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66화 (66/175)

066 마약 (2)

3.

돈은 엄태욱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으으으으…… 흐흐흐흐…… 흐흐흐흐……”

엄태욱에게 중요한 건 극상의 쾌감을 선사해주었던 환상이었다.

엄태욱은 환상을 돈으로 샀고, 강철은 팔았다.

그리고 지금, 목요일 오후 5시 55분, 엄태욱은 침대에 누워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구도 좋네.’

엄태욱이 환상의 나라로 가버린 동안, 강철은 현실의 나라에서 그의 모습을 폰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화질은 영 안 좋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옴니버스니까.’

내년에 나올 애플망고사의 아담-2로 기종 변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강철은 그렇게 약 10분 정도 되는 분량의 동영상을 촬영한 후 폰 카메라를 껐다.

“좋은 꿈 꾸라고.”

강철은 엄태욱의 뺨을 두 차례 툭툭 친 후, 원탁에 놓인 위스키 병 옆에 ‘위스키’ 10알이 든 지퍼백을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대기 중이던 최용대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가방 하나를 건네주었다.

강철은 가방 안을 살펴보았다.

100장을 한 묶음으로, 총 11묶음의 5만 원 권이 들어 있었다.

5,500만 원의 존재를 확인한 강철은 1묶음을 빼낸 후 가방 지퍼를 닫고 그걸 어깨에 멨다.

“이봐, 비서 양반.”

“네?”

“담배 태우시나?”

“아…… 안 태웁니다.”

“그럼, 술은?”

“…… 소주를 좋아하긴 합니다.”

강철은 최용대에게 500만 원짜리 1묶음을 건네주었다.

최용대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돈뭉치와 강철을 바라보았다.

“소주값 해.”

강철의 말에 최용대는 여전히 경계하면서도 그 돈을 일단 받았다.

강철은 그런 최용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현관을 나섰다.

‘겨우 500으로 될 사람은 아니겠지만, 뭐 적당히 약을 쳐놓는다고 생각하는 거지.’

‘위스키’는 보통 한 알이 아닌, 지퍼백 한 봉지 단위로 팔렸다.

한 봉지에는 보통 10알이 들어갔고, 판매가는 50에서 많아 봐야 70이었다.

그걸 강철은 한 알에 500씩 해서 엄태욱에게 팔았다.

‘공급을 내가 통제하는 상황에서 자기가 뭐 어쩔 건데?’

엄태욱은 쿨하게 11알을 샀고, 최용대는 엄태욱의 명령으로 현금 5,500을 찾아왔다.

그에게 500 정도 팁으로 주는 게 그다지 무리는 아니라고 강철은 생각했다.

“저, 저기 잠시만!”

강철은 500으로 최용대를 어떻게 회유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만, 1분만 시간 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나 최용대가 현관문을 열고 나와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을 발을 밀어 막았을 때, 강철의 생각은 바뀌었다.

‘뭐야? 겨우 500에?’

강철은 냉소를 머금으며 최용대를 바라봤다.

최용대는 그런 강철의 모습에 살짝 불안한 듯 넥타이를 한 차례 만지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 조민석 회장이랑은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강철은 대답 없이 그저 가만히 최용대를 바라보기만 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조민석 회장과 엄 전무님께서 다툼이 좀 있었습니다. 근데…… 근데……”

강철은 곧바로 최용대가 자신을 붙잡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렇지. 500에 사람 마음 사는 건 말이 안 되지.’

강철은 한 차례 헛웃음을 터뜨린 후, 최용대에게 말했다.

“원수지간이 된 인간하고 동업하는 놈한테서 약을 공급받는 게 무섭다?”

최용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비서 양반.”

“…… 네.”

“쓸데없는 충성심은 말이야,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독이 돼. 역사가 그걸 증명하더라고.”

“네?”

“난 프리랜서야. 누구랑 같이 일은 해도, 누구 밑에선 일을 안 해.”

그러고서 강철은 발끝으로 엘리베이터 문틈을 밟고 있는 최용대의 발을 툭 쳤다.

최용대는 순간 발끝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통증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곧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고, 강철은 문틈으로 최용대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저런 사람이 무슨 일로 갑질 당한 걸 폭로했던 걸까?’

강철은 이전 생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2017년, 엄태욱이 거목그룹 회장이 되자마자, 그를 수행했던 비서가 그의 갑질을 폭로했다.

덕분에 엄태욱은 곤욕을 치렀고, 비록 처벌을 받진 않았지만,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도덕 경영”이란 슬로건이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리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그때 그 비서가 엄태욱을 상무 시절부터 오랫동안 수행했다고 했으니…… 아마 저 양반이 맞는 것 같은데…….’

조금 전, 강철이 본 최용대라는 인간은, 분명한 엄태욱의 충신이었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뭔가 있다는 건데…….’

강철은 일단 이 문제는 킵해두기로 했다.

‘당장에는 한소영을 마저 공략해야 하는 게 급하지.’

그렇게 강철은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올라탄 후, 아파트를 빠져나가며 서용태에게 전화했다.

“어, 도곡동 레이 글로리아 CCTV 나하고 내 차 찍힌 거 다 지워.”

같은 시각,

최용대는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가 엄태욱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후,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그가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확실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대산 쪽에서 뭔가를 꾸미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확인하고 따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4.

8월 13일 금요일 밤 10시.

“오랜만에 뵙십니다, 고문님.”

길동 단란주점 ‘콜걸’에 홀로 강철이 들어가자마자, 김명길이 그에게 허리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다가 김명길은, 자기 뒤에 선 10명의 후배가 모두 멀뚱멀뚱하기만 한 것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함쳤다.

