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64화 (64/175)

064 부부 (4)

7.

조민석은 조민석이었다.

강대산이 사라지고, 도구삼이 오늘내일하는 상황에서 수도권 내에서 그의 세력을 견제할 만한 폭력 조직은 기껏해야 백두산 정도였다.

그나마 백두산조차도 강서구, 자기 앞마당 지키는 거나 가능할 뿐,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 조민석보다 밀리는 게 현실이었다.

그것은 조민석이 재벌을 잡기 위해 동원한 100명의 건달로 증명이 됐다.

“그러니까 조민석이 필요한 거야. 단순히 내가 사람들 패 죽이고, 수십 명이랑 혼자 싸워 이긴다고 해서 얻을 수 없는 권위를 그 인간은 가지고 있거든.”

8월 9일 월요일 오전 11시.

강철은 한소영과의 만남을 위해 약속 장소로 이동하며, 차 안에서 박용수와 통화하고 있었다.

[저한테 조 회장님 같은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강 고문님은?]

박용수의 물음에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조민석만큼은 없지만, 3년 정도면 조민석만큼 키울 수는 있지 않겠나?”

[…… 결국 3년간 제 스스로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입니까?]

“뭐, 안 키워도 상관은 없어. 대신 조민석 만한 권위를 못 가진 상태에서 회장직에 오르면, 지금 대산 통제하에 있는 범단 중 반 이상은 떨어져 나가겠지.”

[……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아무튼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 대산 회장이 된다는 건, 단순하게 대주주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추후에 또 보고하겠습니다.]

통화가 끝날 때쯤, 강철은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주차장 입구에서 주차를 맡기고, 강철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VIP룸으로 올라갔다.

“어때? 전망 좋지?”

방으로 들어가자, 먼저 도착해 있던 한소영이 강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철의 시선은 전망이 아닌, 그녀의 패션에 더 쏠렸다.

“오늘 좀 많이 덥긴 한데, 그건 좀 과한 노출 아닌가? 재벌가 며느리가 입기엔?”

강철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슴골은 물론 배꼽까지 훤히 드러나는, 스포츠브라와 탱크탑의 경계에 있는 상의에 자세히 보면 팬티가 보일 것만 같은 짧은 핫팬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재벌가 며느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긴 했다.

“뭐, 아무렴 어때? 내가 거목그룹 엄근식 회장의 며느리인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한소영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는 척, 팔을 들어 겨드랑이를 노출시켰다.

‘부부가 쌍으로 맛이 갔구만.’

30대의 마지막 시절을 보내는 사람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몸매였지만, 강철에게는 그저 정신 나간 남편을 둔 정신 나간 부인일 뿐이었다.

‘뭐, 적당히 맛이 간 게 내 입장에선 좋긴 하지.’

그러나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며, 강철은 미리 챙겨온 기계를 하나 꺼냈다.

“그거 뭐야? 최루탄이야?”

한소영의 물음에 강철은 씩 웃으며 최루탄처럼 생긴 기계를 바닥에 내려두고 스위치를 눌렀다.

“아마 지금쯤, 도청기로 우리 대화 엿듣던 사람들 고막이 찢어졌을 거야. 나중에 괜찮은 이비인후과에 보내서 치료 좀 해 줘.”

강철의 말에 한소영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다 이내 그녀는 다시 활짝 웃었다.

“철저하시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상정한, 강철의 배후에 관한 몇 가지 가설 중 가장 유력한 것 하나를 골라서 던졌다.

“혹시 배후가 국정원이야? 아니면, 기무사?”

그 물음에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일신그룹을 노리는 것 같진 않고, 거목을 노린다면 윤씨 3형제 말고는 딱히 없거든. 윤씨 3형제 중에 당신 같이 훈련된 사람을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은 군에 있는 윤 대령이나, 국정원에 있는 윤 국장 정도고.”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한소영은 그걸 긍정이라 여기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추리는 괜찮은데, 전제가 잘못됐어.”

그러나 이어진 강철의 말에 그녀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내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전제. 그 자체가 틀린 전제니까, 당연히 분석도 이상한 결과를 산출하는 거겠지, 한소영 씨.”

“…… 배후에 아무도 없다고?”

“굳이 찾자면 거목을 향한 나의 소유욕 정도가 배후라고 해야 하려나?”

강철의 말에 한소영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그녀는 까르르 웃으며 식탁을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아…… 당신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그런 한소영에게, 강철은 자신이 준비한 두 번째 미끼를 던졌다.

[툭-!]

“…… 이건 뭐야?”

강철이 조그만 편지봉투 하나를 던지자 한소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러나 여전히 웃으면서, 물었다.

강철은 대답 없이, 열어보라 손짓한 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한소영은 조심스럽게 편지봉투를 받아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선, 곧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 이거…… 뭐야?”

그녀의 물음에 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 흡연 가능한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강철을 바라보며, 한소영은 다시 물었다.

“이거 뭐냐고.”

그녀는 정색하고 있었다.

“뭐기는 그쪽이 조금 더 나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게 해줄 물건이지.”

강철이 건넨 것은 대산그룹에서 처리한 엄근식-엄태욱 부자의 비자금 세탁 내역 중 일부였다.

비록 복사본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한소영에게는 충분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 당신 도대체 뭐야?”

“말했잖아. 마술사라고.”

“…… 진짜로 원하는 게 뭔데? 돈이야?”

강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한소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 뭐?”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라고, 한소영 씨.”

순간, 한소영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생겼다.

8.

2014년.

일신그룹 한경석 회장이 죽자마자 한소영은 엄태욱과 이혼했다.

법정 공방은 그리 길지 않았고, 엄태욱은 한소영에게 500억의 위자료를 주는 선에서 합의했다.

