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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142화 (142/175)

142 저격(1)

1.

6월 8일 일요일.

강철은 러시아 해외정보국 부국장 미하일 킴으로부터 세르게이 블라소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밀레르 전 부의장의 비서였고, 같이 평양에 들어가긴 했습니다. 아마 그때 그걸 밀레르에게 전해 받은 모양입니다.』

강철의 예상대로 세르게이 블라소프는 알렉세이 밀레르로부터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우리 쪽에서 알아보니까 한다는 말이, 그냥 자기는 인상 깊었던 일이라 적었을 뿐이랍니다.』

강철은 당장에 우크라이나로 날아가려고 했다.

가서 세르게이 블라소프를 직접 족쳐서 어떻게 자기 실명을 알게 됐으며, 왜 이런 짓을 했는지를 불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하일 킴이 전달해준 정보에 그럴 필요까진 없어졌다.

『그리고 지금 블라소프가 고문으로 있는 회사 말입니다. 보니까, 삼우전자에 납품하는 회사였습니다. 폴란드에 있는 삼우전자 배터리 공장으로 부품을 보내는 게 그 회사의 일입니다.』

배후에 삼우그룹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강철은 국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때마침, 6월 9일 월요일 오전에 일신그룹 본사에서 한준영과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강철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곧 김 회장이 널 지옥으로 보낼 거다. 이 자격 없는 새끼야.」

강철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삼우그룹 회장 김대영과 일신그룹 부회장 한준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다음에 그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기다렸다.

한준영이 움직이기를.

6월 11일 수요일 저녁, 한준영이 일식집에서 김대영과 만난다는 보고가 올라오자마자 그는 직접, 혈혈단신으로 그곳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차에 숨어서 가만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준영은 김대영을 보낸 후 차에 올라탔고, 강철은 뒷좌석에서 가만히 은신을 풀고는, 한준영의 관자놀이를 가격해 그를 기절시켰다.

그리고 강철은 직접, 한준영을 차로 태워서 하남 대마농장으로 왔다.

“여긴 참 좋은 공간이야. 수익성은 뭐 크게 없는데, 농장이다 보니 장치가 많이 있거든.”

“으으으읍……”

“한 부회장. 이게 뭔 줄 아나?”

“으읍-! 으읍-!”

“대마를 재배하고 나서 남는 찌꺼기를 뭉탱이로 모아서 갈아버리는 대형 분쇄기야. 블랜더라고도 하고, 믹서라고도 하지.”

강철은 손으로 커다란 분쇄기의 표면을 툭툭 쳤다.

“내가 저번에 봤을 때, 이게 사람 두개골을 한 방에 으깨더라고. 생각보다 덜 고통스럽게 죽었겠더라니까?”

한준영은 의자에 묶여 있었다.

옷은 벗겨져 있었고, 입에는 그의 양말이 재갈처럼 물려있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어련히 내가 안 챙겨줬을까? 아니, 어차피 민식이는 당신 조카잖아. 안 그래? 민식이하고 당신 아들내미하고는 사촌지간 아니야? 근데 왜 설치다가 이렇게 서로 민망한 꼴을 보게 만들어? 응?”

강철은 김명길에게 손짓했다.

김명길은 한준영에게 다가가 입에 물려 있던 재갈을 벗겨 주었다.

“푸흐읍-!”

한준영은 한 차례 침을 바닥에 뱉어낸 후, 강철을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살려주십시오. 제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재벌로서의 자존심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나의 자격을 문제 삼고 싶었으면, 차라리 내가 대산그룹하고 일했던 과거를 문제 삼았어야지. 응? 그랬더라면, 아, 이 개새끼들, 진짜 추잡하게 구는구나, 하고 넘어갔을 건데 말이야.”

“자,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 저는 그냥…… 저는 그냥 보고만 있었을 뿐입니다. 저, 전부 다 김대영 회장이 한 일입니다.”

