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01화 (101/175)

101 레짐 체인지 (3)

4.

한준영의 대외적인 직함은 일신그룹 부회장이다.

그러나 정확한 그의 공식 직함은 일신그룹의 지주사 ㈜일신의 경영총괄 전무다.

물론 이마저도 상법상 직함은 아니었다.

상법상 한준영은 비등기 이사일 뿐이었다.

중요한 건, 그가 맡고 있는 경영총괄 전무의 역할 중 하나가 경영지원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며, 경영지원실 시장조사본부장은 한준영이 매주 수요일 주재하는 정기회의에 참석하는 고위직이자 고정 멤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1월 12일 수요일, 2011년 2차 정기회의에서, 한준영은 넌지시 한소영에 대한 조사를 김덕흠에게 지시했다.

[소, 소영이가 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좀 알고 싶다. 저, 정확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월 14일 금요일 밤 11시 45분.

한소영의 펜트하우스 거실에서, 강철은 그녀에게 자신이 녹음한, 김덕흠의 진술을 들려주고 있었다.

한소영은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 주 수요일 정기회의 때, 1차 보고를 하려고 했다는군.”

강철은 녹음을 끄고, 폰을 챙긴 후 한소영에게 말했다.

“후우…….”

한소영은 한숨을 내쉬더니 강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를 낳고 싶다면서, 담배는 이제 끊어야지 않나?”

강철의 말에 한소영의 표정은 잠시 밝아졌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오빠가…… 날 감시하라고 했단 말이지?”

“우회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선을 넘으시네.”

“그거 내 말투 아닌가?”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피식 웃었다.

“사랑하면 닮아간다잖아?”

“한소영 씨가 날 사랑하나? 내 유전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거나, 그거나? 뭘 그렇게 따져?”

한소영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강철은 그런 그녀의 곁에 다가가 앉아서 가만히 어깨를 감싸주었다.

“너무 힘들어하진 마. 어차피 부딪힐 일이었어.”

“그래도…… 친남매끼리…… 서로 감시하는 건 좀 아니잖아? 안 그래?”

“삼우그룹은 삼촌이 조카를, 현성그룹은 아버지가 아들들을, 아들들이 아버지를 감시했어. 이 정도면 뭐, 흔한 거 아닌가? 재계에서는?”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한소영 씨가 거목 회장이 될 일이 없었으니까.”

“…… 그럼 이게 다 자기 때문이네?”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한소영은 웃으며 가볍게 강철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곤 가만히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 베이지색 벽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랑…… 싸워야겠지?”

“거목은 당분간 보수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어. 그 사이에 일신그룹에서 정공법을 펼쳐서 확장 경영만 해도 우리에겐 상당한 위협이야.”

“…… 어떻게 할 생각이야?”

“가장 쉽지만, 가장 위험한 방법이 있어. 지금 당장에는 이 방법밖엔 안 떠오르는군.”

“그게 뭔데?”

“간단해. 한준영을 제거하는 거지.”

“뭐?”

한소영은 강철에게서 떨어졌다.

“그걸 말이라고 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래서 말했잖아. 가장 쉽지만 가장 위험한 방법이라고.”

한소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강철은 관심법을 통해 그녀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닌, 자신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가 친족 살해를 고려한다는 사실 자체에 자괴감을 느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응?’

그러다가 강철은, 한소영의 뇌리에 자괴감과 함께 떠오른, 한 가지 진행 중인 사건을 읽고는 씩 웃었다.

‘아버지 병을 숨기고 있어. 사실상 아버지를 죽이는 거잖아? 단지 직접 손을 쓰지 않을 뿐이지?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오빠 하나 죽이는 게 큰 문제가 돼? 만약 오빠만 죽으면…… 그럼 내가 유일한 상속자잖아?’

한소영과 한준영이 손을 잡고, 한경석의 주치의와 짜고서 그의 간암 발병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한소영의 상념을 통해 알게 된 강철은 한준영을 죽인다는 선택지를 일단 보류해두기로 했다.

“아니면……”

그리고 강철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한소영이 그 사실을 자신에게 털어놓게끔 하기 위해, 운을 뗐다.

“한준영의 약점 같은 건 없나? 드러나면 한경석 회장이 후계자를 갈아 치울 수도 있는 그런 약점 말이야.”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자신과 한준영이 한경석의 병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어느덧 한소영은 다시 강철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 정말 나쁜 년이지? 시아버지도 엿 먹이고…… 아버지도 엿 먹이고…….”

강철은 슬퍼하는 한소영에게 아주 심플하게 대답했다.

“응. 나뻐.”

“뭐?”

“그러니까, 내 유전자랑 당신 유전자가 섞이면 슈퍼 악질 재벌이 나오겠지?”

그 말에 한소영은 피식 웃었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서, 강철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심각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일단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벌써 12시 넘었는데?”

“그럼 일요일에 생각하면 되지.”

그리고 강철은 그녀를 안고서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5.

5.

“…… 그러니까, 거목그룹 비서실 직원한테 걸려서 그렇게 됐다?”

강철과 한소영이 새벽 5시까지 욕정을 불태우고 푹 잠들어 아직 둘 다 깨지 않은 1월 15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이태원동 자택 거실에서 한준영은 왼손 중지가 날아간 김덕흠과 만나 그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괴물이었습니다. 혼자서 독사파 애들 30명을 다 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당신 손가락을 잘랐다?”

“…… 네.”

“어디 보자.”

