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57화 (57/175)

057 얼굴 없는 여자 (1)

1.

8월 1일 오전 8시.

일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조민석은 회사로 출근해 회장실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서류로 향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다.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거지?’

7월 31일 토요일 새벽 5시.

유아영은 귀가했다.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피곤하고 초췌해 보이는 얼굴로 돌아온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그날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잠만 잤다.

차마 조민석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접대는 잘했느냐, 엄 전무로부터 무슨 언질이 없었느냐 하는 것 따위를 물을 수가 없었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비록 유아영이 자처한 것이라곤 하지만, 어쨌건 자신의 여자를 자신의 자리를 위해 권력자에게 내준 건 그의 결정이었으니까.

차마 조민석은 직접 물을 수 없었다.

유아영도 조민석에게 그 일에 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양, 잠에서 깬 후로는 평소처럼 조민석에게 행동했다.

심지어 토요일 밤에는 조민석의 품에 안기려고까지 했다.

그게 조민석을 더 힘들게 했다.

조민석은 그녀를 거부했고, 지난밤 그는 작은방에서 따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부리나케 그녀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회사로 나왔다.

‘엄 전무 성격이라면 분명 뭐라 말이 나와도 나와야 하는데…… 아니면 하다못해 최 비서한테서라도…….’

유아영이 아무 말 없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조민석은 오히려 그걸 더 다행으로 여겼다.

그녀에게 직접 금요일 밤의 접대 일을 듣는 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니까.

문제는 엄태욱 측으로부터도 아무런 언질이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 묻기도 그렇고…….’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용수는 또 왜 연락 두절이지?’

토요일까지는 이런저런 정신적 혼란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지만, 오늘 출근하면서 조민석은 비로소 박용수의 부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아침에 출근하고 나서, 조민석은 습관적으로 박용수를 찾았다.

그러나 박용수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상해…… 뭔가 이상해…….’

조민석은 분명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의 사고는 확장되지 못했다.

상처 입은 수컷의 자존심이 일시적으로 그의 판단력을 마비시킨 까닭이었다.

‘밥이라도 어디서 먹고 생각을 좀 정리해 보자고.’

조민석은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박용수를 대신해 자신을 임시로 수행하게 된 젊은 비서와 함께 회사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이름이 뭐라고?”

차를 타고 갈 거리는 아니었기에, 살살 걸어가면서 조민석은 비서에게 이름을 물었다.

“양선호입니다.”

“누구 밑에서 생활했지?”

“아, 네, 그 이영훈 형님 밑에서 생활했습니다.”

“이영훈? 아, 용수 고향 후배?”

“네, 맞습니다.”

“그래, 족보가 나름 탄탄하구만. 앞으로 잘 해봐.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올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회사 근처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찰칵-!]

그리고 그 모습을 한 남자가 카메라에 담았다.

3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조민석의 행보를 촬영한 남자는, 카메라에 찍힌 사진 상태를 확인한 후 곧장 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최 비서님. 조민석이 지금 부하하고 설렁탕집 들어갔습니다. 안으로 들어갈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대기하고 있다가 나오면 다시 찍겠습니다.”

2.

“박용수는 어쩌고 있지?”

[어제까지 개 염병을 떨어대다가 지금은 좀 잠잠하다고 하네유. 감시하는 애들한테 담배 심부름시키면서 주리는 가져 라고 한다는디 그딴 걸로 회유가 될 거라 생각하나봐유.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주리?”

[아, 잔돈을 부산에선 주리라고 불러유.]

“곽 사장 당신 충청도 사람 아닌가?”

[엄니가 부산 사람이라서유.]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강철은 더는 묻지 않았다.

“아무튼, 박용수 감시 잘하고 있어. 조민석 수발들면서 굉장히 높은 직위까지 올라간 인간이니까. 절대 경시하진 말고.”

[걱정마셔유. 우리가 사람 한두 번 감금해본 것두 아니구.]

“그리고, 저번에 말한 애들은 언제쯤 올려보낼 생각이지?”

[서울로 임대 보낸다니까 너두나두 가겠다고 허는 바람에 선별작업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어유.]

“그래, 되도록 다음 주 수요일 안에는 왔으면 좋겠네.”

[알겠구먼유.]

강철은 곽기명과의 통화를 끝냈다.

그리곤 곧장 유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긴? 조민석은?”

[출근했던데요?]

“출근?”

[네. 회사 갈 때 들고 가는 가방이 없어진 거 보면 출근한 거겠죠.]

“일요일에도 출근을 했었나, 원래?”

[뭐, 접대하러는 종종 갔는데…….]

강철은 피식 웃었다.

“아무튼, 감시 잘하고 있어.”

[알았어요. 저기 근데…… 진짜 괜찮겠어요? 재벌을 그렇게 두드려 팼는데?]

“괜찮아. 당신은 거목 신경 쓰지 말고, 조민석이나 계속 신경 써.”

[알았어요.]

유아영과 통화를 끝내고, 강철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나는 확실히 괜찮지. 문제는 그쪽이랑 조민석이지.’

엄태욱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철에게 구타라는 걸 당해봤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아랫사람에게 행하던 폭력을 역으로 당해서 그런지, 아니면 약에서 방금 깨서 그랬던 건지, 분명 토요일 새벽 엄태욱의 태도는 약간 누그러져 있긴 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러나 강철은 확신했다.

곧 엄태욱 쪽에서 어떤 식으로든 액션을 취할 거라고.

‘성격이 지랄 맞은 거랑 별개로, 적을 상대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인간이니까.’

이전 생에, 강철은 신문과 뉴스 그리고 책을 통해 거목그룹 3세 승계 과정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엄태욱은 거목의 유일한 후계자였기에 상속 자체는 태어나자마자 거의 확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잡음 없이 스무스하게 회장 자리에 오른 건 아니었다.

