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13화 (113/175)

113 아버지

1.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가능성까지 거론됐을 만큼, 숱한 피해를 야기한 동일본 대지진의 본진이 일어난 날.

한경석은 쓰러졌다.

쓰러진 장소는 그의 한남동 자택 별채였고, 발견한 사람은 집사였다.

다행히 빠른 응급 처치와 병원행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덕분에 그의 건강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언론은 당연히 침묵했지만, 병원 관계자들의 수군거림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고, 특히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SNS로 빠르게 관련된 이야기가 전달되었다.

일신그룹 입장에선 다행히도, 동일본 대지진과 관련된 뉴스가 너무 컸기에, 총수의 건강 이상에 관한 이야기는 완전히 묻혀버렸다.

“바쁜데 뭣 하러 왔어?”

3월 14일 월요일 오전 9시.

강남우신종합병원 VIP 병동에 홀로 누워 성경을 보던 한경석은 자신을 방문한 딸을 향해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였다.

“아버지…….”

“애한테 안 좋아. 울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마. 좋은 생각만 해.”

한경석의 말에 한소영은 억지로 울음을 삼켰다.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어쨌건 한경석의 병을 감추는 데 자신도 공조했던 만큼,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또 최근에 한경석이 그녀의 마음을 많이 풀어준 데다가 그녀의 마음과 육체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남자를 만났던 만큼, 아버지에 대한 불만도 사그라들었기 때문이었다.

불만이 사그라든 자리에 남은 건 책임감과 죄책감뿐이었다.

“좀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일을 빨리 진행해야 할 것 같아.”

한경석은 한소영에게 곧 자신이 지닌 지분 중, 최근에 실명으로 돌린 지분을 포함해, 20%를 증여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보성이한테는 내 명의로 된 지분 12%에 차명으로 된 거 8%를 넘겨줄 거야. 그러면 얼추 두 사람의 균형이 맞게 되겠지.”

그러면서 한경석은 한소영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내가 가고 나면, 분명 준영이 그 호로 자식이 애비 노릇 하겠답시고 보성이한테서 지분을 뺏으려 들 거야. 그놈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한경석은 한소영에게 한보성을 지켜줄 것을 부탁했다.

“너밖에 없어. 보성이를 부탁할 사람이.”

한경석은 그러면서 자신이 한준영은 물론 며느리인 연은진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길게도 아니야. 보성이가 20대 후반…… 그러니까 준영이 그 호로 자식이 본부장 자리를 달았던 그 나이가 될 때까지만 네가 좀 보호를 해 줬으면 좋겠어.”

한소영은 그렇게 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래. 고맙다. 고마워.”

그리고 한경석은 한소영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미안하다.”

결국, 그 자리에서 한경석과 한소영 부녀는 얼싸안으며 통곡하고 말았다.

“만약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땐 소영이 네가 부모가 되고 내가 자식이 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것은 한경석의 유언이 됐다.

2.

2011년 4월 5일 화요일 오전 8시 32분.

한경석은 와병 중에 사망했다.

이미 지분은 그의 뜻대로 한소영과 한보성에게 증여된 상태였던 만큼, 상속과 관련된 문제는 없었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개신교식으로 치러졌고, 그랬기에 한경석의 장례식장에는 추모하는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가족장이었지만, 상주는 한보성과 한소영이 공동으로 맡았다.

그것은 고인의 뜻이기도 했고, 고인이 떠난 후 일신그룹의 권력 구조 변화에 따른 배치이기도 했다.

한준영은 그저 유가족 중 하나로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계심 바라네.”

4월 7일 오전 9시.

찬송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가 고인에게 세례를 베푼 교회 성가대에 의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경석의 관은 선산, 자기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부인 곁 지하로 들어갔다.

한보성과 한소영은 그 자리에서 마지막이다 싶을 정도로 처절하게 통곡했고, 한경석에게 불만이 많았던 한준영마저도 눈물을 훔쳐야 했다.

“아버지! 미안해요!”

한소영은 흙으로 덮여가는 한경석의 관을 보며 그렇게 애간장이 끊어지도록 울어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강철도 괜한 감정적 동요를 느꼈다.

물론, 울지는 않았다.

“…… 아버지한테 말씀드려야 했던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소영은 조수석에 앉아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슬픈 표정으로 강철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들이 자기를 배신해서, 죽이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인한테는 충격이었을 거야. 그런데 거기에 딸까지 연루돼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아마 절대 저렇게 편하게는 못 갔겠지.”

“…… 그냥 참고 기다릴 걸 그랬어…… 그랬으면…… 그랬으면……”

강철은 가만히 한소영의 손을 잡아주었다.

“편안하게 가셨잖아.”

“……”

한소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슬픔을 극복하고, 역사를 움직여 나가는 것, 그게 고인에게 당신이 가진 죄책감을 약간이라도 해소하는 길이야. 며칠 푹 쉬면서 마음 추스르고, 다시 열심히 살아.”

3.

한경석의 사망으로 일신그룹은 총수가 바뀌었다.

공식적으로는 부회장급인 경영지원실장 유진근과 주력 계열사 총괄사장들의 집단지도체제가 수립됐고, 상법상으로는 유진근이 대표로 임명이 됐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동일인으로 한소영을 지정함으로써 사실상 그녀를 일신그룹의 총수로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녀가 일신그룹의 동일인이 됨에 따라 거목그룹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또 간단하게 곧 해결됐다.

2011년 8월 3일, 거목그룹이 본격적으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지분이 공개됐다.

