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60화 (60/175)

060 얼굴 없는 여자 (4)

8.

『일신 한 회장 차녀 한소영. 나이는 올해로 서른아홉이고, 남편은 뭐 아시다시피 엄태욱 전무입니다. 둘 사이에 따로 자식은 없는데, 당연히 금슬은 안 좋습니다.』

100만 원짜리 수표 10장의 힘은 대단했다.

태극일보 정치부 최병욱 기자는 강철에게 거목그룹 오너 일가에 관한, 세간엔 공개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정보를 모두 알려주었다.

『한소영 씨가 엄 전무랑 이혼하고 싶어 한다는 건, 재계에서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단지, 한 회장이 자기 명예를 위해 결사반대하고 있어서 못하고 있을 뿐이고 말입니다.』

그러나 고급 정보라곤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대중에게 공개될 정보였다.

그것을, 지난 생에 2014년자 뉴스를 통해 알고 있던 강철은, 다른 걸 물었다.

『한소영 씨가 좋아하는 게 뭐고, 싫어하는 건 뭐요?』

그 물음에 최병욱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마술이랑 라벤더 향. 이 2개를 특히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뭐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린 블랙커피를 좋아한다고도 하고, 달달한 화이트와인을 좋아한다고도 하고. 아무튼 그 정도입니다.』

그래서 강철은, 그녀와의 첫 대면에서 초능력을 마술로 포장해 보여주었다.

‘사람의 인지 능력은 자기가 알고 있는 선, 그 이상을 넘질 못하지.’

2022년 11월, 인류 문명이 붕괴되고 1년이 지난 2023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세상에 초능력이란 것이 나타났다.

인류는 그때부터 초능력의 존재를 인지하고 수용했다.

그 이전까진, 전혀 그런 걸 수용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마술 같잖아. 초능력 자체가.’

강철이 준비한 건, 일단 ‘마술’ 뿐이었다.

라벤더 향이라든가, 핸드드립 블랙커피라든가, 화이트와인이라든가 하는 건 아직 준비할 때가 아니었다.

“너 도대체 누구야? 누군데…… 누군데 내 뒤를 밟은 거야?”

자신의 이름을 말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라벤더 향까지 풍기면 100% 의심할 수밖에 없지.’

강철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선, 한소영을 향해 말했다.

“말했잖아. 마술사라고.”

“헛소리하지 말고. 도대체 누구야? 누가 붙인 거야? 혹시…… 엄 전무야?”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엄 전무’라는, 굉장히 딱딱한 공식적인 호칭으로 불렀다.

‘내일 당장 이혼해도 이상하지 않을 커플이구만.’

강철은 피식 웃었다.

“내가 엄태욱이 같은 놈 말 듣고 일할 사람 같나?”

한소영은 입을 다물었다.

‘뭐야?’

그녀는 강철의 한마디에서, 그리고 그 말에 동반된 표정에서, 엄태욱을 향한 강철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뭐지? 도대체 뭐 하는…… 설마 아버지가? 아니야…… 아버지가 나한테 미행을 붙일 이유 같은 건…….’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강철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그리곤 동영상 하나를 재생시키곤, 그녀의 눈앞에 폰을 들이밀었다.

[넌 내가 아니라 우리 똘똘이를 만족시켜주면 돼. 그리고 나는 너하고 똘똘이가 떡치는 거 보면서 딸딸이나 치면 그만이고.]

엄태욱이 자신의 변태 성욕을 고백하는 짧은 동영상을 보고서, 한소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걸 보여주고, 나한테 돈이라도 얻어내려는 거야?”

한소영은 팔짱을 꼈다.

“어떻게 저 인간을 찍었는진 모르겠는데, 사람 잘못 봤어. 내가 저 인간을 위해서 돈을 쓸 것 같아?”

한소영의 말에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야말로, 사람을 잘못 봤어. 내가 이걸로 당신에게 돈을 요구할 것 같나?”

“그럼, 뭘 요구하려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거야.”

“뭐?”

한소영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봤다.

강철은 폰으로 한소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이잉-!]

뒷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폰을 한소영은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강철이 보낸, 엄태욱의 변태 성욕 고백이 담긴 동영상을 확인하곤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소영은 다시 고개를 들어 강철을 바라봤다.

“어?”

그러나, 강철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9.

[서울 쪽 공급책이 위스키 좀 달라고 하는디, 혹시 그짝에다가 뭐 푸셨나유?]

곽기명의 물음에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샘플 하나 풀었지.”

[워쩐지, 우리가 위스키를 서울에다가 판 적은 없는디 말여유. 저어기 섬에 팔려간 여자애들한테나 먹이는 건디. 그래, 누구한테 풀었슈?]

“그건 알 필요 없고, 일단 당분간 물량 잠가 놔. 그 정도는 괜찮겠지?”

[괜찮어유. 어차피 우리 주종목은 히로뽕이어유.]

“그래. 아, 그리고 보내준 애들, 잘 받았어. 다들 훌륭하더군.”

[서울에서 특별히 보내달라는디 당연히 제일 잘 빠진 애들로 보내야쥬. 야무진 애들이니께 잘 써 보셔유.]

“그래, 그렇게 하지. 박용수는 어때?”

[개 한 마리 보내주니께 고놈하고 잘 놀고 있더구만유.]

“뭐, 특별한 건 없고?”

[강 선생허고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하네유. 자기가 알고 있는 걸 말해주겠다고.]

그 말에 강철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며칠 내로 한 번 내려가지.”

[야.]

강철은 전화를 끊었다.

‘박용수…… 웃기는 인간이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감금한 주체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의리가 없는 인간인 건 잘 알고는 있었지만…….’

