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16화 (116/175)

116 나비효과 (3)

5.

러시아인들은 한번 친해지기가 어려웠을 뿐, 막상 친해지면 대체로 마음을 활짝 여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그 마음을 열기 위해선 매번 상당한 액수의 성의가 필요했지만, 두 재벌 기업을 통제하게 된 강철 입장에선 큰 문제는 아니었다.

미하일 킴은 우선 주한러시아대사와 강철을 연결해주었다.

주한러시아대사는 곧 연방보안국과 해외정보국 그리고 외무부 소속 친구들을 소개해주었고, 그 친구들은 또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주었다.

덕분에 강철은, 강남을 전 세계에 무료로 홍보해준 노래가 발매되던 2012년 7월 15일 일요일 즈음에는 러시아 외무부 차관과 연방보안국 부국장 그리고 국영기업 가스프롬 최고 경영자와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됐다.

“한국과 우리 러시아 사이에 파이프만 건설된다면, 서로가 이득이 되는 거 아니겠나?”

그중 강철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인맥은 단연코 가스프롬 최고 경영자였다.

“우리는 극동에 부유한 자원 소비국을 신규 고객으로 유치해서 좋고, 한국은 싸고 좋은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아서 좋고. 겸사겸사 한국과 러시아 사이, 조선에 파이프가 지나면 한반도 긴장도 완화될 수 있어서 좋고.”

7월 16일 월요일 정오.

강철은 중구 가야호텔 레스토랑에서 가스프롬 최고 경영자이자 이사회 부의장인 알렉세이 밀레르와 밥을 먹고 있었다.

“작년에 한국 대통령이 아나톨리예비치와 러시아-조선-한국 3국간 파이프라인 연결을 말했는데, 뭐 말로만 끝났지 하나도 진전된 게 없어.”

알렉세이 밀레르는 강철에게 남북러 가스관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자네는 그래도 말이 미국 시민권자지 실제로는 한국인이잖나? 거기다 한국의 대기업 집단 2곳이 자네 수중에 있으니, 어떻게 대통령을 설득해볼 수도 있지 않나?”

강철의 말대로 미하일 킴은 그를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 대표 존 크리스토퍼 허버트로 소개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에서는 금방 그 신분이 거짓된, 오로지 서류로만 존재한다는 것과 실제 강철은 그냥 순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것이 강철과 러시아인들 사이의 우정에 장애가 되진 않았다.

러시아인들이 그런 것을 신경 쓰기에는, 강철이 그들에게 보여준 성의가 상당했기에, 그들은 아무렴 어떻냐는 식이었다.

알렉세이 밀레르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그는, 표면상으로는 강철이 한국인 강철이건, 미국인 존 크리스토퍼 허버트건,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푸틴에게까지 내 이름이 들어갔단 말이지?’

그러나 관심법은, 알렉세이 밀레르가 말과는 달리 속으로는 상당히 자신을 경계하고 있음을 강철에게 알려주었다.

‘한국인이 미국인인 척 러시아 고위 관료들에게 뇌물을 뿌려가며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니, 경계할 만도 하지.’

그리고 관심법을 통해 강철은 푸틴의 귀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갔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철은 알렉세이 밀레르의 내면을 읽어가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그에게 이야기했다.

“한국인들하고는 아직 완전히 친해지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한국인들보다는 러시아인들과 친해지는 게 더 쉬울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인들은 따지는 게 많으니깐 말입니다.”

그 말에 알렉세이 밀레르는 씩 웃어 보였다.

“크리스토퍼 당신도 한국인이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떻게 하나? 허허허.”

“뭐, 사실인 걸 어쩝니까?”

“우리에게 쏟는 관심만큼만 한국인들에게 쏟아도, 아마 금방 인맥은 만들 수 있을 건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엄청 노력해야 할 거야. 우리 에너지 당국자들은 한국과의 거래에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거든.”

그러면서 알렉세이 밀레르는 강철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네를 통해서 한국 고위 당국자들과 연결되고 싶어. 태성에 박 회장과는 말이 잘 안 통해서 말이야.”

그중 절반은 거짓이고, 절반은 진실이었다.

알렉세이 밀레르는 강철을 통해 한국 정부와 접촉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는 강철을 살짝 경계하며, 그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수백만 달러의 거금을 뿌려가며 러시아 고위 관료들과 친분을 다져가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뒤의 말, 즉 태성그룹 박태화 회장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진실이었다.

어쨌건 한국 대기업 중 가장 큰 규모로 가스와 석유를 다루는 회사는 태성그룹이었고, 그런 만큼 러시아 제1의 에너지 회사인 가스프롬은 한국 사업과 관련해 태성그룹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계속 정부가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아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는데, 아니 태성 정도면 한국 정부를 쉽게 움직일 수 있지 않나?”

알렉세이 밀레르가 갑갑함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솔직히 여기까지 왜 왔겠나? 태성이 아무래도 우리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그쪽하고 뭔가 진전된 이야기를 나누려고 온 거 아니겠나? 근데 아무런 이야기도 진전이 안 되고 있으니, 갑갑해 미칠 노릇이야, 아주.”

물론 그가 서울까지 온 이유는, 단순히 태성그룹 박태화 회장과 만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푸틴이 직접 한국으로 보내서, 나에 관해 알아오게 할 정도로 신뢰하는 측근 중 하나라 이거지?’

한국인 중에는, 뉴스로 알렉세이 밀레르를 접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소위, 푸틴의 “잠가라 벨브.” 스킬이 나온 대표적인 뉴스 보도 장면에서, 그에게 벨브를 잠글 것을 명령받은 사람이 바로 알렉세이 밀레르였기 때문이었다.

