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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54화 (54/175)

054 엄태욱 (1)

1.

7월 24일 토요일 새벽 1시.

[아니, 뭐 그딴 새끼가 재벌이래?]

강철은 담배를 태우며 유아영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나보고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골빈년처럼 생겨서 더 사람 꼴리게 하네, 진짜 이렇게 말했다니까요?]

유아영은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리고 민석 오빠한테는 계속 어이 조민석이, 어이 조민석이, 이러더라니까요? 아니 검색해보니까 69년생이던데 그래도 돼요?]

강철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유아영의 말에 별다른 응답은 하지 않았다.

[아니, 호텔 종업원 정강이는 왜 때렸는지도 모르겠고, 수행비서한테 기본적으로 개새끼야, 씨발놈아 이런 욕을 하질 않나…… 아니 뭐 그딴 게 다 재벌이래요? 아니 대산 사람들보다 더 깡패같아요.]

“됐고, 그래서 조민석하고 엄태욱이 그 둘이 무슨 이야기 했어?”

유아영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에휴. 민석 오빠가 거목이 개입해서 대산 이사회 해체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것 말고는?”

[혹시 가능하면 그 누구였지? 여당이었나, 야당이었나? 거기 대표인가 뭔가 아무튼 정치인 좀 소개해달라고도 했어요.]

“그래서, 엄태욱이가 해주겠다고 했나?”

[아니, 그 미친 새끼 진짜.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든가.]

유아영의 목소리에는 경멸과 분노, 수치심 같은 게 깔려 있었다.

[나랑 자게 해주면 생각해보겠대요. 아니 그거 완전 미친놈 아니에요?]

강철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을 일이 아니에요. 아니, 거목이 대산한테 제일 하청 많이 주는 재벌이라면서요? 그런 곳의 3세가 인간 쓰레기라니까요?]

“조민석은 거기다가 뭐라고 하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얼굴만 시뻘게졌어요.]

“그걸 보고 엄태욱이가 가만히 있던가?”

[그 개새끼가 차에 타면서 한 말이라서 아마 못 봤을 거예요, 오빠 표정. 진짜 주먹 한 방 날릴 표정이었다니까요.]

일단 들을 이야기는 다 들었기에, 강철은 계속해서 조민석을 주시하라 유아영에게 지침을 하달한 후 전화를 끊었다.

‘엄태욱이…… 책에서 본대로 대단한 인간이구만.’

거목그룹 엄태욱.

1969년생인 그는 3대 독자이자 여자 형제조차 없는 외동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일찌감치 거목의 3세대 지도부를 이끌 후계자로 낙점된 사람이었다.

그게 원인인지, 아니면 어떤 정신질환적 문제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엄태욱은 어릴 때부터 망나니로 재계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망나니 행각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건 그가 정식으로 거목그룹 회장이 돼 경영권을 승계받았던 2017년이었다.

그를 3년간 수행하며 온갖 모욕적이고 인격 말살적인 갑질을 묵묵히 견뎠던 비서가 구조조정 당한 후 언론에 그의 행실을 폭로하고 정식으로 검찰에 고소장을 넣으면서 그는 회장으로 취임함과 동시에 경멸적인 별명을 얻게 됐다.

욱하는 회장님.

그리고 엄태욱은 세상이 망하기 전까지 그 별명을 떨치지 못했다.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긴 했다만…… 섹스 취향도 굉장히 엽기적이었다고 하던데…… 뭐, 조만간 확인할 수 있겠지.’

세상이 멸망하기 전, 강철은 뉴스와 책을 통해 엄태욱의 기행을 알게 됐다.

‘평소에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산 보람이 있네.’

멸망 이전, 늘 신문을 가까이했던 과거의 자신을 셀프 칭찬하며, 강철은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엄태욱 같은 인간이 사실 제일 요리하기가 쉽지. 너무 약점이 많으니까.’

하다못해 여자 형제라도 있었더라면, 일찌감치 거목그룹 후계 구도에서 탈락했을 망나니를 요리할 방법을 떠올리던 강철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새 담배를 꺼냈다.

