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재벌 3세의 사랑 (2)
4.
3월 1일은 태성그룹 회장 박태화의 생일이다.
그러나 3.1절과 겹쳤던 만큼, 그리고 괜히 3.1절 날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가 조상의 친일 행적까지 언론에서 거론하며 질타할 게 뻔했던 만큼, 박태화의 생일 파티는 보통 3월 2일 저녁에 그의 한남동 자택에서 열렸다.
그러나, 올해, 2013년에는 3월 1일은 물론, 2일에도 생일 파티가 열리지 않았다.
평소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의 자택을 방문했던, 같은 한남동 및 이태원동 그리고 용산구 주민이자 동종 업계 종사자인 재벌 총수들에겐 그리고 언론사 사주들에겐 그리고 또 유력 정치인들에겐 일신상의 사정으로 올해는 그냥 넘어간다는 말만 전달했을 뿐이었다.
그 ‘일신상의 사정’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실, 밝힐 수가 없었다.
“이 미친놈아!”
[짜악-!]
3월 2일 토요일 오후 5시 30분.
자신의 집 서재에서, 박태화는 박동진의 뺨을 강하게 때렸다.
“내가 중국 가서 일 배우라고 했지, 계집질이나 하라고 했어!”
[짝-!]
박태화는 손찌검에는 사정이 없었다.
그는 아들이고 나발이고, 일단 최대한 힘을 줘서 풀 스윙으로 박동진의 뺨을 갈겼다.
박동진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최대한 고개를 움츠릴 뿐이었다.
“넌 어떻게 된 게 동생 반도 못 따라가는 거야!”
[빡-!]
뺨을 때리던 박태화는, 박동진이 거북이처럼 목을 숨기며 때리는 게 살짝 힘들어지자, 그대로 발로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흐흑-!”
박동진은 정강이뼈를 양손으로 쥔 채 외발로 그 자리에서 총총 뛰었다.
[짝-!]
자연스럽게 뺨 때리기 좋은 자세가 나오자 박태화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날려 박동진의 볼을 때렸다.
박동진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박태화는 바닥에 쓰러진 자식에게, 자기 폰을 열어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저우페이밍과의 정사 장면이 적나라하게 찍힌, 프로의 솜씨로 편집한, 한 편의 포르노였다.
그리고 그 포르노를 본 순간, 박동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계집질하는 건 좋다, 그래, 너도 남자니까, 좋다 이거야. 근데 대마는 또 왜 빨고 지랄이야!”
[퍽-!]
박태화는 박동진의 배를 걷어찼다.
박동진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며 배를 움켜쥐었다.
“당분간 네 방에 처박혀서 나올 생각도 하지 마! 폰도 반납하고! 컴퓨터도 반납하고! TV도 반납하고! 벽보고! 부랄 잡고 반성이나 하고 있어 이 새끼야!”
박태화의 말에 박동진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무릎을 꿇은 채 박태화를 올려다보며 빌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그, 그래도…… 그래도 그것 만은…….”
그렇게 얻어맞고도, 그렇게 혼이 나고도 여전히 여자에 정신이 팔린 아들의 모습에 박태화는 눈이 뒤집혔다.
“이 새끼가!”
[빠악-!]
박태화는 박동진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박동진은 그 자리에서 뒤로 두 바퀴 뒹굴더니 바닥에 쭉 뻗었다.
“이 새끼 방에 처박아!”
박태화의 우렁찬 고함에 곧 서재 문이 열리며 경호원들이 들어와 박동진을 끌고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태화는 서재 문이 닫히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대로 의자로 가 앉았다.
그리곤 폰을 열어 아들의 포르노 영상과 함께 온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3월 6일 수요일 저녁 7시 명동 아틀란티스호텔 스위트룸 B-32>
그 문자의 뒤에는, 박동진이 대마에 취한 채 흐느적거리는 동영상이 또 하나 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동영상 아래에 또 문자가 있었다.
