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저격 (2)
3.
6월 26일 목요일 저녁 6시.
송파구 일식집.
“어! 최 사장!”
“아이고, 김 회장님. 이렇게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정장 차림에, 올백 스타일로 머리 손질도 했건만, 어딘지 모르게 날티가 심하게 나는 남자, 최영일이 다다미방 안으로 들어오며 김명길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마, 영광 같은 소리 하지 말고, 퍼뜩 앉으소.”
김명길은 괜히 얼굴을 붉히며, 최영일에게 자리에 앉으라 손짓했다.
그제야 최영일은 다다미방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응?’
당연히 그의 상식에선 상석에는 김명길이 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김명길은 상석 기준 우측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상석에는 웬 젊은 남자가 앉아서 가만히 사케를 홀짝이고 있었다.
‘어? 저 사람?’
처음엔 웬 놈이지? 했지만, 이내 최영일은 그가 누군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일신 강철?’
최근 뉴스에서 자주 이름이 언급된, 보도자료용으로 배포된 증명사진으로만 그 존재가 드러난 남자.
일신그룹 경영지원실장 강철이 상석에 앉은 그 사람임을 알아차린 최영일은 화들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팍 숙여 절하며 인사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와이아이엔터 사장 최영일이라고 합니다. 뵙게 돼 영광입니다.”
강철은 그런 최영일의 태도에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영업도 그런 식으로 너무 과하면, 역효과가 일어나.”
최영일의 과한 인사는 어디까지나 영업용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강철을 존경한다거나 두려워해서 저러는 게 아니었다.
최영일은, 조금이라도 지위가 높은 사람과 만나면 늘 저런 식이었다.
심지어 김명길과도 처음 만났을 때 저런 식으로 인사를 했었다.
“죄, 죄송합니다.”
강철이 정곡을 찔러오자, 최영일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명길은 인상을 찌푸리며, 빨리 자기 맞은편에 앉으라 턱짓했다.
최영일은 조심스럽게 김명길의 맞은편, 강철의 좌측에 앉았다.
곧 식사가 나왔고, 강철은 회를 한 점 집어 먹은 뒤 최영일에게 말했다.
“난 말을 빙빙 돌려가면서 하는 것을 싫어해.”
그 말에 김에 회를 싸서 먹던 최영일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강철을 바라봤다.
“어차피 본론으로 갈 건데, 뭐하러 빙빙 돌아서 가? 안 그렇나?”
최영일은 반쯤 씹은 음식을 꿀꺽 삼킨 후, 물을 한 모금 마셔서 넘기곤 대답했다.
“아, 네. 맞습니다.”
“그러니 난 당신한테 빨리 본론부터 말하겠어. 그래야, 식사를 편하게 잘 끝낼 수 있지 않겠나?”
최영일은 살짝 불안해하며 슬쩍 김명길을 바라봤다.
‘도대체 이 인간들이 왜?’
강철은 사케 한 잔을 쭉 들이켠 후, 최영일에게 말했다.
“삼우 김대영 회장에게 애들을 보낸다고 들었어.”
그 말에 최영일은 흠칫 놀랐다.
그러나 겉으론, 거의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김명길과 강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하하. 그…… 무슨 소문을 들으신 건진 모르겠는데…… 저희 그런 업체 아닙니다. 엄연히 엔터테인먼트……”
“2013년 11월 21일 19시 30분부터 22시 45분까지 서초동 바움하우스 11층, 12월 26일 23시 22분부터 다음날 새벽 2시 10분까지 같은 장소. 그리고 2014년 4월 17일 20시부터 23시 55분까지 청담동 라티움 펜트하우스. 각각 3명씩, 앞에 두 번은 같은 애들로 뒤에는 다른 애들로.”
강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최영일의 표정은 굳었고, 안색은 창백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떨리는 눈으로 강철을 바라보기만 했다.
‘뭐, 뭐야 이 인간?’
그는 자신에게 감시가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감시자로 대산을 강하게 의심했다.
하지만 모두 틀린 생각이었다.
조금 전, 강철이 읊었던 것은 최영일이 최근 김대영에게 여자를 보낸 날과 그날의 스케쥴이었다.
그리고 그 자료는 모두 지금 이 순간, 최영일의 머릿속을 관심법으로 스캔하여 얻은 정보였다.
‘뭐, 자기가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와 일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강철은 최영일이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야기하면 정신병자 취급받을 진실보다는, 침묵함으로써 상대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거짓이 더 나은 상황이었다.
“내가 말했지. 돌려 말하지 말자고. 어차피 본론을 말하게 될 거니까, 빨리빨리 이야기하고 밥이나 먹자고.”
강철의 말에 최영일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쪽이 김대영 회장의 유희를 위한 상품을 제공하는 거를 가지고 내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최영일은 떨리는 손으로 사케를 한 모금 마셨다.
“난 단지, 그쪽과 협업을 하고 싶을 뿐이야.”
최영일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철은 그의 내면을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읽어가며 말을 이었다.
“다음번, 김대영 회장이 유희를 위한 상품의 공급을 원할 때, 그 시간과 장소만 여기 김명길 회장한테 말해주면 돼.”
최영일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했다.
‘뭐 하자는 거지?’
강철은 간 보지 않고 직구를 날렸다.
그것이 최영일을 혼란에 빠뜨렸다.
언질이라도 있었다면 이 젊은 재벌 그룹의 실세가 무엇을 원하는 건지, 자신이 이 남자와 협업을 해서 얻을 이익은 무엇이고 손해는 무엇인지, 협상의 여지가 있는지 등에 관해 생각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강철은 그냥 훅하고 강속구를 던졌고, 정통으로 그것에 맞은 최영일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지금 국가보안법인가 뭔가로 위험한 거로 알고 있는데…… 설마 김 회장님하고 어떻게 이 건을 가지고 쇼부를 보려고?’
