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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88화 (88/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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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은 다 이런 건가? 아니면 여기 부부만 이 모양인 건가?’

한소영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밝히진 않았지만, 강철은 관심법으로 그녀의 생각을 이미 다 읽은 상태였다.

‘내 유전자를 받고 싶은 게 찌질한 도라이보단 강단 있는 도라이가 나아서라고?’

강철은 한편으론 한소영의 그러한 발상에 질색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강철은 그녀의 그러한 생각을 역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짤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대산을 먹으니 조민석이 뒤에서 협잡을 했지. 지금도 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거목을 장악하고 나면, 조민석과 같은 처지가 될 한소영 역시도 뒤에서 자기 권력을 강화하고자 공작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소영은 조민석과는 달리 충분히 공작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거목과 대산의 사이즈 자체가 다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한소영에게는 조민석이 가지지 못한 든든한 친정-재계 서열 14위 일신그룹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여자에게 약간이라도 여지를 준다면?’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희망만큼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 건 없으니까.’

강철은 차에서 내렸다.

“왜? 벌써 가려고?”

그런 강철에게 한소영은 물었다.

“나는 엄근식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야.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말이지. 괜히 같이 있다가 들키면 우리 모두 곤란해져.”

“그렇긴 하겠네.”

“계속해서 몸을 사려야 해. 우리가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낼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어. 그러니 더 조심해야지.”

“우리?”

한소영은 미소를 머금었다.

“네가 이빨을 드러낼 시기겠지.”

강철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운명 공동체 아니었나? 우리?”

“운명 공동체라…… 그냥…… 아직은 파트너 정도지 뭐. 전략적 제휴? 이익 연합?”

“뭐, 어찌 됐건.”

강철은 차 문을 닫고 자신의 SUV로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강철이 SUV로 걸어가는 장면부터 SUV를 타고 반대 차선으로 넘어가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까지, 모두 확인하며 한소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5.

10월 27일 수요일 저녁 8시.

엄근식의 서재.

“아가씨 말씀대로였습니다. 부국광과 윤준태는 그 이후로도 두 차례, 여의도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장우진의 보고를 받으며, 엄근식은 부국광과 윤준태가 찍힌 사진을 바라봤다.

“이 새끼…… 감히 자기 삼촌을…….”

엄근식의 표정은 굉장히 안 좋았다.

그는 윤준태가 호시탐탐 거목그룹의 지분을 노린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걸 실천하고, 그 방법이 실제로 자신에게 위협적임이 확인되자 엄근식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삼촌에게 덤비는 조카의 버르장머리 그리고 그런 것에 자신이 당한다는 자괴감 등이 엄근식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상태하고 경태는?”

“윤상태와 윤경태의 연루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최근에 윤준태와 윤경태가 부쩍 자주 만남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평소라면 그냥 형제간의 우애라고 생각했을 것이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렇게 나이브할 수가 없었다.

“경태 쪽에도 사람 붙여. 상태야 군바리인 데다 정보 쪽도 아니라서 힘을 못 쓰겠지만, 경태는 국정원이잖아.”

“네, 이미 붙여뒀습니다.”

“그래. 잘했어.”

엄근식은 별안간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책상에 내려놓고 장우진을 바라봤다.

“우진아.”

“네, 회장님.”

“네가 있고 없고가 정말 큰 차이를 만들어낼 거라고, 그간 머리로는 내가 늘 생각했거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장우진은 말없이 가만히 엄근식을 바라보기만 했다.

“근데 네가 진짜 쉬게 되니까,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더라. 다른 이사들은 갑갑한 인간들뿐이고, 비서실에 신입은 길도 못 찾는 어벙이고.”

자신에 대한 칭찬이자, 공공연히 자신을 지지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장우진은 도리어 겁을 먹었다.

‘지금 굉장히 위험하신 상태다.’

엄근식의 칭찬은, 곧 그가 자신에게 무언가 큰 걸 기대하고 있음을 뜻했다.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저 칭찬이 곧 질책으로 더 나아가 숙청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장우진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간 그런 식으로 날아간 이사들을 많이 봤으니까.

“아닙니다. 그저 회장님께서 시키시는 일만 잘하는 것뿐입니다.”

그는 일단 겸손한 모습을 보이며, 엄근식의 기분이 여기서 상하지 않게 심기 경호나 할 뿐이었다.

“아니야. 네 역할이 얼마나 큰가를 이번에 깨달을 수 있었어. 그러니까, 앞으론 절대 네가 위험해질 일은 하지 마. 특히 저번처럼, 그런 무식한 놈하고 직접 싸우는 일은, 절대 만들지 마.”

엄근식의 말에 장우진은 강철을 떠올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건에 관해서 추가로 조사한 게 있어서, 따로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우진은 엄근식에게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장우진이 직접 방화제일고로 가서 뽑은 강철의 학생생활기록부와 졸업앨범용으로 찍어두었던 명함판 증명사진이 있었다.

“아무래도 조민석의 말이 믿음이 가지 않아,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실제로 92년생이었습니다.”

장우진은 엄근식에게 그가 올해 5월, 동급생의 귀를 물어뜯고 담임 교사를 폭행한 후 퇴학 처분당했다는 것과 고아원에서 도망갔다는 사실까지, 자신이 직접 확인한 사실을 빠짐없이 보고했다.