박용수가 누군가의 끄나풀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이제 많이 누그러졌다.

그렇다기엔, 그의 행보 자체가 너무도 평범했다.

그러나, 확실히 그가 조민석에 대한 의리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조민석은 자기를 이사 자리로 올리려 했는데…… 정작 자기는 조금만 위협당해도 조민석한테 위험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한다라…….’

새삼 김명길이 대단한 사람이라 강철은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그런 의리를 가진 사람 찾기란 흔치 않지.’

강철은 폰을 내려놓고, 시선을 노트북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엄태욱과 한소영에 관해 그가 정리해둔 워드 파일이 떠올라 있었다.

‘조만간 이 둘에게서 연락이 오겠지. 한 사람은 마약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은 정보 때문에.’

강철이 두 사람에게 뿌린 건 떡밥이었다.

‘엄태욱도, 한소영도 모두 필요해. 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려면.’

대산그룹과는 달리, 거목그룹은 한 번에 집어삼키기가 어려웠다.

대산처럼 비상장회사인 것도 아니었고, 세력구도가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대산은 강대산과 박경채 라인을 제거하고, 지방 주주들만 축출하면 장악할 수 있었지만, 거목은 그런 식으로 먹을 수 있는 기업이 아니었다.

‘2010년 현재 자산총액 11조, 2022년 자산총액 22조. 재계 서열 17위. 쉽게 먹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

그렇기에 강철에게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계획에서 엄태욱과 한소영은 반드시 확보하고 가야 할 말이었다.

‘그나저나 조민석이랑 엄태욱은 아직도 정보 교류를 안 하고 있나?’

강철은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폰을 들어 위치추적 프로그램을 켰다.

먼저 그는 조민석의 번호를 입력했다.

조민석은 송파구 대산그룹 본사에 있었다.

그다음으로 강철은 엄태욱의 번호를 입력했다.

엄태욱은 남산 가야호텔에 있었다.

‘흐음…….’

혹시나 싶어 엄태욱의 불쌍한 비서 최용대의 번호도 입력해 봤지만, 엄태욱의 따까리답게 그도 남산 가야호텔에 있었다.

‘유아영이 날 속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조민석은 아직도 엄태욱한테 연락을 하지 않은 건데…….’

강철은 피식 웃었다.

‘자기 자리 지키려고 자기가 선택해놓고, 막상 직접 묻기는 부끄러워서 입을 닫고 있다라…… 조민석…… 큰 인물이 될 그릇은 확실히 아니야.’

10.

8월 5일 목요일 밤 10시.

“왔어?”

유아영은 퇴근하는 조민석을 현관에서 마중하며 그에게서 가방을 건네받으려 했다.

그러나 조민석은 가방을 건네지 않았다.

대신 그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유아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유아영은 그렇게 말하며 자기 얼굴을 쓱 쓰다듬었다.

조민석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영이 너…… 혹시 그날…… 그러니까…… 그날…… 집으로 돌아올 때 용수랑 같이 왔니?”

조민석의 물음에 유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같이 왔지.”

“혹시…… 그 이후로 용수랑 따로 연락한 적은 없고?”

“내가 용수 실장이랑 왜 연락을 해?”

“그래?”

“왜, 무슨 일 있대?”

“응? 아…… 아니야. 그냥…… 용수가 좀 이상해 보여서…….”

“그래?”

조민석은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안방이 아닌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조민석이 그쪽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유아영은 조심스럽게 폰을 꺼내 강철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들어오자마자 용수 실장에 관해 물어봄 일단 시킨 대로 대답함>

한편, 조민석은 작은방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바닥에 집어 던지곤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파트 CCTV는 딱 그날 분량만 지워져 있어. 만약 아영이가 거짓말을 말하는 게 아니라면…… 용수를 납치한 누군가가 지웠다는 건데…….’

조민석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지방 주주들이 납치했다면 분명 나한테 연락을 했겠지. 애초에 그 양반들한테 그럴 역량도 없겠지만.’

비록 허수아비 수준이라곤 하지만, 어쨌건 조민석이 회장이 된 후로 대산 내외에서 그를 위협할 세력은 강철을 제외하면 전무했다.

‘강철…… 그 인간이 용수를 납치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 내 영향력을 여기서 더 빼려고 납치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나한테 연락을 했을 건데?’

조민석은 폰을 꺼냈다.

그리고 강철이 이전에 보냈던, 김태영과 박경채의 고어한 사진을 꺼내 보았다.

만약 강철이 박용수를 납치했다면, 아마 이 컬렉션에 박용수의 사진도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조민석은 폰을 내려놓았다.

‘아니면…… 거목에서?’

조민석은 다시 폰을 들었다.

그리곤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최용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음 끝에, 최용대는 전화를 받았다.

[네, 조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 최 비서님. 바쁘십니까?”

[조금 여유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 그…… 좀 늦었긴 하지만…… 그날 엄 전무님께서는…… 어떻게 잘…… 그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셨나 해서 말입니다.”

차마 직설적인 단어는 꺼낼 수가 없어 최대한 조민석은 돌려 말했다.

[아, 네. 안 그래도 전무님이 조 회장님께 고맙다며, 곧 선물을 보내드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요즘 저도 일이 바빠서 미처 말씀드리질 못했습니다. 하하.]

최용대의 반응에 조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조민석은 더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강철도 아니고, 거목도 아니면 도대체 뭐야? 뭐, 어디서 퍽치기라도 당하고 무연고 사망자 처리라도 된 거야?’

당장에 풀리지 않는 의문에, 조민석은 그저 한숨만 폭폭 내쉬며 머리만 감싸 쥘 뿐이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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