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65화 (65/175)

065 마약 (1)

1.

거목그룹은 종로에서 시작됐다.

그랬기에 사옥도 종로에 있었고, 오너 일가의 주거지도 종로에 있었다.

“어쩐 일이냐?”

8월 12일 목요일 오전 10시.

한소영은 현재 자신이 거주하는 평창동 엄태욱의 저택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엄근식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의 방문에 집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엄근식은 직접 현관까지 나와 그녀를 반겼다.

“어쩐 일은요. 회장님 뵈러 왔죠.”

그녀의 말에 엄근식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그래, 무슨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그 물음에 한소영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자, 들어가자꾸나. 손님을 계속 세워두면 안 되겠지.”

한소영은 그렇게 엄근식의 안내에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소파에 앉자, 곧 그들의 취향에 맞게 음료가 나왔다.

한소영은 가볍게 차가운 레몬에이드를 한 모금 마신 후,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엄근식의 옆으로 가 앉았다.

“회장님. 제가 최근에 사진첩을 봤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그녀는 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그리곤 셀카 모드로 전환한 뒤 엄근식과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회장님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더라구요. 그나마 찍힌 것도 전부 가족 행사에서 찍힌 거고요.”

그런 한소영의 모습에 엄근식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하고 사진 찍으려고 온 게야?”

한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욱이하고 찍은 사진은 몇 장이나 되더냐?”

이어진 엄근식의 말에 한소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저번에 이야기한…… 인공 수정은 어떻게 생각은 해 봤니?”

엄근식의 물음에 한소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그에게 답했다.

“그 문제는…… 엄 전무하고 상의를 해 보고 결정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상의는 해 봤니?”

“집에 들어와야 상의를 하든가 하겠죠?”

“후우…… 미안하다, 담배 한 대만 피자꾸나.”

엄근식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그러자 가만히 뒤에서 그림자처럼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이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후우……”

엄근식은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다섯 차례 정도 숨을 내쉰 그는, 이내 절반 정도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한소영을 보며 말했다.

“소영아. 이게 부부라는 건 말이다. 사이가 안 좋다가도, 또 둘 사이에 애가 태어나면 이 어떤 뭐랄까, 연결이라는 게 되는 법이야.”

한소영은 말없이 묵묵히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엄근식은 그런 한소영에게 부부 사이에서 아이의 중요성과 그녀의 나이가 내년이면 마흔이라는 점 등을 이야기하며,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다.

“미안하구나. 오랜만에 왔는데 이런 이야기나 하고…….”

그러다 엄근식은, 자신의 말이 결국 잔소리가 됐다는 것을 느끼곤 한숨을 내쉬며 말을 멈췄다.

“내가 욱이를 잘못 키웠어. 어릴 때, 머슴들한테 함부로 할 때 따끔하게 혼구녕을 내면서 가르쳤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마흔도 넘은 아들을 이제야 때리면서 훈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 내 탓이다.”

그렇게 한탄하는 엄근식에게 한소영은 말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회장님.”

엄근식은 안타까운 눈으로 한소영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일이 좀 많이 밀려있어서, 먼저 들어가 봐야겠구나. 편히 쉬다가 갈 때 인사나 하거라.”

그렇게 엄근식은 비서실장과 함께 서재로 돌아갔다.

한소영은 잠시 앉아서 레몬에이드를 마시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마치 집안을 구경하듯 천천히 거닐며 지하 1층의 홈 시네마부터 옥상의 테라스까지 돌아다녔다.

“항상 우리 회장님을 위해 수고해주시는 분들인데, 같이 사진이라도 찍어서 기억으로 남겨 둬야겠죠?”

그러면서 그녀는 각층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일하고 있는 ‘머슴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었다.

“회장님, 저 이만 가 볼게요.”

마지막으로, 2층 서재 앞에서 엄근식의 보디가드와 함께 사진을 찍은 그녀는 집주인에게 떠날 것을 알리곤 집을 떠났다.

그녀는 박 비서와 함께 걸어서 엄태욱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런대로 사람들로 북적이던 엄근식의 집과는 달리, 박 비서와 두 명의 정원 관리인 그리고 세 명의 가정부가 전부인 엄태욱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소영은 살짝 힘이 빠지고 급격히 울적해지는 걸 느꼈다.

‘하아…… 사람을 좀 더 고용해 볼까?’

그러면서 한소영은,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홈 짐(Home GYM)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나름 운동을 좀 하는 것 같던데……’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트레이너 혹은 홈 짐 관리자로 고용할까 싶은 한 사람을 떠올리며 박 비서를 뒤로한 채 자신의 서재로 들어갔다.

‘일이나 하자.’

한소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이내 폰을 꺼내 메신저 앱을 켰다.

그리곤 ‘마술사’라고 저장된 강철에게 자신이 엄근식의 집에서 찍은 셀카를 보냈다.

물론 셀카만 보낸 건 아니었다.

사진 한 장을 보내면, 그 아래에 그 사진을 찍은 장소와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에 관한 설명을 첨부했다.

그렇게 그녀는 12장의 사진과 설명글을 강철에게 보냈다.

숫자 1은 꾸준히 사라졌고, 마침내 그녀가 모든 사진을 보냈을 때, 강철로부터 짧은 답장이 왔다.

<ㅇㅇ>

그 답장에 한소영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문자를 입력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진을 찍고, 문자를 쳤는데 겨우 ㅇㅇ? 좀 너무하지 않아? 적어도 수고했다거나 아니면 질문이라거나 뭔가 있어>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야?’

