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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100화 (100/175)

100 레짐 체인지 (2)

3.

1월 6일 목요일 밤 11시.

서초구 잠원동 거목 드림월드 아파트 1차 펜트하우스 안방.

가운을 입은 채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는 강철을 향해, 한소영은 침대에 누운 채 말했다.

“친정이랑 싸우게 생겼어.”

그녀의 말에 강철은 피식 웃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한소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보고 사실상 꿇고 들어오라는 건데, 그게 말이 돼?”

“안 되지. 당연히.”

“그렇지?”

한소영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페어 플레이, 최고 경영자의 사적인 관계를 배제한 철저히 공적인 거래…… 근데 이런 이상적인 게 통할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강철의 반문에 한소영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씩 웃었다.

“파멸적인 경쟁, 더티 플레이, 경쟁자의 사적인 관계를 최대한 활용한 추잡한 거래…… 이게 자기 방식이고?”

“까분다.”

“까분다?”

한소영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강철에게 다가와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자기가 나보다 힘은 셀지 몰라도, 나이는 내가 더 많거든?”

강철은 그런 한소영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서, 한준영하고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 물음에 한소영은 옆구리 찌르기를 멈추고, 가만히 강철의 팔을 들어 자기를 안게 한 후 그 품에 기댄 채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아버지랑 남편이란 인간을 물 먹인지 얼마나 됐다고 또 친형제를 물 먹이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왕 친인척한테 몹쓸 짓 한 거, 이 모멘텀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단 생각도 들고…….”

그러더니 그녀는 강철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자기 생각은?”

그 물음에 강철은 피우던 담배를 원탁의 재떨이 속에 던져 골인시킨 후, 한소영을 번쩍 안아 들고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

“재계 서열 17위 거목그룹과 14위 일신그룹. 사업 영역도 겹치고, 여러모로 각자의 강점이 있는 두 기업 집단이 하나가 된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겠지. 안 그래?”

한소영은 양팔로 강철의 목을 껴안았다.

“일신은 이미 지주사 전환이 끝났어. 거목처럼 날로 먹기 힘들어.”

“방법을 찾아봐야지. 늘 그랬듯이.”

“아, 심각해. 분위기 너무 딱딱해. 그래서, 계속 이렇게 안고만 있을 거야?”

한소영의 물음에 강철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했다.

“이렇게 좋아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참았대?”

“정신력으로.”

“웃기셔.”

4.

한소영이 실질적인 거목의 대표 노릇을 하며 그간의 칩거를 깨고 전면에 나서자, 언론은 물론 정계와 재계 모두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언론 입장에서는 마스크 괜찮고, 재벌가 며느리에서 재벌 기업 대표가 됐다는 스토리 자체가 매력적이었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정계나 재계는 그런 관점을 가지고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정계에서는 새로운 스폰서의 출현 여부를 두고서 관심을 가지고 한씨 거목을 지켜봤다.

그리고 재계에서는, 서로 업종이 겹치는 거목과 일신 두 그룹이, 남매가 나란히 회장이 됐을 때 어떤 식으로 사업부문을 조정할지, 순조롭게 협상할지 아니면 피 터지게 싸움을 할지를 두고 관심을 가지고서 한씨 거목을 지켜봤다.

“일신그룹에서 이야기하는 경영지원이라는 게, 파파라치 노릇을 하는 걸 말하는 건가?”

“커헉……”

“경영지원실 시장조사본부장 김덕흠이가 과연 독단적으로, 과잉 충성한다고 이런 짓을 벌였을까?”

“무, 무슨 말씀…… 커헉-!”

“오호라? 김덕흠이가 최근에 한준영이한테 밉보일 짓을 했다는 거지? 그래서 뭔가 공을 세우고 싶어 한다는 거고?”

“크으윽……”

1월 14일 금요일 밤 9시.

