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부부 (2)
[무슨 일이야?]
강철이 전화를 받자, 유아영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저 지금 납치당하게 생겼어요.”
[뭐?]
“거목그룹에서 사람이 왔어요. 그 변태새끼가 좀 보자고, 같이 가자고 해요. 어떻게 하죠?”
그녀의 물음에 강철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 침묵은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조민석한테 연락해.]
곧, 강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민석 오빠한테요?”
[그래.]
“아, 아니 민석 오빠한테는 왜요?”
[연락하라면 연락해.]
그러면서 강철은 유아영에게 조민석과의 통화 시 할 말을 알려주었다.
그 모든 지침을 듣고서, 유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강철이 전화를 끊자 유아영은 떨리는 눈으로 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강철의 말대로 조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제법 길게 갔다.
‘안 받는 거 아니겠지?’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어, 무슨 일이야?]
다행히, 조민석은 전화를 받았다.
“오빠. 나 지금 큰일 났어. 거목그룹에서 나 납치하려고 하고 있어.”
[…… 뭐? 거목? 아니…… 왜?]
“그, 그게……”
유아영은 조민석에게 강철이 알려준 대사를 그대로 전달했다.
가만히 유아영의 말을 듣던 조민석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침묵했다.
그리고 곧, 그는 침묵을 깼다.
[지금 폰 배터리 얼마나 남았어?]
“배터리? 한 30% 정도?”
[여분은 챙겨 뒀지?]
“응. 챙겨뒀어.”
[그럼 지금 당장 배터리 갈아 끼우고, GPS 켜놓은 채로 나한테 전화 걸어 둬. 그래야지 내가 널 찾을 수 있으니까.]
“응. 알았어.”
[…… 미안하다. 내가 꼭…… 구하러 갈게.]
그렇게 조민석은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울컥함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민석이 알려준 대로 배터리를 교체한 후, GPS를 켜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둔 채 폰을 핸드백 안에 넣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신 겁니까?”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기다리던 최용대가 물었다.
그런 최용대를 향해 유아영은 경멸스럽단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답했다.
“똥 싸다 왔어요. 왜요? 아저씨 똥 패티시 있어요?”
상당히 공격적인 그녀의 언사에 최용대는 당혹스러워했다.
“…… 조용히 갑시다.”
그렇게 유아영은 최용대와 함께 카페를 나섰다.
4.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시는군.’
유아영과의 통화를 끝내고서, 강철은 활짝 웃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겠지.’
그는 곧장 곽기명에게 전화했다.
[야, 전화 받았슈.]
“어, 곽 사장. 나 지금 그쪽으로 내려갈 거니까, 준비해 둬.”
[뭘 준비해두라는 거유?]
“갇혀 있는 인간하고 면담 좀 해야겠어. 적당히 기분도 풀어줘야겠고.”
[아. 뭔 말인지 알것네유.]
“술은 위스키로 준비해 놔. 좀 독하고, 고급스러운 걸로.”
[허허. 다른 위스키는 필요 없나유?]
“술만 준비해 둬.”
[야, 알겠슈. 언제 내려오실 거유?]
“곧 출발할 거야.”
[야, 그럼 준비해두고 있것슈.]
통화를 끝내고, 강철은 곧장 오피스텔을 나섰다.
그리곤 김명길의 명의로 장기 렌트한 SUV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시나리오는 완벽해. 변수는 없어.’
강철이 바라는 시나리오에서 조민석도, 엄태욱도 그리고 한소영도 모두 필요한 배우였다.
그중 하나라도 이탈해선 곤란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이끌고 시나리오대로 거목을 먹고, 이를 발판삼아 재계에 진출하려면 그들은 서로 반목하면서 동시에 강철에게 의존할 필요가 있었다.
한소영과 엄태욱은, 따로 반목을 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이가 현저히 나빴다.
그랬기에 강철은 두 사람 사이에서 따로 이간질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문제는 조민석과 엄태욱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막 좋다고까진 못하더라도 또 나쁘다고 할 수도 없었기에, 강철은 두 사람 사이를 좀 벌려놓아야 했다.
그것에 필요한 전제 조건은, 엄태욱이 유아영에게 따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강철은 엄태욱에게 마약의 이름만 알려주고, 두 번째 치욕만 안겨줬을 뿐, 달리 연락처라든가 하는 건 남기지 않았던 것이었다.
‘유아영이 쓸데없는 애드리브를 치지 않고 대본에만 충실했다면, 내일 아침, 박용수가 복귀할 때쯤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돼 있겠지.’
7월 30일 금요일 밤, 서초동 트리니티빌라 A동 7층에서 엄태욱은 직접 유아영을 범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유아영과 박용수에게 눈앞에서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도록 강요했다.
박용수는 강하게 거부했고, 엄태욱은 그가 하지 않으면 개가 유아영을 범할 것이라며 위협했다.
박용수는 그 순간 눈이 돌아갔고, 그 자리에서 개를 때려죽이고 엄태욱을 구타한 뒤 도망갔다.
유아영도 그대로 빌라에서 도망쳤다.
박용수는 그 뒤로 잠적을 했고, 그녀는 두려움에 떨다가 다시 빌라로 복귀했다.
빌라에서 엄태욱은, 박용수를 잡아 죽이겠다며, 유아영에게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대신 오늘 있었던 일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유아영은 조민석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강철이 유아영에게 전해준 대본의 내용이었다.
‘이제 엄태욱이 무슨 말을 하건, 조민석은 그 말을 믿지 않겠지.’
