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예기치 못한 변수 (3)
5.
11월 26일 오후 1시.
강철은 하바롭스크 공항에 내렸다.
그의 곁에는 미하일 킴이 함께 하고 있었다.
“킴!”
저 멀리서, 한 러시아 여자가 미하일 킴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미하일 킴은 그녀에게 러시아어로 무어라 인사한 후 강철을 안내했다.
“안나 바실리예브나 프리마코바입니다. 그…… 우리 동료입니다. 계급은 저하고 같습니다.”
미하일 킴의 소개에 강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러시아 여자에게 눈으로 인사했다.
후덕하게 살집이 있는, 그러나 뚱뚱하다기보단 건장해 보이는 것이 마치 여자 오크가 있다면 저럴까 싶은 장대한 체구의 여성, 안나 프리마코바는 그런 강철을 슬쩍 바라보더니 이내 미하일 킴을 바라보며 무어라 이야기했다.
“어…… 그 밥부터 일단 먹자고 합니다.”
강철은 미하일 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하지.”
미하일 킴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안타 프리마코바와 무어라 대화를 나누었다.
곧 세 사람은 공항을 빠져나와 SUV에 올라탔다.
운전은 안나 프리마코바가 했는데, 그녀는 굉장히 터프하고 능숙하게 차를 몰며 점차 하바롭스크 시 외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철을 조수석에 앉아 백미러로 슬쩍 바라보며 미하일 킴은 생각했다.
‘멍청한 자식.’
그리곤 안나 프리마코바에게 러시아어로 이야기했다.
“애들은 얼마나 준비해 뒀지?”
“15명.”
“겨우?”
“전부 칼라시니코프 74로 중무장했어. 근데 겨우?”
“오우. 제법 힘을 썼는데?”
“저 인간이 우리 물주 괴롭히는 놈이라며?”
“저 인간은 실무자 같고, 실제론 백두산이라고 따로 있어.”
“그럼 백두산을 데려와야지 왜 저 인간을 데려온 거야?”
“백두산은 죽일 수 없어. 한국에서 한국인을 죽였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우리 전부 다 날아가는 거야. 국가안보상의 이유도 아니고 우리 물주 지키려고 남의 나라 국민을 남의 나라에서 암살하면 크렘린에서도 가만히 있진 않을걸?”
“그럼 저 인간은 왜?”
“말했잖아. 실무자라고. 그것도 굉장히 실력 있는 싸움꾼이야. 자칫 잘못하면 나하고 말렌코프 중령이 죽을 뻔했어.”
“실력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말렌코프 중령 사적 복수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고?”
“뭐…… 그런 것도 있지. 말렌코프 중령이 좀 많이 맞았거든. 나도 그렇고.”
“해외정보국 중령과 대위의 사적 원한 때문에 연방보안국 병력이 출동하다니…….”
“이거 왜 이래? 너희 이바노프 중령이 숙청되면서 빈자리를 우리가 잠시 채워주고 있잖아. 아니었으면 벌써 크렘린 쪽 인간들이 그 자리를 낼름 먹었을 건데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두 사람의 대화를 강철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관심법을 통해 두 사람이 현재 내적으로 품고 있는 생각을 읽었고, 그 생각이 그 입으로 나오는 말과 큰 차이가 없었기에, 대강의 대화 내용은 인지할 수 있었다.
‘이 빚은 확실히 받아내 주지.’
이미 강철은 하남시 대마농장에서 안드레이 말렌코프의 음모를 파악해두었다.
그의 음모는 간단했다.
강철을 자기네 앞마당인 러시아로 불러서 그곳에서 처형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그는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이 섞인 진술을 강철에게 했다.
‘하바롭스크 시장의 최종 서명이 있어야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가 극동개발탐사를 인수할 수 있는 건 진실이지.’
러시아가 대외적으로 개방적이고 해외 자본 유치에 적극적이라곤 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해외 자본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공포가 팽배한 만큼, 해외 자본이 투자를 하기 위해선 관료제 시스템의 허가를 필히 받아야 했다.
