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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67화 (67/175)

067 마약 (3)

5.

8월 13일 금요일 밤 11시.

종로구 평창동 엄태욱의 저택.

“어서 와.”

“……”

커다란 대문을 지나 양쪽에 잔디가 쫙 깔린, 매끈한 돌로 만든 길을 통과해 대형버스를 족히 4대는 주차할 수 있을 만한 커다란 야외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강철이 내렸을 때, 한소영은 친히 바깥까지 나와 그를 맞이해주었다.

“재벌 집은 처음이지?”

한소영의 물음에 강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살짝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할 뿐이었다.

‘부부가 쌍으로 미쳤구만.’

한소영의 복장은, 이전에 호텔에서 만났을 때보다도 더 과감해져 있었다.

그녀는 은은한 붉은 색 원피스를 하나 입고 있었는데, 몸 전체를 기준으로 봤을 때, 살이 옷보다 더 많이 노출되는 그런 옷이었다.

그리고 분명히, 강철의 눈에는 그녀가 적어도 브래지어는 차지 않은 게 보였다.

“이러려고 이 시간에 부른 건가?”

강철은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한소영에게 던졌다.

“응? 뭐가?”

한소영은 무슨 소리냐며 태연하게 되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이 미묘하게 떨리는 것을 강철은 볼 수 있었다.

“됐어, 난 물건만 전해주면 되니까.”

강철은 한소영에게 안경집을 전해주었다.

“어머, 이게 뭐야? 선물이야?”

한소영은 그것을 받아서 개봉했다.

“안경이네? 나 시력 좋은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경을 써 보았다.

“도수가 없네? 뭐야? 패션 아이템으로 쓰라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한소영의 모습을 보며 강철은 말없이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서, 연기를 몇 차례 내뿜은 후 강철은 말했다.

“초소형 카메라가 내장된 안경이야.”

강철의 말에 한소영의 얼굴에서 살짝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거기 안경집 안에 안경다리 교체할 거 보이지? 안경다리가 배터리야. 한 번에 1개월 까진 간다고 하는데, 또 이게 환경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니까, 항상 체크를 하라고.”

“…… 이거로 회장님 집을 다시 찍어오란 거지?”

“그렇지. 서재하고 명품 창고는 못 찍는다며? 그럼 그냥 안경 끼고 들어가기만 하라고.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한소영은 안경을 벗었다.

그리곤 그것을 이리저리 허공에서 돌려가며 확인해 보았다.

“카메라는 어디 달려 있어?”

“안경알 사이.”

한소영은 안경알 사이, 브리지를 바라봤다.

평범한 브리지일 뿐이었다.

그녀는 안경을 안경집에다가 넣었다.

그리곤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을 아주 철저하게 잘 부려먹으시네?”

그 말에 강철은 입꼬리를 올렸다.

한소영이 말을 이어갔다.

“그쪽이 그랬지? 우린 계약 관계지, 상하 관계가 아니라고.”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건 그냥 일방적인 상명하복 아닌가?”

한소영은 강철에게 안경집을 건네주었다.

강철은 그걸 받지 않은 채 한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기 싫으시다?”

이번엔 한소영이 침묵했다.

“최소한의 정보 수집만 하면 거목그룹 총수가 될 수 있어. 이 정도면 한소영 씨한테 압도적으로 유리한 계약 아닌가?”

한소영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장에 내가 얻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리고, 거목그룹을 나한테 준다는 것도 아직까진 선언적인 비전일 뿐이고 말이야.”

“총수 일가의 비자금을 내가 쥐고 있는데, 단순한 비전이다?”

“어디 한국 재벌이 그깟 비자금 하나 때문에 무너지는 거 봤어? 그쪽도 뭔가 확실한 게 필요하니까 나한테 이런저런 일을 시키는 거 아닌가?”

강철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헛웃음만 터뜨리며 담배를 피워댔다.

“추가 계약을 하고 싶어.”

한소영의 말에 강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담배를 바닥에 버린 후, 밟아 불을 껐다.

그리곤 한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추가 계약? 재계약은 아니고?”

“뭐, 큰 틀에선 기존 계약이 괜찮으니까. 거기서 몇 가지 항목만 추가하자는 거지.”

“오케이, 좋아. 그래, 어디 한번 말해 봐.”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대답 대신, 그에게 따라 들어오라 손짓했다.

강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계약서에 서명하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

그 말에 강철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들고 나와. 여기 후드 위에다 놓고 사인하면 되니까.”

한소영은 빤히 강철을 바라보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단 표정을 지어 보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종이 2장과 볼펜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읽어 봐.”

강철은 그녀로부터 종이 한 장을 받아들었다.

그건 계약서였다.

강철은 계약서의 내용을 쭉 훑었다.

그리곤 한숨을 내쉬며 계약서를 후드 위에 올려놓더니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곤 담배를 입에 문 채 계약서 최하단에 자리한, 한소영의 실명과 생년월일, 사인이 있는 칸 옆에다가 자신의 실명과 생년월일을 적고 사인했다.

“뭐야? 그냥 동의하는 거야?”

강철의 시원시원한 사인에 한소영이 살짝 당황했다.

강철은 그녀에게 나머지 종이도 달라고 손짓했다.

똑같은 계약서에다가 똑같이 이름과 생년월일, 사인을 넣은 후, 강철은 그걸 접어서 품 안에 집어넣었다.

“사람은 말이야. 자기랑 닮은 사람을 싫어한다더라고.”

강철의 말에, 계약서에 적힌 그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고서 잠시 멍을 때리던 한소영이 고개를 들었다.

“응? 뭐라고?”

