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26화 (126/175)

126 암살 대상 (3)

“하하하.”

강철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가만히 대통령을 바라보자 알렉세이 밀레르가 그의 어깨를 한 차례 툭 치더니,

“이 친구가 각하를 되게 보고 싶어 했는데, 막상 보니까 얼어버린 모양입니다. 이 가벼운 무례는 너그럽게 넘어가 주십시오, 블라디미로비치.”

그 말에 대통령은 한 차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버트, 대통령께서 악수를 요청하시잖나.”

알렉세이 밀레르의 말에 강철은 그제야 대통령의 손을 잡았다.

“존 크리스토퍼 허버트입니다.”

“서류상으로는 미국인이고, 혈통상으로는 한국인입니다, 블라디미로비치.”

강철의 소개와 알렉세이 밀레르의 부연에 대통령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한 차례 강철과 악수한 후, 대통령은 강철과 알렉세이 밀레르에게 자리에 앉으라 손짓한 후 상석에 앉았다.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당신이 결국 혈통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한국이 미국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참된 애국자이기에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러시아식 애국주의와 반미주의가 혼합된 일장연설을 강철 앞에서 늘어놓았다.

별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고, 영양가 있는 말도 없었다.

어쨌건, 지금 일정은, 러시아 대통령의 2박 3일 한국 국빈 방문 일정을 쪼개고 쪼개서 만든, 자투리 시간이었으니까.

중요한 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공허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대역?’

지금, 강철의 눈앞에서, 상석에 앉아 다리를 쫙 벌린 채, 양팔을 팔걸이에 걸친 상태로 거만하게 동북아 국제 정세와 미국의 쇠락 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이 아니었다.

걸음걸이, 신체 조건, 외모 심지어 목소리와 말투까지, 모든 면에서 진짜를 빼다 박은 정교한 가짜였다.

‘독재자들이 대역을 쓴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긴 한데…….’

독재자는 항상 암살과 테러 그리고 쿠데타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게 실존하는 위협이건 독재자의 피해망상에 의한 것이건, 그러한 자신을 향한 위협에 대비해 독재자는 다양한 방어 수단을 구축해 놓는다.

대역을 쓰는 것도 그중 하나의 방법이었다.

특히, 대역은 대중과의 접촉 시 유용한 존재였다.

설령 그 자리에서 위협이 실제 발생한다 하더라도, 다치거나 죽는 건 본인이 아니라 그 대역이 될 것이니 말이다.

‘아직도 날 믿지 못하는 건가?’

그러나 어디까지나 독재자의 대역은 소문으로만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 실체가 제대로 확인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강철은 자기 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흐음…… 대역을 쓸 거면 나한테도 미리 말을 해 뒀으면 좋았을 건데 말이야.’

가짜 푸틴의 헛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강철은 알렉세이 밀레르의 내면을 관심법으로 읽어보았다.

‘의전은 자기가 신경 쓸 몫이다, 이건가? 졸로토프…….’

푸틴의 경호를 총괄하는 빅토르 졸로토프를 욕하며, 알렉세이 밀레르는 복잡한 러시아 이너서클의 권력 투쟁 구도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푸틴이 진짜가 아닌 대역이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알렉세이 밀레르도 가짜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진짜는 먼저 눈웃음을 치며 미들네임을 부르면서 인사하고, 가짜는 무뚝뚝하게 입장한다?’

그리고 알렉세이 밀레르의 생각을 읽음으로써 강철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법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푸틴의 측근들이나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얼마나 의심병이 심한 거야?’

2013년 9월 30일 현재, 푸틴은 공식적으로 한국에 국빈 방문을 한 상태였다.

오늘 저녁, 그는 한국의 손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었고, 내일 기업 대표들과 공식 오찬을 가진 후 몇 가지 행사에 참석한 뒤 인천 송도를 방문한 후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정상회담 때는 진짜가 나가려나? 박 회장하고 만날 때는 가짜가 나가고?’

어쩌면, 진짜 푸틴은 여전히 모스크바에 있을 수도 있었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강철은 더 이상 생각하길 멈췄다.

“…… 이러한 극동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한국의 이번 선택은 굉장히 자국의 이익을 잘 파악한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허버트 씨가 상당한 공로를 세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가짜 푸틴의 일장 연설은 끝을 맺었다.

그래도, 유의미한 진일보라 생각하며, 강철은 할 말을 끝낸 가짜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짜 푸틴의 연설이 그러했듯, 강철의 말도 공허할 뿐이었다.

6.

9월 30일 한국에 방문한 푸틴은 그날 저녁 손 대통령과 한러 정상회담을 열었고, 그 자리에서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의 진척을 위해 조만간 남북러 삼자 정상회담을 열기로 뜻을 맞췄다.

2010년 3월과 11월에 있었던 무력 도발과 올해 있었던 핵 실험 등으로 상당히 남북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경제 이슈를 통해 냉각 국면을 돌파하겠다는데 양국 정상이 합의한 것이었다.

“이게 될 것 같아?”

10월 1일 화요일 오전 9시.

일신그룹 회장실에서 한소영은 신문을 보며 강철에게 남북러 3자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글쎄?”

“뭐야 그 성의 없는 대답은?”

한소영은 신문을 내려놓고, 창가에 서서 멍하니 도심을 바라보는 강철을 쳐다봤다.

“내가 정치는 잘 몰라서…….”

