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재벌의 우정 (2)
엄근식에게 당한 화풀이를 최용대에게 하고도, 엄태욱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는 씩씩거리며 폰을 꺼냈다.
그리곤 곧장 한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꽤나 길었지만, 결국 한소영은 전화를 받았다.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야? 야이 썅년아! 어쩐 일이야?!”
엄태욱의 욕설에 한소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때문에 내가 아버지한테 맞았어, 내가! 썅 그냥 하던 대로 이혼할 생각이나 하고, 너희 아버지 뒤지실 때까지 기다리기나 하지 왜 인공수정이니 지랄이니 한다고 아버지한테 바람을 넣은 거야!”
[…… 미친 새끼.]
“뭐? 미친 새끼? 그래, 미쳤다. 그러는 넌, 그 미친 새끼보다 더 미친년이냐? 이혼한다고 아주 노래를 부르는 년이 왜 아버지한테 손주니 뭐니 바람을 넣은 거냐고!”
엄태욱은 수화기에다 대고 고함쳤다.
“네년 XXX에 내 XX을 넣느니 차라리 변기통에다가 버리고 만다 이 썅년아!”
그리고 그는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배터리가 폰에서 분리되며, 자연스럽게 전원이 나갔다.
“후욱-! 후욱-! 후욱-!”
엄태욱은 한동안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러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퍼백 하나가 잡혔다.
그 속에는 ‘위스키’가 한 알 있었다.
‘썅…….’
엄태욱은 운전 중인 최용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썅년들 오지 마라 하고, 비아그라도 치워! 나 혼자 있을 거니까!”
“네, 네!”
그리고 그는 지퍼백을 도로 집어넣고, 다시 바닥에 널브러진 폰과 배터리를 주섬주섬 집어 들어 조합했다.
잠시 후, 폰이 켜지자 그는 곧장 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이 벌써 떨어지셨나?]
전화를 받자마자, 강철은 엄태욱을 약 올렸다.
“…… 이번엔 좀 많이 줘. 한 100알 정도.”
[100알이라…… 5억을 현금으로 바로 준비할 수 있으시다?]
“……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빨리 좀 줘. 언제 줄 수 있겠어?”
[요즘 약 수급이 좀 힘들어서 말이야. 한 일주일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5억에 1억 더 얹어 줄 테니까, 내일. 내일까지 좀 가져다줘.”
한동안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엄태욱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20%나 붙여준다잖아! 그러니까 간 좀 보지 말고 그냥 내일 좀 가져다줘!”
[한번 알아는 보지.]
그리고 강철은 전화를 끊었다.
“이 개새끼…….”
엄태욱은 폰 화면을 바라보며 한 차례 욕지기를 씹어먹듯 내뱉었다.
그러더니 그는 별안간 폰을 최용대의 머리통에다 집어 던지며 고함쳤다.
“야이 새끼야! 약 파는 새끼 따로 알아봤어?! 어?! 못 알아봤지? 씨발 알아봤으면 말을 했을 텐데. 어!”
최용대는 가까스로 핸들을 붙잡은 채 엄태욱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지, 지방 쪽까지 알아보고 있는데 ‘위, 위스키’라는 이름의 약은 아무도 취급을 안 한다고…….”
“그럼 이 새끼는 뭔데 취급하고 있는 거야! 이 새끼가 혼자 만드는 거야? 이 새끼한테 따로 파는 놈이 있을 거 아니야! 그 새끼를 찾으라고! 이 멍청한 새끼야!”
엄태욱은 다시 한번 더 최용대의 뒤통수를 발로 찼다.
최용대는 최대한 속도를 줄인 채 엄태욱의 화가 풀릴 때까지 보수적인 방어 운전을 이어갔다.
3.
[부릉-!]
목요일 밤 10시 10분.
한 대의 오토바이가 평창동 단독 주택가에 들어섰다.
오토바이는 강철의 것이었고, 운전자도 강철이었다.
‘무슨 일이지?’
강철은 엄태욱의 집 근처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그대로 은신을 펼친 채 저택 담장을 타고 올라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최대한 발걸음을 죽인 채, 불 꺼진 집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2층 방으로 향했다.
구조물을 이용해 2층 방 베란다까지 올라간 강철은, 그곳에서 가만히 창문 너머, 방안을 바라봤다.
“후우……”
방안에선 한소영이 홀로 한숨을 내쉬며 연거푸 위스키를 들이켜고 있었다.
강철은 베란다에서 집 마당을 쭉 훑었다.
그 어디에서도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차도 한소영의 골덴바움 RS-09뿐 이었다.
‘엄태욱이 집에 들어온 것 같진 않고…….’
강철은, 일단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베란다 문고리를 잡아 돌려보았다.
문이 잠기진 않았는지, 문고리는 그대로 돌아갔고, 강철은 그대로 은신을 풀면서 문을 열었다.
“어머-!”
느닷없이 베란다 문이 열리며 강철이 들어오자 울적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며 한숨만 내쉬던 한소영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강철을 바라보더니, 이내 가슴을 손으로 짚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강철을 향해 말했다.
“이건 마술이 아니라 그냥 침입 아니야? 어?”
그런 그녀의 말에 강철은 가볍게 응수했다.
“마술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그러면서 강철은 관심법을 펼치면서 가만히 한소영의 얼굴을 살폈다.