“사람은 자기랑 닮은 사람을 싫어하기 마련이라고.”

“…… 그래서 내가 싫다는 거야? 우리가 닮은 구석은 없는 것 같은데?”

“나랑 한소영 씨 말고, 엄태욱이랑 한소영 씨 말이야.”

“뭐?”

“왜 두 사람이 10년 넘게 각방 생활 중인지를 알겠네, 오늘 보니까. 둘 다 제정신이 아니야.”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한동안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박장대소했다.

강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차에 올라탔다.

“그쪽도 그다지 제정신으로는 안 보여, 92년생 강철 씨.”

“네, 그렇네요. 72년생 한소영 씨.”

강철은 그대로 차를 몰고서 엄태욱의 집 마당을 떠났다.

“……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늙어 보이잖아. 어리면 다야?”

한소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계약서에 적힌 강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부부가 쌍으로 나한테 의존하면 좋긴 한데…….’

추가 계약이라는 건, 사실 별 게 아니었다.

적어도 1주일에 1회 정도 대면으로 작전 진행 상황을 공유할 것과 1개월에 2회 정도 작전 회의를 가지는 것.

그게 추가 계약의 전부였다.

‘남편이랑 각방을 10년 넘게 쓰고 있고, 거기다 애까지 없으니 뭐 이해는 가긴 가는데…….’

강철은 부담스러웠다.

‘그냥 약쟁이로 만들어 버릴까?’

강철에게 익숙한 건, 상대방에게 겁을 주거나 약점을 쥐고 흔들거나 해서 상대방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소영은 강철에게 인간적인 대우 같은 걸 바라고 있었다.

유아영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정을 바란다면, 한소영은 어떤 대등한 관계 혹은 자신이 대우받는 그런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 선만 안 넘는다면야.’

강철은 여자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그러나 그거랑 별개로, 선을 넘는 건 싫어했다.

은신의 대가 서영은이 이전 생에 이어 이번 생에까지, 두 번이나 그의 손에 죽은 이유는 그녀가 아주 시원하고 깔끔하게 선을 넘었고 그로 말미암아 강철의 원한을 샀기 때문이었다.

‘속단하지 말자. 서영은하곤 그래도 사람이 근본이 다르잖아?’

그렇게 강철은, 어쩌면 자신이 한소영을 죽이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머리 아파하면서, 차를 몰고 길동으로 향했다.

6.

“거목그룹 임직원 명의로 된 통장에서 총 5,052억 3,208만 원이 입금됐습니다. 그중에서 대산이 따로 챙긴 게 52억 3,208만 원입니다.”

8월 18일 수요일 오후 1시.

대산그룹 본사 최병천 감사의 사무실에서 강철은 거목그룹 비자금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수수료를 많이 챙긴 거요?”

“돈세탁 수수료치고는 적습니다만, 어쨌건 이걸 대가로 거목이 그동안 대산에 일감을 많이 몰아줬으니까, 서로 이득 본 장사 아니겠습니까?”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최병천에게 계속 말해보라 손짓했다.

“아무튼, 들어온 돈 5,000억 중 3,000억을 대산에서 자체적으로 세탁했는데 그중 2,000억이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주소지를 둔 ‘극동개발탐사’라는 회사로 송금됐습니다.”

“러시아?”

“네.”

“돈세탁을 러시아에다가 하나?”

“뭐, 보통은 영국령이나 미국령 섬에다가 보내는 게 맞긴 합니다만, 구소련권 국가에서 세탁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는 합니다.”

강철은 가만히 최병천을 바라봤다.

“우리 최 변호사님이 그런 쪽으로 또 박식하시네요?”

그 말에 최병천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옛날에 돈세탁 사건 변호해 봐서 좀 알고 있습니다.”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병천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극동개발탐사라는 회사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를 찾고 있는데, 아무래도 러시아에 있는 회사다 보니까, 정보가 많이 공개돼 있지 않습니다. 일단 대표는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라고 나와 있는데…… 이게 실존하는 사람인지부터가 일단 의문입니다.”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 말장난 같기도 하고 말이야.”

뭔가 범상찮은 이름이라 생각하며, 강철은 그 이름을 기억에 담아 두었다.

“수고 많았어요. 일단 최 변호사님이 알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거죠?”

“네, 그렇습니다.”

“알았어요. 뭐, 나머지 디테일한 건 따로 내가 챙기죠.”

강철은 커피를 마저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병천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펴 가십시오.”

“계속 수고해주세요.”

강철은 최병천과 작별하고, 엘리베이터에 타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러시아라…….’

러시아어라도 배워서 직접 침투해야 하나? 하는 무의미한 생각을 하며, 그렇게 강철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어…….”

그리고 강철은, 먼저 타고 있던 조민석과 그의 곁에서 그를 수행하고 있던 박용수와 대면했다.

강철은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오랜만이오.”

조민석은 강철에게 그렇게 인사했다.

“그러게 말이야. 밥 먹으러 가는 길인가?”

강철의 화답에 조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 고문은?”

“먹었지.”

“그렇소?”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다.

곧 로비에서 대기 중이던 비서실 직원들이 조민석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그들은 조민석, 박용수와 함께 있는 강철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맛있게들 먹으라고.”

강철은 그렇게 말하고서, 먼저 로비를 빠져나갔다.

“저, 저기…… 누구십니까?”

비서실에서 박용수 다음가는 서열을 비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양선호가 조민석에게 물었다.

“…… 대주주야.”

“네?”

“가자. 배고프다. 오늘은 해장국이 좀 먹고 싶네. 속이 쓰려서 말이야.”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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