강철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이 어디 일개 중소기업 사장도 아니고, 명색이 재벌인데, 이런 식으로 세상에서 행방불명 시켜버리면, 나라고 리스크가 안 생기겠나?”

강철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근데 당신이 너무 선을 세게 넘었어. 사실 마음 같아선 당신도 죽이고, 김대영도 죽여버리고 싶긴 한데, 그랬다가는 내가 평생 도망자로 살거나 아니면 팔자에도 없는 러시아 이민을 가야 할 판국이라 그렇게까진 못하겠더라고.”

강철은 담배 연기를 한준영의 얼굴에 뿌렸다.

“그래서 결정했지. 일단 죽어도 덜 시끄러울 놈을 죽이고, 나머지는 개망신을 주는 선에서 매듭짓자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분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회장님! 준비 다 끝났습니다!”

분쇄기 근처에 서 있던 김명길의 비서들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알렸다.

“실장님, 마 준비 다 됐다캅니다.”

“오케이. 그…… 대가리부터 넣으면 한 방에 죽으니까, 이번엔 거꾸로 발목부터 넣으라고. 알았지?”

“네, 알겠십니다. 마! 들었제? 발목부터다!”

곧 분쇄기 근처에 있던 김명길의 비서들이 한준영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한준영의 손목과 발목을 구속하던 끈을 칼로 자른 후, 들어서 옮기기 시작했다.

“강 실장! 강 실장! 살려주십시오! 내 지분! 내 지분 전부 다! 아, 아니! 보성이 지분까지 전부 다! 전부 다! 민식이한테 물려주겠습니다!”

발악하는 한준영을 보며 강철은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식을 팔아?”

강철은 담배를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져 버린 후, 김명길에게 말했다.

“저 새끼, 천천히 갈아버려. 발목이고 다리고 다 갈릴 때까지 겨드랑이 붙잡고 최대한 살려 놔. 내 말, 이해 했어?”

“아…… 네, 이해했십니다.”

김명길은 곧장 비서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몇 가지 지시를 내렸고, 비서들은 그걸 금방 이해하고는 그대로 분쇄기에다가 한준영의 발목을 밀어 넣었다.

“강 실장! 강 실장! 강 실…… 끄아아아악-!”

[콰드드드드득-!]

발가락부터, 천천히, 한준영은 분쇄기에 갈려 나갔다.

그는 시종일관 비명만 지르다가, 복숭아뼈가 갈려 나갈 때쯤, 쇼크로 사망했다.

“실장님! 임마 뒤져삐맀십니다!”

강철은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물고서 불을 붙이곤, 김명길에게 말했다.

“그럼 그냥 집어넣고, 대충 그 저기 밭에다가 뿌려.”

“네, 알겠십니다.”

그렇게 강철은, 한준영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행방불명되는 것과, 그의 육체가 대마밭에 뿌려져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이 되는 것을 모조리 지켜보았다.

2.

확실히 한준영은 그 죽음의 사회적 파장이라는 측면에서, 엄태욱이나 엄근식과는 달랐다.

한준영이 실종되고 이틀이 지나자 언론에서 그의 실종을 다루기 시작했고, 경찰에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당연히 강철에게 가장 많은 의심의 눈길이 쏟아졌다.

그러나, 의심만 할 뿐, 그 누구도 감히 강철을 수사하진 못했다.

강철이 지난 몇 년 동안 정관계에 뿌려둔, 특별히 검찰에 쳐둔 약이 효과를 발휘한 것도 있었지만, 일단 한준영의 실종과 강철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종 당일 한준영은 부인의 차를 타고 집을 나섰는데, 부인의 차가 마지막으로 잡힌 곳은 강남 세곡동 인근 도로였다.

그 이후로는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차도 그리고 한준영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차는?”

“마 깔끔하게 폐차해가지고 중국으로 가는 고철에 섞어뿌가꼬 보냈십니다. 지금 쯤 톈진항에 도착했을깁니다.”

“그래, 잘 했어. 화물 트럭은?”