<오지 않을 시 모든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될 예정>
박태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에 보내면 좀 철이 들까 했는데…… 더 큰 사고를 치고 왔어…….’
누가 보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발신자 추적을 해 보았지만, 번호는 당연히 추적되지도 않았고, 발신지 주소는 그린란드로 확인됐다.
그린란드.
당연히 그 얼어붙은 땅에서 온 메시지는 아닐 터였다.
‘설마…… 공산당 쪽에서?’
박태화는 중국 사업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초창기부터 중국에 직접 드나들며 사업을 챙겼고, 그 과정에서 공산당 간부들을 자주 접대했다.
‘거기도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꽤 잡음이 많았던 거로 아는데…… 그 유탄을 내가 맞은 건가?’
박동진의 일은 곧 태성그룹의 일이었고, 태성그룹의 일은 곧 박태화 개인의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박태화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젠장…….’
박태화는 갑갑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공산당 놈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만약 공산당에서 개입한 거라면, 즉 중국 정부 차원에서 기획한 일이라면, 그쪽에 물어보는 건 자폭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미치겠구만.’
결국, 오는 월요일 협박범의 문자대로 직접 아틀란티스호텔 스위트룸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저딴 새끼도 아들이라고…….’
박태화의 마음에서 박동진은 이제 완전히 추방됐다.
‘정연아. 빨리 와라. 네가 유일한 희망이다.’
ROTC 장교로 군에서 복무 중인 딸을 떠올리며, 그렇게 박태화는 깊은 한숨만 폭폭 내쉬었다.
5.
3월 3일 일요일 오후 3시.
베이징시 5성급 호텔 옥상 테라스.
“어! 여기야!”
“아이고, 누님. 이거 얼마 만입니까?”
미하일 킴은 한 중년 러시아 여성과 포옹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젊은 시절 한 미모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여인은 미하일 킴과 인사한 후 강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분이?”
“네, 누님.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 대표 존 크리스토퍼 허버트 씨에요.”
“반가워요, 아나스타냐 니콜라예비치 코네바라고 해요.”
강철은 아나스타샤의 손을 잡았다.
“허버트요.”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요. 직접 뵙게 되니 영광이네요.”
아나스타샤 코네바.
그녀는 미하일 킴과 함께 해외정보국에서 일했던 전직 요원이자 현재는 러시아 알루미늄 대기업 루살에서 아시아 영업 부문 이사로 근무 중인 기업인이다.
“제가 그 정도로 명성이 있었나는 모르겠네요. 기업인들에게까지.”
“최근에 가장 활발하게 모스크바에 친구를 만드는 사람인데, 당연히 명성이 자자하죠.”
살짝 비꼬는 말이긴 했지만, 그 자체로 별다른 적대감이나 악의는 없었다.
“덕분에 우리 회장님도 관심이 많으시답니다.”
루살의 회장이자 유명한 올리가르히, 즉 과두재벌의 한 사람인 올레그 데리파스카를 이야기하는 아나스타샤에게 강철은 그저 미소만 지어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칵테일이 나왔고, 세 사람은 술을 한 잔씩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대화는 미하일 킴과 아나스타샤 사이에서 오갔다.
강철의 주문대로 아나스타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미하일 킴은 최선을 다했고, 덕분에 칵테일이 4잔째 나왔을 때쯤, 아나스타샤는 상당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 사실 여기 허버트 대표께서 중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 하시는데, 아직 이쪽엔 아는 사람이 없어서 말이요, 누님.”
“아하, 그래서 날 찾은 거구나?”
오후 4시.
아나스타샤는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강철을 바라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제대로 찾았어요, 허버트 씨. 제가 지금은 인도 쪽에서 주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중국인 친구들이 많거든요.”
강철은 관심법으로 그녀의 내면을 살피면서, 말했다.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아나스타샤는 까르르 웃었다.
