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31화 (131/175)

131 라스트 댄스

1.

11월 11일 블라디보스토크 천연액화가스 가공기지 기공식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다는 것은 오피셜로 확인이 됐다.

그랬기에 10월 중순부터 행사장 인근의 경비는 강화됐고, 평소 공터에서 놀던 아이들은 쫓겨났으며, 단상과 여러 구조물 설치를 위한 공사가 진행됐다.

“푸틴이 직접 참석할 거요, 포포바 동무.”

10월 25일 금요일 오후 5시.

자신의 차 안에서 공사 현장을 바라보며, 강철은 소피아 포포바에게 말하고 있었다.

“동무에게 출입증이 배부될 것이오. 동무가 해야 할 일은 푸틴인 단상에 섰을 때, 그곳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일이오.”

소피아 포포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결의에 차 있었다.

그것은 망상가의 결의이자 혁명가를 꿈꾸는 은둔형 외톨이의 광기였다.

“동무의 행동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오. 그리고 나의 이름도, 동무의 이름도 모두 혁명 동지들 사이에서 영웅적인 전설로 기억될 것이오.”

강철은 소피아 포포바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소피아 포포바는 화들짝 놀라며 강철을 바라봤다.

“용기를 내시오, 동무.”

소피아 포포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세이 밀레르도 그리고 드미트리 페스코프도 확인해준 사안이야.’

지난번 서울에서의 실패 이후, 강철은 러시아 정계 로비에 더 큰 공을 들였다.

덕분에 그는 푸틴의 입으로 활동하는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와도 연을 맺게 됐고, 그를 통해 푸틴이 직접 참석한다는 확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푸틴이 대역이 아닌 본체로 직접 참석한다는 것은 알렉세이 밀레르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였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야. 이번에 실수하면, 푸틴은 더 숨어들겠지. 바퀴벌레처럼 말이야.’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때려잡으려 할 때에는, 확실하게 한 방에 때려잡아야 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실수해서 놓치게 되면, 바퀴벌레는 깊숙이 숨어들게 되고, 그때는 약을 쳐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푸틴을 죽이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강철은 생각했다.

“집까지 바래다 드리겠소, 동무.”

“고마워요.”

강철은 그대로 소피아 포포바를 이끌고 그녀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차를 몰고 갔다.

“저기 세워주시면 돼요.”

단지 안으로 들어가, 강철은 그녀의 말에 따라 한 동 앞에 멈춰섰다.

그리곤 그녀와 함께 차에서 내려 아파트 공동현관까지 걸어갔다.

“조만간 동무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오겠소. 기다리고 있으시오.”

“…… 네.”

강철은 그녀와 가볍게 악수한 후 떠나려고 했다.

그때, 소피아 포포바가 그를 붙잡았다.

“저기……”

강철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관심법을 펼쳤다.

그리고 관심법을 통해 그녀의 내면을 읽고는 실소할 뻔했다.

“저기…… 혀, 혁명 동지끼리…… 포옹이라도 한 번…….”

말은 그랬지만, 평생에 남자와 접촉을 해보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로서 죽기 전 남자를 안아 보고 싶다는 게 진심이었다.

‘그래, 무슨 소원인들 못 이루어주리?’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는 강철의 품에 꼭 안긴 채 가만히 얼굴을 가슴팍에 파묻었다.

‘안쓰럽구만.’

강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소냐!”

한 러시아 중년 여성이 소피아를 불렀다.

“헉!”

소피아는 화들짝 놀라며 강철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곤 강철의 뒤에서 다가오는 중년 여성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엄마.”

강철도 뒤로 돌아봤다.

소피아와 닮은 중년 여성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니?”

그녀의 물음에 소피아는 더듬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답은 강철이 대신했다.

“친구입니다.”

그 말에 소피아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것은 그녀의 모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

그리고 두 사람의 생각은 고스란히 강철에게 전달됐다.

그것이 강철의 마음을 비수처럼 찔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강철은 서둘러 아파트를 떠났다.

차를 타고 단지를 나온 강철은, 이내 근처 도로에 차를 세워둔 채 핸들에 이마를 기댄 채 몸을 숙이곤 한숨을 내쉬었다.

‘기뻐하고 있었어?’

소피아의 모친은 강철이 소피아의 친구라고 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화된 관심법은, 강철에게 더 많은, 표층의식 아래에 있는 잠재의식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그것이 강철의 마음에 비수가 됐다.

‘무남독녀 외동딸에게 친구가 생긴 것에 기뻐하고 있어. 심지어 동양인에 대한 편견까지 있는 사람이.’

예전이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식이 생긴 상황에서, 강철은 소피아 모친의 심정에 공감이 됐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힘들게 했다.

‘기차를 멈출 순 없어.’

푸틴을 죽인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순 있겠지.’

아직 시간은 남아 있었다.

2.

“정지! 이곳은 국가기간시설입니다. 접근을 불허합니다.”

중무장한 러시아 경찰이 강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와 이 자식아!”

강철의 뒤에서 알렉세이 밀레르가 고함을 쳤다.

“내가 이 시설 만드는 사람인데, 네가 뭔데 내 손님보고 접근을 불허하니 마니 하는 거야!”

알렉세이 밀레르를 확인한 경찰은 화들짝 놀라며 강철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강철은 피식 웃으며 알렉세이 밀레르와 함께 경찰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갔다지만, 결국 두 사람은 여전히 외부에 있긴 했다.

“무대 설치도 다 끝났고, 이제 내일 대통령 각하하고 나하고 같이 커팅식만 하면 되는 거야. 허허허.”