강철의 말에 한소영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철에게 다가갔다.

“자기 무슨 일 있어?”

한소영의 물음에 강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그치?”

“…… 뭔가……”

“응?”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골인 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만 오르면 이제 산을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꼭대기에 오르니까, 올라가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네.”

“……”

평소 강철답지 않은 모습에 한소영은 심히 걱정됨을 느꼈다.

그녀는 가만히, 한 손으로는 강철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론 그의 목을 안아주며 볼에 입을 맞춰 주었다.

“많이 힘들구나?”

그녀는 문득 강철이 이제 겨우 스물둘이라는 것을 깨닫곤, 미처 그간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나이에 관한 문제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아무리 강한 사람이고, 이상할 정도로 힘이 좋고 능률이 좋다고 해도, 스물둘이면 아직 어린 나이지.’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었다.

강철은, 적어도 살아온 세월로만 따지면 한소영과 동갑이었다.

사실 그랬기에 한소영과 관계를 가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고.

지금 강철이 살짝 넋이 나간 이유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왔다는 믿음에 온 신경을 거기에만 쏟아뒀다가, 그게 사실은 낚시였다는 것을 알고는 맥이 풀려버렸기에 그런 것이었다.

‘밀레르도 푸틴이 평소에 어디에 있는가, 실시간 위치를 모르고 있어. 그럼 도대체 누가 알고 있지? 미하일 킴의 말로는 푸틴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푸틴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하던데…….’

이제 곧,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로부터 강탈하고, 동부 지역에는 친러 반군을 통해 괴뢰 정권을 수립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2022년에 일어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시발점이 될 터였다.

그 전에, 아직 역사가 분기점을 넘어가지 않았을 때, 강철은 푸틴을 죽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그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시그니엘타워 호텔층을 날릴 생각까지 하고 그는 푸틴을 찾아갔었다.

그러나 푸틴에게도 가짜 대역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정보를 얻은 것 외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래, 어떻게든 신뢰를 쌓아야겠지. 어떻게든 신뢰를 쌓아야 하는 건데…… 그게 참 어렵네.’

알렉세이 밀레르는 빅토르 졸로토프라는 사람을 떠올리며, 자신의 처지가 아직은 러시아 지도부 이너서클에서 최상위권까지는 아니란 것을 자각했다.

‘알렉세이 밀레르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과 연을 맺으면 되지. 그래, 뭐 어려울 게 있겠어?’

강철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가만히 자기 목을 껴안고 있는 한소영에게 역으로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곤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젊고, 돈이 썩어 넘치는 사람이,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안 그래?”

무슨 말인지, 맥락을 알지를 못했기에, 알아듣진 못했지만, 한소영은 강철이 다시 이전처럼 당당하고 강인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럼. 못할 게 없지.”

한소영은 미소를 지으며 강철의 입술에 진하게 키스했다.

‘그래, 까짓거, 빅토르 졸로토프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건 세르게이 쇼이구건 누가 됐건, 배가 터질 만큼 돈을 쑤셔 넣으면 마음의 문을 열어 주겠지. 그리고 그 인간들을 통해서, 진짜 푸틴과 독대할 수도 있을 거고 말이야.’

7.

“남북러 3자 정상회담이라…… 허허허.”

10월 3일 수요일 저녁 6시.

강철은 박태화와 함께 강남의 어느 고급 일식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게 다 스물둘 밖에 안된 남자애가 만든 작품이란 걸 모를 거야. 설령 알려준다고 해도 믿질 않을 거고 말이야. 허허허.”

박태화의 말에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그게 어디 제가 한 일입니까? 전 그냥 메신저일 뿐입니다.”

“허허허. 천사가 보통은 하느님의 사자로 취급받긴 하지만, 때로는 하느님 그 자체의 또 다른 모습으로도 취급이 된단 말이지. 허허허.”

그러면서 박태화는 강철을 향해 가볍게 윙크해 보였다.

구태여 관심법이 아니더라도, 강철은 그가 자신의 정체를, 좋은 방향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적당히 내 말대로 안 되는 일도 몇 개 만들어 둬야 하려나?’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겉으론 내색하지 않은 채 가만히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 친구 웃기는.”

박태화는 자신의 상상을 점점 기정사실로 여기기 시작했다.

강철은 일단 그것을 정정해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구태여 뭐, 정정해줄 필요까지야.’

강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박태화는 시계를 보며 구시렁거렸다.

“근데 얘가 왜 이렇게 안 와?”

관심법을 통해 이미 박태화의 생각은 강철에게 모두 노출돼 있었지만, 강철은 모르는 척, 그에게 물었다.

“누가 또 옵니까?”

“아, 군에 있는 딸내미가 휴가라고 올라왔거든. 그래서 같이 식사나 하자고 불렀지. 아, 내가 말을 안 했던가?”

“네, 듣지 못했습니다.”

“허허. 이거 미안하게 됐네. 나이가 드니까, 기억력이 점점 가고 있는 모양이야. 허허허.”

그때, 방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이쿠, 양반은 못 되는구나?”

박태화는 여자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자는 활짝 웃으며 박태화를 끌어안았다.

“아빠. 잘 계셨죠? 얼굴이 어째 더 상한 것 같은데, 선크림 바르고 다니는 것 맞죠?”

“허허허. 녀석. 손님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그러면서 박태화는 강철에게 여자를 소개했다.

“인사하게. 내 딸일세.”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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