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86화 (86/175)

086 3대2 (1)

1.

10월 17일 일요일 정오.

“우리 계약에 따르면 적어도 한 달에 2번에서 많게는 6번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종로구 평창동 엄태욱의 자택.

집주인 한소영은,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들과 집사들에게 전원 유급휴가를 주고서, 직접 요리를 해 손님에게 대접하며 그렇게 가벼운 핀잔을 날렸다.

“전화로 자주 회의를 했으니 된 거 아닌가?”

손님 강철은 그녀가 만든 소시지를 포크로 찍어 먹고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했다.

“전화로 하는 거랑 얼굴 마주 보고 하는 건 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비대면에도 익숙해져야지. 앞으로 거목의 회장이 되실 분인데 말이야.”

“회장이 되기 전이나 후나 너하곤 대면으로 회의하고 싶어. 표정을 봐야 무슨 꿍꿍이가 있나, 없나 구분이 되니까.”

“내 존재가 엄근식에게 노출됐어. 자주 만나는 건 위험해.”

“위험하다기엔, 여기서 몇 분만 걸어가면 회장님 댁인데? 네가 털었던?”

“우리가 털었던 곳이지.”

강철은 씩 웃었다.

“난 그냥 어디에 뭐가 있다, 카메라에 담아만 줬을 뿐이야.”

“그 말을 짧게 줄이면 ‘공범’이란 단어가 되지.”

한소영은 한 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뭐, 등잔 밑이 어둡단 말도 있잖아? 설마, 자기가 총애하는 며느리의 집에 자기를 엿 먹인 외간남자가 일요일 대낮부터 찾아와 며느리가 직접 만들어준 요리를 먹을 거라고 생각이나 하겠나?”

“말이 좀 이상하네.”

“이상한 뜻으로 해석 안 해도, 이미 이상한 장면이야.”

한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형만이랑 김명길. 그 두 사람, 다 네 사람이야?”

“믿을 만한 사람들이야.”

“사람을 믿어?”

“공포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는 건 믿지.”

한소영은 알만 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은 개발계획의 이사회가 3대2라고 생각하고 계셔.”

“틀린 생각은 아니지.”

“내가 대놓고 네 편을 들어주긴 힘들어.”

“대놓고 내 편을 들어줄 것도 없어.”

“…… 그게 무슨 소리야?”

“어차피 재벌들, 이사회 제대로 여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입을 다물었다.

강철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삼우그룹부터 30대 재벌 말석에 있는 진양그룹까지, 진짜 이사회를 열어서 의결하는 일은 거의 없잖아? 안 그래?”

“…… 잘 모르겠는데?”

“선수끼리 왜 이래? 일신도 마찬가지로 그렇잖아. 진짜 중요한 결정은 회장님 식탁이나 서재에서 이루어지고, 이사회 회의록은 구색맞춤용으로 대충 사후에 작성하는 거잖아.”

이전 생에 책과 신문을 통해 봤던, 소위 재벌 기업의 ‘가라 이사회’.

강철이 그 이야기를, 구태여 재벌 일족인 한소영 앞에서 꺼낸 건, 목적이 있었다.

“아마 조만간 개발계획에서 그런 식으로 가짜 이사회 회의록이 만들어질 거야. 김명길이랑 김형만 이사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 그걸 뭐, 딴지라도 걸라는 거야? 진짜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고?”

강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쌓아둬야지.”

“쌓아둔다고?”

“실제 이사회를 열지 않고서, 열었다고 허위로 회의록을 작성하면, 그 이사회의 결의안은 모두 뭐가 되지?”

“무효가 되겠지? 들키면?”

“그거야.”

“…… 한 방을 노리려는 거야?”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내가 할 일이고, 한소영 이사는 그 한 방을 위해 해줘야 할 일이 있어.”

강철은 음료를 한 모금 마신 후, 한소영에게 임무를 줬다.

“거목개발계획이 거목그룹 순환출자 구조에서 나름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 정도는, 한소영 씨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그렇지. 언론에도 보도가 됐던 내용이니까.”