한준영의 말에 김덕흠은 붕대로 감은, 유달리 짧아진 왼손 중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한준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 뻑유는 오른손으로만 해야겠어.”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고서 한준영은 이마를 오른손으로 짚었다.

“이, 일단 제, 제가 독단적으로 저지른 짓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한준영에게 김덕흠은 태연하게 거짓을 고했다.

“그쪽 반응은?”

“미심쩍어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한준영은 의심했다.

‘이 새끼가…… 구라를 치는 건지 아니면 사실을 말하는 건지…….’

그것은 김덕흠이 그간 보여온, 뱀 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교차 검증이 안 되니 원…….’

교차 검증을 하려면, 한소영에게 물어야 했다.

그리고 그건, 당연하게도 유효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 괴물 같은 놈은…… 확실히 거목 비서실 직원이 맞고?”

“저, 정황상 확실합니다.”

“정황상?”

“그…… 배 팀장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 팀장을 잡아서 골목으로 끌고 갔다고 합니다. 아마 보디가드 정도로 추정이 됩니다. 아, 아니면 거목 비서실 쪽에서 따로 파파라치에 대비해서 조직을 꾸려놨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김덕흠은 점차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진 알겠지만, 한준영은 그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단…… 철수시키고…… 거목 비서실 조직도부터 다시 업데이트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장우진이 면회 한번 뚫어 봐.”

“장우진이라면……”

“그래, 그 장우진이.”

“아, 네. 알겠습니다.”

한준영은 김덕흠에게 나가보라 손짓했다.

김덕흠은 한준영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곤 그의 집을 떠났다.

“김 본부장이야?”

김덕흠이 가고 나서 5분 정도가 지났을 때, 거실로 한준영의 와이프 연은진이 나왔다.

“어.”

“오랜만에 와서 당신만 보고 그냥 간 거야? 나한텐 인사도 안 하고?”

“왜? 당신도 소영이처럼 나랑 아버지 통수치고 일신을 꿀꺽하려고?”

“이이는 말을 무슨 그딴 식으로 해?”

연은진은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 가정부가 차를 갖다 주자 그녀는 그걸 한 모금 홀짝거린 후 한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큰 오빠는 거절했고, 작은 오빠는 일단 알아보겠데.”

그 말에 한준영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니, 큰 형님은 왜?”

“남의 집 일에 함부로 끼는 거 아니래. 그리고 나보고도 출가외인이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일 부탁하는 거 아니라고 하더라.”

“지랄하네.”

“뭐, 어차피 기대도 안 했잖아? 그 꼰대한테는?”

“작은 형님은 간 보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고…… 알잖아, 우준이 사고 쳐서 그거 수습한다고 바쁜 거.”

“아, 맞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연예인들과 단체로 필로폰을 투약하다가 잡힌 처조카를 떠올리며 한준영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준이 그 자식은 도대체 왜 그래? 그 자식 때문에 작은 형님한테 장인어른이 확신을 못 가지고 계신 거잖아.”

“낸들 알아?”

“하여튼 당신 집안도 참 문제다, 문제야.”

“그러는 당신 집안은 뭐 멀쩡한가?”

“적어도 보성이는 재준이처럼 신부가 되겠다며 지랄하거나, 우준이처럼 마약을 빨진 않잖아.”

“그리고 자기 아빠랑은 달리 군대도 현역으로 갔고 말이야.”

“자랑스러운 아들이지.”

한준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점심 약속이 있어서.”

“누구랑?”

“그것까지 내가 일일이 보고해야 하나?”

“와이프한테 그 정도는 말해줄 수 있잖아?”

“여자랑 먹으러 간다, 왜?”

“여자? 아. 그분?”

“그래. 부회장급들 다 참석한다니까, 가야지.”

“그분은 평생에 혼자 살아서 그런가, 성격이 이상하시더라?”

“조용히 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거 몰라?”

“반대 아니야?”

“아, 맞네.”

6.

1월 17일 월요일 오후 5시.

우신종합병원.

“콜레스테롤 수치가 약간 높은 걸 제외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회장님.”

주치의 강준식 박사의 말에 한경석은 씩 웃었다.

“내 인생에 유일한 낙이 고기랑 술이야. 콜레스테롤? 까짓거 뭐, 죽을 때 화장터에서 잘 타오르고 좋겠네.”

“그래도 관리는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매주 골프 치잖나? 운동하려고. 허허허.”

한경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라고. 내 나이에 지팡이도, 부축도 없이 두 다리로 멀쩡히 걷는 회장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자기 건강에 자신감을 보이는 한경석의 모습에 강준식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자, 그럼 다음 달에 또 보자고.”

“네, 회장님. 살펴 가십시오.”

매달 셋째 주 월요일마다 하는 정기 검진을 끝내고 한경석이 사라지자, 강준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맞나?’

그는 30분 정도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이내 간호사에게 뒷정리를 맡기곤 가운을 벗은 뒤 병원을 떠났다.

‘이게 정말 맞나?’

차 운전석에 앉은 강준식은 백미러에 걸어둔 염주를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 맞나?’

그의 시선이 핸들 뒤에 놓인 조그만 불상으로 향했다.

‘이게 정말 맞습니까?’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헉-!”

강준식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조수석을 시선을 돌렸다.

“부처가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모두가 똑같이 대답할 거야. 당연히 아니라고.”

화들짝 놀라 눈을 부릅뜬 채 안색이 점차 창백해져 가는 강준식을 바라보며, 강철은 말했다.

“근데 뭘 이걸 고민하고 있어?”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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