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27화 (127/175)

127 주목 (1)

1.

박태화의 소개에 강철은 가볍게 여자, 박정연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철이라고 합니다.”

강철의 인사에 박정연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박정연이라고 해요. 아빠한테 이야기는 들었어요. 제 이야기도 들으셨죠?”

그 말에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뉴스로 많이 접했습니다.”

그 말에 박정연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자자, 앉자. 밥을 먹으러 와서 계속 서 있으면 되겠니?”

박태화는 그런 박정연과 강철을 도로 자리에 앉히고 자기도 자리에 앉았다.

‘박정연.’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키 그리고 상당히 다부진 몸을 가진, 태성그룹 오너 일가 3세대.

그리고 역사대로라면, 태성그룹의 공식 후계자로 점찍어질 여자.

현재는 육군 53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근무 중인 장교.

‘사진보단 실물이 훨씬 낫네.’

이전 생에 강철은 그녀를 오로지 언론 보도로만 접했다.

사진상으로도 상당한 미녀이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실물을 다 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활발한 모습 뒤에, 야망을 숨긴 여자.’

그녀는 신비주의 혹은 비밀주의가 주류인 한국 재계에서 상당히 독특한 존재였다.

여성으로서 군에 자진 입대하며 언론에 화려하게 데뷔한 그녀는, 사회로 복귀한 후 SNS와 와이튜브 등 다양한 신세대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며 대중에 스스로를 굉장히 많이 노출했다.

물론, 재계 인사가 대중에 스스로의 존재를 노출한 게 그녀가 처음인 건 아니었지만, 5대 재벌로만 따지면 그녀가 최초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아주 잠깐의 만남과 그 만남에서 관심법을 통해 그녀의 내면을 바라본 결과, 강철은 그녀의 모든 행동이 태성그룹을 향한 야망에 따른 것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구만.’

박정연은 겉보기엔 그냥 활발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처럼 박태화에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면서도 계속해서 박태화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즉, 지금의 저 밝은 모습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아버지 박태화에게 잘 보이기 위한 꾸며낸 모습이란 것이었다.

‘재밌구만.’

관심법을 통해 바라보는 실체와 겉으로 드러나는 페르소나의 극명한 차이를 바라보며, 강철은 알 수 없는 재미를 느꼈다.

‘무슨 NPC들 보는 느낌이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말이지.’

그렇게 강철은 한동안 말없이 박태화와 박정연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곧 초밥과 참치회가 나왔고, 세 사람은 박태화의 주도하에 술을 마시며,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었을 무렵,

[지이이이잉-!]

박태화의 폰이 진동했다.

“응? 이 양반이 왜?”

박태화는 곧 전화를 받았다.

“네, 장관님. 네, 지금 여기 나가토에서 지금 밥 먹고 있습니다. 네?”

박태화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아…… 네. 아닙니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네, 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가겠습니다.”

박태화는 통화를 끝내곤 미안한 표정으로 박정연과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어쩌지? 그…… 왜 요즘 말 많은 남북러 협력 문제로 외교부 장관이랑 산업부 장관이 날 좀 보자고 하는데? 먼저 일어날 테니까, 두 사람 마저 먹고 나와. 아직 뒤에 나올 코스가 많아. 알겠지?”

박태화는 애써 미안하단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연기하며,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까지 따라 나갔던 박정연은 이내 터덜터덜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는데, 그 순간적인 어두움이 그녀의 진실된 모습임을 강철은 알게 됐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평범한 식사도 잘못하고 그러시네요.”

“괜찮습니다.”

“강철 씨라고 하셨죠?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92년생, 스물둘입니다.”

“동생이네? 전 89년생, 스물다섯. 말 편하게 해도 되죠?”

강철은 마음대로 하라는 뜻으로 가볍게 손을 펼쳐 보였다.

‘박 회장이 그래도 어쨌건 힘을 써 줬으니, 이 정도는 뭐.’

애초에 오늘 만남은, 남북러 삼각 협력의 경과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

박태화는 만나기 전, 목적 자체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강철은 관심법을 통해 그가 사업 이야기는 내일 할 예정이고, 오늘은 박정연을 자신에게 소개해줄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만나자마자 알게 됐다.

‘적당히 어울려주다가 헤어지면 되겠지.’

박태화에게 도움받은 것도 있고, 어려운 일도 아닌 만큼, 강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박정연과 술을 마시고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강철은 자신이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했음을 깨닫곤 후회했다.

‘이 여자 도대체…….’

대화는 주로 박정연이 말하고 강철은 듣는 입장이었다.

강철은 애초에 박정연을 진심으로 상대해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박정연도 강철에게 진심은 없었기 때문에, 대충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박정연이 강철에 대한 진심은 없지만, 박태화에게는 진심이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강철과 진전된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박태화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박태화에게 의존하고 있어. 자기 감정까지도.’

열심히 자기 군대 이야기를 하며, 강철에게 신나게 떠드는 그녀의 속마음은, 활짝 웃고 있는 겉과 달리 굉장히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왜 반응이 없지? 왜 그냥 웃기만 하고 말이 없지? 내가 별로인가? 안 되는데? 아빠가 분명히 이 남자 한번 꼬셔보라고 하셨는데?’

