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 협정 (3)
한소영은 강철을 똑바로 바라봤다.
“자기는 사마귀가 어떻게 짝짓기를 하는지 알아?”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관심법은 그녀가 하는 말의 의도를 강철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암컷에 의해 먹혀 죽을 걸 알면서도 수컷은 짝짓기를 해. 그리고 대부분 죽어버리지.”
한소영은 강철에게 바짝 다가왔다.
“암컷이 목부터 잘라 먹어서, 머리가 땅에 떨어져도 수컷의 남은 육체는 끊임없이 암컷에게 씨를 주입해. 자기가 죽더라도, 자기 유전자를 받은 새로운 개체가 이 땅에서 영원히 자신을 복제할 거란 믿음 하나로, 그렇게 하는 거지.”
강철은 한소영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2010년 시점의 한소영에 관해서는 오판하고 있었다.
이전 생에 강철이 보았던 한소영은, 이혼 후 친정으로 복귀해 경영 일선에서 조용히 활동하다가 오빠 한준영에게 숙청당한 사람이었다.
그것을 보고서 강철은 그녀에게도 야심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랬기에 다소 무리수를 몇 번 둬 가면서까지 그녀에게 접근했다.
실제로 그녀에겐 야심이 있었다.
그녀는 엄근식을 배신한다는 걸 알면서도 강철에 협조했고, 결과적으로 엄근식에게 빅엿을 날리는 것에 동참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 야심보다도 더 큰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 욕망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야심조차도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엄태욱 때문에, 나까지 내 유전자를 못 남기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이였다.
그것도 제대로 된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였다.
그리고 그 제대로 된 유전자를 지닌 남자는 현시점에선 강철이 유일했다.
“자기는 내가 필요하지? 자기의 그 미친 야망을 위해서?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되는 젊은 마술사의 광기를 위해서?”
한소영의 숨결에는 과일 향과 알코올 향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강철을 안고서 그 귓가에다 대고 속삭였다.
“나한텐 자기 유전자가 필요해. 그러니까 우리,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게 어떨까?”
강철은 눈을 감았다.
‘젠장…….’
조민석과 비슷한 부류라고, 엄태욱과 유사한 존재라고 판단한 게 잘못이었다.
조민석에겐 조민석만의 약점이 있었고, 엄태욱에겐 엄태욱만의 카오스가 있었듯이, 한소영에게는 한소영만의 광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광기를 과소평가한 대가는, 강철에게 양자택일의 강요라는 난감한 상황을 가져다주었다.
『쓸데없는 이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해.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니까.』
이전 생에,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고서 실실 웃으며 조언해주었던 작두를 떠올리며, 그에게 빼앗은 능력을 통해 간파한 한소영의 진짜 광기와 욕망을 목도하며, 강철은 그렇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활짝 웃으며 그를 꽉 껴안았다.
“대신, 명확하게 협정을 했으면 좋겠어.”
강철은 그녀를 살짝 떼어냈다.
그리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소영 씨가 원하는 건 내 유전자고, 나는 아직 한소영 씨를 여성으로 사랑하지 않아. 그런 만큼, 명확한 협정을 통해 서로 주고받을 걸 명시하자고.”
그 말에 한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자기하고 나 사이에는 명시적인 계약서가 필요하지.”
한소영은 강철과 손을 잡고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즉석으로,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계약서 작성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철은 관심법으로 한소영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고, 한소영은 어지간한 건 모두 양보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한소영-이하 갑은 강철-이하 을과 주 2회 잠자리를 가진다.”
“둘째, 갑은 거목그룹 경영에 있어서 을의 지도와 조언을 전적으로 따르며, 을의 동의가 없는 그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셋째, 갑과 을의 잠자리는 갑의 생리가 그칠 때까지 이어지며, 잠자리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경우에도 이 계약서는 유효하다.”
“넷째, 갑과 을의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엄태욱의 호적에 올려 엄씨 일가의 족보가 끊어지지 않게 한다.”
“다섯째, 갑과 을은 이 계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계약을 위반할 경우 위반자의 죽음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기로 한다.”
“2010년 12월 24일, 한소영, 강철.”
계약서를 모두 쓰고나서, 두 사람은 거기에 각자의 지장을 찍고 서명을 남겼다.
“자, 그럼 계약을 이행해볼까?”
계약서 2부를 모두 작성하여 각각의 서류봉투에 넣자마자, 한소영은 강철의 위에 올라타 앉았다.
소파에 앉은 채, 허벅지 위에 한소영이 앉게 되자, 강철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했다.
“크흠…… 오늘은 좀 많이 늦었고, 둘 다 술에 취해 있은이까……”
“늦었고, 술에 취했으니까, 더 좋은 건데?”
“그…… 마음의 준비가……”
강철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의지를 언어의 형태로 바깥 세계에 배출해주는 입은, 한소영의 입에 가로막혔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감각에 강철은 그만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고 말았다.
“자기는 말이 너무 많아.”
입술과 입술이 떨어지고, 두 입술을 침 한 가닥이 연결해주는 것을 바라보며, 한소영은 강철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렇게, 강철은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며, 이전 생에 작두가 해 주었던 조언을 실천으로 옮겼다.
5.
1주일에 2번.
