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요원 K (2)
3.
8월 31일 화요일 오전 10시.
강동구 길동 국정원 안가.
“딜러는?”
윤경태의 물음에 국정원 국내방첩국 수도권범죄관리단 5팀 2파트장 설강태가 라면을 흡입하고서, 아직 목구멍으로 넘기지도 않은 채 우물거리며 말했다.
“평범해.”
라면이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신문을 펼치고 있던 윤경태는 신문 너머로 설강태를 바라봤다.
“그게 다야?”
그 물음에 설강태는 라면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윤경태를 보며 말했다.
“어.”
“하…… 새끼.”
윤경태는 신문을 접었다.
그리곤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설강태에게 건네줬다.
설강태는 그것을 받아 내용물을 살피더니, 씩 웃으며 봉투를 품에다가 집어넣었다.
설강태는 라면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고는 윤경태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해줬다.
“딜러는 개털이야. 개나 소나 대포폰 뚫어 달라고 하면 뚫어주는 놈이지.”
“뚫은 놈은?”
“김명길이라고 이번에 대산에 이사로 들어간 놈이야.”
“대산 이사?”
“뭐, 원래는 길동이파라고 길동에 조그만 조직에서 허드렛일 하던 놈인데, 갑자기 그렇게 됐더라고.”
“핫바리가 갑자기 이사가 된다?”
윤경태는 가만히 설강태를 바라봤다.
“말 그대로 갑자기 이사가 된 거라서, 아직 우리 쪽에서도 제대로 파악해둔 건 없어. 다만, 원래 그놈이 속해 있던 길동이파가 조민석이 라인이었다는 거를 생각해보면, 뭐 대충 그림은 나오는 거고.”
“흐음…… 조민석이라…….”
“조민석은 뭐 우리가 아니더라도 그쪽에서도 잘 알고 있잖아? 왜 그 예전에 제주도에서 야쿠자하고 붙어먹었을 때.”
윤경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하고 너하고 조빠지게 감청하고 감시하고 별 지랄을 했는데, 짭새 새끼들 삽질에 동부지검이 자기네 관할이라고 설치는 바람에 용두사미 됐었지.”
“그래, 그때 조민석이 잡아넣으려다가 그 새끼 따까리 하나만 들어갔던 거 아니야. 이름이 뭐였더라? 이대식이었나? 이대석이었나?”
“이대식일 거야. 그 새끼는 요즘 뭐 하고 있지? 조민석이가 뭐 안 챙겨줬나?”
“잠시만 있어 봐.”
설강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갔다.
그리곤 무언갈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윤경태의 앞으로 돌아왔다.
“이상하네?”
“뭐가?”
“그 새끼 백수 됐는데?”
“뭐?”
윤경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조민석이 회장이 됐고, 그 새끼 족보에 제일 아래에 있던 놈이 이사가 됐는데, 그 새끼 대신해서 빵까지 들어갔던 놈은 백수가 돼?’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원래 그 새끼 빵 갔다 오고 나서 대산식품 사장 됐었거든? 근데 이번에 잘렸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존나 이상하지.”
윤경태는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이거 국내파트 담당이다. 너네 쪽 이야기가 아니야.”
설강태는 살짝 경계하며 윤경태에게 말했다.
윤경태는 씩 웃으며 봉투 하나를 더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설강태는 봉투를 받고서, 내용물을 확인한 후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서로 협력하는 거지. 국가안보에 국내파트, 해외파트가 어디 있냐?”
윤경태는 곧장 안가에서 나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곤 강철에게 붙여둔 요원에게 연락했다.
[K입니다.]
“그래, 지금 그 새끼 어디 있지?”
[집에 있습니다.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잘 감시하고 있어. 그리고 감시하면서 겸사겸사 다른 사람 위치 좀 파악해줬으면 좋겠어. 프로필 문자로 보내줄게.”
[알겠습니다.]
윤경태는 곧장 K에게 문자로 이대식이 프로필을 보내주었다.
그리곤 폰을 내려놓고 씩 웃으며 생각했다.
‘엄태욱이 이 미친 변태 새끼가 재미있는 걸 물어다 주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태욱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렇게 윤경태는 회사로 복귀했다.
4.
역추적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강철도, 강철을 감시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감시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강철은 찾아야만 했다.
누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도대체 여기는 왜 온 거죠?”
8월 31일 화요일 오전 11시.
강철은 아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차도 사람도 없는 허허벌판 한가운데에서 잠시 차를 세운 채 후드 위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유아영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그의 곁에서 그를 바라보며 묻고 있었다.
“갑자기 나오라길래 무슨 일이 있는가 했는데, 그냥 같이 드라이브 갈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강철은 그녀에게 조용하라 손짓했다.
그리곤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관심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곧 내재해 있던 초능력 에너지가 휘발되며 관심법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고 수준까지 발동됐다.
극한으로 발동된 관심법은, 순식간에 사방 1km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의 감정을 강철에게 전달해주었다.
황당, 불안 그리고 짜증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유아영의 감정이 가장 먼저 선명하게 잡혔다.
그리고, 아주 미약하게, 약간의 불안과 초조 그리고 지루함과 기대를 품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의 감정이 잡혔다.
“후우…….”
강철은 관심법을 풀었다.
거의 바닥난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강철은 살짝 고개를 들어 후방을 바라봤다.
저 멀리, 강철의 SUV와 마찬가지로 길가에 정차해 있는 회색 세단이 눈에 들어왔다.
‘빙고.’
강철은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차에 다시 올라탔다.
“어디 가려는 거예요?”
“해장국 먹으러.”
“네?”
