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연금술사 (2)
4.
“끄으으윽…….”
김명길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여 어데고?’
그는 눈을 떠서 주위를 둘러보려고 했다.
그러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뭐, 뭐고?’
눈만 그런 게 아니었다.
입에는 테이프가 발라져 있었고, 양 손목과 발목은 묶여 있었다.
‘나, 납치가?’
김명길은 자신이 의식을 잃기 전 봤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누고?’
김명길은 재빨리 머릿속에서 자신을 납치할 만한 세력을 떠올려보았다.
‘지방 주주들이가?’
당장에 떠오른 건 지방 주주들이었다.
그들에겐 자신을 납치할 동기와 능력이 모두 충분히 있었다.
‘씨발…….’
어차피 맞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까딱 잘못하면 고문님 판 짜놓은거 다 날아가삐는데.’
중요한 건, 여기서 만약 자신이 잘못될 경우, 강철이 짜놓은 판이 모두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내 꿈 씨발…….’
그리고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한층 가까워진 그의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빨리…… 빨리 고문님한테 알리야된다.’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전에는 입을 다물고 어떻게든 강철을 숨겨야 했지만, 이제는 이 악물고 강철을 불러야 한다는 것을, 그는 깨우쳤다.
‘문자…… 문자라도 하나 넣어 놓으면…… 그라면 고문님이 알아서 찾아주실기다.’
그러나 양손이 뒤로 꺾인 채 묶인 상황에서, 주머니에 있는 폰을 꺼내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씨발!’
[쿵-! 쿵-! 쿵-!]
김명길은 거칠게 몸부림치며 자신의 발에 걸린 무언가를 걷어찼다.
그것은 승합차 시트였다.
“일어났어요?”
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괜히 힘빼지 마세요. 가면 어차피 힘 빠지게 돼 있으니까.”
언어적인 표현이 막힌 상황에서 김명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쿵-! 쿵-! 쿵-!]
그러자 운전대를 잡은 사내, 황금태가 김명길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부하에게 말했다.
“한 번 더 지지세요.”
[파지지직-!]
김명길은 또 의식을 잃었다.
“끄으으으…….”
한 차례 좋은 꿈을 꾸고 나서, 김명길은 다시 깨어났다.
이번엔 말도 할 수 있었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손발은 여전히 묶여 있었고, 세상은 뒤집혀 있었다.
“느, 느그들 뭐고? 느그들 자신 있나? 마 느그들 내 눈지 아나?”
김명길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멘트와 드럼통으로 가득한 창고 내부를 훑었다.
못해도 50명은 돼 보이는, 하나같이 어디 헬스장에서 10년은 운동한 것 같은 거구의 사내들이 10여 개의 플라스틱 탁자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한 30초 정도 담갔다가 빼세요.”
“자, 잠만……”
[풍덩-!]
김명길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물에 잠기고 말았다.
‘이 개새끼들!’
김명길은 코로 물이 들어오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정체불명의 집단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푸하-!”
30초 정도가 지났을 때, 그는 다시 끌어 올려졌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황금태가 담배를 피우며 다가와 물었다.
“대산도 전국구지만, 우리도 나름 전국구예요. 대산보단 좀 못할 순 있어도, 대산한테 못 개길 정도는 아니란 거죠.”
“이 개새끼가……”
“사실 뭐 대산하고 우리하고 같이 일한 적이 없으니까, 언제 한번 인사는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또 일이 이렇게 되네요.”
황금태는 김명길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부산에 있는 양반들한테 물어보니까, 김명길 씨는 약간 바지 같은 느낌이었고 실제로 행동하고 명령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면서요? 젊은 사람이라던데.”
김명길은 이를 갈았다.
“그 사람한테 25명 정도가 힘도 제대로 못 써보고 당했다길래 한 50명으로 준비했어요.”
황금태는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폰 하나를 꺼냈다.
김명길의 폰이었다.
“연락처에 뭐라고 저장돼 있어요?”
그 물음에 김명길은 곧장 대답했다.
“강 고문님이라고 돼 있다. 이 모지리 새끼야.”
