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33화 (133/175)

133 새 역사 (2)

3.

푸틴이 죽으면서 역사는 크게 바뀔 것이다.

강철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확신대로, 러시아 내에서 그가 뿌려 놓은 귀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러시아가 크림반도 강탈을 위한 그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게 됐을 만큼 혼란에 빠졌음을 알려주었다.

“메드베데프와 세친, 파트루셰프가 대립하고 있어. 올리가르히들도 두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11월 25일 월요일 오후 3시.

이제는 퇴원해 멀쩡히 활동하게 된 강철은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상황이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 오셔도 되는 겁니까?”

강철의 물음에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피식 웃었다.

“아직은 여유로워. 거기다가 자네를 방문하라는 명령도 있었고.”

강철은 가만히 관심법으로 드미트리 페스코프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호오?’

그리고 그는 상당히 러시아 정치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어쨌건 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메드베데프와 세친, 두 사람 모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현직 총리이자 전직 대통령으로서 러시아 내 온건파 및 제한적 자유주의자를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이고르 세친은 전직 부총리이자 현직 로스네프트 회장으로서 푸틴 정권의 2인자 노릇을 하며 강경파 및 권위주의자를 대표하고 있다.

푸틴이 있을 때야 두 사람이 적당히 푸틴의 통제하에서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어느 정도 선은 지켜졌지만, 푸틴이 사라진 지금, 두 사람은 차기 1인자를 노리고 격렬하게 대립하려는 참이었다.

정치적 대결을 위해 필요한 건 결국 돈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러시아 올리가르히뿐 아니라, 새로이 러시아 정재계에 화려하게 떠오른 동양계 재력가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양반은 그럼 이기는 쪽에 그냥 붙겠다, 뭐 이런 건가?’

드미트리 페스코프가 두 세력 모두로부터 강철의 안부를 알아오란 부탁을 받았다는 건, 그가 아직은 어느 한쪽에 서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면, 크림반도 사태는 일어나지도 않겠구만.’

크림반도 강탈은커녕 현재 예정된 소치 올림픽이나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러시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강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무튼 다행이군. 괜찮은 것 같아서 말이야.”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렇지. 운이 좋았을 뿐이지. 안타깝게도 푸틴 대통령이나 밀레르 부의장은 그렇지 못했지만 말이야.”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모두가 자네처럼 안타까워하는 건 아니야.”

그 순간, 강철은 읽을 수 있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을 통해, 현재 러시아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있는가를.

‘강경파와 온건파 모두가 서로를 테러의 배후로 지목하려고 난리다?’

오히려 푸틴이 폭탄 테러로 죽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그렇게 서로들 싸우면서 안에서만 피 튀기라고.’

강철은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적어도, 러시아를 통해 세상이 망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모쪼록 러시아에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바랄 뿐입니다.”

“동감일세.”

5.

변한 것은 러시아뿐만이 아니었다.

“의병 전역이라…….”

11월 26일 화요일 저녁 6시.

강철은 박태화의 초대로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다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박태화-박정연 부녀와 마주 보고 앉은 채 쉐프가 만든 양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됐네. 아무래도 정연이가 충격을 좀 많이 받은 모양이라서 말이야.”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이야 이전 생에, 멸망한 세상에서 매일 같이 찢겨져 나간 시체를 봐 왔고, 또 그런 시체를 만들기도 했기에 별 큰 충격은 없었지만, 박정연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녀는 눈앞에서 사람이 폭발에 의해 터져 나가는 것과 고기가 된 채 익어버리는 걸 보았다.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밖엔.

‘원래라면 만기 전역하지 않나? 의무복무기한 채우고 전역했을 건데 말이야.’

푸틴의 죽음으로 러시아도 변했지만, 박정연 개인의 삶도 변했다.

이제 그녀는 상당히 위축된 채 당분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어쩌면 평생 PTSD를 겪으며 살 수도 있다.

‘뭐, 결국 당신들이 자초한 일이니까.’

강철은 그 부분에선 별 감흥이 없었다.

중요한 건, 박정연의 개인사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태성그룹도 내 편으로 포섭한 거나 다름없지?’

처음 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강철은 쉬지 않고 관심법을 펼치며 박태화의 마음을 살펴보고 있었다.

박태화는 강철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딸을 살린 은인에 대한 호감을 넘어서서, 강철을 자신의 가족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수준의, 극호감이었다.

물론, 강철은 박태화의 가족 일원이 될 생각은 없었다.

강철 본인이 박정연에게 별 감흥이 없는 것도 있었고, 박정연도 강철에게 크게 이성적으로 호감을 느끼지 않는 것도 원인이었다.

무엇보다도 강철은 한소영을 두고 다른 여자와 만날 생각이 없었다.

‘괜히 그랬다가 한소영이 삔또가 상해서 트롤링을 해 버리면 곤란해진단 말이야. 일신그룹 자체를 잃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박태화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고, 강철은 그 호의를 이용해 태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제 금 보유고 자체가 쓸모없는 일이 되긴 했지만 말이야.’

푸틴이 죽은 이상, 세상이 망할 일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구태여 금 보유고를 한국에 가져올 필요도 없었다.