‘가장 좋은 건…… 조민석이 유아영을 엄태욱에게 뇌물로 바치는 거야. 그러면 엄태욱의 뒤에 있는 거목그룹 자체를 쥐고 흔들 약점을 얻을 수 있을 거니까.’

재벌 3세의 성비위.

그것만큼 좋은 무기는 없을 것이라고, 강철은 생각했다.

‘그 천하의 삼우그룹 회장도 비디오 공개되니까 온갖 쪽은 다 팔았잖아?’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조민석이 유아영을 엄태욱에게 넘겨야 한단 것이었다.

‘조민석이 그렇게까지 할까?’

일단 강철은, 그 경우까지 상정해서 몇 가지 작전 계획을 짜냈다.

1시간에 걸쳐 작전 계획을 수립한 강철은, 3가지 루트가 적힌 종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식하게 쳐들어가는 건, 가장 하책이고 감시하다가 기습하는 건 중책이지. 그리고 가장 상책은 유아영을 따라가서 기다리다가 습격하는 건데…….’

강철은 다시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였다.

‘아무래도…… 조민석이 유아영을 넘길 수밖에 없도록 압박을 좀 가해야겠어.’

그렇게 강철은, 전략 목표 달성을 위한 전술 목표 수립을 세우기 시작했다.

2.

7월 26일 월요일 오전 10시.

새 이사회가 구성된 후, 첫 회의가 소집됐다.

한때 10명 가까운 이사들로 북적이던 대산그룹 본사 이사회실에는 이젠 4명만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첫 회의에서, 김명길은 상해탄 천호본점을 대산식품에서 분리하자는 안건을 올렸다.

당연히 조민석은 강하게 반발했다.

“찬성합니다.”

“찬성합니다.”

그러나, 김명길과 서용태가 찬성함에 따라, 조민석의 반발은 무력화됐다.

그뿐 아니었다.

“이건 또 뭐요?”

“약식이긴 합니다만, 대산식품과 대산건설의 임원들이 분식회계한 걸 추적해서 만든 자료입니다.”

최병천은 자신이 직접 대산건설과 대산식품의 회계장부를 분석해 만든 자료를 기반으로, 조민석에게 결정을 강요했다.

전체를 다 검수한 것도 아니고, 2009년 4/4분기 것만 약식으로 검토한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압박하기엔 충분했다.

“정식으로 감사 보고서를 작성해서 검찰에 고발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에 대산이 법적 문제에 연루된 걸 감안해서, 식품과 건설의 임원들이 전원 사표를 제출하게 하는 걸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산건설이야 강대산 라인이었기에 언젠간 쳐내야 할 존재긴 했지만, 문제는 대산식품이었다.

‘이 개새끼들이…….’

대산식품의 사장인 이대식은 조민석의 최측근 중 하나였다.

박용수가 직접 옆에서 수발을 든다면, 이대식은 계열사를 장악하여 든든한 돈줄을 마련해놓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겨우 그걸로 이때까지 조직에 충성한 사람을 내치자는 거요? 동의할 수 없소.”

조민석은 거부했다.

“그럼 검찰 고발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사님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최병천과 서용태, 김명길의 세트피스 앞에서 결국 조민석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건설과 식품 이사회를 재구성하겠소.”

그것만 해도 이미 조민석은 그로기 상태였다.

거기에다가 서용태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어…… 그리고 보니까 말입니다. 조 대표님이 지금 살고 계신 잠실동이랑 신천동 사이에 그 펜트하우스 말입니다. 보니까 대산저축은행 소유던데, 뭐 임대차 계약을 했다는 내용이 없는데, 소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그냥 관습적으로 그렇게 쓰고 있던 것이었기에, 당연히 소명은 없었다.

“새로운 경영의 시대에 그런 구습은 타파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기회에 임대차계약서를 따로 쓰시거나 아니면 좀 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한 방에, 조민석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후우…….”

7월 26일 월요일 밤 10시.

펜트하우스 안방 거실에서 조민석은 홀로 양주를 마시며 연거푸 줄담배를 피우며 고뇌했다.

