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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91화 (91/175)

091 2차 공방전 (3)

강철은 한동안 가만히 한소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불을 붙인 후 연기를 한 차례 내뿜고 나서, 한소영에게 대답했다.

“죽는 것이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어 졌고, 선을 심하게 넘었더라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소영은 잠시 굳은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보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자기 정말 대단한 사이코구나?”

그것이 욕이 아닌, 극찬임을 알았기에 강철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그래서 더 탐나. 자기의 유전자가.”

“말했을 텐데? 난 그런 식으로 애를 낳고 싶진 않다고.”

“누가 뭐래? 그냥 탐난다는 거지.”

강철은 담배를 절반 정도 태운 후, 컵에다가 집어넣었다.

그리곤 한소영을 보며 말했다.

“장우진이 잠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엄근식은 사실상 손발이 묶인 수준으로 힘들어했어.”

“그리고 중요한 주총을 앞두고서, 다시 한번 더 회장님의 손발을 묶겠다?”

“그렇지. 내가 저번에 말했지? 어쩌면 이번 2차 공세가 마지막 공세가 될 수도 있다고.”

“거목그룹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까?”

“거목개발계획, 바움리조트 그리고 거목에너지. 이 세 곳만 장악하면 사실상 우리가 지주사 노릇을 하게 돼. 무슨 말인지는, 한소영 씨가 더 잘 알고 있겠지?”

한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 회사의 이사회를 장악하는 순간 거목건설, 거목상사, 거목화학 모두를 좌지우지할 수 있어. 그러면, 사실상 끝난 거 아닌가?”

“지분은 비슷하지 않나? 자기가 먹은 거랑 아직 회장님이 들고 있는 거랑?”

“비슷하지. 하지만, 차이가 있지.”

“무슨 차이?”

“내가 들고 있는 건,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 단일이지만 엄근식이 들고 있는 건 여러 군데로 쪼개져 있다는 거.”

한소영은 미소를 지었다.

“대리인들이 주총장에 못 들어오게만 하면 된다?”

“엄근식 쪽 지분 10%만 주총장에 못 오게 해도, 우리가 과반이 넘어. 그럼 끝난 거 아닌가?”

“러시아 쪽 비자금도 있을 건데? 극동개발탐사였나?”

“그건 현재 동결 상태야. 소유권 입증 서류는 내가 들고 있는데, 그쪽 대표자하고 현재 연결이 안 되고 있거든. 거기다 알아보니까, 좀 복잡하더라고 그쪽은.”

“그렇겠지. 어쨌건 외국 자본으로 세운 회사니까, 러시아 정부가 되게 규제하고 있지.”

“그걸 제외해도 45%야.”

“그것까지 포함하면 완벽하게 우리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긴 하겠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으니까.”

“하긴…….”

그 순간,

[♬♪♩♪♪♩]

“응? 누구지?”

초인종이 울렸다.

한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인터폰을 통해 초인종을 누른 사람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얼굴빛은 사색이 됐다.

“무, 무슨 일이야?”

한소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터폰 화면 너머 상대방에게 말했다.

[내가 내 집에 오는데 무슨 일이 어디 있어? 빨리 문이나 열어! 밖에 추우니까!]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엄태욱이었다.

한소영은 떨리는 눈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응?’

그러나, 이미 강철은 자신의 커피잔과 함께 모습을 감춘 뒤였다.

[아, 뭐 하고 있어! 빨리 문 열어!]

한소영은 일단 문을 열어주었다.

잠시 후, 엄태욱이 씩씩거리며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응? 뭐야? 너 담배 피우냐?”

들어오자마자 엄태욱은 담배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남이사, 담배를 피우건 말건. 무슨 일이야?”

“집주인이 집에 오겠다는데 그게 무슨 일이 있어야 하는 건가?”

“자기 집 대문 도어락도 못 열어서 초인종 누르는 게 집주인이 할 행동이 맞나?”

“이게 진짜…….”

엄태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고,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 얼굴 계속 보고 있긴 싫으니까, 용건만 말할게.”

“바라던 바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 시간 비워 놔.”

“왜?”

“…… 병원에 가서 검사 좀 받자.”

“…… 무슨 검사?”

“이 시국에 검사받자는 게 넌 뭔지 감도 안 오냐? 담배 다시 태우더니, 대가리가 굳었어?”

엄태욱의 말에 한소영의 표정이 굳었다.

“…… 미친 새끼……”

“씨발…… 나라고 하고 싶은 줄 알아? 근데 어떻게 해? 아버지가 당장 하라고 난리인데.”

“……”

“아버지가 너한테 그렇게 말했다며? 나하고 사이에서 애 낳으면 회장직 물려주겠다고 말이야.”

엄태욱은 조소를 머금었다.

“씨발 나한테는 애라도 낳아야 자기 죽고 나면 명예 회장 대접이라도 받는다고 설득하던데…… 참 대단한 아버지다 그치? 친아들한테는 명예 회장직을 이야기하고, 그 친아들하고 딱 한 번 신혼여행 때 떡친 게 전부인 년은 꼴에 며느리라고 회장직을 약속하고 말이야. 씨발 거.”

엄태욱은 도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튼, 난 말해뒀다. 수요일에 시간 비워 둬라. 괜히 고집부리다가 아버지 눈 돌아가서 너하고 나 둘 다 버리는 일이 일어나게 하진 말고.”

엄태욱은 곧 집을 떠났다.

한소영은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서 한동안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엄근식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군.”

별안간, 자신의 귀를 때리는 강철의 목소리에, 한소영은 고개를 소파 쪽으로 돌렸다.