유아영의 황당함을 무시하고, 강철은 악셀을 밟았다.
그의 차가 출발하자, 곧 회색 세단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굉장히 무식한 방법이었다.
서울과 아산을 오가며 몇 차례 보았던, 유동량이 드문 한산한 공도까지 감시자를 유인해 관심법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서 확인해보는 것.
자칫 주변에 다른 누군가가 더 들어와 있었다거나, 감시자가 원격으로 휴대폰만 추적하는 중이었다면 무의미한 행동이 될 수 있었다.
다행히, 감시자는 실시간으로 강철의 뒤를 밟고 있었고, 때마침 주변에 사람이나 차가 한 대도 없었기에, 강철의 작전은 성공했다.
‘일단 스타트는 좋아.’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기 시작하자 강철은 씩 웃었다.
그런 강철의 모습을 보고서 유아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곤 창밖을 바라보며 구시렁거렸다.
“해장국은 서울에도 많은데 왜 여기까지 내려와서……”
그녀의 구시렁거림을 무시하고, 강철은 자신을 쫓는 회색 세단을 확인했다.
500~800m에 해당하는 거리를 두고서, 세단은 꾸준한 속도로 자신을 쫓고 있었다.
‘관료다운 행동이구만.’
강철은 한 차례 코웃음 치고는, 그대로 악셀을 밟아 속도를 쭉 올렸다.
“어어어? 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거예요! 속도 좀 줄여요!”
순식간에 속도가 120km/h를 넘기자 유아영이 화들짝 놀라며 속도를 줄이라 부탁했다.
그러나 강철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시원하게 뻗은 공도에서, 차도 없는데 한번 달려 봐야지. 안 그래?”
강철은 그렇게 말하며 사이드미러로 회색 세단을 확인했다.
회색 세단도 강철을 따라 속도를 높인 상태였다.
“속도 좀 낮추라니까요!”
시속이 150을 넘기자 유아영은 사색이 됐다.
그러나 강철은 속도를 낮추지 않았다.
‘저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터널이 나왔을 때, 강철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강철이 속도를 줄이자 그제야 유아영의 안색에 혈색이 돌아왔다.
이내 차 속도는 60km/h까지 줄어들었고, 거기서 강철은 더 속도를 줄이더니,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안전지대로 차를 끌고 가서 거기다 차를 댔다.
“왜 여기다 세우는 거예요?”
유아영의 물음에 강철은 그녀에게 차에 남아 있으라 손짓한 후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후드를 열어 고정하곤 기다렸다.
회색 세단이 터널에서 나오길.
‘이 터널은 굽어있어서, 40m 정도까지 거리를 좁혀야지 여기가 보여.’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회색 세단이 터널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강철은 그 회색 세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회색 세단은 강철의 곁을 슝 하고 지나갔을 뿐, 멈추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조금 전까진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던 차종과 번호를 파악한 이상, 강철은 원하던 바를 모두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강철은, 회색 세단을 향해 짐짓 화가 난 척, 주먹 감자를 날리곤 차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얼마 전 서용태를 통해 개통한 새로운 대포폰을 꺼내 서용태에게 전화했다.
[네, 고문님.]
서용태가 전화를 받자 강철은 회색 세단의 차종과 번호를 읊어주고 명령했다.
“당장 확인해 봐. 대포차인지, 렌터카인지 아니면 개인 차량인지.”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강철은 열어둔 후드를 닫은 후 차에 다시 탑승했다.
“견인차 불렀어요?”
유아영의 물음을 무시하고, 강철은 다시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뭐야? 잘 가네? 근데 왜 그랬던 거예요?”
계속되는 유아영의 물음에 강철은 그녀를 힐끔 바라본 후 짧게 대답했다.
“뭐 좀 확인하려고.”
그대로 강철은 차를 몰고 아산시내로 들어갔다.
얼마 후, 강철은 회색 세단이 다시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국정원이 감시를 저렇게 티 나게 하나?’
강철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이내 그는 이전 생에 봤던 기사 하나를 떠올리곤 헛웃음을 터뜨렸다.
‘맞네. 그러고 보니 국정원 요원 하나가 시민단체 간부 미행하다가 공중전화부스에 갇혔던 적이 있었지?’
현재 시점으로부터 몇 년 후에 일어날, 아주 황당한 사건을 떠올리며 강철은 납득했다.
‘허술하구만.’
그 허술함이 자신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강철은 그대로 유아영과 함께, 곽기명에게 소개받은 해장국 맛집 주차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가게에 들어가 안쪽 벽면 구석에 자리를 잡고서 한참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지이이잉-!]
서용태로부터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와, 이 집 국물 진짜 죽인다. 소주 당기는데?”
자신의 눈치를 보다가 소주 한 병을 시키는 유아영을 무시하고서, 강철은 서용태로부터 온 문자를 확인했다.
<개인소유입니다. 차주 강지현, 1985년 5월 23일생. 직업은 미상입니다.>
강철은 씩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주소하고 직업까지 알아봐. 국정원 인사기록부 같은 걸 털어보면 될 거야.>
답장을 보내고서 1분 정도가 지났을 때, 서용태로부터 다시 답장이 왔다.
<국정원 인사기록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불가능은 아니란 말이리라.
<얼마나?>
강철의 되물음에 곧 서용태는 답을 보냈다.
<5천이면 2주, 1억이면 1주면 됩니다.>
강철은 씩 웃으며 답장했다.
<2억 줄 테니까 사흘 안에 뽑아 놔.>
곧 답장이 왔다.
<충성!>
강철은 씩 웃으며 폰을 집어넣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