강철도 지난 생에는 그 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알렉세이 밀레르라는 존재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토대로, 인맥을 쌓으면서, 알렉세이 밀레르와 친분을 쌓을 기회가 왔을 때, 강철은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접근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자기 고집이 좀 깊어지지 않았겠습니까?”

“허허허. 그러면, 젊은 자네는 아직 그런 고집이 없다는 건가? 허허허. 그래. 융통성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강철은 자신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속도를 냈음을 오늘 그와의 만남을 통해 깨달았다.

‘경계심이 높아졌어.’

예정대로 푸틴은 3선에 성공했다.

강철의 행동이 한국의 총선에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쳐 실제 역사와 다른 결과를 만들었지만, 러시아 대선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물론, 애초에 그쪽은 부정선거였던 만큼, 푸틴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겠지만.

‘아니면 원래 경계심이 엄청난 사람이던가.’

다시 크렘린의 권좌에 복귀한 푸틴은, 자신의 측근 중 한 사람을 시켜서 러시아 정부에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한 동양계 인물을 조사하게 했다.

‘당분간 러시아 쪽으론 사려야겠어.’

강철이 러시아 쪽에 인맥을 만든 이유는 간단했다.

첫 번째로는, 어쨌건 거목그룹의 대주주 중 하나인 극동개발탐사가 아직 러시아에 본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이나 여타 선진국과는 달리, 기업에 대한 몰수 조치 및 자산 동결 조치가 쉽게 이루어지는 러시아의 환경을 감안했을 때, 극동개발탐사의 자본을 활용하기 위해선 러시아 고위 관료와의 인맥은 필수였다.

두 번째로는, 푸틴에게 접근할 기회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푸틴만 제거한다면, 멸망을 어떻게든 늦추거나 아니면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강철은 러시아 고위 관료들에게 서슴없이 수백만 달러를 뿌렸다.

그리고 돌아온 대가는, 푸틴의 의심이었다.

‘일단 알렉세이 밀레르 정도까지만 해도, 충분히 목표했던 것 이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과 알게 된 거니까.’

강철은 일단 인맥 만들기 1차 계획의 자체 달성을 속으로 선언하며 자신을 의심하는 알렉세이 밀레르에게 말했다.

“그 융통성이 우리 우정에 더 큰 도약을 마련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알렉세이 밀레르는, 여전히 그를 의심하면서도, 일단 겉으로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6.

강철은 러시아 관료들하고만 인맥을 쌓은 게 아니었다.

거목그룹과 일신그룹의 영향력을 합치자, 강철은 순식간에 한국의 고위 관료 및 정치인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러시아 관료들보다 좀 더 유연했고, 덜 의심했으며, 더 많은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강철은 그들에게도 러시아 관료들에게 쓴 것만큼의 돈을 써야 했지만, 다행히 그중 강철의 개인 재산은 한 푼도 들어 있지 않았다.

“여당이야 뭐 당연히 박 비대위원장 독주 체제지. 과반을 못 먹었다며 밀어내려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뭐 소수니까. 애초에 비대위부터 지역 조직이 전부 박 비대위원장 사람들로 다 물갈이됐잖나?”

알렉세이 밀레르와의 만남에서, 푸틴의 의심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러시아 쪽으로의 인맥 확장은 당분간 멈추기로 다짐한 후 일주일이 지난 7월 23일 월요일 정오.

마찬가지로 중구 가야호텔 레스토랑에서 강철은 야당 중진 의원과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근데 우리는 영 이렇다 할 리더가 없어. 친노는 문 의원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고, 동교동계는 정 의원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고, 소장파 중 일부는 미칠 듯이 간만 보는 양반한테 붙었고, 또 일부는 다른 친노랑 동교동계 일부랑 같이 한 전 대표한테 붙었고.”

중진은 강철에게 여의도 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사실, 애초에 이것을 위해 돈을 썼던 만큼, 강철에게는 당연한 권리이기도 했다.

적어도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삼파전 혹은 사파전이야. 문 의원이냐, 정 의원이냐, 한 전 대표냐 아니면 바깥에서 간 보는 양반이냐.”

중진은 자당 사정을 전해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가 봤을 때, 나는 어디에 붙어야 할 것 같아?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니까, 우리보단 머리가 좀 많이 유연하지 않겠어?”

그 말에 강철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제가 뭐 정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역사는 말하고 있다.

문씨에게 붙어라고.

그러나 강철은 이젠 그 말마저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2014년쯤에 정부를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강철의 목표는 영국에 맡겨진 한국 정부 소유 금 104t이었다.

그것을 다시 한국으로 갖고 오기 위해 강철은 정부를 움직일 필요가 있었고,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선 재벌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역사적 기억을 통해 강철은 그 시점을 2014년 정도로 잡고 있었다.

적어도, 거목과 일신이라는, 재계 서열 17위, 12위 기업 집단 두 곳을 장악한 올해 초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역사가 실제와 약간 다르게 어긋나면서, 강철은 일단 자신의 계획을 잠정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대로 여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2014년에 일을 도모해도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곤란해질 수도 있어.’

본래 역사와 달라진 점은, 원래라면 평범한 20대 초반 고졸 노동자였을 자신이 2개의 재벌 기업 집단을 막후에서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의 미묘한 뒤틀림을 만들었다는 게 현재까지 확실히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강철은 중진의 물음에 함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정치를 모른다기엔, 너무 적재적소에 후원금을 넣던데 말이야? 허허허.”

그런 강철의 속을 알 리가 없는 중진은 그런 쓸데없는 소리나 하며 비싼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켤 뿐이었다.

강철 회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