유아영을 향한 조민석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강철은 그 진심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이제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범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조민석은, 자기 여자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동시에 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리한 요구를 한 것도 모자라, 총애하는 부하를 잠적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책임을 묻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긴 채 유아영을 다시 납치하기까지 한 엄태욱을 향해 엄청난 분노를 쏟아낼 것이다.
‘유아영을 사랑하는 만큼, 엄태욱이를 증오하게 되겠지.’
딱 하나, 강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박용수가 지나치게 충신처럼 묘사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게 어쩌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긴 했는데…… 박용수…… 운이 좋다고 해야 하려나?’
오늘, 8월 8일 일요일 밤, 강철이 원하는 것 중 하나-조민석과 엄태욱의 분열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내일, 8월 9일 월요일 점심 무렵이면 나머지 하나-한소영과의 연합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한 반년 정도만 기다리면…… 거목을 공격할 모든 것이 갖춰지겠지.’
강철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거목을 정리하면 그다음은 어디가 될까? 일신그룹은 이미 지주사 전환이 끝나서 공략하기가 쉽지 않고…… 시그니엘 그룹은 영원히 지주사로 전환할 수 없을 정도로 출자 구조가 더러워서 어떻게 손쓰기가 힘들고…….’
2020년이 되면, 한국 주요 재벌은 모두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사 체제로 시스템을 바꾸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계 서열 1위 삼우그룹과 2위 현성그룹은 엄청난 뒷말을 남기게 된다.
현성그룹은 단순히 뒷말만 남기고 조용히 넘어가지만, 삼우그룹은 새로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한 3대 회장 김태준이 3년간 옥고를 치를 정도로 심한 내홍을 겪기까지 했다.
‘보국그룹이랑 밀레니엄그룹도 승계 과정에서 말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목 이후 공략할 재벌을 떠올리던 와중에 강철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차가 신호 대기를 타며 잠시 멈춘 사이, 강철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긴장감이 떨어진 건가? 이제 겨우 거목그룹을 먹기 위해 필요한 말들을, 시나리오대로 극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배우들을 모으고 있을 뿐인데 벌써 일이 끝난 것처럼 다음 일이나 걱정하다니…….’
강철은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지금은 거목에 집중해야지.’
그렇게 강철은, 충청도까지 단숨에 내려갔다.
5.
8월 8일 일요일 저녁 10시.
경기도 양주시 외곽에 자리한 거목시멘트 양주공장.
“으으으으…….”
유아영은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풀어 헤쳐져 있었고, 눈가에는 멍이 들어 있었으며, 왼쪽 뺨이 상당히 부어올라 있었다.
“야이 썅년아, 그 새끼 불렀어? 왜 이렇게 안 와?”
그녀로부터 5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의자에 앉은 채 위스키를 마시던 엄태욱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물었다.
유아영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지금 10시거든? 딱 1시간 더 기다려보고, 그때도 그 새끼 안 오면, 너 오늘 저기 있는 새끼들한테 돌림빵 당할 줄 알아.”
엄태욱의 말에 유아영은 힘겹게 눈을 들어 공장 내부를 바라봤다.
족히 40명은 돼 보이는, 상당히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각자 손에 쇠파이프나 각목을 하나씩 든 채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40명이 1인당 2번씩만 싸도 씨발거 80번이네. 캬. 말 그대로 씨발 육변기가 되는 거지. 이 썅년아.”
엄태욱은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렸다.
“씨발, 차라리 개새끼한테 따먹히는 게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썅년.”
그렇게 그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콰아앙-!]
마치 폭탄 터지는 것 같은 소음과 함께, 공장 물자 반입용 셔터가 뜯겨져 나갔다.
셔터를 뜯은 건, 불도저였다.
“뭐야 저거?”
엄태욱은 갑작스러운 소음에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위스키를 떨어뜨렸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일어남과 동시에 불도저는 후진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불도저가 물러난 자리로, 엄청난 수의, 도끼와 회칼 등으로 무장한 건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저 새끼들 뭐야!”
“막아, 이 새끼들아!”
공장에 있던, 엄태욱이 강남과 용산 일대에서 동원한 건달들은 곧장 인의 장벽을 쳤다.
“뚫어!”
그 인의 장벽을, 쏟아져 들어온, 100명도 넘는 숫자의 건달들이 완력으로 뚫기 시작했다.
[푹-!]
[퍽-!]
회칼이 강남 건달의 허벅지를 쑤셨고, 도끼가 용산 건달의 인대를 찍어냈다.
애초에 숫자에서부터 차이가 난 데다가 밀고 들어오는 100명의 건달이 모두 작정하고 피를 볼 생각으로 덤벼들었기에, 승부는 쉽게 결정지어졌다.
두 건달패의 충돌은 10분이 채 되지 않아 100명의 승리로 종결지어졌다.
“이, 이 개새끼들이!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
곧, 100명의 건달들은 엄태욱과 최용대를 둘러쌌다.
엄태욱은 최용대의 뒤에 숨은 채 고함을 질러댔다.
“한 발짝이라도 다가오면, 그 사람 폐에 그대로 바람구멍 낼 겁니다. 목숨 소중한 줄 아십시오.”
최용대는 가스총을 꺼내, 마치 진짜 총인양 건달들을 겨누며 블러핑을 해댔다.
“개폼은 거기까지 잡읍시다.”
그렇게 양측 사이에 긴장감이 팽팽해졌을 때, 공장 내부에 중저음의 목소리가,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것 같은 두껍고 묵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엄태욱을 포위하고 있던 건달들의 인의 장벽 일부가 허물어지며 갈라졌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으로, 조민석이 들어왔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