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새역사 (3)
7.
2014년 3월 9일 일요일 오전 10시.
강철은 한소영이 입원해 있는 VIP 병실에 방문했다.
무려 1주일간 그녀는 반 혼수상태에서 면회조차 불가한 채 우신종합병원의 모든 의사가 붙어서 총력전의 태세로 치료에 전념하기만 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녀는 정신을 차렸고, 면회가 가능해졌다.
‘……’
강철은 한소영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소영은 그런 강철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옆으로 와 앉으라고 손으로 침대를 툭툭 쳤다.
강철은 침대가로 가 거기에 앉았다.
한소영은 힘겹게 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강철은 그녀의 마음을 읽고 손을 잡아 주었다.
“아이는?”
가장 먼저 그녀가 물어본 건 아이였다.
“건강해.”
“진짜?”
“진짜.”
한소영은 다행이란 표정을 지었다.
“딸이라고 했지?”
“응.”
“이름…… 지어줬어?”
“…… 민영이로 하자고 했었잖아.”
“기억…… 하고 있었네?”
“당연히 하고 있지.”
한소영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그녀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강철은 다급히 의사를 부르려 했지만, 그녀는 만류했다.
“괜찮아…… 콜록-! 이 정도는…… 콜록-!”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이전의 그 건강함은 오간 데 없이 초췌한 채로 점차 죽어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상한 모습이었다.
그 상태로 기침을 해대는데 그게 괜찮아 보인다면 보는 자의 눈에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뭐가 괜찮다는 거야?”
“괜찮으니까…… 콜록-!”
결국, 강철은 의사를 불렀다.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가 도착했을 때쯤, 그녀는 산소호흡기 속에서 피를 토했다.
“어서 조치를 취하십시오!”
강철의 재촉이 아니더라도 의료진들은 한소영의 상태를 확인하곤 곧장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보호자분, 잠시만 나가 주시겠습니까?”
간호사의 말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소영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곤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아이가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조산아로 태어난 둘째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사흘간 살다가, 그대로 죽어버렸다.
의료진이 최선의 조치를 다했다곤 하지만, 결국 모체 밖에서 아이는 사흘을 넘기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강철은 그 이야기를 한소영에게 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그만 하는 게 아닌, 한소영과 접촉할 모든 사람이 할 거짓말이 될 터였다.
‘왜 일이 이렇게 되는 거지?’
원래 한소영에겐 아이가 허락되지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는 생명이 허락됐다.
비록 숙청당하고, 세상이 멸망한 만큼 그 전후론 죽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원래 역사에서 그녀는 적어도 2022년 11월까진 잘 살아 있었다.
그러나 변화한 역사의 타임라인에서, 그녀에겐 자식이 생긴 대신, 수명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도 내가 개입한 결과인가?’
강철의 개입으로 대산그룹의 권력 구도가 바뀌었다.
본래라면 거의 세상이 망할 때까지 전국구 깡패 두목이자 대산 회장으로 있어야 했을 강대산은 죽었고, 대신 조민석이 팔자에도 없던 회장 자리를 다 앉게 됐다.
그리고 곧, 조민석은 명예롭게 퇴진하고 그 자리를 김명길이 차지하게 될 터였다.
강철의 개입으로 거목그룹의 운명도 바뀌었다.
본래라면 2017년에 무난히 엄태욱이 회장직을 승계할 예정이었지만, 엄태욱은 물론 엄근식까지도 모든 권력을 잃은 채 강철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개 신세가 됐다.
일신그룹의 운명도 바뀌어서, 본래 회장이 돼야 했을 한준영은 고작 지분 2%만 들고 있는 주요 주주 중 하나로 전락했고 대신 그의 여동생인 한소영과 아들인 한보성이 지배지분을 반반씩 나눠 가진 채 한소영을 회장으로 모시게 됐다.
그리고, 어쩌면, 그 여파로 대한민국의 운명도 바뀌어서 본래 2012년 12월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어야 할 보수 정당은 선거에서 패배했고, 대신 진보 정당이 정권 탈환에 성공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세계사도 바뀌어서, 본래라면 2022년 11월까지 질기게도 살아남아 세계를 멸망으로 인도했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9년 빨리 죽어버렸다.
덕분에 크림반도 강탈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고, 비록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긴 했지만, 적어도 영토가 강대국에게 뜯기고 분리주의 세력이 준동하여 국토의 일부를 상실하는 비극을 겪진 않게 됐다.
그렇게 역사는 바뀌었다.
거시적인 분야에서도, 미시적인 분야에서도.
‘소영이의 운명도 결국 나 때문에?’
강철이 그런 약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마침내 의료진의 조치는 마무리됐다.
“한소영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의사의 말에 강철은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한소영은 아까랑 별로 달라지진 않은 얼굴로, 어떤 부분에선 더 안 좋아진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보며 옆으로 와 앉으라 손짓했다.
그리고 강철이 앉아서 손을 잡아주자, 한소영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손짓했다.
강철이 얼굴을 그녀에게 가까이 붙이자,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약해지지 마. 자기 탓이 아니니까.”
강철의 눈이 떨렸다.
한소영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민식이랑 민영이를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자기는 더 독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비인간적으로 변해야 해.”
“……”
“난 오래 못 살 것 같아.”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마.”