‘울었나?’
한소영의 눈은 살짝 부어 있었고, 눈은 빨개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은, 굉장히 복잡하게 흔들리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바다에 매몰돼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구체적인 것들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슨 일이지?”
강철은 한소영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 강철을 한소영은 가만히 입술을 깨문 채 바라보았다.
곧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강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와 동시에 한소영은 눈물을 닦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인생…… 참…….”
한소영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더니, 자기 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강철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도 마실래?”
그러다가 한소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애한테 무슨 술을…….”
그러자 강철이 그녀의 손에서 위스키 병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곤 그대로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뭐 하는 짓이야?”
그런 강철의 모습에 한소영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강철은 술병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대답했다.
“입은 안 댔어.”
한소영은 헛웃음을 또 터뜨렸다.
그녀는 위스키를 쭉 들이켠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강철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너 담배 있지?”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대만 줘.”
강철은 기꺼이 담배를 한 대 꺼내 한소영의 손에 건네주었다.
한소영은 그걸 받아들고서, 입에 문 채 강철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강철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불을 붙여 준 후 자기 담배도 꺼내 입에 물곤 불을 붙였다.
“후우…… 콜록-! 콜록-!”
한소영은 담배 연기를 내뱉자마자 기침을 했다.
몇 차례 기침하고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하더니 이내 어지러운 듯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내가 담배를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피웠어. 그러다가 20대 초반에, 한창 선보기 시작할 때 끊었지.”
그녀는 회상에 잠긴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왜 담배를 피웠는지 알아?”
그녀는 스스로 묻고,
“친구를 만들고 싶었거든.”
스스로 답했다.
“너, 재벌이 뭐가 슬픈 줄 아니? 진짜 친구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거야. 그게 슬픈 거야.”
강철은 가만히 한소영이 말을 듣기만 했다.
“재벌은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한 존재처럼 취급을 받아. 사실 알고 보면, 똑같이 약하고 슬픔 많은 인간일 뿐인데 말이야.”
한소영은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그리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허공에 연기를 내뿜은 후 말했다.
“엄태욱이 저렇게 된 것도 다 특별한 존재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야. 다들 자기를 귀족처럼 대해주니까,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살았던 거지. 그러다가 같은 레벨의 재벌인 나하고 결혼하면서, 그게 깨진 거고.”
한소영은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잔에다가 내버렸다.
그리곤 살짝 술기운이 올라온 얼굴로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친구가 없긴 나도 마찬가지야. 고등학교 때 같이 담배 피우면서 사귄 친구들도, 결국 성인이 되니까 멀어졌거든.”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엄태욱한테서 전화가 왔어. 아주 오랜만에. 그런데, 전화로 나한테 욕을 하더라고. 뭐라더라? 내…… 내 거기에다가 자기…… 정액을 주입하느니 그냥 버린다나?”
그 대목에서 결국 그녀는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고…… 그래서 술을 마시다가 쓸쓸해서 누굴 부르려는데…….”
그녀는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박 비서를 부르려고 했어, 처음에는. 근데 그 사람은 결국 내 부하거든. 나를 자신과 대등한 사람으로 보질 않는단 말이지.”
그러면서 그녀는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나서 생각나는 게 너더라고. 내가 엄태욱한테 그딴 소리를 듣게 만든 원흉이면서, 동시에 나를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어쩌면…… 나를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인간이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의미는 그녀가 현재 품은 감정과 함께 고스란히 강철에게 전해졌다.
“난 한소영 씨 친구가 돼 줄 수 없어.”
강철은 한소영에게 말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계약 관계야. 난 돈을 얻고, 그쪽은 거목그룹 회장직을 얻는 거지.”
강철은 담배를 마저 피운 후, 한소영의 것이 들어가 있던 잔에다가 꽁초를 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구가 되기엔 나이 차이가 좀 많지 않나?”
그 말에 한소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나이 차이를 신경을 쓰긴 쓰는구나? 누나한테 반말이나 찍찍 내뱉으면서.”
“누나보단 이모님에 가깝긴 하지.”
“이게 까분다?”
강철은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곤 불을 붙이기 전, 한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신 그거 하나는 약속해줄 수 있어.”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살짝 기대감을 품었다.
강철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계속해서 그쪽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주지.”
그 말에 한소영은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다시 기뻐했다.
“그게 친구 아닐까?”
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소영도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대로 그녀는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고 잠들었다.
강철은 잠든 한소영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말없이 담배만 태웠다.
‘친구라…….’
친구가 없는 건 강철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처럼…… 정말 친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은 있었지.’
그리고 그 믿었던 사람에게 강철은 배신당했다.
비록, 그 인간은 지금 이 시간대에선, 강철의 손에 일찌감치 죽어 남양주 야산에 파묻힌 상태지만, 강철이 배신당해 죽었던 시간대에선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도끼랑 작두한테 토사구팽 당했거나.’
어쨌건 그 시간대로는 갈 수도 없었고, 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한소영이 나한테 이런 마음이라면…… 한소영을 통해서 좀 더 많은 걸 할 수는 있겠어.’
강철은 담배를 다 태운 후, 한소영을 공주 안기로 안아 들었다.
그리곤 가만히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베란다 창문을 잠가준 후, 은신을 펼친 채 집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