“강 고문이라…….”
황금태는 그대로 김명길의 연락처에서 ‘강 고문님’이란 이름을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이 모지리 새끼야. 니 자신 있나?”
그런 황금태를 보며 김명길은 이죽였다.
그는 확신했다.
강철에게 자신의 위치만 알려진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전달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정상화될 것이라고.
“닌 이제 뒤진 기다, 이 개자슥아.”
계속되는 김명길의 이죽거림에 황금태는 도르래를 잡고 있는 사내에게 손짓했다.
[풍덩-!]
김명길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고, 황금태는 부하들에게 주기적으로 30초씩 잠수시키라 명령한 후 창고 동북쪽에 있는 통제실로 들어갔다.
“자고 있나 보네.”
강철이 전화를 받지 않았기에, 황금태는 폰을 책상 위에 올려다 놓고 가만히 창고 내부를 바라봤다.
‘25명을 혼자서 쓸어 버리는 놈이면, 보통내기는 아니겠지.’
황금태의 조직과 대산그룹은 접점이 없었다.
강대산이 도구삼, 조민석과 함께 강동통합파를 만들고 그것을 대산이란 이름의 기업으로 탈바꿈시킴에 따라, 대산은 차츰 불법적인 영역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매춘 업소 운영과 대마 재배 및 판매 그 외 건설 수주 과정에서 보이는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행태 등에서 범죄 조직의 흔적을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전체 매출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낮았다.
반면 황금태의 조직은 철저히 범죄로만 수익을 올렸다.
그랬기에 전체 매출에서는 대산에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대산보다 더 막 나갈 수가 있었다.
‘영은이가 죽은 건 안타깝지만, 뭐 그 손실분만큼을 대산더러 보전하라고 하면 되겠지.’
황금태가 김명길을 납치한 건 죽은 서영은 상무의 복수를 위함이 아니었다.
‘이 강 고문이라는 사람이 조민석 씨 측근이라면, 이야기가 좀 잘 통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별안간 김명길의 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발신자가 ‘강 고문님’임을 확인한 황금태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너 누구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강철의 시니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겠어요? 납치범이죠.”
[그러니까, 누구 밑에서 일하는 놈이냐고?]
“전 누구 밑에서 일 안 해요.”
[그럼 왜 이딴 짓을 하는 거지?]
“그러는 그쪽은 왜 우리 서 상무를 죽인 거예요?”
[서 상무? 설마 서영은이를 말하는 건가?]
“잘 아시네요.”
한동안 수화기 너머에 침묵이 내렸다.
그러다 다시, 강철은 입을 열었다.
[김 대표는 어떻게 됐어?]
“김명길 씨요?”
황금태는 슬쩍 바깥을 확인했다.
때마침 김명길은 물속에서 끌어 올려지고 있었다.
김명길이 발악하며 바락바락 고함치는 걸 보며 황금태는 수화기 너머 강철에게 말했다.
“아직 건강하네요.”
[그래, 내가 갈 때까지 건강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그쪽 신상에 문제가 생길 거니까.]
“올 거면 혼자 오세요. 이 시간에 뭐 애들을 얼마나 모아서 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시면 재미가 없을 거예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
그리고 강철은 전화를 끊었다.
황금태는 씩 웃으며 폰을 책상 위에 휙 던졌다.
“자신만만하시네.”
5.
강철은 택시를 타고 아산 외곽에 자리한 창고까지 달렸다.
김명길의 폰은 그곳에서 신호를 뿜어내고 있었다.
선불로 15만 원을 줬기에 택시기사는 아주 빠르고 시원하게 달렸다.
‘김 대표랑 해커 양반 그리고 최 변호사한테 경호원이라도 붙여야겠어.’
김명길을 비롯해 대산을 장악하기 위해 강철이 이사회에 배치할 세 사람의 가치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높아졌다.
특히 정식 이사로 들어갈 김명길의 가치는, 단순히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꼭두각시 이상이었다.
‘인정해야 해. 이건 내가 안일했어.’
