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89화 (89/175)

089 2차 공방전 (1)

1.

한소영이 만만찮다곤 하지만, 엄태욱에 비하면 확실히 선녀였다.

엄태욱은 오로지 머릿속에 자기 자신밖엔 없었지만, 한소영에겐 최소한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는 있었다.

그리고 한소영은,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강철에게 차마 ‘네 애를 낳고 싶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할 만큼의 양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그녀가 이 문제로 인해 선을 넘진 않으리란 확신을 강철에게 줬다.

그리고 강철은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응?”

한소영은 살짝 당황했다.

“나를 눈치 없는 사람으로 보지 말라고. 한소영 씨가 최근에 했던 행동이나 말들에서, 그런 기미들이 보였으니까.”

강철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한소영의 복장과 화장을 지적했다.

“토요일 이 시간에, 와인에, 분위기 있는 조명에 몸매를 부각하는 그런 원피스에 진한 화장까지 해놓고, 티가 안 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강철이 자신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자, 한소영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다시 상체를 뒤로 뺐다.

그리곤 공연히 술을 마시곤, 손부채질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해는 해. 한소영 씨의 생각도.”

강철은, 일단 준비해온 시나리오대로 대사를 읊었다.

“그리고 내 플랜 B보단 한소영 씨의 플랜 B가 더 성공 가능성도 높고 얻을 것도 많은 게 사실이야.”

강철의 입에서 긍정적인 내용이 흘러나오자 한소영은 반색했다.

“하지만…….”

관심법을 통해 한소영의 기대감이 높아진 걸 확인한 강철은, 일단 여기서 브레이크를 걸기로 했다.

“아이는 그런 식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강철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는 사랑의 결실로 태어나야 하는 거지, 그런 욕망의 부산물로 태어나서는 안 되는 거야.”

그 말에 한소영은 살짝 당황했다.

“너답지 않다?”

그 말에 강철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난 고아야.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지. 그래서, 내 부모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가도 모르고. 하지만 내가 버려졌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어.”

강철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난 그 사람들의 사랑의 결실이 아니었다는 거야. 구태여 말하자면…… 성욕 부산물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러면서 강철은, 한소영에게 한 이야기 중, 거목을 장악하겠다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진심이 담긴 말을 던졌다.

“내가 그렇게 태어나서 힘들게 살았는데, 내 자식도 그렇게 태어나게 하고 싶진 않아. 그 욕망이 단순한 성욕이건, 아니면 자식의 유전자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함이건, 결국 그런 욕망의 부산물은 인생이 불행해질 테니까.”

한소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강철의 표정, 그와 만나 동업한 이후로 처음 보는 그 슬픈 표정에서 그의 진심을 읽었다.

“분위기 심각하네?”

한소영은 억지로 웃으며 강철의 잔에 와인을 따랐다.

강철은 다시 가면을 썼다.

“하지만…… 만약 내가 한소영 씨를 사랑하게 된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겠나?”

그 말에 한소영은 술을 따르다 말고 가만히 강철을 바라봤다.

“내일모레 마흔인 아줌마가 네 또래들하고 경쟁이 되겠니?”

관심법을 통해 그녀가 품고 있는 묘한 기대감을 포착한 강철은 씩 웃으며 말했다.

“뭐, 매력이 있으니까, 나이는 얼마든 커버할 수 있겠지.”

그 말이 그녀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걸 확인하고서, 강철은 활짝 웃었다.

2.

11월 6일 토요일.

태극일보 토요일판 1면을 거목그룹에 관한 단독 보도가 장식했다.

<거목그룹 계열사 불법 대출 의혹 “이사회가 열린 날, 이사들은 회의실에 없었다,”>

그것은 거목그룹 계열사 중 몇 안 되는 상장사인 거목건설과 화학에서 정상적인 이사회 결의 없이 대출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회의록에 따르면 그날 거목건설과 거목화학 이사회에서는 참석 이사 과반의 찬성으로 대출 신청 결의가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극일보에서 낸 기사는, 순식간에 다른 언론사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주말 내도록 지상파 3사와 보도 전문 채널을 통해 거목그룹 불법 대출 뉴스가 방송을 탔다.

물론 거목그룹에서 그걸 수수방관하고 있진 않았다.

엄근식이 직접 나서서 각 언론사 사장에게 연락을 취했고, 장우진은 발품을 팔아가며 주말 내도록 언론사 보도국장들에게 술을 먹였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월요일, 장이 열리자마자 거목그룹 3대 상장사-거목건설, 거목화학, 거목상사의 주가는 폭락했다.

언론에서는 검찰 수사 가능성까지 거론하기 시작했고, 거목그룹 계열사에 대출한 은행들을 금감원이 내사하기 시작했다는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

“죄송합니다, 회장님.”

11월 9일 화요일 오후 5시.

장우진은 엄근식에게 고개를 숙였다.

엄근식은 아무 말 없이 책상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다들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약빨이 안 먹힌다?”

“…… 죄송합니다.”

“아니야…… 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네가 죄송할 게…… 그간 우리한테 용돈 받아 처드시던 기자님들 그리고 공무원님들이 문제지.”

장우진은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직감적으로 지금 엄근식이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과도 같은 상태임을 간파했다.

“이사들은?”

“전부 입단속 시켜 뒀습니다.”

“언론에서 아무 근거 없이 그렇게 막 쓰고 있진 않겠지?”

