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부부 (1)
1.
8월 7일 토요일 오후 5시.
종로구 거목그룹 본사 20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엄태욱은 최용대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눈에 띄게 초췌한 안색으로,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듯, 계속해서 다리를 떨고 있는 엄태욱에게 최용대는 자신이 그간 조사한, 대산그룹 내부 권력 투쟁 및 조민석과 그 측근 그룹에 관한 정보를 읊었다.
“조민석이 회장이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직 내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과거 천호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일부 깡패들의 증언에 의하면 조민석에게 새로운 조력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 조력자가 엄태욱을 구타하고, 그에게 마약을 강제로 먹인 사람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최용대는 말했다.
“확실해?”
엄태욱의 물음에 최용대는 침을 꿀꺽 삼켰다.
“거, 거의 확실합니다.”
“거의?”
엄태욱은 핏발선 눈으로 최용대를 노려봤다.
최용대는 몸을 바짝 움츠린 채 눈을 감았다.
“…… 됐고. 그래서, 그 새끼 관련된 정보는 더 추가로 얻은 건 없고?”
평소와는 달리 폭력이나 욕설이 날아들지 않자 최용대는 더 불안해했다.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때 같이 온 년은? 그 년이 그 새끼랑 알고 있는 모양이던데?”
“여자에게는 따로 감시자를 붙여뒀습니다만…… 워낙 집에서 잘 안 나와서…….”
“야이 개새끼야! 내가 변명 들으려고 이 시간에 너 부른 것 같아!”
결국 엄태욱은 폭발했다.
“죄송합니다.”
“유인하건, 납치하건 뭘 하란 말이야! 이 개새끼야!”
“화, 확실히 하겠습니다.”
엄태욱은 한동안 씩씩거리다가, 이내 다시 축 처졌다.
‘씨발…… 이게 그 위스키인지 지랄인지 하는 약 부작용인가?’
최근 엄태욱은 부쩍 우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 우울감의 근원이 강철이 자신에게 먹인 ‘위스키’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 내가 말한 그 약은?”
“그…… 최대한 수소문을 해봤는데…… 물량이 없다고 합니다.”
“물량이 없다?”
엄태욱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기에, 살짝 손을 오므린 수준이 됐다.
‘그 썅년하고 분명 아는 사이야. 조민석이 모르게 따로 떡치는 사이건, 아니면 다른 뭐건 그년만 어떻게 확보하면…… 그러면…….’
엄태욱은 최용대에게 말했다.
“…… 조민석이 애인이라는 년…… 그년 내일 밤까지 잡아다 놔.”
“내, 내일 밤까지 말씀이십니까?”
엄태욱은 최용대를 노려봤다.
최용대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야무진 애들로 한 40명 정도 준비해서…… 양주 쪽에 있는 시멘트 공장에 모아놔. 그 썅년하고 같이.”
“…… 알겠습니다.”
같은 시각, 종로구 평창동 엄태욱의 집.
“이게 전부예요?”
한소영은 자신의 방에서 박 비서로부터 강철에 관한 조사 보고를 받고 있었다.
“네, 최대한 알아봤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한소영은 가만히 보고서를 바라봤다.
‘핸드폰은 노숙자 명의로 개통한 대포폰이고…… 피트니스 클럽 CCTV는 딱 그 시간대 것만 지워져 있다?’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접근이다.
한소영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누굴까?’
그녀는 보고서를 원탁에 내려놓고, 박 비서에게 나가보라 손짓했다.
박 비서가 나가자 그녀는 가만히 이마를 손으로 짚은 채 눈을 감았다.
‘거목을 노린 걸까? 아니면…… 일신?’
거목을 노린 것이라면, 당장 용의 선상에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윤씨 일가…… 걔들이 이 정도 역량이 있나?’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엄태욱의 외사촌들이었다.
엄근식의 여동생 엄영자가 과거 군부 실세였던 윤 장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들.
소위 윤씨 트로이카라고 불리며, 장남은 군대에서, 차남은 국정원에서 그리고 삼남은 금융권에서 인정받는 존재이긴 했다.
그러나 그들 자체 역량으로 거목에 이 정도 스파이를 심어둘 수는 없다는 게 한소영의 판단이었다.
‘아니면 이사들?’
두 번째 용의자는 거목그룹 이사들이었다.
엄태욱이 회장이 되더라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은, 더 나아가 엄태욱의 머리 위에서 그를 조종하며 더 큰 권력을 얻고 싶은 게 현재 엄근식과 함께 거목을 이끄는 이사들의 마음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이라면, 충분히 이럴 만한 동기가 있었다.
그리고 능력도 있었다.
‘문제는 그 영감들이 나한테 엄 전무의 약점을 알려줄 이유가 없다는 거지.’
만약 거목이 아니라 일신그룹을 노린 것이라면, 여기서부턴 아예 용의자 자체를 특정하기가 힘들었다.
‘이미 오빠가 지분 대부분을 물려받은 상태에서…… 구태여 나한테? 왜? 아니, 애초에 엄 전무 약점으로 일신을 어떻게 흔들 수나 있을까?’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의자에 허리를 기댄 채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허벅지와 허리에 닿았던 강철의 손길을 떠올렸다.
잠시 눈을 감고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녀는 그것을 즐겼다.
그러다가 그녀는 폰을 꺼냈다.
그리곤 자신에게 날아온, 엄태욱의 변태 성욕 고백이 담긴 문자의 발신 번호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아니야……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어.’
전화를 할지 말지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강철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음이 갔고, 그녀가 막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강철은 전화를 받았다.
[관심이 생기셨나? 한소영 씨?]
2.
