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17화 (117/175)

117 나비효과 (4)

7.

회귀 후 가장 바빴던 해는 2010년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는 아무런 기반도 없었고, 오로지 극초기 단계의 오거닉 메탈과 시사에 관한 관심이 만들어낸 광범위한 역사적 정보뿐이었으니, 이래저래 강철이 직접 손을 써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당연히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산그룹을 장악하고, 뒤이어 거목그룹을 접수한 후, 얼떨결에 일신그룹까지 통제하게 되면서 강철은 확실히 많이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2012년 6월 상반기 정기 이사회에서 대산그룹 부회장에 등극하며 실질적인 전국구 건달 오야붕이 된 김명길을 비롯해 유능한 해커 서용태, 불법적이고 위법한 일을 합법적인 일로 위장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변호사 최병천을 삼두 마차로 해서, 숱한 부하들이 생겼고, 2010년이었다면 강철이 직접 했을 일을 그들이 대신해 주었다.

덕분에 강철은 자신이 본래 바라던 일, 즉 영국에 보관된 금괴를 한국으로 옮기는 일의 밑작업을 위해 일할 시간을 얻게 됐다.

“칠곡에 땅을 왜 이렇게 많이 사려는 거야?”

물론, 그 일도 혼자서만 하는 건 아니었다.

야당 중진 의원과 무의미한 점심 식사를 끝낸 7월 23일 월요일 저녁 8시.

강철은 잠원동 펜트하우스에서 한소영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필요해서.”

“딱히 여기가 뭐 메리트가 있는 건 아니잖아? 지가가 오를 요인이 있는 거도 아니고. 이 정도면 단순히 아파트 올릴 부지도 아닌데?”

한소영은 강철이 만든 칠곡 대지 매입 계획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뭐 하려는 거야?”

“정부 시설 하나를 칠곡 쪽에 유치하고 싶은데, 미리 부지를 사놓는 거지.”

“정부 시설? 무슨 정부 시설?”

강철은 잠시 망설였다.

“애앵-! 응애-!”

그 순간, 살짝 열린 아기방 문틈으로 엄민식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한소영은 화들짝 아기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덕분에 강철은 한소영에게 대답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사실 말해도 되긴 하다만…….’

거목과 일신의 막후 지배자는 강철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국 정치인과 고위 관료는 그를 그저 한소영의 비자금 관리인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고, 러시아 고위 관료와 정치인은 그를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의 대표 존 크리스토퍼 허버트의 본체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양자 사이의 정보 공유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일어난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었다.

한국인들 입장에선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는 한소영의 해외 자산 도피처로나 인식될 게 뻔했으니까.

아마, 강철이 거기 대표자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그러한 한국인들의 잘못된 판단을 더욱 강화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적어도 현재까지, 강철은 한소영의 가신일 뿐이었다.

그 말은, 자신의 계획을 실현함에 있어서 한소영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그가 세운 대략적인 계획에 따르면, 지금쯤 한소영은 한국 소유 금괴의 한국 복귀를 위해 열심히 로비를 펼치고 다니고 있어야 했다.

‘어디까지나 그건 여당의 재집권을 상정한 D-day였으니까.’

그러나 총선 결과가 실제 역사와 달라짐에 따라, 강철의 계획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덕분에 한소영은 아직도 강철이 뭘 하려는 가를 잘 모르고 있었다.

‘일단 올해 연말, 대선 결과를 보고 나서 다시 계획을 짜도 늦진 않으니까.’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순간, 엄민식을 안고 나오던 한소영이 강철을 갈고리눈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나가서 피워!”

엄민식이 다시 잠들었기에, 크게 소리치진 않았지만, 상당히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나갔다.

‘애하고 한소영을 여기서 내보내든가, 내가 나가든가 해야지.’

강철은 테라스에서 담배를 태우며, 한강 변을 바라봤다.

날이 더운 만큼, 한강 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거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들은 역사가 뒤틀렸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겠지.’

최근, 강철은 굉장히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전까지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세상의 멸망을 홀로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갑갑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갑갑함이었다.

그것은 역사가 조금씩 바뀌었다는 사실을 혼자 안다는 것에서 오는 갑갑함이었다.

‘누구한테 털어놓으랴?’

강철은 시선을 서쪽으로 돌렸다.

저 멀리, 63빌딩이 어둠을 뚫고 강철의 눈에 살짝 들어왔다.

‘여의도에 있는 것들에게 털어놓으랴?’

강철의 시선이 북쪽으로 향했다.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그곳에 자리하고 있을 청와대를 마음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한테 가서 털어놓으랴?’

마지막으로 강철은 거실을 바라보았다.

‘예정에 없던 젊은 애인과 자식을 얻은 저 여인에게 말하랴?’

강철은 담배를 다 태운 후, 꽁초를 화단 흙에 파묻은 후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서 입 헹구고 와. 민식이한테 담배 냄새 풍기지 말고.”

한소영의 잔소리에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나온 강철은, 그 사이 한소영이 다시 엄민식을 방안 침대에 눕혀놓고 거실로 나와 있는 걸 확인하고는, 그녀의 곁에 앉아 말했다.

“단독주택으로 옮기는 게 어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언제까지 당신이 아이 본다고 일하는 시간까지 뺏길 순 없잖아?”

“난 괜찮은데?”

“난 엄태욱을 허수아비로 세웠지, 당신을 허수아비로 세운 게 아니야.”

