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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87화 (87/175)

087 3대2 (2)

“아닌 것 같은데?”

최용대의 말은 진실이다.

그가 내적 독백까지도 허위로 꾸밀 정도의, 그러니까 자기 자신까지 속일 정도의 연기자라면 몰라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관심법은 그의 말이 진실이라 알려주고 있었다.

그랬기에 강철은 조금 더 최용대를 압박하고자 했다.

“지, 진짜입니다. 유, 윤준태 사장 외에는 그 누구와도 내통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나보고 믿으란 건가? 당신은 지금 엄태욱에게 마약을 판 나의 동향을 외부에 유출한 거야. 엄태욱한테야 윤준태가 외사촌이겠지만, 나한테는 전혀 별개의 인물이거든.”

강철은 그대로 최용대의 멱살을 잡아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한 손으론 그의 가슴팍을, 다른 한 손으론 그의 양쪽 무릎을 받친 채 강철은 그대로 난간으로 향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진짜예요! 진짜라고요!”

유난히 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최용대의 귀를 가르고 지나갔다.

최용대는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받치고 있는 강철의 오른손을 꼭 잡은 채 바들바들 떨면서 애원했다.

“시,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강철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최용대를 든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마치 고민하는 것처럼, 아니면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그런 강철의 무심한 표정이 최용대를 더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이대로 가다가 내 얼굴에다 오줌 지리겠네.’

대략 30초 정도를 그렇게 버티던 강철은 그대로 최용대를 도로 테라스에 집어 던졌다.

“커억-!”

최용대는 떨어졌다는 고통보다도 살았다는 기쁨에 안도했다.

그런 최용대에게 강철은 말했다.

“난 배신자가 제일 싫어. 그래서 보통 배신자는 내 손에 죽게 되지.”

강철의 말에 최용대의 안색은 다시 사색이 됐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강철의 말에 담긴 숨은 메시지에 관한 자기만의 분석에서 비롯된 희망이 조그만 불씨가 돼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씨를 강철은 키워주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날 배신한 놈을 의미하는 거지.”

강철은 최용대 앞에 섰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윤준태가 뭘 약속했는진 모르겠지만, 난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약속해주지.”

강철은 살짝 낯부끄러워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볼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목소리를 깔고서 말을 마무리했다.

“살려는 드릴게.”

2년 정도 뒤에 나올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를 읊으면서, 강철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그것을 가까스로 참고서, 강철은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로 최용대를 바라봤다.

“개, 개처럼 충성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그리고 두 차례나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공포를 느꼈던 최용대에게는, 강철에겐 낯간지러운 그 말이 굉장히 무게감 있게 다가갔다.

거의 절하듯 자신에게 머리를 푹 숙이는 최용대를 바라보며 강철은 피식 웃었다.

3.

최용대가 윤준태와 협업한 지는 대략 1년 정도 됐다.

최용대는 윤준태에게 엄태욱의 자질구레한 비위들, 예컨대 수간을 관음하는 것이라든가, 자신을 비롯한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든가 하는 등의 정보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최근, 강철에 의해 마약에 빠졌다는 사실과 그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올랐다는 것, 비자금이 동결됐다는 것 등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강철에 대해 알려준 정보는 굉장히 적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용대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어디까지나 엄태욱과 함께 있으며 접할 수 있는 범위에 국한돼 있었으니까.

강철은 최용대에게, 윤준태에게는 지금까지 전한 정보 이상의 것을 전하지 말라고 못 박아뒀다.

최용대가 알 수 있는 정보란 게 굉장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것조차도 윤준태에게는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새는 구멍 하나를 차단한 상황에서, 강철은 윤준태와 부국광에게 동시에 감시자를 붙였다.

물론, 그들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의 동선은 서용태가 준 위치추적프로그램으로도 충분히 파악이 가능했다.

감시자를 붙인 것은 그 두 사람이 회동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함이었다.

“흐음…….”

10월 22일 금요일 밤 8시.

엄태욱의 자택 거실.

강철은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한소영은 강철에게 받은 사진들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것도 네 작품이야?”

한소영의 물음에 강철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두 사람이 만난 건 내 의지와 무관한, 일종의 사고지. 그리고 그 사진을 찍은 건 내가 의도한, 일종의 수습책인 거고.”

“흐음…… 그러니까, 네가 부리는 얼굴마담이 널 배신한 거다?”

“그런 셈이지.”

“윤준태한테 붙었다고?”

“금융맨들이 의리나 이상에 끌릴 일은 없지. 돈으로 혹은 자리로 끌어들였겠지.”

“흐음……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건데?”

“그걸 엄근식한테 가져다줘.”

“뭐?”

한소영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근식은, 뭐 엄근식보단 장우진이겠지만, 내가 이 일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부국광이 윤준태와 만나는 걸 본다면?”

한소영은 팔짱을 낀 채 강철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피식 웃었다.

“윤준태를 배후로 여기게 될 거다?”

“거기에 다른 두 형제까지도.”

“하긴…… 정체도 모르는 괴물 같은 소년보단 윤씨 삼 형제가 배후라는 게 더 그럴듯하긴 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일 전달해. 거기 날짜가 찍혀있으니까, 하루 정도는 분석한다고 늦었다 변명이 되겠지만, 그 이상은 의심만 받거든.”

한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은 커피를 마저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소영에게 말했다.