“하지만 구체적인 출자 과정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 왜냐하면, 거목그룹은 상장사 수가 재벌기업 중에서도 특이할 정도로 적으니까 말이야.”

“흐음…… 출자 구조를 알아봐 달라는 거지?”

“그렇지. 그걸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한소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나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그러면서 한소영은 짖굿은 미소를 지으며 강철에게 물었다.

“근데 말이야. 내가…… 중간에 입 싹 닦고 너하고 있었던 모든 일을 무효로 만드는 행동을 한다면, 그러니까, 네 뒤통수를 치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따로 대비라도 돼 있어?”

한소영과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관심법을 발동했던 터라, 그녀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 장난임을 강철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난으로 모든 그릇된 일들이 시작되지.’

그렇기에 강철은 초장에 이런 싹을 자를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말이야. 사람을 죽일 때에도 기준이 있어.”

가볍게 장난을 쳤는데, 돌아오는 게 상당히 무거운 내용이었다.

한소영의 표정에서 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한테 사적인 원한을 살 경우,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게 내게 더 이득이 될 경우 그리고 선을 넘을 경우. 이 세 경우 중 둘 이상을 충족하면, 그때 난 사람을 망설이지 않고 죽여.”

“…… 진짜 사람을 죽여본 것처럼 말한다?”

한소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하려 했다.

그러나 강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하고 지금 이 작업을 함께하는 사람이 날 배신한다면, 그 사람은 내게서 사적인 원한을 살 거고, 죽는 게 내게 더 도움이 될 것이며, 그 행위 자체가 선을 넘는 것이기에 당연히 내 손에 죽게 되겠지.”

한소영은 입을 다물었다.

강철은 그런 한소영을 바라보고 씩 웃었다.

“난 한소영 씨가 좋아. 그래서, 한소영 씨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난 그렇게 될 거라 믿고 있고 말이야.”

2.

“뭐 하나만 물어보자.”

10월 18일 월요일 오전 10시.

도곡동 아파트 펜트하우스에서, 자신에게 ‘위스키’ 100알을 전달하고 돈 가방을 받아 떠나려는 강철을 향해, 엄태욱은 말했다.

“조민석이랑 너랑 무슨 관계야? 정확하게?”

그 물음에 강철은 나가려다말고 그를 바라보았다.

“거목개발계획이라는 조그만 자회사가 있어. 뭐, 사실상 지배구조를 위해 만든 회사라 크게 뭐 하는 것도 없고 매출액도 별 볼 일 없는 곳이긴 한데, 아버지는 조민석이 거기에다가 장난질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거든?”

엄태욱은 ‘위스키’ 한 알을 위스키에 담았다.

기포가 일어나고, ‘위스키’가 위스키 속에서 녹는 걸 가만히 바라보며 그는 말을 이었다.

“근데…… 저번에 비서실 애들이랑 깡패들이 무슨 일을 하다가 단체로 병신이 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거기 일 거들었던 놈 하나가 말하기를, 되게 싸움을 잘하는 놈 한 놈한테 수십 명이 전부 쳐 발렸다고 했거든?”

엄태욱은 강철을 바라봤다.

“근데 그놈 인상착의가…… 너랑 너무 비슷해서 말이야.”

강철은 씩 웃었다.

“뭘 알고 싶은 거지?”

“내가 물었잖아. 조민석이랑 너랑 구체적으로 무슨 관계냐고.”

“너와 나의 관계랑 비슷하지.”

“…… 조민석이한테 약만 파는 건 아니잖아.”

“본질적으론 다를 게 없지. 난 너에게 약을 팔고, 넌 나에게 돈을 주고. 난 조민석에게 노동력을 팔고, 조민석은 나에게 돈을 주고. 뭐 똑같잖아? 단지 상품만 다를 뿐.”

엄태욱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분노를 삭였다.

“…… 그럼 질문을 좀 바꿔 볼까? 조민석이랑 계약한 노동 중에 우리 거목을 뒤엎는단 것도 있냐?”

