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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 강철은 기억하진 못했다.
이전 생에, 아무런 영향력도 없고, 힘도 없는, 그저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하루하루를 생존을 위해 살아가던 그의 기억 속에서, 2014년 4월 16일의 날씨가 어땠는가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랬기에 오늘, 4월 16일 수요일, 맑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앞에서, 강철은 이게 원래 이날의 날씨였는지 아니면 이것 또한 모종의 이유로 바뀐 것인지, 그것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오늘 역사적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4월 16일, 학생과 시민들을 태운 채 인천을 떠난 여객선은,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했다.
그 어떠한 사고도 없었고,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항해사부터 조타수까지, 모두가 철저한 교육을 받은 전문가로 구성됐고, 과적은 없었으며, 선박평형수는 기준을 충족할 만큼 들어갔다.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날을 특별히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이날은 그저 누군가에겐 즐거운 여행 날이었을 뿐이고, 일상적인 업무 수행의 한 단계였을 뿐이며,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날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날은 비극적인 날이자, 특별히 기억하게 될 날로 남게 됐다.
“2014년 4월 16일 21시 36분 43초. 한소영 회장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4월 16일 저녁 9시 36분.
한소영은 죽었다.
당일 오후 3시부터 각혈과 발작을 일으키던 그녀는, 6시간 동안 수술실에서 우신종합병원은 물론 서울에서 실력 있다는 의료진이 총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만 받다가 운명하고 말았다.
“…… 수고하셨습니다.”
강철은 의사들이 최선을 다했음을 알았기에, 그들을 탓하거나 질책하거나 그들에게 따지거나 하는 추태를 부리지 않았다.
“…… 실장님, 장례 절차는 어떻게…….”
강철의 곁에 있던 일신그룹 경영지원실 직원의 물음에 강철은 그를 흘겨봤다.
그 눈빛이 직원은 바짝 쫄은 채 움츠러들었다.
강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곤, 그에게 말했다.
“회장님께서 가족장을 원하셨으니, 가족장으로 해야지.”
“…… 네, 알겠습니다.”
강철은 직원을 뒤로하고, 수술실을 떠났다.
그는 그대로 한소영이 지난 1개월여를 누워 있었던 VIP 병실 침대로 갔다.
그리곤 그녀가 머리를 두고 잤던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그대로 침대 위에 엎드러졌다.
그렇게 강철은,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체취를 맡으며, 한동안 아무런 행동조차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엎드려만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감정이 메마른 것이 아니었다.
한소영에게 그 정도의 감정이 없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수많은 사람을 죽여오면서 그의 눈물이 말라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철은 슬펐다.
그리고 그 슬픔을, 그는 그렇게 침묵으로 표현하며, 한동안 가만히 그렇게 있기만 했다.
2.
한소영의 죽음.
그것은 곧 일신그룹 총수의 죽음이자, 거목그룹의 실질적인 주인의 사망이었다.
언론에서는 보통 전자에만 초점을 맞춰서, 향후 일신그룹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재계에서는 후자에까지 초점을 맞춰서 앞으로 두 그룹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그리고 그 답은, 4월 17일 목요일 오전 9시, 일신그룹 경영지원실이 공개한 한소영의 유언을 통해 나왔다.
“저의 모든 재산은 저와 제 남편의 하나뿐인 아들 엄민식에게 상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제 아들 엄민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아이의 후견인으로 현 경영지원실장 강철을 지정하며, 강 실장은 신실한 마음으로 저를 대하듯 제 아들을 대해줄 것입니다.”
딸의 죽음을 결국 숨기진 못했던 만큼, 그녀는 하나뿐인 자식, 엄민식에게 모든 것을 상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기 상속자의 후견인으로 강철을 지정함으로써, 든든한 보호막까지도 마련해두었다.
“강철? 그게 누구야?”
“경영지원실장이라는데?”
“뭐? 스물셋이라고?”
“고아 출신이래.”
언론과 재계에선 강철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건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나 떠도는 이야기였다.
대중들에게는 그저 엄민식에게 모든 게 상속된다는 뉴스만 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언론은 대중이 이제 겨우 4살, 아직 만으로 3세도 되지 않은 2011년 11월 11일생 엄민식에게, 엄청난 액수의 가치를 지닌 유산이 상속된다는 것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최연소 부자라는 타이틀로 엄민식에 관한 정보가 올라갔다.
심지어 엄민식의 사진이랍시고 한소영과 함께 있는 아기의 사진이 올라가기도 했는데, 당연히 가짜뉴스였다.
그 아기는, 한소영이 일신그룹 사원 복지 차원에서 본사 및 각 계열사 사옥에 마련한 아이돌봄방에 방문해 직원의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었다.
대중에게 강철은 철저히 주변부 인물로 취급됐고,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덕분에 강철은, 대중으로부터 주목받는 것에서 오는 피로는 느끼지 않아도 됐다.
중요한 건, 내부 관계자들의 관심이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많은 위로 받고 있습니다.”
“한 회장님과는 어릴 때 오빠, 동생하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동생 같았던 분이셨는데…… 제 마음이 다 아픕니다.”
“모두 슬픈 시간입니다.”
한소영의 장례식을 찾은 사람들은, 공식적 상주인 한준영에게는 가볍게 인사만 하고, 대부분 비공식 상주인 강철에게 가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가 자살하고, 어머니가 병사한 엄민식의 유일한 법적 보호자가 강철이라는 것은, 한소영이 한준영보다 그를 더 신뢰했다는 단적인 증거였다.
