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요원 K (4)
강지현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장갑을 낀 강철의 손 아귀힘은 엄청났고, 강지현은 그 손이 자신의 목을 찢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곧 그녀의 죽음을 의미했다.
‘죽을 순 없어.’
강지현은 온 힘을 다해 양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그대로 다리를 꼬아 강철의 팔을 휘감았다.
‘됐어!’
성공적으로 암바가 걸린 것을 확인한 그녀는 그대로 강철의 팔을 꺾으려고 했다.
“수작질 부리지 마!”
[콰앙-!]
그러나 강철의 팔은 꺾이지 않았다.
도리어 강지현은 그의 팔에 매달린 꼴이 됐고, 강철은 그대로 그녀를 벽에 충돌시켜버렸다.
“쿨럭-!”
피비린내가 폐부에서 올라오는 걸 느끼며, 강지현은 그대로 강철의 팔을 감은 다리를 풀어버렸다.
강철은 그대로 강지현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쿨럭-! 쿨럭-!”
결국, 강지현은 피를 토하고 말았다.
“너 누구야?”
강철은 강지현의 가슴팍을 발로 밟고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렸다.
“누군데 계속 사모님을 감시하고 있는 거야?”
강지현은 당황했다.
‘사, 사모님? 설마 유아영?’
그녀는 기침하며 떨리는 눈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무…… 쿨럭-! 무슨 말이에요…… 쿨럭-!”
“우리 대산이 호구로 보이나? 뻔히 감시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우리가 그냥 넘어갈 것 같았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강지현은 그 와중에도 요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우리 대산? 뭐야, 그러면 대산 조직원이야? 아니야, 속단하긴 일러.’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을 밟고 있는 강철의 다리를 손으로 힘없이 툭툭 건들며 고통을 호소했다.
“누가 보낸 놈이야! 빨리 말해!”
강철은 도리어 발에 힘을 더 실었다.
“커윽-!”
그녀는 생각했다.
누구 이름을 불어야 할까?
절대 회사 이름을 댈 순 없었다.
그렇다고 경찰을 사칭할 수도 없었다.
‘적당한…… 적당한 조직…… 적당한 조직의 이름을 대야 해…….’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강철을 바라봤다.
‘안 떠올라…… 아무것도……’
그러나 공포라는 감정이 그녀의 판단력을 망쳤다.
그녀는 아무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국정원 요원이 임무 중에 죽으면 무명용사의 별이 되는데…… 난 그냥 개죽음이겠지?’
그녀는 죽기로 했다.
여기서 입을 연들, 제대로 된 거짓이 나오기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국정원 요원 신분을 밝히기엔 그녀의 신념이 허락지 않았다.
비록 회의감을 품곤 있었다지만, 어쨌건 그녀는 자신의 요원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그냥 평범한 9급 공무원으로 살래…….’
그녀는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그리고 그녀가 모든 삶을 포기한 그 순간,
“당신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별안간, 거구의 남자 하나가 골목으로 담배를 피우며 들어오다가 강지현을 짓밟고 있는 강철을 향해 삿대질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썅!”
강철은 남자를 보고는 냅다 도망쳤다.
“쿨럭-! 쿨럭-! 쿨럭-!”
“야! 거기 안 서!”
남자는 강지현에게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세요? 아니, 뭐 저런 호로 새끼가 다 있데?”
“쿨럭-! 고…… 고맙습니다…… 쿨럭-!”
“피 토한 거 봐. 무슨 깡패도 아니고 사람을, 그것도 여자를 이렇게 때려? 안 되겠다. 119를 불러야……”
남자가 119를 부르려 하자, 강지현은 만류했다.
“괘,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괘, 괜찮으니까…… 아무것도 안 불러주셔도 됩니다.”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강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에게 부축받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습니다.”
“아니…… 고마운 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경찰도 안 불러도 돼요?”
“그…… 헤어진 남자친구인데…… 아무튼 좀 그렇습니다.”
강지현은 대충 둘러댔다.
“하여튼 새끼가 헤어졌으면 헤어진 거지 뭔 찾아와서 사람을 죽이려고 하고 있냐?”
남자는 구시렁거리면서도, 그 해명을 믿었는지, 강지현에게 조심히 가라고만 말하며 골목길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강지현은 사라지면서 계속 자기를 뒤돌아보는 남자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후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만일에 대비해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스위치 블레이드를 꺼내 손에 꽉 쥐었다.
다행히 강철은 두 번 다시 그녀의 앞에 모습을 나타내질 않았다.
그렇게 힘겹게 원룸에 들어온 강지현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쓰러지며 잠들었다.
보고를 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기엔 이미 그녀는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같은 시각.
원룸촌 외곽, 2차선 도로 인근.
“연기 좋으시네.”
강철은 소리를 지르며 나타났던 남자를 칭찬하며 그에게 봉투를 건네줬다.
“헤헤, 뭐 용태 형님 따라 다니다 보니 이빨만 늘어서 말입니다. 헤헤헤.”
사내의 정체는 서용태가 부리는 동네 양아치 중 하나였다.
“이야. 그런데 참 저번에도 느낀 건데 사람 패는 데 망설임이 없으시네요. 저 같으면 그런 여자애는 차마 패지도 못할 것 같은데.”
살짝 까부는 그에게 강철은 웃으며 말했다.
“그쪽도 오랜만에 망설임 없이 맞아보고 싶나? 저번처럼?”
“아, 아닙니다. 제가 괜한 말을…… 헤헤. 그럼 가보겠습니다.”
사내는 그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자, 연막은 쳐 놨고.’
강철은 가만히 원룸촌을 바라봤다.