강철은 사라지기 직전 모습 그대로 다시 소파에 나타난 채 앉아서 새 담배를 꺼내 피우고 있었다.

“나 어떻게 해?”

한소영은 강철에게 물었다.

강철은 가만히 한소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 나 저 새끼 애 가지기 싫단 말이야.”

“…… 그럼 안 가지면 되는 거 아닌가?”

“…… 저 새끼가 와서 병원 가자고까지 했는데 내가 거부하면…… 회장님이 날 가만히 둘 것 같아? 자길 기만했다고 역정을 낼 게 뻔한 데?”

“일단 검사받아. 그리고 최대한 미뤄. 어차피 인공수정이라는 거, 금방 되는 거 아니잖아?”

한소영은 다시 소파에 와서 앉았다.

“미루면?”

“그사이에 우리가 거목을 장악하는 거지. 거목을 장악하고 나면, 한소영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 말에 한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미뤄볼게. 그러니까…… 그 전에 자기가 일을 다 끝내야 해. 회장님이 의지를 갖고, 저 새끼가 거기에 순응해버린 이상, 내가 미룰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

한소영은 강철에게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내밀었다.

강철은 그녀에게 담배를 건네주었다.

그녀가 담배 필터를 입술 사이에 물자 강철은 손가락으로 불을 붙여 주었다.

“후우-!”

그녀는 길게 연기를 내뿜곤, 눈을 감은 채 강철에게 말했다.

“난 저 새끼 유전자가 내 몸에 두 번 다시는 안 들어왔으면 좋겠단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5.

11월 15일 월요일 오전 9시.

장우진은 기자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강남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해서 당일 구속되는 것만큼은 피하려고 했지만,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남경찰서에서는 그를 6시간 동안 조사한 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리고 중앙지검은 그 사건을 받자마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에선 영장 청구 1시간 만에 영장을 발부해주었다.

그렇게 장우진은 11월 15일 월요일 오후 4시에 구속 기소 돼 서울구치소로 옮겨졌다.

여론이 주목하는 사건이었기에, 그리고 거목그룹 엄근식 회장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엄근식에게 심각한 악재였다.

비록 장우진이 엄근식의 이름을 대는 미친 짓을 하진 않았지만, 이미 검찰 측에선 엄근식이 연루돼 있다고 확정하고서 보강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태극일보를 비롯한 주요 언론에선 엄근식의 기소 가능성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거목그룹 3대 상장사의 주가는 또 끝없이 하락했다.

하지만, 엄근식에게 악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안드레이 말렌코프요.”

11월 18일 목요일.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온 나라의 신경이 집중돼 있던 날.

엄근식은 중구 정동 주한러시아대사관 근처에 자리한 러시아 정보부 안가에서 한 남자와 대면하고 있었다.

“엄근식이요.”

“이바노비치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한국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중년의 러시아 남성 안드레이 말렌코프는 살짝 거만한 자세로 엄근식을 대하긴 했지만, 엄근식은 그런 그의 태도 따위에 신경질을 부릴 여유가 없었다.

“이바노비치는 지금 본국에서 행정 업무에 종사하게 됐소. 뭐, 국내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니, 엄 회장은 너무 신경 안 써도 되오.”

안드레이 말렌코프는 엄근식에게 자신이 그간 막심 이바노프가 담당했던 일을 하게 됐다고 통보했다.

“이바노비치가 연방보안국 소속이고 나는 해외정보국 소속이긴 하지만, 뭐 국가안보에 소속이 어디 있겠소? 안 그렇소?”

“그렇지요. 국가안보에 내부외부가 어디 있겠어요?”

“이바노비치에게 들어보니, 엄 회장이 하바롭스크에 회사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극동개발탐사라고, 이반 이바노프 씨하고 같이……”

“이반 이바노프는 일신상의 사정으로 현재 모든 공직에서 은퇴한 상태라오.”

“아…… 그래요?”

“극동개발탐사는 외국계 자본이 세운 회사인 만큼, 우리 정부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소.”

“알고 있어요.”

“더구나 최근에 한국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고 말이오.”

엄근식은 저 빙빙 돌려 말하는 러시아 놈이 뭘 원하는가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허허. 이거 나이가 드니까,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허허.”

엄근식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들고 온 강장제 10병짜리 1박스를 안드레이 말렌코프에게 건넸다.

안드레이 말렌코프는 박스를 슬쩍 열어 보았다.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가 내부에 빽빽하게 있는 걸 확인한 그는 씩 웃으며, 박스를 챙겼다.

“한국 기업인들은 우리가 참 좋아하지. 이런 쪽으로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많이 열려 있다고 해야 할까?”

안드레이 말렌코프는 처음보단 확실히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로 엄근식을 대하기 시작했다.

“자, 우리 엄 회장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셨으니, 나도 성의를 좀 보여야지 싶은데…… 뭘 원하시오?”

“극동개발탐사 말이에요. 우리가 거기 소유주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지금 잃어버린 상태인데…… 새로 서류를 발급해주면 좋겠어요.”

“알아보겠소.”

알아보겠다.

확실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근식은, 일단 그 대답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막심 이바노프가 사라지면서 아예 손도 댈 수 없던 극동개발탐사 소유권 재발급 민원을, 일단 받아 줄 사람이 다시 생긴 것만으로도 엄근식은 안도할 수 있었다.

“그것 말고, 다른 부탁은 또 없소?”

안드레이 말렌코프의 물음에 엄근식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 한 장을 꺼내 안드레이 말렌코프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누구요?”

“백두산이라고…… 사채업 하는 놈이요.”

“사채업자?”

“그 인간을…… 적절하게 처리해줬으면 좋겠어요.”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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