그런 만큼,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진짜 상주는 강철이었고, 당연히 진짜 상주에게 가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그들에겐 상식적인 선택이었다.
‘젠장…….’
한준영은 속으로 이를 갈 뿐, 별도의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어쨌건, 그는 한소영이 죽은 지금, 어떻게든 강철에게 빌붙어 계열사 사장 자리, 아니면 하다못해 그룹 상임고문 자리라도 받아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아, 오셨습니까.”
4월 17일 저녁 7시.
한 무리의 권력자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태성그룹 회장 박태화와 삼우그룹 부회장 김태준, 가야호텔 사장 김도은, 현성그룹 부회장 주영배였다.
“이런 자리가 우리들의 첫 만남 자리가 돼서 유감입니다.”
박태화와 함께 온 삼우그룹 부회장 김태준은 자기 여동생이자 가야호텔 사장인 김도은과 함께 강철과 손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과연 소영이가 믿고 맡길 만하단 생각이 듭니다.”
최근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 절 대신 묵념으로 추모를 대신하고, 강철과는 악수만 진하게 한 후 지나간 현성그룹 부회장 주영배와는 달리, 김태준은 굉장히 말을 길게 이었다.
“소영이하고는 한때 운동도 자주 했었습니다. 소영이가 결혼하고, 저도 이래저래 유학이다 뭐다 일이 바빠지면서 그 뒤론 못 하긴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골프라도 종종 칠 걸 그랬습니다.”
강철은 그저 말없이 김태준의 위로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가는 길이나마 함께 동행하고 싶지만, 제가 내일 베트남에 일정이 있어서…… 대신 제 동생이 함께할 겁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부회장님.”
김태준은 그렇게 김도은과 함께 지나갔다.
강철은 가만히 김태준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떠보고 있다.’
부친인 삼우그룹 회장 김대영은, 대외적으론 건강상의 이유로 칩거 중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왕성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다.
김태준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강철을 떠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무슨 의도인 걸까?’
강철의 기억에서, 김대영은 되게 귀족적인 재벌이었다.
모든 재벌 관련 서적부터, 그가 죽은 2021년 5월 이후 나온 추모성 기사 등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것이 바로 그의 귀족적 취향이었다.
‘취향만 귀족적일까? 아니면 사고방식까지도?’
김태준만 놓고 보면, 사고방식까지 귀족적이라고 단정할 순 없었다.
적어도 김태준은, 강철에게 별다른 편견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단지, 아버지의 명령이 있었기에, 그를 탐색하러 왔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년에 삼우그룹이 그 희대의 막장 드라마를 쓰는구나.’
2015년, 삼우그룹은 비로소 지주사로 전환하게 된다.
문제는 그 방식이 굉장히 괴악하다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그것 때문에 김태준도 감방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했단 말이야.’
건설사와 종합상사, 에너지 계열사 그리고 출판사의 물적 합병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통해 삼우그룹은 지주사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대영은 아들인 김태준에게 사실상 삼우그룹을 완전하게 물려주게 된다.
‘이번 정권은 어떨까?’
그 과정에서 해외 벌처펀드의 방해와 국내 소액주주의 반발이 있었지만, 국민연금에서 총수의 손을 들어줘 합병안은 통과가 됐다.
‘지금 내가 아는 대로라면 별문제 없이 통과가 될 것 같긴 한데.’
이번에도 그러한 역사는 바뀌진 않을 터였다.
‘나에게 적대하지 않는다면, 내가 개입할 필요는 없겠지.’
사실, 개입할 방법도 없었다.
개입을 하려면 적어도 삼우건설과 삼우종합상사 그리고 삼우생명의 지분을 각각 8~9%는 보유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현금이 당장에 강철에겐 없었다.
그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를 강철이 인수하기 시작하면, 대번에 김대영 측에서 손을 쓸 게 뻔했다.
‘김태준이 나에게 우호적으로만 행동한다면, 구태여 적대할 필요는 없겠지.’
박태화와 이미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태성의 호의를 얻은 상태다.
강철은 삼우와도 그런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관심법이 있고, 초능력이 있는데, 무엇이 불가능하리?’
3.
4월 18일 오전 11시.
한소영을 품은 관이 화장터로 들어갔다.
불이 붙는 순간, 유모와 손을 잡고 있던 엄민식은 울음을 터뜨렸다.
엄민식의 울음을 시작으로, 어른들도 연쇄적으로 오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철은 울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한소영의 관이 타는 것을, 화면을 통해 지켜볼 뿐이었다.
‘잘 가.’
강철은 한소영을 보내주었다.
그에게 처음으로 여자를 알게 해준 존재이자, 그가 푸틴을 죽여서 거시적인 역사를 바꿀 마음을 품게 해준 존재이며, 그가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데 큰 도움을 준 존재.
‘어쩌면…… 진짜 내 첫사랑이었을 수도 있어. 너는.’
2014년 기준, 법적으로는 강철보다 한참 연상이지만, 존재적인 측면에선, 강철과 동갑인 존재.
그런 존재인 한소영을, 그렇게 강철은 보내주었다.
눈에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마음으로, 충분할 만큼, 엄민식과 함께 울고 또 울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