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30화 (130/175)

130 혁명의 고향 (2)

3.

은둔형 외톨이면서, 과격한 급진적 사상과 폭력 혁명론에 심취한 스무 살 여자를 포섭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관심법이라는, 일반인은 가지지 못한 초능력을 활용한 설득이었던 만큼, 약 1시간의 대화 끝에 소피아 포포바는 강철의 열렬한 추종자가 됐다.

“과거에 우리 선배 혁명가 동무들이 실패했던 이유는, 내부에 암약한 겁쟁이가 지배 계급의 개를 자처했기 때문이오. 포포바 동무, 이 일은 그대와 나만 알고 있어야 하오. 그리고, 우리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오.”

10월 13일 오후 4시 45분.

강철은 소피아 포포바를 보내주며 그렇게 당부했다.

“명심하겠습니다, 킴 동무.”

“그리고 명심하시오. 그대와 나의 죽음은, 그 옛날 짜르의 전제정치에 맞서 싸웠던 혁명 선배들의 죽음보다 더 가치가 있을 것이란 것을.”

강철의 말에 소피아 포포바는 되게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접선하겠소.”

“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킴 동무.”

“그리고 내가 말한 대로 당분간은 집 밖으로 나오지 마시오. 그대를 감시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네.”

소피아 포포바는 곧 강철을 뒤로하고 자신의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로 총총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강철은 피식 웃었다.

‘그래, 너의 죽음은 가치가 있을 거야. 분명하게 말이지.’

그 옛날, 볼셰비키 혁명가들의 죽음은 러시아를 세계 2위의 초강대국 소련을 주도하는 국가이자 억압적인 통치체제를 지구 절반에 심은 독재정의 수출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조만간 있을 그녀의 죽음은, 지구의 멸망과 인류 문명의 붕괴를 막고 러시아를 푸틴이라는, 정신 나간 독재자의 마수에서 건져낼 것이다.

‘겸사겸사 내 알리바이도 챙기고 말이지.’

강철은 소피아 포포바가 떠나는 것을 보고는 터덜터덜, 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운전대를 잡고서 알렉세이 밀레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어떻게 됐나? 재미는 봤나?]

“충분히 재미를 봤습니다.”

[어떻게, 죽이셨어? 살리셨어?]

“스탈린의 계시를 받았다는 정신병 환자를 죽여서 뭐합니까? 그냥 적당히 재미나 본 다음에, 길바닥에 버려뒀습니다. 죽든 살든 그건 자기 운명이겠죠.”

[크하하하하-!]

“지금 어디십니까? 이야기는 마저 마무리해야죠.”

[어, 여기 호텔로 오면 돼. 알잖아.]

“네, 그리로 가겠습니다.”

강철은 곧 알렉세이 밀레르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갔다.

그가 입구에 도착하자 가스프롬 경호원들이 그를 안내했고, 강철은 마사지를 받은 후 살짝 편안해진 얼굴로 칵테일을 마시는 알렉세이 밀레르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째 재미는 부의장님이 더 본 것 같습니다?”

강철의 말에 알렉세이 밀레르는 씩 웃을 뿐이었다.

강철은 그의 곁에 앉아 말했다.

“다음 달 11일에 열린다는 기공식 있잖습니까? 그때 제가 한국 쪽 대표로 어떻게 참가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강철의 말에 알렉세이 밀레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국?”

“그…… 이번에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를 청산하고, 새로 몰타에 에우로파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대표자명도 미국인 존 크리스토퍼 허버트에서 조반니 그라치아니라는 이탈리아인으로 바뀌었고 말입니다.”

그 말에 알렉세이 밀레르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포복절도하며 그의 팔뚝을 툭 쳤다.

“뭔 말인지 알겠네. 하하하!”

그러면서 그는 물었다.

“미국이 냄새를 맡았나?”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몰타로 옮긴 것 아닙니까?”

“하여간 미국놈들. 알겠네. 한국인으로 참석하게 해주지.”

“출입증을 한 5~6개 정도만 마련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쨌건 러시아 국내 행사라서 우리 쪽에서 많이 참석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마냥 러시아 국내 문제만은 아니니까, 최대한 성의껏 참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돼 갔다.

4.

“말씀하신대로 청해진해운을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알렉세이 밀레르와 협의를 끝내고, 알리바이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둔 다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강철은 최병천으로부터 청해진해운 인수건을 보고받게 됐다.

“회사 상태가 솔직히 인수할 가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고문으로 등록된 사람은 이단 종교 교주 의혹이 있는 사람인데 그쪽에 비상식적인 자문료가 지출되고 있었고, 기본적인 선원 안전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최병천은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강철에게 해운사 인수 건이 얼마나 손해인가를 역설했다.

그 말을 가만히 듣던 강철은 최병천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수한 거 아닙니까?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고.”

“아…… 뭐 그런 의미라면 이해는 합니다만…….”

최병천은 의혹을 품고 있었다.

‘차라리 그럴 거면 우리가 해운사를 따로 차리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은데.’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해운업에 진출할 생각으로 강철이 청해진해운을 인수하라 한 게 아니었다.

‘이왕에 힘이 생겼으면, 비극은 막아야겠지.’

2014년 4월 16일, 전국이 비극적인 사고를 목도하게 될 역사를 바꾸는 것.

그것을 위한 인수였다.

“기존 선원들 재교육하시고, 선박 손볼 거 있으면 손보시고, 새로 필요한 인원 있으면 보강하시고. 특히 안전 인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보강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떨떠름하긴 했지만, 최병천은 강철의 말에 순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의 위치 자체가 강철이 만들어준 것이었으니까.