‘연막이 걷히고 나면, 누가 배후에 있는지가 나오겠지. 엄태욱인지, 아니면 순수한 국정원 자체적인 수사인지 말이야.’
7.
“씨발 새끼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씨발 새끼들…… 좆같은 새끼들…….”
9월 3일 금요일 오전 11시.
도곡동 아파트 펜트하우스.
자신의 방에서 엄태욱은 베개에 얼굴을 처박은 채 눈물을 흘리며 욕지기와 원망을 내뱉고 있었다.
문을 살짝 열어 놓은 상태였기에, 그 소리는 거실에까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거실에서 그 모든 걸 듣고 있던 최용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어떻게 구해야 하나?’
엄태욱은 강철에게 10억을 내놓으란 말을 들은 순간부터, 최용대에게 선포했다.
약을 끊겠다고.
대신 저 약장수 놈을 족치겠다고.
그래서 엄태욱은 사비를 털어서 윤경태에게 강철을 감시하라 의뢰한 것이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도대체 무슨 약이길래,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 거지?’
‘위스키’의 금단증상은 우울증과 만성피로 그리고 잦은 눈물이었다.
벌써 2주 가까이, 엄태욱은 약을 먹지 못했다.
그리고 1주일째, 엄태욱은 회사에도 나가지 않고, 저렇게 방에 틀어박혀서 매일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지난 1주일간, 엄태욱은 최용대를 때리긴커녕, 그에게 욕조차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에게 갑질을 하기는커녕, 새벽 6시에 출근하던 걸 9시로 늦춰주었고, 퇴근시간을 아예 6시로 못 박아 주기까지 했다.
‘혼자있고 싶다면서…… 사람이 너무 이상해졌어.’
그러나 최용대는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하고 힘들었다.
“용대야.”
엄태욱의 부름에 최용대는 후다닥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네, 전무님.”
“나 도저히 안 되겠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디 가서 히로뽕이라도 구해봐. 나 이대로 가다가 진짜 자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히로뽕을 구하든가 아니면 모르핀이라도 구하든가…… 지금 나 너무 힘들다.”
구태여 엄태욱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몰골은 이미 처참한 상태였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안 그래도 마른 몸, 볼은 더 움푹 파였고 눈가에는 진한 다크 서클이 서려 있어 마치 판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갈 때 문 좀 닫아 줘. 너한테 추한 모습 더 보이기도 싫다.”
“네, 네.”
최용대는 곧장 안방 문을 닫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곤 일전에 ‘위스키’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 두었던 약장수들의 연락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막, 그가 히로뽕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는 경기도 쪽 약장수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려고 할 때였다.
“어이, 비서 양반.”
“으허억-!”
거실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를 태우는, 평소와는 달리 안경을 끼고 있는, 강철의 부름에 최용대는 화들짝 놀라며 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 다, 당신, 어, 어, 어떻게!”
당황하는 최용대를 향해 강철은 침착하라며 손짓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젠 적응할 때 안 되셨나?”
최용대는 조심스럽게 폰을 집어 들었다.
“어때? 당신 모시는 양반, 저렇게 되니까 편하지? 욕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않으니까.”
“……”
“혹시 일부러 그런 건가? 약 부작용이 저렇다는 걸 어떻게 알아내고서, 일부러 나한테 연락 안 하고 그런 건가?”
최용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연락을 안 하셨을까?”
“그, 그게…… 돈이 없어서…….”
“돈이 없으시다?”
강철은 피식 웃었다.
“재벌이 돈이 없다는 말이, 참 설득력이 있다. 그치?”
“그, 그게…… 아무튼 당장 현금은 없어서 연락을 못 한 거요.”
“그래, 뭐 그렇다 치고.”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조그만 지퍼백 하나를 꺼냈다.
거기엔 ‘위스키’ 1정이 담겨 있었다.
“이건 이제 필요가 없다고 보면 되려나?”
“……”
최용대는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이럴 때일수록 단호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씨발…… 고작 약 하나 가지고 재벌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최용대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금단증상, 저거 조금만 더 있으면 없어져. 조금만 더 기다리면 우리 전무님, 당신의 그 이상한 약에서……”
[빠악-!]
“커헉-!”
갑자기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최용대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이고 말았다.
“이, 이봐…… 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내가 잘못했어. 도, 돈은 당장 못 줘도 이, 이 아파트…… 이 아파트라도 담보 잡아서 마련해줄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약 좀 줘…… 제발…….”
최용대의 뒤통수를 때린 건 엄태욱이었다.
엄태욱은 강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그에게 애원했다.
“이 아파트…… 엄 전무 명의인가?”
“네, 네가 봤던 집들, 그거 다 순수하게 내 명의야. 씨발…… 담보 잡으면 약 200알도 더 살 수 있는 돈이 나와……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엄태욱을 발로 툭툭 차서 떨어뜨려 놓은 후, 지퍼백에 든 ‘위스키’ 1정을 지퍼백 채로 엄태욱의 앞에 던졌다.
“단가를 올리기로 했어. 1알에 1,500. 100알을 사려면 15억.”
“오, 오케이. 조, 좋아. 어, 얼마든지…… 얼마든지…….”
한층 더 비굴해진 엄태욱을 바라보며, 강철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곤 인상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며 짐짓 목소리를 깔고서 물었다.
“근데…… 거기에 추가 요금을 더 올려야 할 것 같아.”
“추, 추가 요금? 무, 무슨?”
“왜 국정원에다가 날 신고한 거야?”
강철의 입에서 국정원이란 단어가 나오자, 엄태욱은 물론 최용대까지도 안색이 창백해졌다.
‘맞네. 이 새끼가 한 거.’
그것을 보고서,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