외사촌들의 방해도 있었고, 엄태욱을 길들이려던, 엄근식과 함께 거목을 이끌었던 이사들의 공작도 있었다.

그러나 엄태욱은 그 모든 것을 물리치고 2017년, 당당하게 회장직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장난질을 하던 이사들과 외사촌들은 모조리 숙청당해 일부는 감옥에 갔고, 일부는 해외로 도피하듯 이민을 가야 했다.

‘곽기명이 말대로라면 금단증상은 사흘 내로 나타난다고 했어.’

엄태욱의 역공에 대비해, 그리고 거목그룹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강철에게 필요한 무기는 3가지였다.

첫 번째 무기는 합성마약 ‘위스키’였다.

오로지 충청도의 곽기명 패거리만이 제조하여 판매하는, 환각과 진정 효과를 동시에 일으키는 이 약물이 엄태욱의 목에 채워질 목줄이 될 터였다.

‘기본적으로 약에 중독이 되고, 그 약의 공급책이 나 하나뿐이게 된다면, 엄태욱의 행동에는 상당히 많은 제약이 생기겠지.’

강철은 창가로 가서 일요일 아침 길동 거리를 내려다보며 최병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강 고문님.]

“아, 최 감사. 식사는?”

[네, 대충 먹었습니다. 고문님은 드셨습니까?]

“뭐, 천천히 먹어야죠. 그건 그렇고, 세탁기 장부는 어디까지 확인하셨습니까?”

[네, 어제 2009년도 것 다 봤고 지금 2008년도 것 보고 있습니다.]

“뭐가 좀 나왔습니까?”

[대산그룹 자체 돈세탁 말고 외부에서 받은 거로 보이는 게 상당수 발견이 됐습니다. 그중 하나를 추적했는데, 거목건설 상무이사 명의였습니다.]

강철은 씩 웃었다.

“2007년 자료까지만 조사한 다음에, 그 외부 돈세탁 의심 계좌들 따로 정리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강철은 씩 웃었다.

‘역시, 대산에 돈세탁을 맡겨놨던 모양이네.’

강철은 조민석과 엄태욱이 단순히 원청과 하청의 관계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조민석이 너무나도 쉽게 엄태욱과 만났던 것에서, 강철의 생각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랬기에 그는 최병천에게 대산 돈세탁 장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해두었다.

‘그러니 그렇게 조민석이랑 쉽게 만나줬던 거겠지. 누구 돈일까? 자기 돈? 아니면, 엄근식 회장 돈?’

두 번째 무기는 바로 그 장부였다.

거목그룹의 비자금 및 오너 일가가 명의신탁한 주식에 관한 자료만 확보한다면, 엄태욱을 넘어서 엄근식까지도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엄태욱이 마누라하고만 접선하면 완벽한 전력이 갖춰지는 건데…….’

강철은 폰을 꺼냈다.

그리곤 인터넷에다가 ‘한소영’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동명이인의 연예인, 교수, 정치인의 이름만 나올 뿐이었다.

‘역시…… 자기 정보는 철저히 감췄네.’

옛날 기사를 찾고서야, 비로소 강철은 97년도 기사 하나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일신그룹 한경석 會長 次女 한소영 氏, 거목그룹 엄근식 會長 獨子 엄태욱 氏와 약혼>

물론 그 기사에도 사진은 없었다.

‘이혼 소송할 때조차도 자기 사진은 결코 외부로 유출하지 않았으니까.’

마지막 무기는 엄태욱의 부인이자 일신그룹 오너 일가의 일원인 한소영이었다.

‘미끼를 던지면, 뭐 알아서 달려들겠지. 그럴 상황일 거니까.’

강철은 씩 웃으며 담배를 태워댔다.

3.

8월 1일 일요일 밤 11시.

강남구 논현동 고급 빌라 ‘포럼’ 8층.

“들어가시면 됩니다, 전무님.”

최용대의 말에 가운을 입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보드카를 마시던 엄태욱이 벌떡 일어났다.

안방으로 들어가던 엄태욱은, 고개 숙인 채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최용대를 보며 발걸음을 잠시 멈추곤 말했다.

“고개 들어봐, 새끼야.”

최용대는 고개를 들었다.

엄태욱은 그의 왼쪽 눈에 생긴 멍을 오른손으로 살짝 만지더니, 이내 주먹을 쥐고는 그대로 최용대의 옆구리를 때렸다.

“커헉-!”

최용대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자 엄태욱은 고함쳤다.

“나 수행한다는 새끼가 여태까지 멍도 안 지우고 뭘 한 거야!”

“죄, 죄송합니다.”

“너 내가 끝내고 나왔을 때, 그 멍 또 보이면, 반대쪽에도 똑같은 거 만들어준다.”

엄태욱은 그렇게 최용대에게 삿대질하며 경고하곤 안방으로 들어갔다.

“월-!”

“월-!”

“컹-! 컹-! 컹-!”

방에는, 개처럼 분장한 알몸의 남자 셋이, 줄 달린 개목걸이를 찬 채 개소리를 내며 엄태욱을 반겼다.

그들은 진짜 개처럼 엄태욱을 보며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강아지들이 너무 귀엽고 섹시하네요, 전무님.”

그리고 침대에는, 빨간 오프 숄더 원피스를 입은 거목건설 전속모델이 허벅지를 살짝 드러내 보이며 누워있었다.

“들었지? 이 개새끼들아?”

엄태욱의 말이 끝나자, 세 명의 개 분장을 한 남자들은 기어서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세 남자와 한 여자가 벌이는 쇼를 엄태욱은 직관하며, 불편해진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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