“마 적재함부터 해가지고 싸그리 청소 했십니다. 블랙박스 영상도 싹다 폐기해삐리가꼬 우리가 그기랑 연관 있다는 증거는 어데서도 못 찾을 깁니다.”

“수고했어.”

강철은 차를 몰고 세곡동으로 가서, 미리 봐 두었던, CCTV가 없는 한적한 곳에서 그 차 자체를 커다란 화물 트럭의 컨테이너 칸에 실었다.

하남 대마농장으로 간 건 화물 트럭이었고, 당연히 경찰은 화물 트럭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기에, 한준영의 흔적은 세곡동에서 증발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한준영이 탔던 부인의 이태리제 쿠페는 고철이 돼 톈진항으로 갔고, 쿠페를 실었던 화물 트럭은 깨끗하게 청소돼 모든 흔적을 씻어냈다.

이로써 한준영의 죽음에 관한 모든 증거는 인멸됐다.

김명길이나, 그날 한준영을 처리하는 데 동원된 대산그룹 회장 비서실 비서들은 모두 강철이 관심법을 동원해 검증한 사람들이었던 만큼, 그들이 배신할 일도 없었다.

‘한준영은 이렇게 갔고, 이제 남은 건 김대영인가?’

한준영에게 한 말대로, 김대영까지 죽일 순 없었다.

일단 김대영은 혼자 움직이던 한준영과는 달리, 늘 경호원을 대동했고 거의 항상 김태준과 함께 다녔기에, 조용히 납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거기다 강철이 러시아에서 알렉세이 밀레르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평양으로 갈 때 돈까지 건넸다는 것을 알 만큼, 삼우그룹의 정보력은 대단했다.

‘김대영을 죽이면, 아마 진짜 난 러시아로 도망가야 할 거야.’

사실상 그의 진정한 힘이 한국에 있는 일신그룹과 거목그룹에서 나오는 만큼, 러시아로 가면 그는 그저 돈 많고 힘센 아시안일 뿐이었다.

강철은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김대영을 죽일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지.’

그랬기에 강철은 다른 방법으로 김대영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다.

“그때 내가 이야기한 거, 알아는 봤지?”

강철의 물음에 김명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팀이 움직이고 있는데, 그중 한 놈하고 어제 밥을 먹었십니다.”

“그 인간이 삼우그룹 전담인가?”

“네.”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자리 한 번 만들어 봐.”

“그…… 직접 금마하고 만나 보실라꼬예?”

“왜, 문제 있나?”

“아, 아니. 그건 아이고…… 그…… 어쨌거나 이제 실장님도 이 사회적인 위상이 있으신데, 그런 추잡스러운 일은 고마 지한테 다 매끼뿌는 게 안 낫나, 싶어가 그래 함 여짜본 깁니다.”

김명길의 말에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관심법을 통해, 조금 전 그의 말에 다른 꿍꿍이 따위는 없다는 것을, 강철은 검증해냈다.

그는 진정으로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충신 하나 얻는 게 참 어려운데…… 난 여러모로 운이 좋은 편이었어. 처음부터 이런 충신을 얻게 돼서.’

강철은 담배를 한 대 꺼내 김명길에게 건네주었다.

김명길은 양손으로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강철은 손가락으로 불꽃을 일으켜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준 후, 그 자신도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는 허공에 연기를 내뿜곤, 김명길에게 말했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내가 김 회장 당신을 대산 회장으로 세운 건, 내 뒤나 닦으란 의미가 아니야. 당신은 그저 지금처럼, 거목이나 일신의 이름으로 하기 어려운 일들, 대산이니까 할 수 있는 일들만 해 주면 돼.”

김명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챙길 부분은, 내가 직접 챙기는 게 김 회장, 당신 입장에서도 좋잖아. 안 그래?”

“그건…… 마 그거는 그렇긴 합니다.”

“아무튼, 자리 한번 깔아 봐.”

“네, 그래 하겠십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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