“한소영 씨는 계속해서 엄근식에게 점수를 얻어야 해. 자기 하나뿐인 아들을 2선으로 후퇴시키고, 당신을 회장 후보로 공인할 정도로 말이야.”

한소영은 별다른 말 없이 빤히 강철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강철의 말과는 무관한 질문을 던졌다.

“부국광 말이야. 이 사람도 죽일 거야?”

그 말에 강철은 가만히 한소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한소영은 말을 이었다.

“왜, 네가 사람을 죽이는 기준이 있다며? 부국광이 그 기준에 딱 부합하는 사람 같은데?”

강철은 한소영의 두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

“선을 넘긴 했지만, 그게 내게 사적인 원한이 될 정도로 부국광이 나하고 가까운 사이였던 건 아니야. 그리고 부국광이 아직은 내게 쓸모가 있어.”

“당장엔 안 죽이겠다?”

“대신…… 이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부국광이 내게 자신의 삶이 죽음보다 내게 가치 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땐…… 죽게 되는 거지.”

그렇게 답하고서, 강철은 집을 나서려고 했다.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 그에게, 한소영은 말했다.

“너하고 가까운 사이가 돼야 사적인 원한을 살 수 있다는 거지?”

강철은 한소영을 바라보았다.

“난 그럼 사적인 원한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건가?”

그 말에 강철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한 차례 웃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강철은 그대로 집을 떠났고, 홀로 남은 한소영은 가만히 식은 커피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네 DNA를 품고 싶다고 말하면, 선을 넘는 게 되려나?”

4.

거목개발계획 이사회는 기본적으로 3대2의 구조였다.

엄근식은 거기서 자신의 세력이 3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실상 3은 강철 쪽 세력이었다.

물론 그게 티가 날 일은 없었다.

거목개발계획 자체가 이사회를 소집해서 뭘 할 만큼 규모가 큰 것도 아니었고, 강철의 예상대로 실제 이사회가 소집되지도 않은 채, 몇몇 중요한 안건이 통과됐기 때문이었다.

대신 회의록상 이사회가 열렸다고 기록된 시점에, 실제 이사들이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붙여둔 감시인을 통해 꾸준히 기록할 뿐이었다.

10월 24일 일요일 오후 5시.

홀로 스포츠카를 타고 공도를 달리다가, 한소영은 서해안이 내려다보이는 길에 잠시 멈춰선 채 강철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도 감시 대상인 거야?”

[한소영 씨만 빠지면 의심스럽잖아.]

“누가 날 감시하고 있어?”

[똑똑-!]

한소영은 화들짝 놀랐다.

느닷없이 전화가 끊기더니, 스포츠카 차창을 누군가 노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강철이란 걸 확인하고는, 한소영은 이내 안심하며 차창을 내렸다.

“깜짝 놀랐잖아!”

“그렇게 새가슴이어서 어디 큰일 하겠어?”

“네가 날 감시하는 거야?”

“명색이 재벌집 사모님인데 떨거지들한테 맡길 순 없잖아.”

강철은 그러면서 조수석에 올라탔다.

“엄 회장은 뭐라고 하지?”

강철의 물음에 한소영은 서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외로 침착하시더라고.”

“하긴, 어느 정도 윤씨 일가의 개입을 생각은 하고 있었겠지.”

“뭐, 걔들 어머니야 그런 게 없는데 걔들은 그게 아니니까.”

“그쪽을 더 신임하는 것 같나?”

“그건 모르지. 뭐, 아무리 그래도 중요한 정보를 가져다줬으니 조금은 더 신뢰하지 않을까? 이전보단?”

“그래야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그런 미끼까지 던진 거니까.”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었지만 한소영은 그걸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걸어서 왔을 리는 없고?”

강철은 백미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뒤에 SUV 안 보여?”

“보이네. 아, 맞다. 저거 네 차였지?”

“렌트한 차지.”

“뭐야, 그럼 대놓고 따라오고 있었단 거잖아? 왜 몰랐지?”

“생각이 많으니까, 미처 파악을 못 했겠지.”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미처 강철에게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회장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 내가 사진을 전달하고, 그것과 관련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말이야.”

“무슨 이야기?”

“…… 내가…… 딸이라도 낳아 준다면, 엄씨 일가의 핏줄을 하나라도 이어나가게 해 준다면…… 모든 걸 다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이야.”

“명확하게 그렇게 말했나?”

“뭐, 대놓고 이렇게만 말 안 했다뿐이지, 사실상 이렇게 말씀하신 거나 다름없었어.”

“그럼 간단하네. 엄태욱이랑 인공수정하면 되잖아.”

“그 인간이 동의를 해야지. 뭐, 인공수정이 내가 하겠다고 짜잔! 하면서 되는 건 아니잖아?”

“내가 설득해줄 수도 있어.”

한소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도 내 DNA랑 그 인간 DNA가 섞인 애를 낳고 싶진 않아. 끔찍해.”

강철은 가만히 한소영을 바라보았다.

한소영도 강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살살 깨물며 망설였다.

‘지를까?’

그녀는 강철에게 말하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새로 계약서라도 써서 하고 싶었다.

‘엄태욱 보단 차라리 네 DNA를 받고 싶어. 적어도 네 DNA를 받은 아이라면, 그 아이라면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나 그녀는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단 그 문제는 넘어가야지.”

그저 그렇게만 말할 뿐이었다.

‘분위기가 이런 말을 할 분위기는 아니야.’

그녀는 가만히 시선을 돌려 다시 서해안을 바라봤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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