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나비효과 (1)
1.
여러 가지 의미로, 전 세계적으로나 강철 개인적으로나 다사다난했던 2011년이 가고 2012년이 왔다.
2012년.
종말론자들이 새로운 종말의 해라며 두려워했고, 시장에서는 그 판타지를 상품으로 만들어 이익을 뽑아냈던 해.
한국의 강남이라는 지역이 노래 한 곡 덕에 전 세계에 알려진 해.
그리고 세계적으로 주요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해.
강철이 기억하는 2012년은 그러했다.
그리고 역사는 일단은 그가 알고 있던 대로 흘러갔다.
3월 4일 푸틴의 3선이 그랬다.
지난 생애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푸틴은 무난하게 바지사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뒤를 이어서 러시아 대통령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은 헌법을 무시할 수 없던 시절이었던 만큼, 구색맞춤을 위한 허수아비 역할을 충실하게 해 주었던, 물론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반역을 꾀했지만 실패했던, 대학 후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푸틴은 총리직을 인수인계해 줌으로써 보답을 해 주었다.
이때까지 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그 누구도 푸틴이 2년 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불법적으로 접수하고 동부 지방에 친러 괴뢰 반군 정부를 세울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푸틴은 그렇게 할 것이고, 그것은 곧 세계 멸망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격이 될 터였다.
거기까지는 분명 강철이 알고 있는 역사였다.
그리고 강철은, 거시적인 역사에는 큰 변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저녁에 깨져버렸다.
[여당이 145석, 야권이 147석을 차지함에 따라 향후 정국에 변화가……]
[개각을 비롯한 여러 방안이……]
[대통령의 레임덕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 됐습니다……]
[총선을 이끌었던 …… 비대위원장의 리더십에 큰 상처가……]
[여당 대권 주자로서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과반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선전한 만큼 그리고 여권에 당장 대체재가 없는 만큼……]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이 치러졌다.
본래 역사대로라면 야권연대에도 불구하고 정권심판론에만 기댄 야권의 전략 부재와 일부 후보의 과거 막말 파문 등으로 여당이 승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강철이 본 것은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특정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제1야당이 131석, 제2야당이 16석을 얻어 범야권이 총 147석을 얻었다.
그리고 본래 152석을 얻어 과반을 달성했어야 할 여당은 145석을 얻는 데 그쳤다.
물론 100석, 120석을 얻을 거란 부정적인 전망을 뚫고서 145석이나 차지한 것을 두고 큰 성과라고 할 순 있었겠지만, 문제는 이게 실제 역사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됐지?’
수요일 밤 11시.
강철은 소파에 앉아 TV 뉴스를 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행동이 무슨 문제를 일으켰나?’
강철이 회귀 후에 한 행동이라곤, 대산그룹을 장악하고 거목그룹을 접수하고 일신그룹에서 한준영을 축출한 것뿐이었다.
본래라면 지금까지 대산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었어야 할 강대산이 사라지고, 공고히 경영권을 승계했을 엄태욱과 한준영이 허수아비가 되거나 완전히 숙청당한 것을 제외하면, 본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었다.
대산그룹은 여전히 탄탄한 중견기업이자 전국구 건달 조직으로서 존재하며 전국에 산재한 주요 건달 조직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거목그룹은 디테일한 부문에서 달라진 게 있긴 했지만, 본래 역사대로 지주사로 전환이 됐다.
일신그룹은 한준영이 부회장에서 물러나게 되고 한소영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동일인, 즉 총수로 지정된 걸 제외하면 역시나 변화는 없었다.
구조적인 변화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조적인 변화가 없다면, 거시적 역사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강철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변했다.
아주 크게는 아니었지만, 미세하게 변했다.
‘뭐지?’
강철은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처리한 사람 중, 2012년 19대 총선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었는가를.
‘강대산? 아니야…… 절대 아니지. 엄태욱? 엄근식? 혹시 두 사람이 스폰해주던 정치인이 돈이 모자라서? 아니면 한준영?’
뭐가 어찌 됐건, 강철에겐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최 변호사가 말했어. 거목 엄씨 일가 비자금 지출 내역엔 특정 정당에 대한 일방적 후원 같은 건 없었다고. 그냥 골고루 양쪽에 다 나눠줬다고.’
그리고 그런 업무는, 강철이 비자금을 접수한 이후에도 중단되진 않았다.
‘그러면 한준영?’
강대산은 정치권에 광범위한 스폰을 할 능력이 없었던 만큼, 당연히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었고, 남은 건 한준영 한 사람뿐이었다.
‘한준영의 개인 비자금 규모가 정치권에 로비를 할 정도가 되나?’
거목 엄씨 일가의 비자금 중 강철이 챙긴 건 절반이었다.
즉, 그들에게는 대산그룹 자산총액만큼의 비자금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회장과 후계자의 것을 모두 합친 액수였다.
‘일신이 거목보다 크다고 해 봐야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아. 그러면 한경석과 합치지 않고, 한준영 단독으로만 비자금을 조성했을 경우…… 안 될 것 같은데?’
한창 강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TV를 보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아기방 문이 열리며 한소영이 살금살금 나왔다.
“민식이는?”
“잠들었어.”
“왜 그렇게 목소리를 낮춰? 방음 잘 되는 곳인데.”
“그래도 조심해야지.”
한소영은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살금살금 움직여 강철의 곁에 와 앉았다.
“뭐 변한 거 있어?”