알렉세이 밀레르는 강철을 이끌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여기가 내가 설 곳이야. 어쨌건 이 시설은 가스프롬의 것이니까 말이야.”

알렉세이 밀레르가 설 곳은, 정중앙에서 바로 우측이었다.

“그리고 이 중앙에는 각하께서 서시고, 옆에는 에너지부 장관이 설 거야.”

알렉세이 밀레르는 들떠 있었다.

그것은 진짜 푸틴이 내일 참석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번 기공식을 통해 러시아 권력층의 이너 서클에서 그의 지위가 변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흥분되지 않나? 여기서 가공된 가스가 관을 타고서 조선을 거쳐 한국으로 가는 게 말이야.”

남북러 가스관 협력 사업 추진은, 단순히 국제정치에서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러시아 국내정치에도 충분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세친, 파트루셰프, 졸로토프 이 거지 같은 것들아. 내가 마냥 너희들보다 아래에만 있을 것 같았냐?’

자신의 경쟁자에게 엿을 날릴 것에 흥분한 알렉세이 밀레르를 뒤로하고서, 강철은 단상 구조를 살폈다.

그리고 푸틴이 설 자리와, 그 앞에 놓인 리본을 살폈다.

‘리본을 지탱할 기둥.’

사람 허리 정도까지 오는 은빛 기둥들이 리본과 리본을 연결해 지탱해주고 있었다.

‘이걸로 갈아 치우기만 하면 되겠어.’

그렇게 오전 시간에 알렉세이 밀레르와 함께 행사장을 사전 방문한 강철은, 다음날 새벽, 은신을 펼친 채 남몰래 행사장을 재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푸틴이 설 자리를 중심으로, 리본 지탱 기둥 6개를 교체했다.

물론, 리본도 함께.

‘그래. 차라리 이게 낫지. 괜히 히키코모리한테 일을 맡겼다가 그르치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니까.’

원래 계획은, 소피아 포포바가 직접 폭탄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철은 계획을 수정했다.

폭탄을 터뜨리는 것은 소피아 포포바가 아닌, 푸틴 자신이 될 것이다.

‘나도 마음이 많이 유해졌어.’

커팅식 리본으로 위장된 폭탄을 설치하고, 호텔로 돌아온 강철은,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다 자식이 생겼기 때문이지.’

강철은 폰을 꺼냈다.

그리곤 사진첩을 열어 엄민식의 사진을 보았다.

활짝 웃고 있는, 날이면 날마다 자라나는 아들을 보며 강철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민식이 때문에 결국 이 짓을 하게 된 거니까.’

앞으로 6시간.

푸틴의 마지막 시간이다.

그리고,

‘박정연은 어떻게 하지? 자리 배치가 바로 내 옆이긴 한데.’

박정연의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일단 상황 봐 가면서 행동해야지. 이것도.’

3.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오전 8시 45분.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의 공터에 마련된 행사장.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가 러시아에서 상당한 지위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장부터 연해주 주지사, 지방의회 의원들 그리고 사업가들이 참석했다.

강철과 박정연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앞쪽에 해당하는, 3번째 열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다 러시아 사람뿐이네?”

박정연은 주위를 둘러보며, 사방에서 들려오는 러시아어에 살짝 겁을 먹은 채 강철에게 물었다.

“러시아 국내 행사니까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우리가 태성 이름으로 참석할 정도면 한국인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뭐, 원래라면 영사가 오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러시아 국내 일정이고 외교적으로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니까.”

“그런 복잡한 정치적 문제 때문에 우리만 있는 거라면, 좀 그렇긴 하네.”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9시 정각.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단상 위로 오늘 행사의 최귀빈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극동개발부 장관과 에너지부 장관 그리고 알렉세이 밀레르도 포함돼 있었다.

‘푸틴은 안 온 건가?’

최귀빈석 가운데 자리가 비어 있자 강철은 살짝 당황했다.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각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그러나, 그 당혹감은 곧 사그라들었다.

특별 귀빈인 푸틴은 따로 소개를 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강철은 최대한 초능력 에너지를 끌어올려 푸틴에게 관심법을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덕분에 강철은, 그가 대역이 아닌 진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됐어.’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러시아 연방 국가 연주가 있겠습니다.”

행사는 어느 나라나 그렇듯 국가 연주로 시작됐다.

웅장한 러시아 국가 연주가 끝나고, 몇 가지 의례적인 순서가 지나간 다음, 커팅식이 이어졌다.

강철은 바짝 긴장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가위를 든 푸틴을 바라봤다.

푸틴은 사회자의 안내에 맞춰 최귀빈들과 함께 리본을 향해 걸어갔다.

“잘라주시면 되겠습니다.”

사회자의 입에서 사형 집행 선고가 떨어졌다.

푸틴을 비롯해 최귀빈들은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리본을 가위로 잘랐다.

[콰앙-!]

그리고 푸틴 앞에 놓인 리본이 가위에 잘린 순간, 굉음과 함께 그의 앞에 놓여 있던 리본 지탱용 기둥이 폭발했다.

폭발은 순식간에 무대를 집어삼켰다.

그 화력은 무대뿐 아니라, 무대 아래 내빈용 좌석에까지 미쳤다.

완전하고 확실하게 푸틴을 죽이기 위해, 화력은 최대한도로 강하게 설정해 두었다.

덕분에 열기는, 폭발의 화력은 강철과 박정연이 앉아 있던 3열 너머에까지 미쳤다.

[콰아앙-!]

그리고 폭탄이 터지는 순간, 강철은 온몸에 오거닉 메탈을 두른 채 그대로 박정연을 끌어안고, 폭발의 여파로부터 막아주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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