박정연의 행동에 자신의 의지는 없었다.

그녀는 그저 박태화의 의지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목표였고, 박태화를 만족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대단하구만.’

상대적으로 박태화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다.

박동진의 문제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시작부터 엄태욱을 본 강철 입장에서, 박동진 정도의 스캔들은 스캔들도 아니었다.

문제는 박정연이었다.

행동거지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그녀의 속은 굉장히 엉망진창이었다.

‘만약 세상이 안 망했다면, 그래서 회장이 됐다면, 아주 태성그룹이 볼만해졌겠어.’

강철은 가만히 박정연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초능력 에너지가 향상됨에 따라, 그의 관심법 능력도 강해졌기에, 완전히 깊숙이는 못 들어가도, 어느 정도는 속마음을 파고들 수 있게 됐다.

‘흐음…….’

그리고 속마음의 표층, 지구로 비유하자면 지각을 뚫고 맨틀 표면 정도 되는 정도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뚫지 못해 그 표면 정도만 읽었을 때, 강철은 살짝 두려움까지 느꼈다.

‘자신의 모든 욕망을 억압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단지 박태화의 호의를 사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러한 그녀의 심리가 후에 어떤 파괴적인 방향으로 변할지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만약 역사가 바뀌어서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면…… 태성그룹은 박태화를 어떻게든 장수시켜야겠어.’

강철은 박정연의 내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무려 군대스리가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워준 후 말했다.

“자리 옮겨서 간단하게 맥주라도 한잔할까요? 누나?”

그렇게 물으면서, 강철은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자식이 생기니까, 나도 변하긴 변하는구나. 하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박정연은 박태화에게 강철과의 관계를 보고해야 한다.

철저히 인간적인 관계지만, 박정연에게 그것은 기업 실적 보고와 다를 게 없었다.

그렇다면 실적이라 할 만한 걸 하나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맥주 한 잔 정도야 뭐. 앞으로도 계속 러시아랑 사업하려면 박 회장 도움도 필요하고 말이야.’

그리고 강철의 말에, 박정연의 속은 확실히 조금 더 밝아졌다.

물론, 새까만 물감에 흰 물감 한 방울 흘린 수준에 불과하긴 했지만.

2.

남북러 삼각 협력 사업의 유의미한 진전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한러 정상회담에서 나온, 남북러 3자 정상회담 추진 합의는 정치적으로 굉장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던 만큼,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관심이 많은 존재를 꼽는다면, 단연코 미국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 차원에서 러시아와 물밑 작업을 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10월 4일 금요일 정오.

주한미국대사관.

조지 스팅 대사와 빌 라이언 CIA 한국지부장이 커피를 마시며 최근에 있었던 정치적 이벤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 쪽에서는 태성의 박 회장이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지난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 박 회장의 제안에 전향적인 반응을 보인 것에 불과하고 말입니다.”

스팅의 말에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의 배후가 박 회장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부족합니다. 어쨌건 우리가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입니다.”

스팅의 말은 곧 CIA가 알아낸 걸 풀어내라는 것이었다.

라이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한국과 러시아, 양쪽 모두 미국인이 관여돼 있습니다.”

그 말에 스팅은 인상을 찌푸렸다.

“미국인이 말입니까?”

“정확하게는 미국에 적을 둔 기업 하나가 연루돼 있습니다.”

“어떤 기업입니까?”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

“카우보이?”

“대사께선 처음 듣는 회사이실 겁니다.”

라이언의 말에 스팅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언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몇 년 전에 와이오밍에 설립된 회사입니다.”

“와이오밍? 설마?”

“맞습니다. 페이퍼 컴퍼니입니다. 대표도, 회사 주소도 모두 서류상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배후는?”

“러시아 자본과 한국 자본이었습니다.”

“러시아와 한국?”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러시아 자본과 한국 자본이 한 회사에 모였단 말입니까? 아니, 어떻게?”

“일단 알아보고는 있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거목이라는 한국 기업의 비자금인 것 같습니다.”

“거목?”

스팅은 거목이란 이름을 듣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며 라이언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거목그룹 오너 일가가 힘을 다 잃었다는 것을요.”

“…… 그럼 누군가가 거목 오너 일가의 비자금을 중간에 가로채서 사유화했다는 겁니까?”

“확실한 조사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단정하긴 힘들지만,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그럼 그게 누굽니까?”

“그 부분을 이제 우리가 알아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서둘러야 한다는 건 확실합니다.”

“어째서요?”

“그 자금이 러시아만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에까지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중국까지?”

스팅은 혼란스러웠다.

외교관 생활만 40년 넘게 했고, 동북아시아 지역 연구만 50년을 했는데, 지금 상황은 납득이 가질 않는 상황이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랬기에 스팅은 그저 그렇게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에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한국과 일본 정보부에 협조 요청을 보내뒀습니다.”

스팅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불길해…….’

그러한 불길함이 기우이길 바라지만, 기우가 아닐 것이란 생각에, 스팅은 결국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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