저 멀리,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으로 독재자가 물러나고, 아랍의 봄을 이끈 민주화의 트리거가 당겨진 날, 강철은 서초구 잠원동 한소영의 아파트 근처 골목에서, 한 남자를 족치고 있었다.

“김덕흠이 지금 어디 있어? 몰라? 그럼 알아내야지.”

강철은 남자의 목을 잡은 채, 벽에 그를 몰아세우곤 관심법으로 그의 생각을 읽어 정보를 캐내고 있었다.

“선택해. 죽을래, 아니면 김덕흠이 위치 불래?”

강철의 물음에 남자, 일신그룹 경영지원실 시장조사본부 3팀장 배철우는 속으로 대답했다.

‘사, 살려줘.’

그것을 통해 강철은 그가 조직과 상사에 대한 충성심이 약하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그대로 배철우의 목을 놓아주었다.

허공에 살짝 떠 있던 배철우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기침을 해댔다.

“크윽-!”

강철은 그런 배철우의 어깨를 발로 밟고서 살살 힘을 줘 가며 물었다.

“김덕흠이 지금 어디 있지?”

“콜록-! 콜록-! 코, 코리아나에…… 콜록-!”

“코리아나? 아! 강남 룸살롱?”

“네, 네!”

“부하에게는 오너 일족 감시나 시키고, 자기는 룸에서 술이나 빨고 여자나 만지고 있으시다?”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그대로 배철우에게서 발을 뗐다.

그리곤 그를 일으켜 세운 후 앞장서게 했다.

“안내해.”

“…… 네.”

배철우는 어깨를 손으로 짚은 채 쩔뚝거리며 움직였다.

“다리는 때리지도 않았는데 왜 쩔뚝거리는 거지?”

강철은 그렇게 말하며 발로 배철우의 왼쪽 허벅지를 쿡쿡 찔렀다.

“쥐, 쥐가 나서……”

“세게 한 대 맞으면 쥐가 풀리기도 하는데 말이야.”

“아, 아닙니다. 이,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배철우는 곧장 검은색 구형 국산 세단에 올라탔다.

강철은 조수석에 앉았다.

“이, 일단 전화를 드려보겠습니다. 거기 아직 계신지 화, 확인이 필요합니다.”

강철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잡스러운 기술이 많구만.’

그러나 강철은 일단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다.

“확인해 봐.”

“네, 네.”

배철우는 곧장 폰을 꺼내 김덕흠에게 전화했다.

30초 정도 신호가 간 끝에, 김덕흠이 전화를 받았다.

“네, 본부장님. 배 팀장입니다. 네, 그…… VIP건으로 긴히 상의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말입니다. 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네. 그…… 꼬냑으로 좀 준비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서, 배철우는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지금 룸에서 정리하시고 집이라고 하십니다.”

“그럼 집으로 가.”

“네, 알겠습니다.”

강철은 창밖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얄팍한 술수야.’

꼬냑은 위기에 빠졌으며, 현재 자신이 인질이 됐다는 은어였다.

그리고 그 은어를 확인한 김덕흠은 배철우에게 강철을 가리봉동으로 유인해 오라고 명령했다.

‘거목은 대산이랑 붙어먹고, 일신은 가리봉동 조선족 조직이랑 붙어먹으셨다?’

조폭과 재벌의 유착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일신그룹보다 거목그룹이 좀 더 큰 조직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과 일신그룹이 그 많은 조직 중 하필 조선족 조직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강철에게는 흥미로울 뿐이었다.

‘어차피 일신하고는 부딪힐 예정이긴 했다만…….’

다만 그러한 흥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대신 강철은 눈을 감은 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보았다.

‘거목과 일신은 많은 부분에서 겹쳐. 건설, 에너지, 화학 그리고 리조트 부문까지.’

겹치지 않는 분야라고는, 엔터테인먼트와 항공, 방산뿐이었다.

‘일신…… 일신이라…….’

일신을 저격하면, 자연스럽게 딸려오는 기업이 하나 있다.