강철은 서영은이 속한 조직의 역습에 관해선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아니, 이런 식으로 대산을 향해 겁 없는 도전을 할 범죄 조직 자체를 생각하질 못했다.
‘뭐 하는 조직이지?’
충청도에 기반을 둔, 감히 대산의 이름에 도전할 만한 조직.
‘대산도 미처 모르고 있던 조직인가? 아니면…….’
일단 강철은 당면한 과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도착했습니다.”
7월 2일 금요일 새벽 5시 20분.
강철은 마침내 아산시 외곽 논밭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자리한 허름한 창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철은 일단 택시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면서 그는 창고와 그 주변을 살폈다.
‘세단 1대, 승합차가 1대, 미니버스가 2대.’
만약 저 차량이 모두 인력을 싣고 온 것이라면, 적어도 창고 안에는 50명 가까운 인원이 있다는 소리였다.
택시는 1분이 지났을 무렵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길로 강철은 창고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콰앙-!]
그리고 거칠게 문을 발로 걷어차 부쉈다.
강철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자, 50쌍의 눈동자가 그를 바라봤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시선 집중이었지만, 강철은 신경 쓰지 않고 먼저 김명길을 찾았다.
“으으읍-! 으읍-!”
저 멀리, 창고 끄트머리에 자리한 커다란 욕조 위에서, 김명길은 도르래에 거꾸로 매달린 채 강철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고, 옷은 팬티까지 모두 벗겨져 있었다.
“이야. 요란하시네요.”
창고 동쪽에 자리한 테이블에 홀로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던 황금태가 강철을 보며 말했다.
강철은 즉시 시선을 황금태에게로 돌렸다.
‘응?’
그리고 그는 살짝 당황했다.
‘잠시만…… 설마?’
강철의 눈을 사로잡은 건 황금태의 왼쪽 눈 아래에 난 흉터였다.
‘연금술사?’
강철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강철의 속을 알 리가 없는 황금태는 그런 강철의 모습에 씩 웃으며 컵라면 국물을 쭉 들이켰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강철을 보며 말했다.
“혼자 오라니까, 진짜 혼자 왔네요.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창고에 있던 50명의, 몸 곳곳에 문신을 새겨 넣은 거구의 사내들이 각자 연장을 챙겨 든 채 강철을 노려봤다.
강철은 그런 건달들 사이를 지나쳐 황금태에게 다가갔다.
“거기서 멈추세요. 지금이 딱 좋아요. 우리 둘이 이야기하기에도 좋고, 우리 애들이 그쪽 포위하기도 좋고.”
황금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달들이 강철을 포위했다.
강철은 자리에서 멈춰선 채 잠시 그들에게 시선을 줬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황금태에게 돌렸다.
“어이, 씹새끼야, 라고 한번 해 봐.”
강철의 말에 황금태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요?”
“씹새끼야라고 해 보라고.”
“제가 왜 그쪽한테 욕을 하겠습니까? 제가 묻고 싶은 건, 왜 우리 서 상무를 죽이셨냐는 건데 말이에요.”
“그냥 하라면 해 봐, 이 씹새끼야.”
강철의 욕설에 황금태는 살짝 정색했다.
“왜 우리 서 상무 죽였냐고요, 이 씹새끼야.”
강철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황금태의 외모에 세월을 한 18년 정도 섞어 보았다.
얼추, 자신이 봤던 모습과 유사한 형태가 나왔다.
거기에 강철은 조금 전 황금태의 입에서 나왔던 ‘씹새끼야’라는 욕설의 억양에 마찬가지로 18년의 세월을 섞어 보았다.
『그건 만지지 마세요, 이 씹새끼야!』
정확하게, 그가 들었던 연금술사의 욕설 억양과 일치하는 형태가 나왔다.
강철은 씩 웃으며 눈을 떴다.
“나한테 필요한 사람들이…… 어째 전부 충청도에 모여 있었을까 모르겠어.”
그 말에 황금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이, 10분 뒤에 면담 좀 하자고.”
황금태에게 그 말을 남기고 강철은 그대로 건달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