그냥 지금처럼 영국에 두면서, 그곳, 세계 최대 규모의 금거래소에서 알아서 유통되게 하면 될 일이었다.

‘이젠 다른 의미로 권력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강철이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고, 그냥 있는 돈으로 유유자적하게만 살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이 망하지 않으니, 그럼 그 세상에서 더 잘 살아야지.’

거목과 일신의 힘으로도 어느 정도 한국 정계를 컨트롤할 수는 있었지만, 두 그룹이 보유한 인적 네트워크는 5대 재벌이 가진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태성그룹이 나에게 협조해준다면 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도 있겠어.’

명확한 목적은 이제 사라졌다.

금보유고를 한국으로 이전하겠다던 목표도, 멸망에 대비하겠다던 목표도, 그리고 최근에 생겼던 푸틴을 제거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목표도.

모두 사라졌다.

푸틴의 죽음으로써 세상은 멸망의 운명을 피했고, 강철은 목표를 잃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끝이라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었다.

‘세계 유일의 초능력자로서, 천천히 한국 재계를 하나하나 포섭해 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런 새로운 목표하에서, 태성의 협조는 중요했다.

그랬기에 강철은, 일단 박태화에게 당분간은 호의를 살 일만 할 생각이었다.

“누나는 어떻게, 괜찮아요? 마음이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강철의 물음에 박정연이 흠칫 놀랐다.

그러더니 그녀는 강철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응? 이건 좀 곤란한데?’

박태화에게만 집중하고 있던 관심법으로 그녀의 내면을 확인한 강철은 살짝 당황했다.

‘그거 한 번 구해줬다고 나한테 마음이 생긴다고? 이게 그 흔들다리 효과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강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뭐, 나쁠 건 없지?’

6.

2013년이 지나고 2014년으로 넘어갈 때, 러시아는 여전히 혼란을 극복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주축으로 하는 온건파는 자유주의적 올리가르히는 물론 심지어 야권 및 시민사회와도 연대하여 헌법에 따른 조기 대선을 주장했다.

반면 이고르 세친을 주축으로 하는 강경파는 국가적 안정의 필요성과 푸틴 암살의 범인 색출 등을 이유로 조기 대선보다는 권한대행체제를 이어가자고 주장했다.

두 파벌의 뜻이 나뉜 이유는 간단했다.

온건파에게는 메드베데프라는 대통령 후보가 있었지만, 강경파에게는 마땅히 대중에 어필할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푸틴이 살아 있을 때야 그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존재 그 자체였으니, 그 아래에서 자기들끼리 권력을 나눠 가지고 서열을 매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푸틴이 죽은 지금, 지배계급의 이너 서클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사람은 오로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뿐이었다.

그것이 강경파에게는 걸림돌이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없으니, 이너 서클 내에서 상당한 지위를 누리던 사람들이 저마다 후보가 되겠다며 나섰다.

교통정리를 해야 할 파벌 수장인 이고르 세친은 본인도 욕심이 있었던 만큼, 정리 대신 도리어 혼란을 부추겼다.

덕분에, 온건파는 자신 있게 조기 대선을 주장했고, 강경파는 헌법조차 무시한 채 억지를 부리는 상황이 됐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행히 소치 올림픽은 무사히 치러졌다.

여러 사건·사고가 있긴 했지만, 러시아의 정치적 혼란을 고려했을 경우, 큰일은 아닌 수준이었다.

그리고 원래 역사대로였다면, 소치 올림픽 직후 일어났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탈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배 계급이 분리된 상황에서, 크림반도 강탈을 주도했을 강경파마저도 분열돼 있으니, 그런 거대한 음모를 실행할 능력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역사는, 실제보단 평화롭게 흘러가게 됐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시적인 역사에서나 그런 것이었다.

[띠잉-!]

2014년 3월 2일 일요일 저녁 9시.

우신종합병원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들이 나왔다.

그들이 나오자 엄태욱과 강철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철은 엄태욱에게 눈짓을 했고, 엄태욱이 의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그 물음에 의사는 엄태욱에게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따님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긴급한 의료 조치는 다 취했고, 현재 인큐베이터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의사는 말을 망설였다.

하지만 엄태욱은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퀭한 눈으로 멍하니 의사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강철도, 이미 관심법으로 의사의 마음을 읽고 있었기에, 그를 재촉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강철은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소리입니까! 하지만 뭐요! 산모가 어떻게 됐다는 겁니까! 왜 그렇게 된 겁니까!”

강철은 의사의 멱살을 잡았다.

의사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단 입원하신 상태로 계속해서…….”

“저기 실장님 이러지 마시고……”

강철의 주변에 있던 일신그룹 경영지원실 직원들이 그를 말렸다.

강철은 의사의 멱살을 놓았다.

‘한소영…… 소영이…… 소영이가 위독하다고?’

예정보다 3개월이나 일찍, 아이는 태어났다.

딸이었다.

7개월, 약 28주 만에 태어난 조산아였지만, 다행히 건강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산모였다.

‘소영이가…… 죽을 수도 있다고?’

강철의 눈동자는 심히 떨리고 있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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