‘내가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강철은 가만히 담배를 꺼내 피우며 생각에 잠겼다.

‘무려 러시아 독재자를 죽이려고 하면서, 사람 살리는 일은 못 할 건 또 없잖아?’

문득, 강철은 엄민식이 보고 싶어졌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인가?’

지난 생에도 가져보지 못한 아이이자 마음이었다.

이번 생에도 가질 생각이 없던 아이이자 마음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달리다 보니 생기게 됐다.

비록 법적으로는 자신이 아닌 엄태욱의 자식이었지만, 그런 법적인 것을 초월해 자연적인 관점에서, 결국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였고, 내년에 태어날 아이도 자신의 아이가 될 터였다.

‘하기사 이런 마음이 없었더라면…… 구태여 푸틴을 죽일 생각도 안 했겠지. 그냥 원래 계획대로 금이나 모았을 거야.’

현재 경상북도 칠곡군 모처에선 금을 최대 300t까지 보관 가능한 거대한 창고의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창고 옆에는, 자가 발전기부터 정수 장치 등을 갖춘 성채와도 같은 형태의 대저택이 건설 중에 있었다.

‘이번에도 푸틴이 대역을 보낸다거나, 그 망상가가 일을 망친다거나, 진짜 천운이 있어서 푸틴이 산다거나 하면, 어쨌건 멸망도 준비는 해야 하니까.’

플랜 A와 B를 모두 준비하는 가운데, 강철은 플랜 B, 즉 원래 역사대로 세상이 망할 것을 가정한 대비책에 아이 양육까지도 포함했다.

‘2022년 11월이 되기 전에, 그쪽으로 애들과 함께 교사 역할을 할 사람들, 애들을 케어해줄 사람들 다 넣어 놔야지.’

물론 그것은 세상이 망하게 될 경우에나 그렇게 될 것이었다.

‘다음 달 11일. 푸틴이 죽는다면, 그럴 필요조차 없어지겠지.’

이제 강철이 준비해야 할 것은, 푸틴의 라스트 댄스를 장식해줄 화려한 폭죽이었다.

5.

10월 16일 수요일 오전 11시.

태성그룹 본사 회장실.

“러시아 국내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박태화의 물음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 행사긴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다고 하니, 그래도 우리도 사람을 좀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자네고?”

“뭐, 이왕이면 지난번에 푸틴 대통령과 만난 적 있는 제가 더 좋지 않겠습니까?”

대역과의 만남이었지만, 어쨌건 대외적으론 푸틴과의 만남이었다.

“흐음…….”

“일신그룹이나 거목그룹은 아직 정식으로 남북러 가스관 사업의 파트너 업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왕이면 태성그룹 소속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강철의 말에 박태화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룹 대외협력대사로 임명해서 가게 해 주지.”

그러면서 그는 조건을 붙였다.

“단, 정연이랑 함께.”

그 말에 강철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관심법을 펼쳤다.

“정연이가 자네를 아주 좋아하더군. 뭐, 그리고 그 아이도 이제 견문을 좀 넓힐 때가 아닌가? 허허허.”

박태화의 말대로, 박정연은 그에게 강철을 굉장히 좋게 말했다.

그리고 또한 박태화는 이미 박정연을 태성그룹의 차기 경영권 승계권자로 확정한 상태였다.

바깥에서 사고나 치는 아들보단, 자기 말 잘 듣는 딸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멍청한 인간이!’

그러나 박정연의 내면을 읽은 강철 입장에선 복장이 터질 뿐이었다.

‘당신 딸은 그냥 당신 마음에 들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라고! 진짜로 날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하지만 차마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멍청하긴…….’

강철은 박태화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음에 속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엉뚱한 사람만 또 죽게 생겼구나.’

그날, 푸틴은 폭발에 휘말려 죽을 것이다.

그것은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다.

일부는 살아남을 것이며, 강철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밀스러운 계획일 뿐이었다.

이걸 박태화에게 말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박정연의 심리를 말할 수도 없고 말이야. 뭘 근거로 내가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반문하겠지. 하여간 멍청하긴.’

결국 강철은 박태화의 요청을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근데, 현역 군인 신분으로 괜찮겠습니까?”

“그 부분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허허허.”

박태화는 진지하게 자기 딸을 강철과 연결시키려는 게 아니었다.

일종의 미인계의 일환으로 자기 딸을 이용해 강철의 진짜 정체를 파고들 생각만 할 뿐이었다.

‘저딴 게 아버지라고?’

강철은 태성 회장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그렇게 생각했다.

‘자식을 정략적 도구로 여기는 거야, 옛날부터 세습 귀족들에겐 흔한 일이었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인계 도구로 이용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강철 자신도 굉장히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고, 마약 중독자로 만들고…….

하지만 최소한의 선은 있었다.

바로 가족은 동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강철이 고아고, 가족이 없었기에 가능한 선이긴 했다.

하지만 자식이 생긴 지금, 그 선은 이제 명확하게 실존하는 것이 됐다.

그리고 실존하게 된 선 위에서, 강철은 박태화에게 진절머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재벌들이란…….’

강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정연만 불쌍한 신세가 되는 것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강철은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올라탔다.

‘태성도 어쨌건 역사가 바뀌긴 하겠네.’

변화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박정연은 그저 바큇살만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적어도 강철에겐 그랬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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