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32화 (132/175)

132 새 역사 (1)

1.

행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단상 근처 20m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폭발의 여파에 휘말렸다.

단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시체조차 제대로 남지 못한 채 죽었고, 관람석 맨 앞 열에 있던 사람은 흉측한 형체가 된 채 죽었다.

2열에 있던 사람은 대부분이 죽었고, 살아남은 소수도 산 게 산 게 아닌 상황이었다.

그리고 강철이 있던 3열은, 반 정도는 죽었고, 나머지 반 정도는 살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서도 폭발에 직격탄을 맞은 사람은 폐와 기도에 화상을 입은 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크윽…….”

원래대로였다면, 박정연도 폭발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던 만큼, 죽거나 아니면 살았더라도 호흡기에 화상을 입어 호흡 곤란 상태가 됐어야 했다.

그러나 폭탄이 터지는 순간, 강철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아 줬기에, 그녀는 큰 상처 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무사하기는 강철도 마찬가지였다.

오거닉 메탈을 온몸에 둘렀던 만큼, 폭탄의 폭발력은 강철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강철에겐 상처가 필요했다.

그게 그의 알리바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폭발의 1차 폭풍이 지나간 다음, 2차로 열기가 반쯤 지나갔을 때, 오거닉 메탈을 해제했다.

1차 폭풍은 그의 옷 등판을 다 찢어발겼고, 2차 열기는 밖에 드러난 그의 등짝과 뒷목에 그을음을 남겼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기분 나쁜 냄새군.’

자기 살이 살짝 익은 냄새에 강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자기가 꼭 껴안은 박정연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습니까?”

박정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강철에게 안긴 채 와들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고.’

강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가장 먼저 바라본 곳은 단상이었다.

단상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박살이 난 채로 불타오르는 단상 위에는 익어가는 고기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러시아의 지배자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히 푸틴도 포함돼 있었다.

‘내가 투자한 것들이 다 죽어서 아쉽구만.’

그리고 강철의 파트너였던 알렉세이 밀레르 가스프롬 CEO와 극동개발부 장관 등도 고기 조각 중 하나가 돼 있었다.

‘됐어.’

강철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곤 주위에 돌아가는 카메라에 표정이 잡히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인 채 씩 웃었다.

‘됐어!’

그는 당장에라도 환호를 지르고 싶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하늘로 치켜든 채 시원하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제 세상은 안전해.’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오전 9시 15분.

훗날, 2022년 11월 중순 어느 날, 핵전쟁을 일으켜 세계를, 인류 문명을 멸망시킬 늙은 독재자가 죽었다.

‘적어도 핵전쟁으로 망할 일은 없어.’

그리고 강철은, 그 독재자의 죽음에 일말의 동정심이나 안타까움도 느끼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대놓고 기뻐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공황 상태에 빠진 박정연을 꼭 끌어안은 채 마음속으로나마 환희했다.

‘내가 해냈어.’

박정연을 끌어안은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물론, 그녀를 으스러뜨릴 정도의 힘은 아니었다.

2.

푸틴이 죽었다.

러시아 관영 매체와 국영 방송에 의해 생중계되던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천연액화가스 가공기지 기공식에서, 폭탄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에 휘말려서, 가스프롬 CEO 알렉세이 밀레르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과 함께 사망했다.

불과 2년 전, 북한의 김정일이 죽었다는 뉴스보다도 더한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등 주요 국가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그것은 순수한 패닉셀이었다.

러시아는 공황상태에 빠졌고, 크렘린과 행정부, 국가 두마에서는 아무런 담화문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건 하루 뒤인 11월 12일 오전 8시, 러시아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긴급 담화문 형식으로 푸틴의 사망을 발표했고, 4주간 국가적으로 추모하고 애도할 것을 선포했다.

물론,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조사 중”이라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러시아가 그래도 직전 대통령이자 현직 총리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중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하는 모습을 보이자, 11월 13일 전 세계 증시는 일제히 정상화됐다.

여전히 불안감은 남아 있었지만, 최소한 러시아가 분열된 채 핵무기조차 제대로 관리 못 하는 무정부 상태가 되진 않을 거란 확신이 다들 생긴 것이었다.

“애 떨어질 뻔했잖아!”

푸틴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걱정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푸틴의 죽음보단 다른 이유로 더 걱정한 사람도 있었다.

한소영이 그랬다.

“어허. 진짜 임산부가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

11월 13일 오전 11시.

우신종합병원 1인 병실에서 강철은 한소영과 만났다.

애초에 몸 상태 자체만 놓고 보면 이렇게 입원할 정도도 아니었지만, 강철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 일부러 이렇게 입원한 것이었다.

“지금 그런 말이 나와?”

한소영은 상당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강철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웃지 마.”

한소영은 눈물을 참고 있었다.

처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푸틴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강철이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녀는 강철과 연락을 하고자 했고, 행사장 관계자들과 접촉하려 했다.

하지만 행사장은 연방보안국과 내무군이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보안 처리가 돼 아무런 정보도 알아낼 수가 없게 됐다.

