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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74화 (74/175)

074 요원 K (1)

1.

한소영은 많은 걸 찍어줬다.

그녀는 엄근식의 서재에 금고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달마도 그림으로 위장돼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또 엄근식의 보물창고-엄근식이 부르는 이름으론 ‘작은 박물관’에는 옥으로 된 조각상과 몇 개의 황금 불상 및 중동에서 수집해온 우상이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일단 강철은 그 정보를 킵해두기로 했다.

그것들을 모두 손에 넣는 것은 최병천이 해외에 따로 계좌를 설립해둘 9월 중순 이후가 될 터였다.

그때까진, 일단 강철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물론, 휴식이라는 게 진짜 쉬는 걸 의미하진 않았다.

“크허억…….”

8월 27일 금요일 새벽 5시, 인천항 창고.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자유의 몸이 된, 강대산의 옛 비서이자 현재는 일단 백수의 몸이 된 김형만과 이제는 김형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간 김명길이 바닥에 쓰러진 한 남자를 양쪽에서 잡아 일으켜 세웠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 제가…… 제가 사람을 못 알아보고 함부로 깝쳤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입술과 눈이 부풀어 오르고, 여기저기 피멍이 든 중년 남자는 강철을 바라보며 빌었다.

강철은 남자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곤 말했다.

“어이, 수산업자 양반.”

“네, 네, 네!”

“대산그룹의 이사께서 이렇게 친히 방문했는데, 환영 인사가 아니라 기습 공격을 해온다는 건, 대산에 정면으로 도전하겠다는 뜻 아닌가?”

“죄, 죄송합니다. 저, 저는…… 저는 그저 사정을 모르고…… 전부 김 사장이 시켜서 한 짓입니다.”

“김 사장이 시켰다…….”

그러면서 강철은 시선을 창고 한 귀퉁이에 있는, 지게차 위에 실린 드럼통으로 돌렸다.

“그 김 사장은 지금 드럼통 속에서 시멘트와 함께 굳어가고 있는데…… 이거 대질심문도 불가능하겠구만.”

강철은 김형만을 바라보며 짐짓 나무라듯 말했다.

“어이, TMI. 그러게 힘 조절을 적당히 했어야지. 왜 풀파워로 빠따를 휘둘러서 중요한 증인을 죽게 만들고 하나?”

그것이 진짜 나무라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김형만은 씩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구치소에서 너무 참고 살았다고 그렇게 풀고 하지 마. 또 들어갈 순 없잖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강철은 시선을 다시 중년 남자, 수산업자에게로 돌렸다.

“어이, 수산업자 양반. 김 사장이 시켰다는 건 증명이 불가능해. 그리고 난 증명이 불가능한 건 믿지 않아.”

그 말에 수산업자는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곤 다급하게 빌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하, 한 번만!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제, 제가! 제가! 제가 앞으론 우리 이사님들 잘 모시겠습니다! 제발! 제발…… 으읍-!”

수산업자의 아가리에 김명길이 물 먹인 솜을 집어넣은 면장갑 뭉치를 쑤셔 박았다.

강철은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곤 자리에서 일어나며 수산업자에게 말했다.

“우리 이사들 잘 모실 사람은, 따로 준비가 돼 있어서 말이야. 그건 그쪽을 살려둘 메리트가 아니야.”

그리고 강철은 김명길과 김형만에게 눈짓한 후 창고를 빠져나갔다.

“흐으윽-!”

뒤에서 들리는, 억눌린 비명을 끝으로, 수산업자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됐다.

강철은 가만히 부둣가에 서서 담배를 태우며, 새벽 서해를 바라보았다.

‘이걸로 인천 쪽 조직은 전부 내 통제하에 들어오게 됐어. 완벽하게.’

재벌의 지배에 도전하는 것과는 별개로, 강철에게는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 건달 조직을 안정시키는 일도 중요했다.

‘인천 쪽 조직을 김명길하고 김형만이 꽉 잡게 됐으니,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의 큼직한 조직은 다 잡게 된 셈이지.’

물론 경기도의 군소조직도 있었고, 수도권은 아니지만 수도권과 가까운 춘천 쪽 조직도 있었다.

‘인천하고 충청도 쪽 조직을 장악한 상황에서, 나머지 자투리들은 금방이지.’

그러나 그것들을 먹는 것까지 강철이 일일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김명길이 성장해야 해. 그래야지 3년 후에 조민석을 은퇴시키고 할 때, 박용수가 진짜로 대산을 낼름 먹는 일을 막을 수 있겠지.’

이 나라 상류층과 음지에 사는 건달 사이의 유착은 비단 해방정국과 1공화국 시절에만 있었던, 역사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2009년에 보국그룹 회장이 직접 조폭들을 이끌고 딸을 꼬셨던 제비를 족쳤다가 재판을 받은 일이 있었고, 거목그룹도 조폭 출신인 대산그룹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용산하고 강남 쪽 군소 조직들이 조민석이 밑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어쨌건 그쪽도 원래라면 프리랜서처럼 재벌들의 부름에 응하던 조직이지.’

대산그룹은 강철에게 있어서 그런 존재가 돼야 했다.

유사시에 부릴 수 있는, 폭력적인 일을 서슴지 않고 저지를 그런 존재.

‘그나저나 용팔이가 뭐 새로운 장치 하나를 가져다준다고 했는데…… 왜 연락이 없지?’

강철은 폰을 꺼냈다.

아직 새벽 6시도 되지 않았지만, 서용태라면 지금쯤 깨어있을 거라 생각하고서 강철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약 10초 정도 이어졌고, 예상대로 서용태는 제법 쌩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고문님.]

“고문님이고 뭐고, 그때 준다는 거 왜 아직도 연락이 없지?”