중화하지 않아 한 모금만 마셔도 식도가 녹는 것 같은 독한 양주를 물처럼 마셨고, 타르가 8.0mg이나 든 독한 담배를 쉬지도 않고 계속 피워댔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빠. 무슨 일 있어?”

연거푸 한숨을 쉬며 말없이 술만 들이켜고 줄담배만 태우는 조민석에게, 거실에서 TV를 보던 유아영이 안방 거실까지 찾아와 물었다.

“응? 어…… 아니야. 그냥…… 좀 바빠서 지쳐서 그런 거야.”

“…… 그 미친놈이 한 말 때문이야?”

순간 조민석은 헷갈렸다.

유아영의 입에서 나온 미친놈이 강철인지 아니면 엄태욱인지를.

“대산이라도 거목한테는 안 되는 거지?”

유아영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한동안 조민석은 뇌정지가 온 채 멍하니 있었을지도 몰랐다.

“응? 아…… 어…… 그렇지.”

유아영은 조민석의 곁에 앉았다.

그리곤 빈 잔을 잡고는 조민석에게 내밀었다.

조민석은 그녀의 잔에 양주를 따라주었다.

유아영은 그걸 한 모금 마신 후 인상을 쓰더니, 다시는 마시지 않았다.

“있잖아, 오빠.”

“응?”

“고마워.”

조민석은 살짝 당황했다.

“오빠 덕분에 이렇게 근사한 곳에서, 100만 원짜리 술도 마셔보고, 스포츠카도 타보고 살잖아. 오빠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아마 지금 어디 편의점에서 알바나 하고 있었겠지.”

“아영아…….”

“그래서…… 보답을 하고 싶어.”

유아영은 가만히 조민석을 바라봤다.

조민석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 개새끼 접대할게. 그게 오빠를 위한 일이라면.”

조민석은 눈을 부릅떴다.

“아, 아영아…….”

유아영은 가만히 조민석을 끌어안았다.

“괜찮아. 언제까지 오빠한테 받기만 할 순 없잖아.”

“아영아…….”

조민석도 유아영을 마주 끌어안았다.

그리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가,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 고맙다.”

3.

7월 27일 화요일 새벽 1시 3분.

[민석 오빠가 그 개새끼 비서한테다가 연락 넣었어요. 아마 며칠 내로 답이 올 것 같아요.]

유아영의 보고에 강철은 씩 웃었다.

“잘했어. 어려운 결정이었을 건데.”

이사회에서 3인방의 세트피스로 조민석의 멘탈을 갈아버리고, 그 상황에서 유아영이 자진해서 접대 신청을 하도록 하여 조민석이 넘어가게 하는 것.

그것이 강철의 전술 목표였다.

“전술 목표는 달성됐으니까, 이제 전략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되는 거야.”

[군인이에요? 전술이니 전략이니…….]

“시끄럽고, 아무튼 거목에서 연락이 오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

[그렇게 할게요. 근데요…… 진짜로 저…… 그 개새끼한테 대줘야 해요?]

유아영의 물음에 강철은 피식 웃었다.

“하고 싶나?”

[장난해요? 성격도 그지같고, 아니 생긴 것도 무슨 외계인 같은데 내가 왜 그 새끼랑 해요? 그 새끼랑 할 바에야 혼자 하고 말지.]

“그럼 걱정하지 마. 난 백유진이 아니야.”

강철의 입에서 백유진의 이름이 나오자 한동안 수화기 너머에선 말이 끊어졌다.

잠시 후, 유아영은 가까스로 한 마디를 내뱉곤 전화를 끊었다.

[그 말…… 믿을게요.]

강철은 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입에 담배를 문 채 노트북 화면에 뜬, 엄태욱을 중심으로 그가 직접 만든 거목그룹 가계도를 바라보았다.

‘거목을 일단 점하면…… 그다음엔 바로 일신으로 올라갈 수가 있지.’

강철은 서랍에서 합성 마약 ‘위스키’가 든 봉투를 꺼냈다.

‘위스키 좋은 거 한 병 같이 사다 줘야겠어.’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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