그녀는 일신그룹으로 돌아가 새 회장이 된 오빠 한준영 밑에서 전무로 일하며 나름대로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러다가 그녀는 2021년, 일신그룹 내에서 들고 있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구체적인 사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강철은 그때 인터넷 지라시를 통해 그녀가 일신그룹 내에서 왜 숙청당했는지를 알게 됐다.

‘애초에 야망이 없는 여자가 아니었지.’

월요일 오후 2시.

다시 길동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이전 생에 한소영에 관해 읽었던 인터넷 지라시 내용을 떠올렸다.

‘한준영 회장에게 반감을 가진 이사들과 손을 잡고, 그의 개인 비리를 파헤쳐 검찰에 고발하려다가 발각당해 결국 숙청당했다던데…… 완전 지라시는 아닌 모양이었네.’

강철은 한소영에게 전략적 제휴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거목그룹 공동 회장이라는 비전을 심어주었다.

한소영이 그 비전에 공감을 했던 건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는 강철의 제안을 수용했다.

‘하긴, 오너 일가의 비자금 5천억을 알고 있는 사람의 제안을 쉽게 거절할 순 없긴 하겠다만.’

최병천을 통해 조사한 대산그룹의 거목그룹 자금 세탁 규모는 5천억에 이르렀다.

그중 3천억 정도는 대산그룹 자체적으로 소화한 것이었고, 나머지 2천억은 대산그룹도 따로 외부로 빼돌려서 세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5천억은 모두 엄근식-엄태욱 부자의 비자금이었다.

‘계열사 임원들 명의로 뚫은 통장, 그 외에 외국인 명의로 개설한 통장까지. 아주 다양해서 다 터뜨리면 한도 끝도 없겠지.’

강철은 그 비자금을 세간에 폭로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 비자금을 중간에서 빼돌려, 엄근식-엄태욱 부자의 자금 유동성에 큰 타격을 입히려는 게 강철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한소영의 도움이 필수였다.

‘지금 내 에너지 사이즈로 은신을 펼치면 최대 5분까지 버틸 수 있어.’

연금술을 흡수하고, 초능력 에너지 사이즈가 커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금에서 뽑아낼 수 있는 엘릭서의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주력으로 쓰는 초능력이 오거닉 메탈이고, 연금술은 부차적인 거니 효율이 안 나오는 건 어쩔 수 없긴 한데…….’

물론,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금을 매입해서 꾸준히 엘릭서를 뽑다 보면, 최상위 재벌인 삼우그룹과 현성그룹을 작업할 때쯤이면, 넉넉하게 1시간 정도는 은신을 펼칠 수 있을 만큼 에너지 사이즈를 키울 순 있을 것이라 강철은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 거목그룹을 작업해야 하는 이 시점에, 강철의 초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유아영이 조민석의 빨대 노릇을 하듯, 한소영은 엄씨 부자의 빨대 노릇을 해야지.’

문득 강철은, 자신이 한소영을 원한다고 했을 때,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던 홍조를 기억해내며 냉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는 차가 잠시 신호 대기를 탄 틈을 타 백미러로 자기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못생긴 건 아닌데, 그렇다고 미인계를 쓸 정도는 아닌데 말이야.’

강철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닌가?’

강철은 피식 웃었다.

때마침 신호가 바뀌었기에, 강철은 다시 차를 앞으로 몰고 나갔다.

‘결혼하고 나서 1년 만에 각방을 쓰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11년을 독수공방한 셈이지.’

엄태욱과 한소영이 이혼했을 때, 별의별 지라시가 다 돌아다녔다.

그중 하나가 두 사람의 성생활이 신혼 초부터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철은, 이전 생에 지라시로 읽으며 그런가? 하고 넘어갔던 일을, 최근에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재벌로 모두에게 떠받들어질 때는 몰랐겠지. 연예인이며 모델이며 전부 자기 밑에 깔려서 흥분한 척했을 땐 상상조차 못 했겠지.’

서초동 트리니티빌라 A동 7층 안방에서 강철은 분명하게 확인했다.

흥분해서 잔뜩 부풀어 올랐음에도 번데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했던 엄태욱의 물건을.

‘하지만 비슷한 레벨의 환경에서 큰 재벌가 딸내미는 현실을 냉혹하게 알려줬을 거고 말이야.’

엄태욱은 생애 3차례에 걸쳐 자존감의 하락을 경험했다.

한 번은 지난밤, 양주 시멘트공장에서 조민석에게 농락당하면서.

또 한 번은 7월 말, 서초동 빌라에서 강철에게 생애 처음으로 폭행이란 걸 당해봄으로써.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신혼여행 때 자신의 번데기 같은 물건을 보고 실망한 한소영을 통해서.

‘여자한테 처음으로 무시당하고 나서 이상한 변태 성욕이 생긴 것 같은데…… 나한테 맞고 조민석에게 압도당한 결과로는 무슨 이상한 버릇이 생길까?’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씩 웃었다.

‘뭐가 됐건, 엄태욱이 이상해지면 이상해질수록, 한소영이 이상하면 이상할수록, 나한텐 이득이지.’

큰 흠결이 없는 사람은 강철과는 상극이었다.

음지에서 사람의 흠결을 찔러 기회를 만들고,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것이 강철의 스타일이었기에, 재벌 오너 일족의 하자는 크면 클수록, 이상하면 이상할수록 좋았다.

‘선만 안 넘어 줬으면 좋겠어. 특히 한소영은…….’

지금 강철이 바라는 건 하나였다.

자신이 한소영이나 엄태욱을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하물며 깡패들도 족보 따지는데, 재벌들이 심하면 더 심하지, 덜하진 않을 거니까.’

그렇게 강철은, 자신의 계획을 향해 한 걸음씩 점차 나아가고 있었다.

강철 회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