그러다가 그녀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회의감과 허탈함을 느끼며 쓰던 문자를 다 지웠다.

그리곤 짧게 답장했다.

<수고>

2.

“그래, 알아는 봤어?”

“네, 전무님.”

목요일 오후 5시.

엄태욱은 도곡동 아파트 ‘레이 글로리아’ B동 펜트하우스 서재에서 최용대로부터 보고서를 전달받았다.

엄태욱은 떨리는 손으로, 한 손으로는 위스키 잔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서류를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 그래서, 이사회를 사실상 조민석이가 완전히 장악했다?”

30p 분량의 보고서를 모두 읽고서 엄태욱은 최용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확실합니다.”

최용대의 확신은 근거가 있었다.

‘새로 임명된 사내이사는 직속 따까리 건달이고, 사외이사는 그 건달의 친구고, 감사는 흔한 변호사긴 한데 뭐 구색맞춤일 거니까…….’

가장 중요한 건, 최근 계열분리를 시도 중인 상해탄 천호본점의 존재였다.

‘지방 깡패들한테 지분을 강탈해서 사실상 새로운 지주사를 하나 더 세운 격이 되는 건데…….’

그리고 그 근거를 통해 엄태욱도 확신을 품게 됐다.

‘조민석이…… 단순한 협박은 아니었다, 이거지?’

강철에게 맞았을 때, 엄태욱은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나 역으로 엄태욱은 강철에게 농락당했고, 그를 끌어내기 위해 유아영을 납치했지만, 도리어 조민석에게까지 굴욕을 당해야 했다.

‘이 개새끼들이…….’

엄태욱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 누구로부터도 무시당한 일이 없었다.

강철과 조민석 이전에 그를 무시했던 인간은, 한소영뿐이었다.

그녀를 제외하면, 같은 재벌 3세들 중에서 그를 무시하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엄태욱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비자금…… 거기 우리가 담가 놓은 비자금만 어떻게 빼돌리면…… 충분히 가능해. 가능하단 말이야.’

결국 조민석이 그렇게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산에 대한 그의 장악력과 대산에 맡겨놓은 엄근식-엄태욱 부자의 비자금 때문이라는 게 엄태욱의 결론이었다.

‘잠시만…… 그러면…… 그 개새끼도 결국 조민석이 따까리라는 거잖아?’

문득 엄태욱은, 이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 조민석의 흉계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품게 됐다.

‘그래…… 뭔가 이상했어…… 자기 사람으로 가득 채운 이사회를 갑자기 해산해달라고 하지를 않나, 내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자기 여자 친구 따먹고 싶다고 하니까, 덥석 보내주질 않나…….’

엄태욱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위스키 잔을 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용대는 입을 꾹 다문 채 언제든 양팔로 자신의 얼굴과 머리를 감쌀 준비를 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 이 개새끼들이!”

[쨍그랑-!]

별안간 엄태욱은 고함을 지르며 벽에다가 잔을 집어 던졌다.

잔은 산산 조각나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최용대는 다급히 휴지를 꺼내 그것을 손수 치우기 시작했다.

“치우는 건 나중에 하고 나가 있어, 이 개새끼야!”

그런 최용대를 향해 엄태욱은 쌍욕을 퍼부었다.

최용대는 바짝 움츠러든 채 서재에서 도망치듯 나갔다.

“머저리 같은 새끼…….”

엄태욱은 그런 최용대의 뒤통수를 향해 욕지기를 날린 후 분을 참지 못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개새끼들아!”

그리곤 마구잡이로 벽을 발로 차고, 서재의 고급스러운 물건들을 집어 던지며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길 5분.

[탁-!]

[우드득-!]

엄태욱은 자신의 어깨에 손이 올라오고, 그 즉시 왼쪽 팔이 뒤로 꺾이는 걸 느끼며 당황했다.

“아아아……”

조금 전까지 시원하게 내지르던 샤우팅과는 비교가 안 되는 가냘픈 신음을 내며 엄태욱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어이, 층간소음 조심해야지.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시니컬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엄태욱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걸 느꼈다.

엄태욱의 팔을 꺾어, 그의 난동을 가볍게 진압한 강철은 곧 그의 팔을 풀어주었다.

“아아아…… 이 개자식이……”

엄태욱은 팔을 부여잡으며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리곤 자신을 내려다보며 냉소 짓고 있는 강철을 향해 약간은 누그러진, 그러나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다…… 조민석이가 짠 일이었지? 이 개자식아?”

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사회까지 싹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지방 깡패들한테 지분 강탈해서 위장 자회사에 몰아주고…… 그래놓고 뭐? 자기 자리가 위태하니 이사회 해산에 개입해달라고? 이런 개 같은 새끼……”

그 말을 듣고서, 대번에 강철은 엄태욱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가를 깨달았다.

‘뭐, 나쁘진 않지.’

오해는 크면 클수록 좋다.

그게 강철의 심정이었다.

“가서 조민석이한테 똑바로 전해. 재벌이 괜히 재벌이 아니란 걸, 언젠간 반드시 보여주겠다고.”

강철은 구태여 엄태욱의 오해를 정정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엄태욱이 조민석을 제압할 방법과 조민석이 지른 협박의 논리적 하자에 관해서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강철은 주머니에서 조그만 지퍼백 하나를 꺼내 엄태욱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엄태욱은 그의 손에 들린 조그만 지퍼백과 그 안에 담긴 알약 하나를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엄태욱에게 강철은 말했다.

“한 알에 500. 결제는 오직 현금으로만. 어때? 구미가 당기시나?”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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