“이 새끼들이 쳐 돌았나? 마 뭐하노! 퍼뜩 인사 안하고! 마 우리 회사 고문님이시다!”

그제야 후배들은 엉거주춤 강철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김 이사.”

강철은 김명길에게 다가가 그를 불렀다.

“네, 고문님.”

“이 양반들이, 그때 이야기한 후배들인가?”

“네, 고문님. 마 꼬라지는 이래도 다 한 따까리 하는 것들입니다. 좀 키워놓으면, 마 3인분씩 할 인간들입니다.”

“그래?”

그러면서 강철은, 천천히 한 후배에게 다가갔다.

그는 처음 강철이 들어왔을 때부터, 그리고 김명길이 그에게 인사하라고 독촉할 때에도, 심지어 강철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금도 시종일관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름이 뭐지?”

“허-!”

강철의 물음에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김명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김명길은 말리려고 했다.

강철을.

[빠악-!]

그러나 그가 말릴 틈도 없이, 강철은 후배의 턱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그는 그대로 턱이 돌아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빠악-! 빠악-!]

강철은 사정없이 그의 옆구리와 허벅지, 무릎을 발로 밟았다.

무자비한 구타였지만, 강철의 표정에는 그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그는 마치 쓰레기를 밟는 사람처럼, 무심한 얼굴로 깡패를 밟을 뿐이었다.

구타는 1분간 쉼 없이 이어졌고, 강철이 발길질을 멈췄을 때, 김명길의 후배는 반쯤 시체가 된 채 겨우 숨만 헐떡이는 신세가 돼 있었다.

“어이, 김 이사.”

“네, 네, 네…… 고, 고문님…….”

강철은 김명길을 바라봤다.

그리곤 두려움에 바짝 굳어 있는 다른 9인의 후배들을 한 차례씩 눈에 담았다.

“하남 농장에서 생산되는 대마, 불량이 얼마나 나지?”

“그…… 그 한 4% 정도는 불량입니다.”

“4%라.”

강철은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이는 놈을 한 차례 바라보았다.

“김 이사가 선발한 10명 중 1명이 폐급이야. 그럼 10%가 불량이라는 이야기지.”

김명길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이래가지고, 큰일 하겠나?”

“……”

“명심해. 깡패들을 못 휘어잡으면, 대산은 껍데기만 먹는 거라고.”

“…… 명심하겠십니다.”

강철은 김명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후, ‘콜걸’을 나섰다.

‘박용수를 바지로 앉히고 김명길을 부회장으로 올리려면 이대로는 안 돼.’

강철은 진지하게 박용수를 중용할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박용수는 조민석과 비슷하게, 깡패들을 단합시키기 위한 얼굴마담의 역할만을 부여받게 될 터였다.

‘경상도랑 전라도 쪽 조직을 김명길이 장악해야 해. 그렇게 하려면, 저런 떨거지로는 힘들어.’

김명길을 3년 안에 지금의 박용수 정도 혹은 조민석보다 약간 모자란 수준의 권위를 지닌 존재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현재 대산으로부터 반쯤 독립한 지방 조직을 장악하게 해야 한다는 게 강철이 내린 결론이었다.

‘곽기명이 조직에서 임대받은 애들이 잘 훈련시켜야 할 건데…….’

그것을 위해 강철은, 자신이 싸웠던 건달 조직 중 가장 체계적으로 잘 싸웠던 충청도 곽기명의 조직 에이스들을 임대받은 것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첫째는 김명길 경호였고, 두 번째는 트레이닝이었다.

‘잘하겠지. 3년, 1,095일이면 뭐 시간은 넉넉하니까.’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어놓고, 잠깐 차에 냉기가 차길 기다리며, 강철은 조수석 사물함, 글로브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경집 하나를 끄집어내 개봉했다.

‘돈값을 해야 할 텐데 말이야.’

강철은 서용태에게 최첨단 안경을 주문했다.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전달할 수도 있고, 또 동영상을 저장할 수도 있는, 초소형 카메라와 컴퓨터를 장착한 그런 안경을.

서용태는 쉽진 않지만 구해보겠다고 했고, 중국 쪽 조직을 통해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이 쓴다는 물건을 수입했다.

이미 테스트는 한 차례 거쳤기에, 성능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밝혀졌다.

‘그 사진만으로는 좀 애매해. 방 안에 뭐가 있는가를 확인해야 해.’

강철은 한소영에게 엄근식 회장의 저택 내부 구조를 사진에 담아 달라고 요구했다.

한소영은 흔쾌히 그걸 받아들여, 셀카를 찍어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내부로 들어가진 못했다.

‘내부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면 의심을 받겠지만, 안경을 끼고 들어가면 큰 의심은 안 받겠지. 뭐, 서른아홉에 시력이 나빠졌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강철은 안경집을 다시 글로브박스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한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차례 신호음이 간 후, 한소영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방 안 사진은 못 찍는다고 했었지?”

[그랬지. 보안 사항이니까. 그 문제는 처음부터 말했을 텐데?]

“그럼 카메라를 좀 달고 안에 들어가는 건 괜찮나?”

[뭐?]

“초소형 카메라 한 대를 마련했어. 그걸 좀 차고 직접 서재랑 방이랑 여기저기 들어가서 좀 찍어 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 요구 사항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거목그룹을 한소영 씨가 반절 먹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기여도가 낮으면, 받아가는 것도 적어.”

[기여도가 낮아도,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될 경우에는 받아가는 게 많은 법 아닌가?]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탁할 게 있으면 지금 우리 집으로 와 줘. 와서 이야기해.]

“…… 지금?”

[걱정 마. 엄 전무도 그리고 일하던 사람들도 다 퇴근하고 나 혼자니까.]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알았어. 그쪽으로 넘어가지.”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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