계약서에는 그렇게 명시가 됐지만, 막상 강철과 한소영의 관계는 계약서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 계약서가 작성된 12월 24일 밤부터, 일주일이 지난 12월 31일 금요일 밤까지, 강철과 한소영은 매일 함께 어우러지며 할당량을 초과 달성하는 위엄을 보였다.
강철은 길동 오피스텔로 가지 않고, 잠원동 펜트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했고, 한소영도 그가 떠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12월 31일 금요일 밤부터 1월 1일 토요일 새벽까지, 1년 치 잠자리를 가지며 2010년의 마지막과 2011년의 처음을 함께했다.
“역시…… 그런 거였어.”
그리고 2011년 1월 2일 일요일 오전 11시.
강철과 한소영은, 계약서에 이름이 언급된 엄태욱을,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아버지한테…… 그리고 장우진이한테 강철…… 네가 개입돼 있단 말 들었을 때,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렇고 그런 관계였어. 허허허.”
엄태욱은 의외로 담담했다.
“야, 뭐 하나 물어보자.”
엄태욱은 강철에게 물었다.
“넌 너보다 스무 살 많은 여자랑 물고 빨고가 되냐? 비위도 좋으셔.”
그 말을, 강철은 한소영이 아닌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했다.
[빠악-!]
“크헉-!”
강철은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엄태욱의 코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엄태욱은 코를 양손으로 부여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곧, 바닥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말조심해. 적어도 내 앞에선.”
엄태욱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키득키득 웃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들어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엄태욱은 티슈를 뽑아 코피를 닦았다.
그런 그에게 한소영이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거목그룹에서 네 직위는 상임고문이야.”
“상임고문?”
“걱정 마.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너한테 합법적으로 품위유지비를 대주기 위해 만든 자리일 뿐이야.”
“……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내가 애를 낳으면, 네 호적에 넣어주면 돼.”
“풉-!”
엄태욱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강철과 한소영을 묘한 미소를 지으며 번갈아 보았다.
“엄 회장님에게도 그리고 이 세상에도, 내 아이는 곧 네 아이가 될 거야. 거목그룹은, 내 대에서는 한씨가 지배하겠지만, 내 아이 대에서는 다시 엄씨가 지배하게 될 거야.”
엄태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너희 둘의 결정이라면…… 따라야겠지.”
마약에 찌들었다곤 하지만, 판단력 자체가 마비된 건 아니었다.
엄근식이 패배하고, 두 부자가 지니고 있던 비자금과 차명 계좌가 모두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에 흡수됨에 따라, 자신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란 걸 엄태욱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철과 한소영은 그에게 관대한 제안을 해온 것이었다.
“조용히 살아. 언론에 이름이 거론될 짓도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지금처럼 약이나 빨고 여자랑 개랑 하는 걸 보면서 딸딸이나 치라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한소영의 말에 엄태욱의 광대가 씰룩거렸다.
그러나 그는 한소영에게 화를 내지도 않았고, 비아냥거리지도 않았으며, 단 한마디의 반박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할게.”
강철과 한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을 나서는 두 사람에게, 엄태욱은 물었다.
“너희 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 물음에 강철이 대답했다.
“그쪽이 신경 쓸 건 아니야.”
그리고 둘은 집을 나섰다.
홀로 남은 엄태욱은 코에 휴지를 박은 채 허공을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잠시 자리를 피해있던 최용대가 술잔에 위스키를 따라서, ‘위스키’ 한 알과 함께 엄태욱 앞에 두었다.
“용대야.”
엄태욱의 부름에 최용대는 움찔했다.
“네, 네. 전무님.”
“이게 잘 된 거냐, 좆 된 거냐?”
그 물음에 최용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씨발, 좆 된 거 같기도 하고…… 잘 된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
엄태욱도 최용대의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홀로 중얼거리며, 위스키에 ‘위스키’를 타서, 그것이 녹는 것을 기다렸다가, 이내 쭉 들이켰다.
6.
“어떻게 됐냐?”
윤경태의 물음에 윤준태는 한숨을 내쉬며 소주를 쭉 들이켰다.
“어떻게 되긴, 똥됐지.”
“새끼, 저가에 매수해서 60% 넘게 수익 봤으면 만족해야지.”
윤경태는 윤준태의 소주잔을 채워주었다.
“애초에 네가 노릴 게 아니었어. 세상에, 며느리가 뒤에서 칼을 갈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그러게 말이야. 대단해, 한소영 씨. 엄근식 회장도 엿 먹이고, 엄태욱 전무도 엿 먹이고, 나도 엿 먹이고. 씨발년.”
“새끼가 형수한테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윤준태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부국광은 자살했고, 죽으면서 장우진까지 함께 끌고 갔다.
엄근식은 공식적으론 아직도 거목그룹 회장이긴 했지만, 실권을 모두 잃은 채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
한소영은 공식적으로는 회장 직함을 아직 달지 않았지만, 사실상 회장으로 언론과 대중에게 소개되며 스스로를 드러내놓고 활동하고 있었다.
“부국광 씨가 말이야. 그런 말을 했었어.”
윤준태의 말에 윤경태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자기가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엮인 것 같다고 말이야.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죽었고.”
윤준태는 윤경태를 바라보았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 형이 좀 조사해줄 수 있어?”
그 말에 윤경태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난 부국광처럼 되고 싶지가 않아. 네가 그렇게 되는 것도 보기 싫고.”
윤준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잔만 비울 뿐이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