그래도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구른 사람답게, 그는 나름대로 혼란한 와중에 정답에 근접한 생각을 떠올리기까지 했다.
‘무능한 인간은 아니군.’
강철은 그의 내면을 읽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만큼, 지금 파고들어야지.’
강철은 회를 한 점 집어 먹었다.
그리곤 최영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일신그룹이 최근에 구조조정 중이야. 경제뉴스를 봤다면, 알고 있겠지.”
갑자기 일신그룹 구조조정으로 강철이 화제를 돌리자 최영일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강철은 그런 최영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도 구조조정 대상이야. 우리는 미래에 K-콘텐츠를 선도하는,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을 할 생각이야.”
강철의 빈 잔을 김명길이 채웠고, 강철은 그 술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그래서 음원 제작 부문은 매각할 생각을 하고 있어. 작곡은 계속해서 우리 쪽에서 하겠지만, 제작은 외주를 줄 생각이야. 뭐랄까, 보다 예술적인 부분에 더 집중하게 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최영일의 마음에 순간 기대감이 생겼다.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최영일의 그 마음을 흔드는 말을 던졌다.
“그 음원 제작 부문을 와이아이가 매입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최영일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그의 심장이 이번엔 다른 이유로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음원 제작…….’
지금은 여자들을 데리고 재벌에게 성상납이나 하며 그 입김으로 겨우 방송사 가요프로그램과 예능에 그 여자애들을 출연시키는 처지였지만, 최영일에게도 나름의 꿈은 있었다.
정상적인 연예 기획사를 경영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데 음원 제작사 매입은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일신엔터테인먼트의 음원 제작 부문을 와이아이가 매입하면? 그래, 잘하면 일신엔터 소속 가수들의 음원도 다 우리가 제작할 수 있겠지. 그리고 거기서 번 수익으로 진짜 제대로 된 애들을 내가 키워보는 거고.’
최영일의 머리가 또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까보단 비교적 단순한 구도가 잡혔다.
그것은, 삼우그룹 김대영을 배신하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과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서 오는 기쁨 사이에서의 저울질이었다.
“그…… 이게…… 대기업 사업 부문을 매입하는 일은 아무래도 이…… 자금이 많이 필요로 한데…….”
“민국은행 이사하고 연결시켜주지. 기업대출담당이라 말이 잘 통할 거야. 또 매입 대금은 분할하면 되는 일이고.”
그 말에 최영일의 마음속 마지막 고민은 확실히 정리가 됐다.
“…… 삼우에서 연락이 오는 즉시, 김 회장님께 알려드리겠습니다.”
강철은 씩 웃었다.
“그래, 계산이 아주 빨라서 좋아. 사업을 하려면 이래야지.”
꿈은 두려움을 이기게 해준다.
강철은 최영일에게 꿈을 이룰 기반을 선물해주고, 최영일은 그 꿈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강철이 원하는 것을 준다.
‘아주 적절한 거래지.’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술을 쭉 들이켰다.
4.
[실장님, 연락 왔십니다. 7월 12일 토요일 저녁 8시, 서초동 바움하우스 11층이라 캅니다.]
7월 8일 화요일, 김명길에게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자마자 강철은 조용히 서초동 바움하우스 일대를 정찰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이 전무님. 잘 지내셨죠?”
7월 12일 토요일 저녁 7시 20분.
서초동 바움하우스 공동현관.
직접 승합차를 몰고, 3명의 젊은 여자들과 함께 빌라 대문을 통과한 최영일은 마중 나와 있던 삼우그룹 차세대기획본부 총무실 의전총괄국장 이영민 전무는 무표정한 얼굴로 최영일의 인사를 무시하곤, 승합차 문을 열고서 여자들을 확인했다.
“와꾸 좋네. 다들 몇 살이야?”
그 모습에 최영일은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기 왼쪽에 있는 애는 열여덟이고, 나머지 둘은 스물입니다. 헤헤헤.”
“다 나와 봐.”
이영민의 말에 세 여자는 밖으로 나왔다.
“폰 다 여기 넣어 놔라.”
이영민은 직접 바구니 하나를 들고서 여자들의 폰을 수거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공동현관을 지키고 있던 삼우그룹 차세대기획본부 직원들을 시켜 쇠붙이 검사까지 하게 했다.
그렇게 완벽하게 불법 촬영 및 도청 장치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이영민은 여자들을 이끌고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씨발…… 별일 없겠지?’
홀로 밖에 남은 최영일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알려달라고 한 거지? 어디 뭐 감시자도 없고, 경찰이 올 기미도 안 보이는데?’
강철과 약속한 대로, 최영일은 김대영이 부르는 날을 김명길에게 공지해주었다.
김명길로부터는 고맙다는 인사만 왔을 뿐이었다.
강철로부터는 당연히 아무런 이야기도 전달되지 않았다.
‘별일 없겠지?’
최영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차에 올라타 앉았다.
‘별일 없겠지.’
평소처럼 삼우그룹 차세대기획본부 직원들은 그를 개무시했고, 자기들 회장님 접대하러 가는 여자를 음탕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회장의 남모를 비밀스러운 유흥을 위해 서초동 한가운데에 있는, 평당 5천이 넘는 빌라 전체를 매입한 이 정신 나간 인간들과의 거래는, 평소와 똑같았다.
그러나, 최영일의 마음은 평소와는 달리 굉장히 떨리고 있었다.
‘아무 일 없을 거야.’
주문처럼 아무 일 없을 거다, 별일 없을 거다라고 속을 되뇌이면서도, 최영일은 불안을 감출 순 없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