그러나 그 보고를 받는 동안, 엄근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강철의 사진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뭔가 있습니다. 단순히 92년생이 그랬다고 이해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봐, 우진아.”

“네, 회장님.”

“너 서상완이 알지?”

“서상완 의원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양반.”

장우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강철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그 사람이 나올까?

“그 양반이 지금이야 요양원에서 호흡기 달고 오늘내일하는 신세지만, 예전엔 진짜 대단했어. 예전에 박통 시절에 명동에 사채왕이 삼우그룹 김 회장 잡아 죽이려고 사람을 한 20명을 보냈거든? 근데 그걸 자기 혼자 다 때려눕혔어. 그래서 김 회장 눈에 들어서 국회의원까지 했던 거고.”

삼우그룹 창시자이자 현 회장 김대영의 삼촌인 고 김영식 전 회장의 경호원, 서상완의 무용담을 엄근식은 약 1분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맨 마지막에 장우진에게 던졌다.

“서상완 같은 놈인 거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괴물 말이야. 그리고, 딱 그냥 서상완 같은 놈인 거야. 주먹질 잘 하는 것 말고는 아무 쓸모도 없는 그런 사람 말이야.”

강철에 대해선 더는 신경 쓰지 말란 말이었다.

장우진은 일단 거기에 토를 달지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그저 그렇게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강철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 눈빛…… 절대 개의 눈빛이 아니었어.’

그러나, 일단은 엄근식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6.

강철은 곧 있을 2차 공세에 관한 이야기를 전화로 한소영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강철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런 이야기는 직접 얼굴을 보고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강철은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러나 한소영의 옷과 그녀가 준비한 와인을 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심법을 통해, 강철은 한소영이 단순히 일 이야기를 하려고 자신을 부른 건 아니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월 30일 토요일 저녁 10시.

엄태욱의 자택 2층, 한소영의 서재.

원탁에 그녀와 마주 앉아 강철은 적포도주가 담긴 잔을 든 채 한소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소영은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허리선과 골반 그리고 가슴골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딱 달라붙는 디자인이었다.

‘오늘이 기회야. 일단 오늘, 분위기를 몰고 가서…….’

한소영은 원피스를 입은 채 다리를 꼬았다.

하반신을 가리는 부분이 상당히 짧았기에, 그 모습은 굉장한 관능미를 풍겼다.

그러나 그것은 강철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재벌은 뭐든지 자기가 가지고 싶은 건 무조건 가져야 속이 후련한 종자들이겠지?’

강철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한소영의 눈을 바라보며 일단 일적인 이야기를 전달했다.

“한소영 씨가 준 순환출자구조 자료를 통해서 공략 지점을 확인하게 됐어. 이르면 다음 주 주말부터 2차 공세가 시작될 거야.”

“흐음?”

한소영은 가볍게 비음을 흘렸다.

강철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는 가만히 입술을 깨문 채 자신의 몸이 썰리던 날을 떠올리며 웃음기를 가라앉혔다.

‘평소보다 더 야하게, 더 퇴폐적으로 꾸며놓고 한다는 게 비음?’

강철은 확신했다.

그녀는 남자를 유혹해본 적이 별로 없다고.

강철은 가볍게 심호흡한 후 한소영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2차 공세가 성공하면, 2011년 연내에 한소영 씨는 거목그룹 회장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에 올라갈 수 있게 될 거야.”

강철은 잔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소영은 입을 열었다.

“성공 확률은?”

“80% 이상.”

“100%는 아니네?”

“세상에 100%짜리 계획은 없지.”

“그러면 플랜 B는 세워 뒀어?”

“세워두긴 했지만, 위험하기도 위험하고 무식하기도 무식한 방법이라 가능하면 80%의 확률 속에서 성공할 생각이지.”

“무슨 방법 이길래?”

“플랜 B를 꺼내야 할 때, 알려주지. 다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얻을 것보단 잃을 게 더 많은 거라 별로 꺼내고 싶진 않을 뿐이란 것만 알아 둬.”

“흐음…… 나도 플랜 B가 있는데…… 이건 위험하지도 않고 오히려 지금 네가 하려는 거보다 더 평화롭게 거목을 먹을 방법이야.”

강철은 가만히 한소영을 바라봤다.

“내가 아이만 가지면…… 회장님은 날 차기 회장 후보로 세우실 거야. 어제 같이 식사하면서 확인한 내용이야. 나보고…… 엄태욱을 억지로…… 겁탈이라도 하라고 하더라고. 웃기지?”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난 엄태욱 아이를 가지기가 싫어. 왜냐하면…… 걔의 유전자를 받고 태어난 아이는, 걔처럼 찌질한 사람이 될 것 같거든.”

한소영은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다.

그녀의 몸에서 강한 향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남자를 유혹하는 페로몬이었다.

“어차피 내 유전자까지 받을 걸 감안하면, 사이코 같은 애가 태어날 건 뻔해. 그러면, 이왕이면 찌질한 사이코보단 강단 있는 사이코가 낫지 않겠어?”

그러면서 한소영은 강철의 손등에 가만히 자기 손을 포갰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더 말을 하진 못했다.

그건 묵언의 유혹 같은 게 아니었다.

단지, 강철에게 차마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진심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관심법을 통해 그녀의 머뭇거림이 그녀의 내면에 남아 있는 일말의 양심 때문이라는 것까지 확인한 강철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애를 가지고 싶다고?”

한소영의 눈빛이 심히 떨리기 시작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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