“약한 소리가 아니야…… 합리적인 소리지. 의사들끼리 하는 말…… 비몽사몽 간에 들었어. 길어야 4주에서 6주 사이래.”
“이 새끼들이…… 환자 앞에서…….”
“의사들 탓하지 마. 걔들은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한소영은 잠시 숨을 골랐다.
“무리하지 마.”
강철은 한소영을 쉬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소영에겐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당신…… 꼭……”
강철은 그 말을 계속 들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관심법이 그녀의 마음속 생각을 그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절대 약한 생각 품지 마. 엄태욱하고 엄근식은…… 내가 적절히 처분할 테니까. 소영이 넌…… 회복이나 잘 해.”
강철의 말에 한소영이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그렇게 불러주는구나? 소영이라고…….”
“…… 푹 자. 지금은 회복이 우선이니까.”
한소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호흡은 다소 불안정하긴 했지만 지속됐다.
강철은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 소리 죽여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는 그대로 주치의를 찾아갔다.
“죄송합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도…… 6주가 한계입니다.”
주치의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만큼 한소영의 상태는 안 좋았다.
원인은 다양했다.
노산, 스트레스, 피로 그리고 가벼운 몇 가지 유전병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한데 터지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민식이를 위해서라도…….’
일신그룹 경영지원실 직원들에게 24시간 교대로 한소영의 병실을 지키라 명령한 후, 강철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약해지면 안 되는 거지.’
8.
엄근식은 두문불출하며 평창동 자택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은 집 밖을 나서곤 했다.
때때론 운전기사를 시켜서, 또 때로는 자기가 직접 차를 몰고 그는 서해안이나 강원도 동해안 쪽을 다니며 낚시를 하곤 했다.
‘사람이 마음을 악하게 쓰고, 배신을 하고, 타인에게 엿을 먹이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법이야.’
3월 15일 토요일 새벽 4시 30분.
홀로 서해안으로 낚시를 가며, 엄근식은 생각했다.
‘망할 년.’
한소영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은, 이미 엄근식의 귀에도 들어간 상황이었다.
‘감히 시아비를 농락해? 당연한 대가를 치르는 거야. 암!’
엄근식은 한소영의 상황을 전해 듣곤 굉장히 고소해했다.
그에게 있어서 한소영은 자신을 배신한 배신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배신자에게 가해지는 그러한 일은 천벌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내 지분을 찾아오는 건 힘들어도…… 일신그룹 지분이 결국 그년 자식한테 갈 거니까…… 그리고 그년 자식은 법적으론 태욱이 아들이니까…… 어떻게 친권을 활용해서?’
엄민식이 실제로 엄태욱의 자식이 아니란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한소영 사후 엄민식에 대한 엄태욱의 친권을 이용해, 일신그룹 지배지분을 두고서 무언가 일을 도모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게 다 제자리를 찾으면, 그 애새끼는 저기 해외에다가 고아로 팔아 버리든가 해야지. 어디 감히 더러운 외간남자 씨를 받아 놓고 우리 엄씨 가문한테 덮어씌우려고 해!’
엄근식은 활짝 웃었다.
참고 산 보람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응?”
새벽 안개가 살짝 낀 도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지상.
엄근식은 최대한 조심히 운전한다고 하곤 있었지만, 이미 그의 차는 시속 100km를 넘겨서 달린 지 오래였다.
그리고 엄근식은 한소영 사후의 일을 계획하며,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운전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
화물차 한 대가, 역주행하는 것을, 그래서 엄근식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지 않은 국도에서, 속도 제한이 있지만 그 제한을 어겨도 문제가 없을 만큼 한산한 도로였다.
역주행하는 화물차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한산한 도로에서 역주행이라니?
“이런 썅!”
엄근식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그게 실수였다.
그의 차는 그대로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았고, 수차례 땅과 부딪치더니 이내 전복됐다.
“끄으으…….”
엄근식은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건너편에서 역주행하며 오던 화물차는 갑작스러운 전복 사고에 급정거했다.
‘기름이 새고 있어…….’
엄근식은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꿈틀거리기만 하는 사이, 어디선가 홀연히 불똥 하나가 날아와 질질 흐르던 기름에 붙었다.
[화르륵-!]
곧 불은 차량 전체에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퍼엉-!]
굉음과 함께 차는 폭발하고 말았다.
2014년 3월 15일 토요일 새벽.
그렇게 엄근식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열렸고, 별도의 부검 없이 3월 17일 월요일, 엄근식의 유골함은 납골당에 안치됐다.
엄근식의 장례식 내도록 술만 퍼마시던 엄태욱은, 아버지의 유골함이 납골당에 들어가고 사흘이 지난 3월 20일 목요일 새벽 2시에, 도곡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자식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송구함이 짤막짤막하게 적힌 여섯 줄짜리 유서만 남겨둔 채, 그렇게 엄태욱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엄근식-엄태욱 부자의 죽음에서 그 어떠한 타살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엄근식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화물차 기사는 그저 가벼운 조사만 받았을 뿐, 그가 누구와 엮여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엄태욱의 유서를 발견한 그의 비서 최용대가, 엄태욱이 투신하기 1시간 전에 아파트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경비원의 증언에 의해 밝혀지긴 했지만, 잠깐 조는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는 그의 증언에 경찰은 별도의 조사를 더 이어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엄씨 부자는 세상을 떠났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