줘야 할 것 같은데.”
구대준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그래서 그 일을 해볼 사람을 찾아봤는데…… 그게 일단 최영일 자체도 그쪽 세계에서 한가락 했던 사람인 데다 최근에 대산그룹하고 밀접해지면서 다들 그와 엮이길 꺼려하고 있었습니다.”
“대산? 그건 또 뭐 하는 것들이야?”
“거목이랑 일신한테 하청받는 중견기업인데 한국 깡패들의 대부 같은 존재입니다.”
“이이이이이이! 이 고얀 것들을 봐라!”
김대영은 얼굴을 붉혔다.
“거목하고 일신이 말이야. 그 근본도 없는 고아한테 넘어가더니만 말이야. 깡패 대장한테 하청을 줘? 이게 말이야 뭐야? 이거는…… 이거는 우리 아버지가 사업하던 왜정 시대에나 있었던 일이야. 내가 사업을 물려받기 시작했던 5공 시절, 유신 시절에도 보기 힘들었던 일인데.”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건강에 해롭습니다.”
“건강에 해롭고 말고, 이게 이 재계가 어느 순간부터 잘못됐어. 이거는…… 이거는 말이 안 되는 일이야.”
그렇게 한동안 씩씩대던 김대영은, 구대준이 급하게 냉수를 가져다주자 그걸 마시곤 어느 정도 분을 가라앉혔다.
“그…… 그 근본 없는 고아 놈하고 자리 한번 만들어 봐.”
“네?”
구대준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일신그룹에 강철 말씀이십니까?”
“그래.”
“…… 네, 알겠습니다.”
구대준은 꺼림칙했지만, 그에게 김대영의 결정에 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할 권리는 없었다.
2.
12월 1일 월요일 새벽 5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러시아 해군기지 창고.
“참 깊숙이도 숨어들 계셨어. 어? 한 놈은 트란스니스트리아인지 뭔지 하는 미승인국 아파트에, 한 년은 칼리닌그라드 반지하에.”
강철은 그렇게 냉소 섞인 말을 내뱉은 후,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리곤 그 연기를 의자에 묶인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러시아인 남녀의 얼굴에 골고루 뿌려주었다.
“세르게이. 당신은 그래도 명색이 밀레르의 비서였다는 인간이, 모시던 분이 불의의 사고로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그 양반 이름을 팔아서 돈을 벌어?”
강철의 말에 남자, 세르게이 블라소프는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만약 그의 입에 재갈이 물려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는 소리쳤을 것이다.
미안하다고,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고.
강철은 시선을 이번엔 그 옆에 묶여 있는 뚱뚱한 러시아인 여자, 전직 연방보안국 요원 올가 프리마코바에게 돌렸다.
“아줌마는 나하고 분명히 비밀을 유지하기로 약속했으면서, 내 한국 이름과 신분을 밀레르에게 고자질했지? 이거 신의가 없으시네.”
그녀도 마찬가지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악을 썼다.
재갈이 물려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녀는 그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한 번만 살려달라고.
“하바롭스크에서 살려줬을 땐, 다음에 또 이런 식으로 나하고 부딪히면 죽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어. 그러니, 당신은 죽는 게 맞아.”
강철은 올가 프리마코바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후, 세르게이 블라소프를 보며 말했다.
“한국 기업에 금품을 받고, 국가 기밀이나 다름없는 외교 비사를 마음대로 자서전 형식으로 출판해? 당신은 매국노야. 매국노에게는 뭐다? 죽음뿐이다.”
강철은 그렇게 두 사람에게 작별을 고한 후 해외정보국 요원들에게 턱짓했다.
요원들은 강철의 옆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던 해외정보국 부국장 미하일 킴을 바라봤다.
미하일 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요원들은 세르게이 블라소프와 올가 프리마코바의 얼굴에 조그만 포대기를 뒤집어씌웠다.
“으으으읍-! 으읍-!”
“뿌으읍-! 뿌우웁-!”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발악했다.
그러나 그들의 소리는, 그들의 머리가 그대로 물이 가득한 양동이에 거꾸로 처박히면서, 더 이상 나오질 못하게 됐다.
양동이에 처박힌 채 한동안 발작을 일으키며 해외정보국 요원들을 힘들게 하던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례로 발작을 멈추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똑바로 확인하고, 오늘 출항하는 배에 태워서 저기 흑해 한가운데다가 버려.”
“네, 부국장님.”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이미 두 사람은 죽었다.
관심법은 죽은 사람의 생각까진 읽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강철은, 미하일 킴과 함께 창고 밖으로 나갔다.
“이로써 다 해결된 거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미하일 킴의 물음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쪽 재벌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삼우그룹의 처리에 관한 물음에 강철은 물끄러미 미하일 킴을 바라봤다.
그러자 미하일 킴은 강철이 별말을 안 했는데도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일단 우리 세력권에 포함돼 있기도 하고, 또 블라소프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인물도 아니라서 우리가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프리마코바도 우리 영토에 있었고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가능했고 말입니다.”
강철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서 시니컬한 미소를 지은 채 담배만 태워댔다.
미하일 킴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 재벌은 다릅니다. 한국 자체가 우리 세력권이 아니라 정부와 협조도 어렵고 무엇보다도 한국 재벌은 굉장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설령 그 사람이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린 그 사람을 함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강철은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한국하고 전쟁이라도 하는 게 아닌 이상, 우리가 그 부분에 관련해서는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선, 해외정보국 부국장으로서 유감입니다.”
강철은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발로 밟은 후, 미하일 킴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뭐래?”
그 말에 미하일 킴은 안도했다.
“저기 배신자들이나 잘 마무리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마 내년 초에 크렘린에서 공식적으로 초청장을 보낼 겁니다.”
“공식적으로?”
“네. 대통령께서 굉장히 관심이 많으십니다.”
“어디로 보낸다는 거야?”
“에우로파 인베스트먼트로 보낼 예정입니다.”
강철은 피식 웃었다.
“사무실도 없는데 어떻게 보내려고?”
“어……”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미하일 킴에게 말했다.
“몰타 주소지로 보내는 형식으로 해서, 부국장이 나한테 전달해 줘. 그거 들고 크렘린으로 갈 테니까.”
“아, 네.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철은 그렇게 미하일 킴과 함께 해군기지 내에 있는 헬기장에서 헬기를 타고 심페로폴 국제공항까지 갔다.
“연락하라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강철은 미하일 킴의 의전을 받으며 그렇게 헬기에서 한국행 비행기로 환승했다.
환승하면서 의전 주체도 미하일 킴에서 일신그룹 경영지원실 직원들로 바뀌었다.
“실장님. 삼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12월 3일 수요일 19시에 서초동 자하궁에서 김대영 회장의 저녁 식사 제안입니다.”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취향 참.’
그러면서 강철은 직원에게 말했다.
“12월 7일 일요일 저녁 7시, 장소는 압구정 번아웃 7번 방. 응하지 않으면, 만남은 없는 거로.”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