“속이 꽁하시네. 그런 식으로는 절대 중국인들하고 사업 못 해요. 이건 공짜 팁이에요. 호호하하하!”
그러면서 아나스타샤는 물었다.
“내일 시간 어때요? 안 그래도 오래된 친구를 만나려고 했는데, 같이 가시죠?”
아나스타샤는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그 친구가 꽤 높은 자리에 있거든요. 도움이 될 거예요, 사업하시는데.”
그러면서 아나스타샤는 머릿속으로 한 남자를 떠올렸다.
‘호오?’
그리고 그 남자는, 강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고위직이었다.
강철은 미하일 킴을 바라보았다.
미하일 킴은 그 시선을 느끼고 강철을 바라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강철은 가볍게 탁자 아래로 엄지를 세웠다.
‘중앙서기처 서열 6위에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라…… 엄청난 거물인데?’
강철은 씩 웃으며 칵테일 잔을 들었다.
“늦지 않고 가겠소.”
그 말에 아나스타샤는 뭐가 그리 웃긴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 친구가 늦을 수도 있으니까. 호하하하-!”
6.
3월 4일 월요일 정오.
강철은 같은 장소에서 아나스타샤와 함께한 중국 남성을 만났다.
“존 크리스토퍼 허버트 대표예요, 부주석님.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라는 자산신탁사를 경영하고 있답니다.”
그 중국 남성에게 아나스타샤는 중국어로 강철을 굉장히 좋게 소개해주었다.
“러시아에서도 상당히 괜찮게 사업을 하고 있어요.”
중국 남성, 펑캉린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은 강철을 바라보고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젊은 분이 굉장히 크게 성공하셨습니다. 허허허.”
그러나 그것이 거짓된 미소임을 강철은 관심법으로 간파할 수 있었다.
‘경계하는군.’
당연한 일이었다.
아나스타샤와 친구 관계라곤 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펑캉린은 중국 내에서 상당한 고위 권력자였다.
오랜 인연, 소위 말하는 꽌시 때문에 강철과 만나주긴 했지만, 경계심을 풀거나 하진 않았다.
‘그나저나 참 재밌는 사이네?’
두 사람과 함께 원탁에 앉은 강철은 아나스타샤와 펑캉린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기사 스무 살 차이가 나는데 일반적인 친구일 리는 없지.’
펑캉린은 아나스타샤가 과거에 미인계로 접근했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는 지금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이 망하면서 그 미인계가 쓰인 작전도 다 날아갔으니 당연히 알 방도가 없겠지. 알 필요도 없고.’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소개해준, 한국인임이 분명하지만 어쩐지 미국식 이름을 쓰는 젊은 사업가와 만난 자리에서, 펑캉린은 강철보단 아나스타샤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거기서 강철은 늙은 남자의 마음에 추억처럼 남아 있는, 한 시절 봄날의 꽃씨와 같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성의만 보이면 되는 법이지.’
한창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던 강철은, 아나스타샤가 자신에게 대화의 기회를 넘기자, 들고 왔던 선물 세트를 펑캉린에게 건네주었다.
“약소하지만, 이왕이면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선물로 드리는 게 좋겠다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강철의 말에 펑캉린은 커다란 월병 상자를 건네받았다.
“월병?”
펑캉린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한번 꺼내보시죠? 품질도 확인하실 겸.”
그 말에 펑캉린은 선물 상자를 열어 월병 하나를 꺼냈다.
“응?”
그러다가 뭔가 촉감이 이상함을 느낀 그는 월병을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그는 월병 속을 가득 채운, 비닐에 쌓인 100달러 지폐 뭉치를 보고는 살짝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뭡니까?”
펑캉린의 물음에 강철은 씩 웃으며 말했다.
“선물입니다.”
그 말에 펑캉린은 잠시 굳은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보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가서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관심법은, 강철에게 펑캉린의 속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해주었다.
‘돈만큼 확실하게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물건도 없는 법이지.’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