“나 걱정해 주는 거야?”

한소영은 씩 웃었다.

“여기는 상주 인원을 두기엔 불편한 곳이야.”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그에게 바짝 붙어서, 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덕분에 우리 둘이서 늘 붙어 있을 수 있잖아?”

“그것 때문에 당신이 아이 혼자 보느라 고생이 많고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럼 어떻게, 한남동 쪽으로 내일부터 알아보라고 할까?”

“거목 본사가 종로구에 있고, 일신 본사는 중구에 있으니, 평창동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청운동이나.”

“에이, 솔직히 요즘 종로 쪽은 명성이 다 죽었지. 재벌들 대부분 다 한남동 아니면 이태원동에 살잖아.”

그건 아무래도 좋았기에, 강철은 거기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여기서 혼자 살게.”

강철이 본론을 이야기하자 한소영의 표정이 변했다.

“왜?”

관심법을 통해, 강철은 그녀가 불안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강철은 그녀를 껴안고,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말했다.

“내가 당신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라는 거, 대외적으로 사람들이 다 알게 되면, 당신한테 안 좋잖아. 당연히 나한테도 안 좋고.”

강철은 한소영을 설득했다.

관심법으로 그녀가 불안해하는 요소를 미리 파악하고, 그곳만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설득하였지만, 그럼에도 한소영을 설득하는 데는 1시간이나 걸렸다.

“알았어. 대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진 나 여기서 잘 거다?”

“그래, 그렇게 해.”

조건이 붙긴 했지만, 일단 강철로서는 원하는 바를 이룬 셈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유전자에 대한 욕구였는데…… 이제는 그 이상이 돼 버렸구만.’

그러면서 강철은, 자신을 향한 한소영의 감정을 읽고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자기보다 스무 살은 어린 남자를 사랑하게 된 재벌. 이게 마냥 나한테 도움이 되는 일일까?’

사실, 이것 덕분에 강철이 법적으로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일신그룹까지 그의 통제하에 들어온 것이었던 만큼, 불만은 없었다.

꼭 사회적 지위가 아니더라도, 한소영은 나이에 비해 피부나 몸매 등에 있어서 상당한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외모적으로도 강철이 불만을 가질 만한 요소는 없었다.

‘하지만 이게 너무 강해져서 이상한 집착이 되면, 한 번씩 나한테 부담이 올 수도 있단 말이지.’

그러나 강철은 당장에 그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역사가 바뀐 마당에, 여자 마음이 바뀐 게 뭐 중요한 일이라고.’

8.

2012년 4월 총선은 실제 역사와 살짝 달라졌다.

그리고 그 나비효과는 같은 해 치러진 대선까지 이어졌다.

여당은 역사대로 박 비대위원장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실제 역사보단 저조한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애초에 여당의 참패가 예상됐던 선거에서 의외의 선전을 했던 만큼, 그녀의 정치적 위신 자체가 크게 깎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야당 대권후보 선출은 역사와 다르게 흘러갔다.

원래 역사에서는 18대 대선 때 낙선하고, 재수 끝에 2017년 탄핵 정국 속에서 치러진 19대 대선 때 당선됐어야 할 사람이 경선에서 떨어지고, 원래 역사대로라면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을 사람이 야당 대선 후보로 확정이 돼 버린 것이었다.

[국민 여러분께 저녁 있는 삶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야당의 대선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가 아닌 ‘저녁 있는 삶’이 됐다.

물론 그 와중에도 바뀌지 않는 것은 있어서, 외부에서 단일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사람은, 실제 역사대로 중도 하차하며 야당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야권이 저녁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 하에 한데 뭉치며 여야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는 것을 보며, 강철은 고민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러나 그는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2012년 대선 전후 한국 정치사에 관한 자료는 그의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되게 사소한 게 원인이었을 것 같은데…….’

그러나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강철은, 일단 이 부분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 거지?’

강철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대선 정국을 지켜보았다.

이전 생애와는 달리 이번에는 두 재벌 기업이 그의 지배 아래에 있었기에,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고, 그 정보를 통해 강철은 보다 생생하게 역사의 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여당인 박 후보의 승리가 점쳐지는 것 같습니다.”

“야당 손 후보가 상당히 말솜씨도 좋고, 관록이 있어서 박 후보를 토론에서 압도하는 바람에 평가가 좋아졌습니다.”

물론, 분석가들은 이전 생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별 도움 안 되는 분석만을 늘어놓았다.

그것은 TV 평론가건, 강철에게 고급 정보를 가져다주고 분석해주는, 그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이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시간은 2012년 12월 19일 수요일이 됐다.

강철을 비롯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대통령 선거 결과를 지켜봤다.

그리고 그날 밤 11시 34분.

마침내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됐다.

[저의 임기 내에 꼭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린 저녁 있는 삶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50.3%대 49.5%, 0.8% 차라는, 초박빙의 승부 끝에 결과는 야당의 승리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바뀐 걸까?’

이제는, 적어도 일주일에 4일은 홀로 살게 된 잠원동 펜트하우스 거실에서, 당선 소감을 발표하는 야당 후보를 바라보며, 강철은 담배를 피워댔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 박씨에서 손씨로 바뀌게 된 걸까?’

완전하게 뒤바뀐 한국의 역사.

그 현장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그렇게 2012년은 지나갔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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