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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145화 (145/175)

145 저격 (4)

“그래서, 왜 이렇게 은밀하게 보자고 하신 겁니까?”

강철의 물음에 와인을 마시던 박태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고, BH에서 어제 나한테 연락을 줬어. 조만간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 관련해서 민관합동 간담회를 VIP가 직접 열 생각인데 참석해달라고 말이야.”

강철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거 진짜로 하려는 겁니까?”

“내후년이 총선이잖나? 뭔가 정치적 이벤트를 한번 만들어 보겠다, 이거겠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제가 곤란한 처지에 빠졌었는데, 저를 거기에 동석시키는 게 맞습니까?”

강철의 말에 박태화가 이번엔 살짝 당황했다.

“응? 내가 그런 말을 했나?”

그리고 역으로 강철이 당황했다.

‘실수했구만.’

강철은 박태화의 생각을 읽고서, 무심결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주워 담을 길은 있었기에, 일단 강철은 자기 발언을 수습했다.

“뻔한 거 아닙니까. 회장님이 저를 직접 집으로 초대하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시는 건.”

그 말에 일단 박태화는 수긍했다.

“그렇지. 허허. 아무튼…… 자네 예상대로야. BH VIP가 자네도 참석하길 바라고 있어.”

강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무감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지방선거 결과에 충격받아서 급해진 건지…….”

“그것보다는 자네가 진지하게 러시아에 넓은 인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세르게이 블라소프가 비록 삼우의 사주를 받고 강철의 실명을 적시했다곤 하지만, 그 사실 자체에 거짓은 없었다.

물론 강철이 조국이 가야 할 바른길을 안다느니 하는 소리는 개소리였지만, 그러한 평가 부문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사건 부문만 놓고 보면 그것 자체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강철이 알렉세이 밀레르에게 돈가방을 건넸고, 그는 그것을 들고 평양으로 갔으니까.

‘안 될 건데?’

강철은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 자체가 너무나도 많은 난관이 있었다.

변덕스러운 북한, 부패한 러시아의 존재는, 설령 이 사업을 하기로 삼국 정상이 회담을 해서 합의를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게 하는 장애물 그 자체가 될 터였다.

‘그런 정치 놀음에 놀아날 필요는 없겠지.’

강철은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지금 한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단 빨리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는 게 강철에겐 더 이득이 될 터였다.

“삼우그룹 이슈로 잠잠해졌다곤 하지만, 어쨌건 저는 지금 안 좋은 쪽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괜히 그런 만남에 참석했다가, 또 구설수에 오르면 모두가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강철의 말에 박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 그렇게 전달해두지.”

그러면서 박태화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말이야. 자네, 애인 없나?”

그 물음의 의도를 알았기에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없습니다만, 당장에 만들 생각도 없습니다.”

“어허. 젊은 남자가 말이야, 한창 힘 좋을 때 어? 애인도 만들고 해야지. 다 늙어서는 만들고 싶어도 체력이 부족해서 못 만들어.”

“참고하겠습니다.”

“정연이 괜찮지 않나?”

박태화는 강철과 박정연의 사이에 큰 진전이 없자, 본인이 직접 개입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강철에게는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본인도 자기 마음에 없는 여자랑 결혼했다가 결국 이혼했으면서…….’

박태화의 두 자녀, 박동진과 박정연은 어머니가 달랐다.

2006년 사망한 박동진의 어머니는, 5공 시절 총리를 역임한 사람의 딸이었으며, 박태화와 정략 결혼한 사이였다.

당연히 박태화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는 외도를 했다.

그 외도 중에 만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박정연이었다.

박태화는 1997년, IMF로 모두가 힘든 가운데 전격적으로 첫 부인과 이혼했고, 곧장 박정연의 생모와 재혼했다.

박동진의 생모가 2006년에, 박정연의 생모가 2008년에 죽은 뒤로, 박태화는 오로지 박정연의 생모 기일만을 기념할 뿐이었다.

그것이 그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지금, 박태화는 그런 박정연에게 어떤 정략적인 연애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게 강철은 안타깝게 했다.

‘뭐, 이런 문제로 괜히 싸울 필요는 없겠지.’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넌지시 박태화에게 말했다.

“뭐, 훌륭한 아가씨죠. 따님도 절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네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정연의 의지를 중시하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박태화에게는 다르게 해석됐다.

‘마음이 있구나.’

박태화는 미소를 지으며 와인을 마셨다.

그런 박태화를 보며 강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재벌들이란…….’

8.

매춘 영상 공개 이후, 김대영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그것은 공식적인 발표일 뿐이었다.

“이 더러운 놈들이 말이야. 그동안에 뻑하면 내한테 와가지고 말이야. 광고 좀 달라느니, 자기들 사정이 어렵다느니 해놓고는 이제와서 죄다 내 뒤통수를 치고 있어.”

7월 24일 목요일 정오.

병원 밥을 먹고 나서, 김대영은 그런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뭐, 언론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네 장인 말이야. 어? 그 인간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사돈을 뒤통수 칠 수가 있어?”

“그래도 무궁일보는 최대한 아버지를 옹호하는 쪽으로 기사를 내잖습니까.”

“나를 옹호하고, 안 하고, 그게 문제가 아니야. 왜 내 이야기를 경우 없이 하느냐, 이 말이야.”

여전히 언론에선 김대영의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초창기보다는 잠잠해졌다지만, 아직도 신문을 펼치면 김대영의 매춘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검찰도 마찬가지야. 아니, 뻔히 내가 어?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누워 있다는데 말이야. 무슨 조사를 하니마니 하고 있어?”