미끼를 던지고, 떡밥까지 뿌린 다음, 강철은 가만히 기다렸다.
물론 그게 마냥 놀았다는 건 아니었다.
강철은 우선 김명길과 최병천에게는 상해탄 천호본점의 계열 분리를 가속화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서용태에게는 잠실 조민석의 아파트와 서초동 트리니티빌라, 논현동 빌라 포럼 그리고 압구정동 피트니스 클럽 ‘머슬 살롱’의 CCTV 영상 중 자신이 나온 것은 모두 지울 것을 지시했다.
덕분에 상해탄 천호본점의 대산식품으로부터의 계열 분리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강철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은 영구적으로 삭제됐다.
그사이, 떡밥을 뿌린 지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물고기들이 모두 미끼를 물었다.
정체를 숨긴, 그저 VIP라고만 알려진 존재가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위스키’를 찾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곽기명으로부터 들어왔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그리고 지금, 두 번째 물고기는 직접 강철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관심이 생기셨나? 한소영 씨?”
느긋하게 시간을 끌고 나서, 강철은 한소영의 전화를 받았다.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더라고?]
“그러시겠지. 백년해로를 약속한 남편의 은밀한 취향을, 마땅히 아내로서 알고 싶었겠지.”
[말은 정확히 해야지. 정확한 물증을 보고 싶었던 거지.]
강철은 씩 웃었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 전화상으로 물어본다고 대답해줄 생각은 당연히 없겠지?]
“뭐, 못 해줄 것도 없기는 한데…… 공짜로 해주기엔 아무래도 그쪽이 가진 게 많아서 말이야.”
[역시 뭔가를 원하고 있었네. 뭘 원해, 돈? 일자리? 아니면 뭐 거목그룹의 비밀?]
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도 전화상으론 말하기 싫으시다?]
“오케이, 정확해.”
[선이 확실하시네?]
“내가 선 하나는 확실하게 긋고 사는 스타일이거든.”
[좋아. 내일 시간 어때?]
“내일은 내가 좀 곤란하고, 월요일 저녁으로 하는 게 어떨까?”
[시간은 그쪽이 정했으니, 장소는 내가 정해도 되겠지?]
“그렇게 하시든지.”
[알았어. 내일 저녁에 알려줄게.]
“이왕이면 좀 조용한 곳이었으면 좋겠어.”
[참고하지.]
그렇게 한소영은 전화를 끊었다.
강철은 폰을 내려놓고, 담배를 한 대 물고서 불을 붙였다.
‘자, 엄태욱이. 당신 마누라는 나한테 직접 연락을 했는데, 그쪽은 어떻게 할 생각이실까?’
강철은 일부러 엄태욱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위스키의 중독성과 부작용이 곽기명이가 말한 대로라면 아마 분명 어떻게든 나하고 연락을 하려고 하겠지.’
강철의 번호는 물론, 그의 이름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엄태욱이 그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조민석 아니면 유아영을 노릴 건데…… 아마 조민석보단 좀 더 난이도가 낮은 유아영이 타겟이 되겠지.’
강철은 다시 폰을 들어 서용태에게 전화했다.
[네, 고문님.]
“저번에 내가 말해둔 그거, 준비는 다 됐나?”
[아, 네. 내일 아침 중으로 인천항 지나서 온다고 합니다.]
“성능 확실한 거 맞지?”
[네, 고문님. 성능 하나는 확실합니다. 짱개 새끼들 말로는 자기네 정보부에다가도 납품하는 거라고 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에 써보고 성능 구리면, 안경값만큼 맞을 줄 알아.”
[아…… 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 됩니다.]
그렇게 강철은, 하나씩 준비를 끝마쳐 갔다.
3.
8월 8일 일요일 오후 5시.
유아영은 청담동 카페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며 강철과 통화하고 있었다.
“어제부터는 아예 집에도 안 들어와요. 말로는 뭐 회사 일이 바빠서 근처 호텔에서 출퇴근한다는데…….”
[뭐, 일이 많긴 하지.]
“바지사장 아니에요?”
[완전 바지는 아니야. 그래도 회장으로서 결제해야 할 게 많아. 대산이 뭐 동네 양아치 조직인가?]
“아무튼…… 민석 오빠한테는 언제쯤 그날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왜? 다시 조민석이랑 예전처럼 지내고 싶나?]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단…… 좀 그렇잖아요. 있지도 않았던 일 가지고 계속 이러는 게.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 밖에서 안 들어오고, 들어와도 각방 쓰고 하면 제가 그쪽한테 쓸모없어지지 않겠어요?”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계속 하던 대로 하기나 해.]
강철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자,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폰 화면을 바라보더니, 이내 그걸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더 빨대로 빨아 마셨을 때, 갑자기 4명의 남자가 그녀가 앉은 테이블 주위를 둘러쌌다.
“누, 누구세요?”
유아영은 당황하며 폰을 먼저 챙겼다.
“유아영 씨?”
그때, 4명의 남자 사이를 뚫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 사람…….’
최용대였다.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엄 전무님 비서 최용대입니다.”
“아…… 네. 기억나요.”
“엄 전무님께서 유아영 씨를 꼭 뵙자고 하십니다.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최용대는 미소를 지으며 매너 있게 유아영에게 말했다.
그러나 유아영은, 그 미소와 매너가 얼마든지 무서운 표정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네, 알겠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냥 따라가진 않았다.
“근데 화장실부터 먼저 갔다 오면 안 될까요? 제가 지금 좀 급해서 그런데.”
그 말에 최용대는 살짝 당황했다.
“으음…… 최대한 빨리 다녀오십시오.”
화장실이 급하다는데, 막을 수는 없었다.
유아영은 그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폰을 들어 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