그 물음에 강철은 고개를 저었다.

“조민석하고 나의 계약은 대산그룹에 국한돼 있어. 그 이상은 아니야.”

“…… 그럼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조민석하고만 관계가 돼 있다는 거야? 나하고 아버지 사이를 엿먹인 것도, 이상한 외국계 페이퍼컴퍼니 동원해서 거목그룹 계열사 하나 먹으려는 것도, 전부 다?”

“정 궁금하면, 조민석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

강철은 그 말을 남기고 갈 길을 갔다.

강철이 현관문 너머로 사라지자 엄태욱은 이를 갈았다.

“…… 개새끼…….”

엄태욱은 그대로 ‘위스키’가 든 위스키를 쭉 들이켰다.

곧 그는 환상의 세계로 떠났고, 의식이 사라진 육신은 소파에 널브러졌다.

그리고 엄태욱이 널브러진 걸 확인한 그의 비서 최용대는, 조심스럽게 테라스로 나가 폰을 꺼냈다.

“조금 전에 다녀갔습니다. 자기 말로는 조민석이 독단이라는데……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네. 일단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겠습니다. 네.”

짧은 통화를 끝내고, 최용대는 폰을 넣고는 뒤로 돌아섰다.

“헉!”

그리고 그는 화들짝 놀라 자빠지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어, 어, 어……”

언제 들어왔느냐? 혹은 어떻게 들어왔느냐?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나와야 했다.

그러나 그 두 질문이 동시에 튀어나오려고 하는 바람에 충돌을 일으켰고, 결국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부터지?”

그런 최용대를 향해, 돈이 든 여행용 캐리어를 든 강철이 물었다.

“그, 그게 무슨?”

“언제부터 엄태욱이 동향을 다른 사람한테 보고하고 있었냐고.”

“네, 네?”

[빠악-!]

강철은 그대로 최용대의 가슴팍을 발로 찼다.

“커억-!”

엄태욱에게 맞으면서 많이 강해졌다곤 하지만, 강철의 폭력은 그 맷집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최용대는 뒤로 한 바퀴 구른 후 기침을 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강철은 가방을 테라스 벽면에 두고는 최용대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의 발목을 잡고 난간으로 질질 끌고 갔다.

“쿨럭-! 쿨럭-! 자, 잠깐!”

강철은 최용대의 애원을 무시하고, 그대로 그를 난간 밖으로 끄집어냈다.

“으아아아아악-! 잠깐만! 잠깐만!”

오로지 자신의 발목을 잡은 강철의 손을 제외하곤, 그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최용대는 족히 수십m는 되는 지상을 거꾸로 뒤집힌 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다, 다! 전부 다 말해드릴게요! 사, 살려주세요!”

엄태욱에게 맞을 때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그 공포가 최용대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강철은 그런 최용대를 여전히 난간 밖에 둔 채, 그에게 물었다.

“누구야? 내통하는 놈이?”

“유, 윤준태입니다!”

예상했던 이름 중 하나가 나왔기에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윤준태가 알고 있는 건?”

“어, 엄 전무님이 약을 하신다는 거랑 성적 취향이 괴상하다는 거랑 그리고…… 그리고 서, 선생님하고 거래한다는 겁니다!”

“선생은 개뿔.”

강철은 그대로 최용대를 끌어 올려 테라스 위에다 패대기쳤다.

“으으어어어어!”

최용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서질 못했다.

그는 바닥에 엎어진 채 와들와들 떨었다.

그런 최용대를 한심하단 표정으로 바라보며 강철은 말했다.

“윤준태 말고, 또 다른 누구랑 내통하고 있는 건?”

“어, 없습니다.”

“진짜로 없어?”

“그, 그, 그…… 자, 장우진 실장님께 어, 엄 전무님 근황을 일부 전달하긴 했지만…… 그, 그건 제가 비서실 소속이라 그런 것뿐입니다. 서, 선생님과 관련된 이야기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관심법을 통해,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강철은 확인했다.

강철은 최용대에게 다가갔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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