공개된 지분에 따르면, 한소영은 겨우 4%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고, 엄태욱이 5%를 가짐으로써 개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사람이 됐다.

법인으로는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가 26%, 러시아 극동개발탐사가 17%를 가지고 있었고, 청월이라는 국내 투자사에서 20%를 가지고 있었다.

즉 63%가 외부 법인이 소유한 지분이었고, 28%는 소액주주 및 국민연금의 소유였으며, 총수 일가의 지분은 9%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공정위에서는 엄태욱을 거목그룹 동일인으로 지목함으로써 한소영의 일신그룹 동일인 지정과 충돌을 막아냈다.

물론 완전히 막아낸 것은 아니었다.

어쨌건 부부가 양대 재벌 기업의 동일인이 된 만큼, 약간의 문제는 분명하게 있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뭘 어떻게 돼? 거목에는 엄태욱이 얼굴마담으로 세우고, 일신에는 유진근인가 뭔가 그 인간 얼굴마담으로 세우고 둘 다 주무르는 거지.”

“원래 엄태욱한테는 고문 자리만 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

“어차피 거목그룹 대표도 다른 전문경영인이잖아? 언제부터 그런 직급이 중요했다고.”

“그건 그렇긴 한데…….”

결과적으로 한소영은 거목그룹과 일신그룹 모두를 지배하는 존재가 됐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강철이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이 강철과 한소영 사이의 계약 내용이었으니까.

“보성이한테는 언제 넘겨줄까?”

“넘겨줄 생각은 있고?”

“당연히 넘겨줘야지. 아버지 뜻인데…….”

그러나 적어도, 당분간 일신그룹의 총수는 한소영으로 남아 있을 터였다.

4.

2011년 11월 11일 금요일 저녁 8시 45분.

“응애-! 응애-!”

한소영은 40의 나이에 드디어 첫 아이를 낳았다.

건강한 사내아이였다.

한소영은 그에게 민식이란 이름을 지어주었고, 엄씨 일가의 족보에 올려주었다.

“어때…… 귀엽지?”

4주간의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 강철은 한소영과 아이의 곁에 접근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한소영의 남편은 엄태욱이었고, 아이의 아버지도 그였던 만큼, 대외적 시선을 위한 당연한 조치였다.

그랬기에 강철은 12월 10일 토요일 오전 11시에, 한소영의 잠원동 펜트하우스에서 비로소 아이를 안아볼 수 있었다.

“……”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자기 품에 안겨 조용히 잠든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엄강철이라고 지으려고 했는데, 자기가 반대하는 바람에 그냥 엄민식이라고 지었어.”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둘째는…… 자기 성 따르게 할까?”

둘째라는 말에 강철은 흠칫하며 한소영을 바라보았다.

한소영은 그런 강철을 향해 짓궂게 웃어 보였다.

“…… 민식이 잘 키워. 훌륭한 아이가 되도록.”

“아무렴 훌륭한 아이가 될 거야. 아빠를 닮아서.”

“……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어.”

“난 아빠를 닮았으면 좋겠는데?”

“…… 누굴 닮든, 착한 아이가 됐으면 좋겠어.”

“누굴 닮든 착한 아이가 되긴 그른 거 아닌가?”

“…… 아이의 미래에 대해 왈가왈부하진 말자.”

그러면서 강철은 자기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 착하다, 나쁘다 평가하기도 전에…….’

그의 표정은 큰 혼란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5.

2011년 12월 19일.

[…… 급병으로 서거하시었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북한의 독재자이자 2대째 철권통치를 이어갔던 김정일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독재자가 죽음으로써 곧 북한의 체제가 붕괴될 거란 이야기가 일각에서 나왔지만, 곧 그의 아들인 김정은이 3대를 이어 독재자로 등극하면서 붕괴론은 쏙 들어갔다.

“현성그룹에서는 쟤랑 같이 어떻게 분위기 전환해서 대북사업 확대해볼 생각인 것 같던데…… 되려나?”

김정은이 노동당 최고위 지도부와 함께 김정일의 관을 옮기는 뉴스 장면을 보며, 한소영은 그렇게 물었다.

“안 될걸?”

강철은 아주 심플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래도 분위기가 바뀐다거나 하지 않겠어? 어차피 지금 대통령도 이제 임기도 얼마 안 남았고, 무엇보다도 이 사람도 뭔가 전환을 하려고는 하잖아?”

“안 될걸.”

계속되는 강철의 부정에 한소영은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그것도 마술이야? 아니면, 러시아 정보기관한테 뭐 들은 거라도 있는 거야?”

강철은 그것에 대해 설명해줄 수 없었다.

‘나중에 한 번, 세상이 망하기 전에 관계가 잠시 좋아지긴 해도, 현성그룹이 사업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걸?’

그러나 그것은 천기누설이요 예언이었다.

그리고 예언이나 천기누설류의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행위는 강철의 성향과는 배치됐다.

“국제 정세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잖아. 그냥 뭐 내 개인적인 예측이야.”

그러나 한소영은 강철이 뭔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계속해서 옆구리를 찔러댔다.

“응애-!”

그 순간, 아이가 울면서, 한소영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덕분에 강철에 대한 추궁은 끝났다.

‘이렇게 또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구나.’

강철은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후 서울 한강변을 바라보았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건, 결국 세상은 망한다는 거고, 그 멸망은 인간의 욕망과 오판 때문이라는 거지.’

그렇게 강철은, 2011년을 보내며 허공으로 연기를 한숨과 함께 내뿜었다.

강철 회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