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52화 (52/175)

052 연금술사 (4)

7.

황금태는 확실히 연금술사가 맞았다.

흔치 않은 외모적 특징과 소통상의 특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를 도끼의 연금술사로 추론하는 것은 타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강철의 마음엔 일말의 의심이 없잖아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서영은과 도끼의 연금술사가 멸망 이전에 동업자 관계였다는 말을 강철이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모종의 이유로 그 사실을 숨긴 채 서로 모르는 척 살아왔을 수는 있지만, 어쨌건 그 부분이 가장 의심 가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연금술사가 맞았다.

그리고 강철은 초능력 에너지의 사이즈 업은 물론 연금술 능력까지도 얻게 됐다.

즉, 이제 순금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에너지 사이즈 업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에너지 소모가 큰 게 단점이긴 한데 말이지.’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연금술로 금에서 겨우 엘릭서 한 방울만 추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능력 에너지는 금새 바닥이 나버렸다.

물론, 이전에 오거닉 메탈을 두른 채 신나게 싸워서 이미 반 이상 달아 버린 까닭도 있긴 했지만, 어쨌건 연금술 자체가 초능력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다는 건 변찮는 사실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시간은 내 편이니까.’

7월 2일 금요일 오전 9시.

강철은 아산 시내에 있는 황금태의 사무실에서 김명길과 함께 앉아 사실상 조직의 보스 자리를 잇게 된, 충청도 방언을 쓰는 나이든 건달, 곽기명에게서 조직 현황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여자애들 데려다가 키워서 팔구 약 만들어다가 유통하는 놈헌티 팔구. 그게 전부여유.”

“가시나들을 데려다 우예 키워서 판단 말입니까?”

“뭐, 말이 통하는 애들 같으면 잘 달래서 팔구유, 그게 아닌 애들 같으면 이것저것 해서 팔쥬.”

“아니, 그라니까, 그 이것저것이 뭐냐고요.”

“낸들 아남유? 죄다 서 상무가 하던 건디? 서 상무가 없어지고 난 뒤로는, 사실상 여자애들 파는 사업은 망했당께유.”

강철은 연금술에 관해 생각하느라 대화에 끼지 않고 있었다.

그랬기에 강철이 다른 생각을 하는 중임을 간파한 김명길이 대신해서 곽기명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마 여자는 고마 됐다카고, 약은 뭐 어떤 약을 파는 깁니까?”

“우덜은 자연산 풀 쪼가리 키워서 팔구 그라지는 안어유. 대산 같은 커다란 곳에서까지 대마를 팔고 앉았는디 우리처럼 쬐끄만 곳에서 그런 거 판다구 어디 경쟁이나 되것슈?”

“아니, 그러니까, 무슨 약을 파냐고요.”

“뭐, 이것저것 팔아유.”

“아니 씨바 그러니까 이것저것 뭐!”

“뭐, 보통은 이것저것 합성해서 팔아유.”

“와, 진짜 말 갑갑하게 하네.”

“그래두 침은 안 튀잖어유. 여기 보슈. 조금만 더 냅두면 탁자에 홍수 나것슈.”

그렇게 둘이서 만담을 나누고 있을 때, 별안간 강철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애들 훈련이 잘 돼 있던 것 같은데?”

“헤헤. 지가 다 훈련시킨거구만유.”

“행동대장같아 보이더니, 맞네.”

“행동대장보다는 야전 지휘관이라 불러주셔유. 그래두 소령은 찍고 전역해서 중대장까지는 해 봤어유.”

“그래? 아무튼, 서영은이가 죽어서 이제 여자 장사는 못 한다 이거지?”

“뭐, 대충 약 먹여다가 어디 섬에다가는 팔아넘길 수는 있는데, 그래 가지고는 인건비도 못 건지쥬.”

“그럼 앞으로 약만 팔아. 조직 세력권은 어디까지지?”