강철이 태성그룹의 명의로 박정연과 함께 갔던 만큼, 이번엔 태성그룹을 통해 연락을 취해보았다.

그러나 태성그룹 측에서도 제대로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사건 1시간 만에 강철로부터 연락이 왔고,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강철과 박정연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하루 동안의 면회 금지 기간을 거쳐, 마침내 한소영은 강철과 대면하게 됐다.

폭탄 테러에 엮인 사람치고는 굉장히 멀쩡한 모습에 한소영은 안도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문 채, 한동안 감정을 컨트롤했다.

그것을 알았기에, 강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 박 회장 딸은 어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는 강철에게 물었다.

“아무 피해 없어. 정신적으로 좀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지만 말이야.”

“…… 다행이네. 정신적 충격이야…… 금방 회복될 거니까. 자기는?”

“나도 별로 다친 건 없어. 그냥 살짝 그을렸을 뿐이야.”

“…… 그래?”

한소영은 강철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그의 손을 만져보았다.

고급 의료 기술의 힘으로, 강철의 그을린 피부는 이미 원상복구 된 상태였다.

약간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결국 그것들도 일주일 정도 지나면 모두 사라질 터였다.

그 정도였다.

강철의 상처 수준은.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지.’

강철은 테러 용의자로 지목조차 되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돈을 받은 러시아 고관들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연방보안국 부국장도 있었다.

‘됐어.’

강철은 활짝 웃었다.

그것은 자신이 드디어 해냈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의 미소였다.

“…… 웃지 마. 난 정말 심각했단 말이야.”

한소영은 입술을 깨문 채, 강철을 바라보았다.

“자기는 죽으면 안 돼. 이렇게 판 다 벌여놓고 죽으면…… 나보고 어떻게 수습하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장 강철이 죽으면 사실상 거목그룹의 지배자 노릇을 하는 에우로파 인베스트먼트는 공중분해 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단순히 그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

그 말은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한소영은 강철의 손을 꼭 잡고서 말했다.

“앞으로 절대…… 이렇게 위험한 일에는 끼어들지 마. 알았지?”

그 말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앞으론 절대 이런 일 없을 거니까.”

그것은, 진심이었다.

3.

강철이 육체에 가해진 미미한 타격을 빌미로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정신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은 박정연은 자택 방에서 누워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정연이는?”

박태화도 회사로 출근하지 않은 채 집에 있으면서, 박정연 전담 가정부 및 왕진하는 주치의를 통해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많이 진정은 되셨습니다만, 아직 충격의 여파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닙니다. 당분간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11월 13일 오전 11시 30분.

박태화는 서재에서 박정연의 주치의와 면담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정신적 충격이라 이게 딱 나오는 건 아니라…….”

박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치의는 그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인사하고는 서재를 나갔다.

그가 서재를 나서자, 박태화는 이번엔 비서실장을 불렀다.

“네, 회장님.”

“언론은?”

“다 입막음해 뒀습니다.”

“정연이가 러시아에 있었다는 뉴스, 절대 나오면 안 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걱정 마십시오. 다른 사람 신분으로 갔기 때문에, 서류상으론 아가씨가 그곳에 있었다는 게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방송 카메라가 돌고 있었잖아. 조심해야 해.”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군에다가는 휴가를 좀 더 달라고 해둬. 그…… 의병 제대였나? 아무튼 그것도 한번 알아보고. 애가 저 상태로 군에 다시 복귀나 할 수 있겠어?”

“네, 알겠습니다.”

박태화는 비서실장을 내보냈다.

‘젠장…….’

처음 러시아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박태화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박동진이 중국에서 거하게 사고를 친 이후, 그를 후계자에서 반쯤 배제했다시피 했는데, 박정연이 죽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그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박정연은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다치지도 않았다.

정신적 충격이야 어쩔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무사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강철의 덕이었다.

‘그 친구…… 도대체 뭐 하는 친구지?’

화상을 입은 채 현재 일신그룹 소유의 우신종합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강철을 떠올리며, 박태화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은 놈 아니야?’

박태화는 강철이 어쩌면 한소영과 동등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태성그룹의 조직력과 자금력을 동원해 그를 조사하고, 현재는 몰타로 이전한 해외 자산을 추적하면서 발견한 여러 정황이 그러한 의심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만약에 진짜로 그 비자금의 실소유주 중 하나라면…… 단순히 정보를 캘 용도로 정연이를 쓸 필요가 없는 거잖아?’

박태화는 씩 웃었다.

‘만약 진짜 그런 거라면…… 어떻게 엄 회장 돈을 홀라당 헤 먹었는지는 몰라도, 어쨌건 같은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는 거잖아. 안 그래?’

딸의 목숨을 구했다.

거기다 거목그룹의 실소유주 중 하나일 거란 정황도 여럿 발견되고 있다.

‘정연이가 좀 마음에 안정을 되찾으면, 같이 그놈하고 밥이라도 먹어야겠어.’

박태화의 미소가 점점 진해져 갔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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