극동개발탐사는 하바롭스크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만큼, 그것을 미국계 투자사인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가 인수하기 위해선 하바롭스크 시장의 서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강철이 하바롭스크로 가야 한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당장 신규 소유 증명서 재발급만 하더라도, 전화상으로 하바롭스크 부시장에게 안드레이 말렌코프가 직접 연락해 받아낸 마당에, 인수합병을 위해 강철 본인이 가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강철은 그 어설픈 거짓말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저 자식들이 장난질 못 하게 보다 확실하게 해두기 위해선, 내가 직접 처리를 하는 게 맞아.’
강철에겐 시간이 없었다.
월요일이 되기 전, 극동개발탐사를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에 흡수시켜야 했다.
‘다행히 여기 이 여자는 연방보안국 소속인 것 같으니까, 이 함정을 내가 이겨내고, 적당히 힘으로 누르면, 금방 일이 끝나긴 할 거야.’
막말로, 러시아가 당장 군대를 동원해도 강철은 도망칠 자신은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확인한, 15명 내외의 무장 요원 따위는 겁나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들한테 뇌물 주는 외국인 때문에 저지르는 짓이야. 일을 더 크게 키우진 못하겠지.’
그렇게 강철은 1시간을 이동한 끝에 시 외곽에 위치한 커다란 창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식당인가?”
강철은 미하일 킴에게 물었다.
미하일 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철컥-!]
대신 운전석에 앉아 있던 안나 프리마코프가 강철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밀며 러시아어로 무어라 이야기했다.
“내리라고 합니다.”
미하일 킴의 말에 강철은 피식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곧, 창고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던, 방탄복을 입은 연방보안국 요원들이 강철에게 소총을 들이밀며 다가왔다.
차에서 내린 안나 프리마코프가 무어라 이야기했고, 미하일 킴이 통역해주었다.
“들어가라고 합니다.”
강철은 순순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내부는 텅 빈 상태였다.
그저 소형 포크레인 하나와, 그것이 판 걸로 추정된 구덩이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구덩이 앞에는 안드레이 말렌코프가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멍청한 새끼.”
안드레이 말렌코프는 강철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국어로 말했다.
“어때? 거기 대마농장이랑 분위기 비슷하지?”
안드레이 말렌코프는 중무장한 연방보안국 요원들을 사이에 두고 강철을 보며 빈정거렸다.
“거기선 흙이 너의 편이었겠지만, 여기선 내 편이야.”
강철은 그런 안드레이 말렌코프에게 말했다.
“공사가 다망해서 마중 못 나온다는 분이, 언제 하바롭스크까지 날아와 계셨을까?”
“공사가 다망해서 하바롭스크까지 온 거지.”
그러면서 안드레이 말렌코프는 연방보안국 요원들에게 러시아어로 말했다.
“적당히 반항 못 할 정도로만 패서 내 앞에 데려와.”
그러나 연방보안국 요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은 채 가만히 안나 프리마코바만 바라봤다.
“시킨 대로 해.”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방보안국 요원 하나가 소총 개머리판으로 강철의 광대를 가격했다.
[빠악-!]
분명,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부서진 건 강철의 광대가 아닌, 개머리판이었다.
“Cyka!”
그리고 개머리판이 부서진 보안국 요원이 당황하며 욕을 내뱉는 순간, 강철의 반격이 시작됐다.
[빠악-!]
강철은 그대로 연방보안국 요원의 광대를 주먹으로 쳤다.
요원의 광대는 그대로 함몰됐고, 그는 의식을 잃은 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개머리판이 망가진 총도 함께 바닥에 떨어졌고, 강철은 그것을 확인한 순간, 자신의 주변에 있던 요원들을 습격했다.
[빠악-!]
“Cyka!”
[빡-! 빡-!]
한 명의 요원은 강철의 손날에 콧등을 정통으로 맞고는, 코가 주저앉은 채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른 두 요원은 강철의 발뒤꿈치에 동시에 관자놀이를 맞았고, 쓰고 있던 방탄모가 박살 나고 그 충격이 뇌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바람에, 뇌진탕에 걸린 채 그 자리에서 무너져버렸다.