‘보국그룹.’

일신이 국내 항공 분야 방산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면, 보국은 국내 육군 분야 방산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보국그룹은 2014년 삼우 및 현성과 빅딜을 해서 해군 방산 분야에서도 독점을 하게 되고 말이야.’

2011년 현재 이미 재계 서열 8위의 대기업 집단이며, 2014년 빅딜 이후 꾸준히 중공업 위주로 성장해 2018년에는 재계 서열 6위까지 오르는 보국그룹.

‘한준영의 부인이 보국그룹 연승준 회장의 막내딸 연은진. 그러니까, 보국그룹과도 사돈 관계.’

일단 강철은, 보국그룹에 관한 생각은 접어두었다.

‘일신그룹부터 처리해야 해.’

이미 일신그룹은 거목에 대해 이빨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한준영은 한소영에게 좋게좋게 말로 협의하자 했지만, 실제론 오빠에게 동생이 양보하길 바라고 있다.

한경석 회장은 아들과 딸이 싸우길 바라진 않지만, 싸우게 된다면 아들의 편을 들 가능성이 높다.

‘거목그룹은 당분간 지주사 전환을 위해 확장 경영보단 보수적 경영을 해야 해. 그 사이에 일신그룹이 치고 들어오면, 결국 내 파이는 줄어드는 거고.’

강철은 마음을 정했다.

‘일신부터 정리하자. 일단…… 김덕흠이 이 인간부터 처리하고, 소영이하고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순간, 강철은 자신이 한소영을 ‘소영이’라고 자연스럽게, 비록 내적 독백에 불과하긴 했지만, 불렀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 한소영 이사한테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그렇게 정정하면서도 강철은 뭔가 자신의 내면이 한소영과의 첫경험 이후 변하고 있음을 감지하며,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민이 한창 진행될 무렵, 배철우의 차는 달리기를 멈췄다.

“룸에서 여자 가슴이나 만지던 인간이, 고물 하적장에 왜 있을까?”

강철은 자신이 도착한 장소를 보며, 배철우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답변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다.

“이봐, 배철우 팀장.”

“그…… 말이 좀 많으시네?”

배철우는 강철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고철 하적장 입구는 닫혔고, 차량 주변은 30명의 조선족 깡패들이 둘러쌌다.

“내립시다.”

배철우는 그 깡패들이 익숙한지, 차창 너머로 손을 한 차례 흔든 후 차에서 내렸다.

‘멍청한 새끼.’

강철도 차에서 내렸다.

강철은 조선족 깡패들을 한 차례 쓱 훑어봤다.

‘보잘것없고.’

도끼와 커다란 식칼로 무장한,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깡패들은, 그러나 강철에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저 인간이 김덕흠인가?’

강철은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고철 하적장 사무실로 보이는 컨테이너 가건문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중년 남성을 바라보았다.

‘맞네, 김덕흠이.’

그리고 강철은 배철우가 그에게 다가가 허리 숙여 인사하며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무어라 말하는 걸 보고는 확신했다.

“일단 죽이진 말고, 적당히 손가락 하나 정도만 잘라라.”

배철우의 보고를 받은 김덕흠은 조선족 깡패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손가락만 썰라신다.”

그리고 깡패 두목으로 보이는, 산발 머리를 한 남자가 그렇게 부하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빨리 끝내지.’

곧, 강철과 조선족 깡패들은 충돌했다.

그리고 3분 후,

“사, 살려주십시오!”

“일단 손가락 하나 정도만 자르고 시작하지, 김덕흠 본부장.”

[쿵-!]

“아아아아악-!”

조선족 깡패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고철 하적장 마당 한가운데에서, 강철은 조선족 깡패들이 쓰던 도끼로 김덕흠의 왼손 중지를 찍어 잘라냈다.

“자,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얼굴에 피를 묻힌 채, 강철은 도끼를 집어 던지곤 김덕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배후가 누구지?”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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