“자체적으로는 충남이랑 충북 그리고 원주 정도까지는 우리 세력권이어유. 그 외에 다른 지역에 있는 조직하고는 적당히 협력하고 있구유.”

“대산하고는 한 번도 거래를 안 한 모양이던데?”

“에이. 우리가 어디 그렇게 큰물에서 놀 건덕지는 되남유?”

“근데 왜 대산한테 도전을 하셨을까?”

“낸들 아남유? 죄다 황 사장이 한 것인디. 물어보고 싶으면 그 양반헌티 물어보셔유.”

강철은 피식 웃었다.

“황금태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하시고 쏙 빠지시겠다?”

곽기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문제는 묻어두지. 황금태의 시체랑 같이.”

“지도 바라는 바구만유.”

“앞으로 그쪽은 나한테 충성을 다하는 거야.”

“허허. 창고에서 다 끝낸 이야기를 뭣하러 또 하시남유? 사람을 못 믿으시는 가벼유.”

“못 믿지. 세상에서 제일 못 믿을게 사람 아닌가?”

“허허허. 그러면서 옆에 있는 사람은 또 끔찍이도 아끼시네유.”

“그쪽도 나한테 아낌을 받고 싶다면, 배신하지 말고 충성을 다하라고.”

“허허허. 배신은 안 할 거지만 아낌을 받고 싶지는 않구만유. 그냥 드라이허게 회장님으로만 모실게유.”

강철은 씩 웃었다.

어딘지 모르게 능글맞으면서도, 사람을 한 번씩 먹이는 저 화법이 강철은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자신의 힘을 보고도 저렇게 능글맞은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강심장이 강철의 마음에 쏙 들었다.

‘연금술이 들어온 이상, 한국은행 금괴를 손에 넣기 전에도 꾸준히 금을 확보해서 엘릭서를 추출해야 해.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든 수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겠지.’

강철은 단순히 마약을 판 돈으로 금을 사려는 게 아니었다.

사실, 그는 돈을 보고 충청도 조직을 접수하는 것도 아니었다.

‘합성 마약이라고 했지?’

강철이 원하는 것은 이들이 직접 제조한다는 약이었다.

‘우리나라 재벌들 중 마약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

재벌은 건달처럼 무조건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서 포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을 포섭하려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 위에 서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그중 가장 쉬운 건 바로 마약을 통해 그들과 접촉한 후, 그들을 마약 중독자로 만들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하는 것이었다.

“합성 마약 중에서 중독성은 강한데 부작용은 좀 덜한 것도 있나?”

“왜유? 해보시려구유?”

“아니, 내가 할 건 아니고. 필요한 곳이 있어서.”

“뭐, 히로뽕도 있고 LSD도 있고 한데, 우리가 직접 만든 것 중에서 제일 중독성이 강하면서 부작용이 적은 건 위스키여유.”

“위스키?”

“위스키에다가 한 알 타서 먹으면 아주 기가 막혀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유. 황 사장이.”

“각성제인가? 아니면 환각제?”

“뿅 가면서 확 진정이 되불쥬. 근디 중독성이 좀 심해서 지는 안 해봤슈.”

물품은 확인했다.

“그거 한 봉지만 지금 챙겨줄 수 있나?”

“왜유, 벌써 가시려구유?”

“올라가서 일해야지.”

“가시는 길에 혹시나 호기심에 잡수시진 마셔유. 한 번씩 발작 일으키는 경우도 있으니께유.”

그러면서 곽기명은 금고에서 약 한 봉지를 꺼냈다.

“100알이어유. 하루 1알이면 충분하니까, 많이는 드시지 마셔유.”

“걱정 마. 내가 먹을 건 아니니까.”

“네, 네, 그러시것쥬.”

강철은 약을 챙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나, 뭐 문제 생기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걱정 마셔유. 문제 생겨도 알아서 해결할 정도의 능력은 있어유.”

“그럼 다행이고.”

강철은 곽기명에게 손을 내밀었다.

곽기명은 손바닥을 바지에다가 슥슥 닦은 후 그 손을 맞잡았다.