“있…… 아니야. 없어.”
한소영이 물은 건, 출구조사와의 비교를 말한 것이었다.
강철은 자기도 모르게 실제 역사와의 비교를 말하려다가 황급히 말을 바꿨다.
한소영은 그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흐음…… 저렇게 되면 여당 입장에선 자기네 쪽 군소 정당이랑 무소속 후보를 비싼 값에 영입할 수밖에 없겠는데? 그렇게 하면 일단 단독 과반은 되긴 하니까.”
한소영은 자기 나름대로 향후 정국에 대한 예측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예측은, 평론가들의 것과 비슷했고, 강철의 생각과도 유사했다.
그리고 사실 일정 부분 실제 역사와도 비슷하긴 했다.
실제로 여당이 이겼던 지난 생애 역사에서도 군소 보수 정당은 여당에 흡수 합당됐으니까.
“한준영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사람이 누구였지?”
“응? 오빠 비자금? 그 우용택 건설 총괄사장이 관리했을 건데? 그건 왜?”
“내일 그 양반한테 한준영이 비자금 지출한 장부 있으면 다 갖다 달라고 해.”
“이미 확인해봤어.”
“확인했다고?”
“없다던데?”
강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일 나하고 같이 그 양반 좀 만나러 가자.”
“같이?”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어쨌건 우 총괄도 본사에서 일하거든.”
2.
총선 바로 다음 날인 4월 12일 목요일 오전 10시.
일신그룹 본사 회장실.
한소영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총수로 지정되긴 했지만, 실질적으론 경영에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기에 평소에는 늘 비어있던 곳.
그곳에서 강철은 한소영을 전면에 내세운 상태에서, 일신종합건설 총괄사장 우용택과 대면하고 있었다.
“우 사장님. 지난번에 오빠 비자금 장부가 없다고 하셨죠?”
한소영의 물음에 일단 들어올 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이고 불안해 보였던 우용택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네, 그랬습니다.”
“사실인가요?”
“네? 아, 네. 아무래도 이게 걸리면 문제가 되는 놈이다 보니 장부는 따로 작성해두진 않았습니다.”
“못해도 3천억 정도 되는 총수 일가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장부를 쓰지 않았다? 우 사장님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그렇긴 합니다만, 괜히 장부를 써 뒀다가 사정기관에 발각이라도 되면 저뿐만 아니라 부회장님까지 다치실 거라고 생각해서…… 당일 지출은 당일에 기록해서 부회장님께 보고한 후 파쇄했습니다.”
이건 지난번에 말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한소영의 얼굴에 냉소가 서렸다.
“지난번엔 그런 말씀이 없으셨던 것 같은데?”
“그, 그게……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쨌건 장부는 따로 작성해두지 않았습니다. 자칫 한 부회장님께 적대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서…….”
“장부를 가지고 언제든 협박이 가능하니까?”
“그,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강철은 가만히 관심법으로 우용택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그중 당일 지출은 당일 기록해서 한준영에게 보고한 후 파쇄했다는 건 일단 사실이긴 했다.
그러나 장부를 적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거짓이었다.
“응? 왜?”
강철은 한소영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다.
그리곤 자신을 올려다보는 한소영의 귓가에다 대고 속삭였다.
“지금부턴 나한테 맡겨 줘.”
그 말에 한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과격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놀라진 말고.”
한소영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강철은 가볍게 그녀에게 윙크한 후 다시 정색한 후 우용택에게 다가갔다.
“그…… 누, 누구……”
우용택은 강철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당황하며 한소영을 바라봤다.
[퍽-!]
강철은 그대로 품에서 손도끼를 꺼내 우용택의 가랑이 사이를 찍었다.
“흐억-!”
도끼는 우용택의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 소파 가죽 시트에 박혔다.
우용택에게는 그 어떠한 육체적 데미지가 가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용택의 정신에는 상당한 데미지를 가했다.
“장부 어디 있어?”
강철은 우용택에게 물었다.
우용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에라도 오줌을 지릴 것 같았지만, 건설 현장에서 한때 오랫동안 구르며 길렀던 담력과 깡으로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장부의 위치를 떠올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강철에게 고스란히 읽혔다.
“역삼동 사는 네 24살짜리 애인 집에 불을 질러야 대답을 하겠어? 장부 어디 있어!”
강철의 입에서 나온 역삼동 애인 집.
그곳이 우용택이 장부를 감춰둔 곳이었다.
“허억-!”
그리고 그 장소가 강철의 입에서 나오자 우용택은 결국 꺾이고 말았다.
곧 우용택의 가랑이 사이가 젖어 들었고, 김과 함께 지린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소영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찍어두고 싶네?’
한소영을 폰을 꺼낼까 하다가 말았다.
‘괜한 증거는 남겨두면 곤란하지.’
한편, 그 생각은 강철에게도 고스란히 읽혔다.
강철은 한소영을 보고 피식 웃더니 자기 폰을 꺼내 우용택이 지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곤 도끼로 그의 턱을 받쳐 들고선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게 한 후 말했다.
“우 총괄사장님. 곱게 장부 내놓으시면, 우리 한 회장님께서 애인 명의로 된 물류회사 일은 눈감아 주시겠답니다.”
“헉!”
우용택은 한소영을 바라봤다.
한소영은 강철을 바라보며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우용택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다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장부 가져오세요. 아니면, 내가 가지러 갈까요? 휘발유 통 들고서?”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