“여론 눈치를 봐야 하잖습니까.”

“여론 눈치는 보고, 내한테 받아 처먹은 돈의 눈치는 안 보는 거야? 서 총장 말이야. 그 인간이 그러면 곤란한 거 아니야?”

“일단 그쪽으로는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아버지. 이 전무가 총대를 멨으니까.”

“하여간…… 이 전무만 한 놈이 없어. 걔 봐봐. 얼마나 사람이 응? 충성스럽고 어? 일 잘하고.”

김대영은 그러면서 김태준에게 말했다.

“태준이 너는…… 나중에 나 죽고 나서 무조건 이 전무 잘 챙겨야 해. 이 전무만 한 충신 또 없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내한테 여자 보낸 그놈. 그놈 알아는 봤고?”

“네. 최영일이한테 직접 이 전무가 추궁을 했는데, 최영일이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거야? 혹시 네 사촌들이 그런 거야?”

“조사하고 있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고약한 것들 같으니라고.”

김대영은 잔뜩 뿔이 난 황소개구리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김대영을 달래기 위해, 김태준은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밖에, 들어오라고 해.”

김태준의 말에, 병실 밖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던 삼우그룹 경호원들이 문을 열었다.

곧, 간호사 차림의 여자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병원이니까, 특별히 간호사 복장을 요청했습니다, 아버지. 둘 다 일본에서 잘 나가는 성인 배우들이라 아마 굉장히 즐거우실 겁니다.”

김태준의 말에 김대영의 표정이 밝아졌다.

김대영은 간호사 코스프레를 한 두 여자에게 일본어로 인사했다.

“반가워들.”

“헤에-! 회장님, 일본어 하실 줄 아시나요?”

“스게-!”

김태준은 자리를 비워주었고, 두 야동 배우의 과장된 애교 속에서, 김대영은 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로 곁에서, 강철이 은신을 펼친 채 또 카메라에 담았다.

‘한준영이는 죽었어. 당신은 죽지는 않으니까, 사회적으로 타살당하게는 해야지 않겠어?’

그렇게 30분간 세 사람의 유희는 이어졌고, 그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은 후, 강철은 해피 타임이 끝났을 때, 조심스럽게 병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수정헌법 1조를 좋아하는 곳에다 또 올려줘야지.’

허공에서 수차례 돌다가, 고양이처럼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한 강철은, 사람들 많은 곳에서 은신을 풀고는, 인파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너희들 진짜 A급이 맞네. 저기 창문이 열려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즐거웠어.”

병실에 남은 김대영은, 뒤처리를 해주는 일본 야동 배우들에게 그렇게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열려 있는 창문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9.

7월 30일 수요일.

또 하나의 새로운 동영상이, 폰허니에 공개됐다.

이번엔 병실에서, 일본 야동 배우 두 사람과 김대영이 유희를 즐기는 30분짜리 영상 하나와, 그 이전에 김대영이 김태준과 대화를 나누는 영상 하나가 각각 따로 올라왔다.

<와 쟤 걔들 아님?>

<ㅅㅂ 진짜 걔들이네.>

일본 배우들이 워낙 유명했던 까닭에, 순식간에 동영상 조회수는 300만 뷰를 돌파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달리 동영상이 올라오고 1시간이 지났을 무렵, 모든 한국 언론사에서 이를 보도했다.

공교롭게도 동영상이 공개된 7월 30일은 김대영의 80번째 생일날이었다.

<팔순 선물로 쟤들하고 삼섬 즐긴 거면 됐지.>

<노인네 힘 좋은 거 보소 나보다도 좋을 듯.>

<그건 네가.>

인터넷에선, 이제 더 이상 김대영에게 어떤 도덕적인 것을 원하지 않았는지, 규탄하는 여론보다는 늙은 그의 정력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근데 김대영 혼수상태라 하지 않았음?>

그런 문제 제기가 있기도 했지만,

<쟤네들 온다는데 관짝에서라도 벌떡 일어 서야지.>

그런 개드립으로 무마되곤 했다.

네티즌들이 김대영을 그렇게 조롱하고 있을 때, 언론에선 굉장히 심각하게 사안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재벌 회장의 혼수상태는 정의가 다른가>

언론에서는 일단 혼수상태라더니 멀쩡한 김대영의 상태와 그 와중에도 병실로까지 여자를 불러들이는 그의 부도덕한 모습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이번엔 무궁일보도 공격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여론은 안 좋았다.

<회장님이 고백하신 언론과 검찰 그리고 재벌의 유착 관계>

그리고 일부 진보 언론은 김대영과 김태준이 나눈 대화에 주목하여, 검찰총장에 대한 사퇴 여론에 불을 지피기까지 했다.

그렇게, 김대영은 굉장히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검찰에서는 김대영이 혼수상태이며 위독하다는 소견서를 쓴 의사를 구속했고, 병원을 압수수색 했다.

[김대영 회장에 대한 수사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대검찰청 대변인의 입에서, 김대영에 대한 수사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러니까, 왜 나한테 시비를 거셨어요. 그냥 당신 눈에 천박한 놈이 설치고 다니면, 당신한테 손해만 안 끼치는 이상 내버려 두시지.”

7월 31일 목요일 밤 11시.

잠원동 펜트하우스 거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면서 강철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랬으면 명예롭게 가실 수 있었을 건데, 괜히 이렇게 먼저 사회적 타살을 당하시게 됐잖아요.”

강철은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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