“잘해보자고.”

“지가 하고 싶은 말이네유.”

그렇게, 강철은 연금술과 ‘위스키’라는 이름의 마약 그리고 충청도 조직을 손에 넣고는 김명길과 함께 서울로 복귀했다.

8.

“회장님, 미리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하하하. 회장이라니…… 아직 확정된 것도 없는데. 주총까지 한참 남았어.”

7월 3일 토요일 저녁 9시.

조민석의 펜트하우스에선 조그만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참가자는 조민석과 그의 전속 비서 박용수 그리고 그의 최측근이자 현 대산식품 사장인 이대식이었다.

세 사람은, 간단한 안주 몇 개를 앞에 두고서 위스키와 맥주를 함께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에이, 말이 주총이지 사실상 회장님 대관식 아닙니까?”

이대식의 말에 조민석은 껄껄 웃기만 할 뿐이었다.

“뭐, 회장님이 회장 되시는 거야 기정 사실이지만…… 새 이사는 어떻게 구성할 겁니까?”

조민석의 기분이 좋은 걸 확인하고서 이대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흐음…… 뭐 아무래도 내 사람을 좀 많이 넣어야지 않겠나?”

조민석은 명확한 답은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만으로도 충분했다.

“하하하, 한 잔 합시다. 네? 하하하.”

그렇게 기분 좋게 술잔이 돌았고, 술자리는 11시가 돼서야 파했다.

거실에서 대기 중이던 부하들에 의해 이대식과 박용수는 집 밖으로 나갔고, 조민석은 안방으로 옮겨졌다.

“수고하십시오.”

“네, 수고했어요.”

부하들을 모두 돌려보내고서, 유아영은 먼저 식탁을 치웠다.

술잔과 접시를 모두 설거지한 후, 유아영은 조심스럽게 안방을 살폈다.

“쿠우-! 푸흐흐흐흐흐-! 쿠우-! 푸흐흐흐흐흐-!”

조민석은 코를 골며 깊게 잠들어 있었다.

유아영은 소리를 내지 않고서 문을 닫은 후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곤 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다 갔나?]

“네, 다들 꽐라가 돼서 갔어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대충 뭐 민석 오빠가 회장 되는 이야기랑 새 이사에 자기 사람 넣는다는 이야기 정도를 한 것 같아요.”

[그것 말고는?]

“뭐, 그것 말고는 딱히?”

[흐음…… 영양가는 없는 정보구만.]

“그래서, 제가 헛수고했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고.]

“그럼 그런 말은 좀 속으로만 하면 안 돼요?”

[슬슬 그쪽이랑 나 사이의 높낮이를 재확인시킬 타이밍이 된 건가?]

강철의 말에 유아영은 뜨끔했다.

“아 진짜, 무드 없어.”

[그쪽하고 내가 무드를 찾을 사이는 아니지. 아무튼, 계속 조민석이 감시하고 있어. 누굴 만나든, 설령 그게 대산 말단 직원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나한테 보고하라고.]

“알겠으니까, 영양가 있니 없니 하는 소리만큼은 제 귀에다 직접 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수용하지.]

그대로 강철은 전화를 끊었다.

‘에휴.’

유아영은 한숨을 내쉬며 드레스룸을 나왔다.

그리곤 안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조민석을 내려다보았다.

『89년생 여자애가 63년생인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는 그 순진함이 널 살린 거라고.』

강철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여자는 날 이용했어. 강철은 대놓고 날 이용할 거라고 통보했고. 근데도 민석 오빠는 나를…….’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지난 세월, 조민석과 살을 맞대며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낸 정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게 맞을까?’

당장에는 강철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그랬기에 유아영은 그를 배신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배신의 상처가 큰 상황에서, 자신이 섹스로 스트레스를 푸는데도 한 번도 싫은 기색 없이 자신을 안아준 조민석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그녀에게 죄의식을 가져다주었다.

‘잘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가만히 코를 골며 자는 조민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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