순식간에 네 명의 요원이 강철의 맨손에 제압당하자 나머지 열 한 명의 요원이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강철에게서 멀어졌다.
강철은 그중 속도가 가장 느린 요원 하나를 더 붙잡았고, 공포에 질린 그의 인중에 그대로 주먹을 갈겼다.
요원의 앞니가 부러지는 것을 보며 강철은 그 요원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찰칵-!]
그 순간, 강철과 거리를 벌리는 데 성공한 10명의 요원들은 강철을 부채꼴 형태로 감싼 채 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다리를 쏴!”
“죽이진 마!”
요원들끼리 러시아어로 그렇게 의사소통을 끝냈다.
그들은 곧장 강철의 양쪽 다리를 총구로 겨누었다.
“쏴!”
[타다다다다-!]
어떤 총은 단발이었고, 어떤 총은 연발이었다.
제대로 규격도 맞춰두지 않은 채, 그들은 사실상 총을 난사했다.
당연히 총알은 강철의 하반신에만 날아들지 않았다.
몇몇은 강철의 상반신을 때렸고, 또 몇몇은 강철의 얼굴을 때렸다.
[까가가강-!]
그리고 그 무엇 하나도 강철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피가 아닌 스파크가 튀었고, 살점이 아닌 찌그러진 탄환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연방보안국 요원들은 물론 그것을 긴장된 표정으로 관전하던 안드레이 말렌코프, 미하일 킴 그리고 안나 프리마코바까지 모두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봤다.
“끝났나?”
강철은 먼지를 털 듯 옷을 툴툴 털었다.
오거닉 메탈은 그의 신체만 강화해주었을 뿐, 옷을 강화해준 건 아니었기에 그의 손길에 약해진 섬유가 떨어져 내렸다.
“옷값도 받아내야겠는데?”
그러면서 강철은 천천히 자신을 부채꼴 모양으로 둘러싼 연방보안국 요원들에게 다가갔다.
[탕-!]
연발이 아닌 단발로 쏜 요원이 다시 강철에게 총을 쏘았다.
이번엔 정확하게 그의 이마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러나 총알은 스파크와 함께 튕겨 나갈 뿐, 강철에게 상처 하나 주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타다다다당-!]
단발로 세팅해두었던 요원들은 모두 연발로 바꾼 후 두려움에 질린 채 강철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여전히 강철은 멀쩡했고, 그들은 패닉에 빠졌다.
탄환을 모두 쓴 요원들이 탄알집을 교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탄알집을 뽑고, 새것을 집어넣기 전, 강철이 먼저 그들을 덮쳤다.
[빠박-! 빠바박-!]
화려한 발차기-천식류 태권도의 현란한 기술이 하바롭스크시 외곽 공장에서 펼쳐졌다.
연방보안국 요원들은 모두 그 발차기에 가슴과 머리를 맞으며 쓰러졌다.
방탄복이나 방탄모는 아무 쓸모 없었다.
총알도 막는 혹은 유탄을 막는 그 강력한 방어구들은, 강철의 발차기가 주는 충격을 어찌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착용자에게 전해주었고, 착용자들은 속절없이 뇌가 진탕이 되거나 속이 진탕이 된 채 토악질을 하거나 피를 뿜으며 바닥에 누워버렸다.
“오, 오지 마!”
연방보안국 요원을 모두 쓰러뜨리고, 강철은 천천히 안드레이 말렌코프에게 다가갔다.
안드레이 말렌코프는 권총을 꺼내 강철을 향해 겨눈 채 한국어로 말했다.
“대, 대단한 사람이야. 우, 우리 협력하자. 우리 러시아에는 자네 같은 괴물이 필요해. 서방의 침략을 막아내고 네오나치를 근절하기 위해 당신 같…… 컥-!”
강철은 그의 궤변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순식간에 강철은 안드레이 말렌코프와의 거리를 좁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대로 그의 목을 잡은 채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선 넘으셨어, 중령 아저씨.”
[우드득-!]
강철은 망설임 없이 안드레이 말렌코프의 목을 부러뜨렸다.
그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은 채 즉사했다.
‘응?’
그리고 그가 죽는 순간, 강철은 초능력 에너지가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