[네?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그게…… 응?]

말을 하다 말고, 서용태가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침묵했다.

“무슨 일이야?”

[아…… 아닙니다. 벌레가 잠시 나와서.]

“벌레?”

[그, 고문님.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고 싶은데, 언제 시간 괜찮으십니까?]

서용태답지 않았다.

강철은 뭔가 있다고 확신했다.

“좀 있다 서울로 넘어갈까 하는데, 아침 식사나 하는 게 어때?”

[아, 네, 좋습니다. 그럼 여기로 오시면, 같이 가서 근처에서 해장국이라도 한 뚝배기 합시다.]

“오케이, 그렇게 하지.”

강철은 전화를 끊었다.

‘뭐지?’

서용태가 그렇게 무게감이 있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행동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뭔가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강철은 거의 다 태운 담배를 바다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500m 정도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무선 헤드셋을 쓴 한 여인이 모두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었다.

여인은 강철이 차에 올라타는 것까지 찍고는, 카메라를 거두었다.

그리곤 재빨리 옥상에서 내려와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녀는 무선 헤드셋을 벗고,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킴과 동시에 어딘가로 전화를 넣었다.

“네, 확인했습니다. 지금 인천에서 출발했습니다. 서울로 간다고 합니다. 목적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뒤쫓아 가겠습니다. 차량 위치, 현재 확인됐습니다.”

2.

오전 7시 25분.

강철은 서용태와 함께 용산전자상가 근처 설렁탕집에 들어갔다.

“이모! 여기 설렁탕 2개랑 수육 하나만 갖다 줘요!”

서용태는 익숙하게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 무언가를 끄적였다.

그리곤 그것을 강철에게 건넨 후, 물컵에다가 물을 따랐다.

<도청 의심>

짧은 메시지에, 강철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서용태를 바라봤다.

서용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다가 다시 글을 끄적였다.

<고문님 폰에 깔아 둔 프로그램과 유사한 거로 고문님 것이 추적당하는 것 같음. 도청 기능까지 있는 걸 보면 우리 쪽 프로그램보다 더 상위 버전인 듯.>

강철은 갑갑함을 느꼈다.

필답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강철은 가볍게 수첩에다가 글을 적었다.

<말로 해>

서용태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중에 아지트에서 폰을 확인한 다음에 합시다.>

강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미리 확인을 하고 왔어야지 그럼.>

<배가 고파서.>

강철은 서용태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윽-!”

서용태는 고개를 숙이며 강철에게 사죄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별말 없이 설렁탕으로 아침을 먹고는, 다시 서용태의 아지트로 들어갔다.

서용태는 들어가자마자 먼저 셔터부터 내려버린 후, 커튼을 쳐 외부의 시선을 차단했다.

그리곤 곧장 강철의 폰과 자신의 폰을 컴퓨터에 연결하더니 분석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제 폰이나 고문님 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자체를 건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고문님한테 깔아드린 프로그램 상위 버전으로 고문님 것을 추적하는 것 같습니다.”

서용태가 입을 열자, 그제야 강철도 입을 열 수 있었다.

“누가?”

“제가 깔아드린 버전이 옛날에 그러니까 한 3년 전쯤에 국정원하고 삼우그룹에서 쓰던 프로그램입니다.”

“국정원이랑 삼우?”

“네.”

“그것들이 날 추적하고 있다고?”

“뭐…… 꼭 그 둘이라고 단정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이 프로그램 자체는 뭐 암암리에 여기저기 뿌려져 있으니 말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업그레이드 버전인 걸 감안하면…….”

결국 용의자는 국정원 아니면 삼우그룹이라는 것이었다.

‘삼우에서 날 추적할 일은 없는데?’

삼우그룹은 대산그룹은 물론 거목그룹과도 크게 접점이 없다.

그들은 노는 물 자체가 다른 초대기업이다.

‘잠시만 국정원?’

그렇다면 답은 국정원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국정원은, 대산하고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거목하고는 관련이 있다.

‘엄태욱이 외사촌 하나가 국정원 직원이라고 했지?’

강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엄태욱이 쪽에서 움직인 건가? 아니면, 외사촌 쪽에서 독단으로?’

확실한 건 없었다.

“혹시 역추적 가능한가?”

“그게…… 이 프로그램 자체가 첩보를 목적으로 만든 거라…… 역추적은 불가능합니다.”

강철은 가만히 서용태를 바라봤다.

별 의도는 없었지만, 서용태는 괜히 쫄려서 부연설명을 달았다.

“그, 지, 진짜입니다. CIA도 이건 역추적할 수 없을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하나?”

강철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국정원이라…….’

거목그룹은 대산과는 규모가 다르다.

사회적 네트워크의 규모도 다르고, 자산 규모도 다르며, 사업 규모도 다르다.

대산그룹 자산 총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오너 일가 비자금으로 굴릴 만큼 커다란 기업이 거목이다.

그랬기에 강철은 그런 거목을 접수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것과, 상당히 많은 변수가 발상하리란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폰을 탐지하여 도청하고 있는 존재-국정원으로 의심되는 그 존재가 바로 그 변수였다.

“어이, 서 이사.”

“네, 고문님.”

“새로 폰 하나만 개통해 봐.”

“네, 알겠습니다.”

서용태는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내용상, 폰 대리점을 운영하는 친구인 모양이었다.

강철은 그 통화 내용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가만히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국정원이라…….’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들어오려면 들어오라지.’

국가기관을 장악할 순 없다.

재벌조차도 관료집단 전체를 장악한 것이 아닌, 구워삶고 있는 판국이다.

‘하지만 경찰처럼 각개격파하면서 정보를 얻어낼 순 있지.’

죽은 백유진의 케이스를 떠올리며, 그렇게 강철은 기본 스케치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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