“현재까지 나온 자료나, 제가 보도국장들하고 만나서 이야기 나눈 바에 따르면, 정황만 가지고 썼을 뿐입니다. 증거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게 벌써 1년 전 일인데. 그러면…… 질문을 바꿔보자. 왜 언론에서 그 지랄을 하는 걸까? 응? 특히 태극일보 말이야. 응? 거기 박 사장한테 물어보니깐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딱! 발뺌하던데 말이야. 응?”

“보도국장도 일선 기자들이 압력을 가해서 자기네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기자들이 압력을 가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 대단한 민주 언론 납셨네. 이놈의 조선 언론이, 일개 기자들이 설친다고 보도국장이 굴복하는 그런 것들이야? 어?”

“아무래도 배후에 큰 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있겠지! 대산 같은 찌끄러기가 아니라, 진짜 큰 세력이! 그게 누구야? 국정원이야? 아니면 여의도야?”

국정원은 윤경태고, 여의도는 윤준태다.

“두 사람 모두 현재 감시하고 있습니다.”

엄근식은 주먹을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가 그는 눈을 감고 몇 차례 심호흡했다.

그리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장우진에게 최대한 목소리를 차분하게 낮춰가며 언론 보도와 맞물려 있는 또 다른 난관에 관해 물었다.

“개발계획이랑 바움리조트 그리고 에너지 주총은?”

“…… 모두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에서 소집을 요청했습니다.”

“…… 그 새끼들 지분은?”

“…… 45% 언저리입니다.”

“딱 우리 명의신탁 계좌 지분만큼이다, 그치?”

“……”

“그래서, 우리 지분은?”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와 비슷합니다.”

“하바롭스크 지분은 뺀 거지?”

“네.”

엄근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 실소유주는?”

“아직 확인 중입니다.”

“준태일 가능성은?”

“무시할 순 없지만,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다는 거네?”

“…… 죄송합니다.”

엄근식은 눈을 떴다.

“우진아.”

“네, 회장님.”

“네가 이때까지 납치한 인간이 몇 명이나 되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답변을 못 할 건 아니었다.

“200명 정도 됩니다.”

“그중에 보내버린 인간은?”

“20명 정도입니다.”

“10%는 죽었다는 거네.”

엄근식의 눈빛이 순간 싸늘해졌다.

“아무래도…… 신사답게 하는 건 여기까지 해야겠다.”

“회장님……”

“부국광이…… 그 새끼 납치해서…… 직접 물어봐.”

거부할 권한은 장우진에게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3.

2차 공세의 첫 번째 전선은 언론이었다.

백두산의 소개로 알게 된 태극일보 기자 최병욱을 통해 강철은 거목그룹의 불법 대출에 관한 의혹을 터뜨렸다.

물론 최병욱이 흔쾌히 강철을 도운 건 아니었다.

일단 명확한 물증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태극일보의 주요 광고주 중 하나를 공격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엄근식 회장의 비자금이 모종의 이유로 동결돼 현재 그의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알고 있었던 최병욱은, 결국 강철의 설득에 넘어가 처남이기도 한 보도국장에게 기사를 내보내도록 압력을 가했다.

물론 그 설득을 위해, 강철은 경차 1대 값 정도 되는 돈을 최병욱의 입에다가 밀어 넣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거목그룹은 본격적으로 흔들리게 됐다.

『언론이 이래서 무서워. 이빨 빠진 호랑이란 게 확인되자마자 미친 듯이 물어뜯잖아.』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알고 있던 백두산은, 강철에게 그렇게 말하며 질색했다.

『반대로 이빨만 안 빠졌다면, 호랑이가 아니라 삵 정도만 돼도 얼마든지 알아서 기는 게 언론이란 거 아니겠나?』

그런 백두산에게 강철은 그렇게 말하며, 혹시 알고 있는 기자들이 있다면 괜찮은 것들로 더 소개해달라 부탁해 두었다.

2차 공세의 두 번째 전선은 주총이었다.

강철은 카우보이 에셋 트러스트에 흡수한 엄씨 일가의 명의 신탁 지분을 이용해, 그리고 한소영이 준 자료를 토대로, 적절한 공격 지점을 찾아냈다.

거목그룹 순환출자구조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3개의 비상장사, 거목개발계획과 바움리조트 그리고 거목에너지의 주총 소집을 강철은 요구했고, 상법에 따라 3개 비상장사의 주총은 11월 22, 23, 24일 사흘에 걸쳐 열리게 됐다.

극동개발탐사의 지분이 동결된 이상, 주총에서 양측의 세력은 팽팽할 터였다.

그랬기에 강철은 몇 가지 전술적인 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중 하나는 주총에 엄근식 편으로 참여할, 순환출자로 말미암아 비상장사의 지분을 들고 있는 계열사의 대리인단이 주총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윤준태와 부국광의 커넥션을 역이용하여, 그를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그것을 위해, 11월 12일 금요일 저녁 8시, 강철은 위치추척프로그램을 통해 부국광의 동선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국광은, 강철의 예상과는 달리 여의도에 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빠르게 양주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강철은, 그가 왜 양주로 가는지를 예상하고는, 재빨리 오토바이를 타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푸으어억-!”

11월 12일 금요일 밤 11시 35분.

거목시멘트 양주공장.

부국광은 도르래에 거꾸로 매달린 채 물에 머리를 박았다가, 다시 꺼내져 공기를 마셨다가, 다시 물에 머리를 박길 반복하며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거목그룹 비서실 직원들이 5명 정도 서서 물고문을 직접 집행하고 있었고, 그의 정면에선 장우진이 의자에 앉은 채 물고문의 디테일한 부분을 지시하고 있었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야.’

그리고 강철은, 천장 쪽 조그만 통로에 앉아, 어둠에 의지해 모습을 감춘 채 그 장면을 모두 폰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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