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49화 (49/175)

049 연금술사 (1)

1.

6월 30일 수요일.

“꺼내세요.”

귀와 목 뒤를 덮는,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와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이 대비되는, 왼쪽 눈 아래에 좌우로 5cm 정도 되는 흉터가 있는 중년 남성이 말했다.

그러자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도르래를 당겼다.

“푸허어억-!”

발이 묶인 채 거꾸로 욕조에 머리만 처박고 있던 한 남성이 그대로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중년 남성은 도르래를 잡은 남자에게 손짓해 멈추게 한 후, 거꾸로 매달린 남성에게 말했다.

“우 사장님. 나는 우리가 나중에 이 일로 인해서 서로 보기 민망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굉장히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말투였지만, 그 말을 듣는 매달린 남자, 목포 건달왕 우기태는 숨이 탁 막히는 걸 느꼈다.

“이제 그만하고 말씀해주세요. 서 상무 어디 있어요?”

남자의 물음에 우기태는 눈을 감고 울면서 말했다.

“말했잖습니까. 조민석이 보낸 놈한테 죽……”

[짜악-!]

남성은 우기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뺨을 강하게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리곤 다시 도르래를 잡은 사내에게 내리라 손짓했다.

“자, 잠……”

우기태는 이번엔 배꼽까지 물에 들어갔다.

남자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 뒤, 네 차례 정도 담배 연기를 내뿜고서야 다시 들어 올리라 손짓했다.

“푸허억-!”

우기태가 다시 바깥 세상의 공기를 쐬자, 남자는 말했다.

“서 상무가 도망간 물건 찾으러 목포로 간다고 했어요.”

남자는 우기태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분명히 우 사장 애들이 도망간 물건 찾아서 보관 중이라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소식이 끊겼어요. 그러면 상식적으로, 우 사장 쪽에서 어떻게 했다고 믿는 게 정상 아니에요?”

우기태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진짜입니다. 우리는 억울합니다.”

계속해서 부인하는 우기태의 모습에 남자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별안간, 우기태의 눈에다가 담배를 지졌다.

“끄아아아아악-!”

우기태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지만, 손발이 쇠사슬에 결박당한 채 거꾸로 묶인 그의 발악은 무의미했다.

“대산그룹 장악한다고 바쁠 조민석 씨가 왜 아무런 접점도 없는 서 상무를 죽인단 말입니까?”

“크으으윽……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아…….”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욕조에다가 집어 던졌다.

“그럼, 조민석 씨를 잡아다가 족치면 되겠네요. 그쵸? 네. 아주 편하고 좋네요. 우 사장 하나 살겠다고, 검찰에 재벌까지 엮여 있는 인간도 족쳐야 하고.”

남자는 도르래를 잡은 사내에게 손짓했다.

우기태는 다시 물에 빠졌고, 이번엔 올라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푸허억-!”

다시 우기태가 바깥에 나왔을 때, 남자는 말했다.

“조민석 씨는 일단 보류한다 치고, 그래, 그러면 그때 우 사장 찾아왔다는 그 사람이 누구예요? 조민석 씨가 직접 왔을 리는 없잖아요?”

그 말에 우기태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그를 찾아내 협박하던 젊은 사람의 이름은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자신의 주식을 강탈해간 법인의 대표자 이름은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 김명길. 김명길이라는 놈입니다. 그놈이…… 그놈이 서영은 씨를 죽인 놈을 부하로 부리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발걸음을 돌려 고문 현장에서 떠났다.

“물가에서 태어난 분이니까, 물에서 죽여드리세요. 시체는 대충 드럼통에 담아서 염산으로 녹여버리시고요.”

“화, 황 사장! 황 사장! 황 사장!”

우기태는 절규하며 남자, 황금태 사장을 불렀다.

그러나, 황금태가 고문 현장의 문을 열고 나가기도 전에, 그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못했다.

“길동에서 활동 중인 김명길이라는 사람 좀 알아보세요. 상해탄 천호본점이라는 곳 대표라고 하니까, 특정하기 쉬울 겁니다.”

황금태는 차에 올라타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김명길을 찾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는 손수 구형 국산 준중형 세단을 끌고서 그렇게 아산 외곽 논밭 한가운데에 자리한 창고를 떠났다.

2.

조민석의 대관식은 7월 21일 수요일로 확정됐다.

“조민석은 지금 굉장히 들떠있을 거야. 이제 곧 진짜 회장이 된다고 생각할 거니까.”

7월 1일 목요일 정오.

상해탄 천호본점 룸에서 강철은 김명길, 서용태 그리고 최병천 변호사와 함께 코스 요리를 먹으며 향후 계획에 관한 자신의 구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총 때 가장 많은 표를 들고 있는 건 바로 여기, 상해탄 천호본점이야. 강대산이 지분이랑 도구삼이 지분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우리가 뜻하는 대로 모든 게 결정이 된다는 거지.”

강철은 서용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해커 양반은 이번에 사외이사로 들어가게 될 거야.”

미리 통보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서용태는 ‘사외이사’라는 직함이 영 거북한 모양이었다.

그는 강철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 괜찮겠습니까? 겨우 저 따위가 대산에 사외이사로 가는 게…….”

그 모습에 강철은 피식 웃었다.

“기죽을 필요 없어. 조민석보다도 당신이 학벌이나 스펙은 더 좋잖아.”

“그건 그렇기 한데…….”

“특별한 사유 없으면, 그렇게 하도록 해. 좋잖아? 합법적으로 큰돈도 벌어보고 말이야.”

그리고 강철은 시선을 최병천 변호사에게 돌렸다.

“최 변호사는 이번에 대산 감사로 이름이 올라갈 거요.”

최병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철은 김명길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김 대표는 이번에 정식으로 대산 이사가 될 거야.”

김명길은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 고문님이 하라카시면, 하겠십니다.”

“그래. 이사가 되고 나면, 여기 최 변호사랑 같이 잘 이야기해서 최대한 이른 시기에 상해탄 천호본점을 대산식품에서 분리해야 해.”

“네. 마, 가을 오기 전에 해보겠십니다.”

김명길의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에 강철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 주총 전까지, 이 이야기는 여기 있는 우리 넷 말고 아무한테도 새나가면 안 돼.”

강철의 말에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강철은 흡족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조민석이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고, 상해탄이 독립만 하면 나를 위한 대산은 완성이 되는 거야.’

강철의 목표는 대산에서 끝이 아니었다.

멸망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인 금을 확보하기 위해선 대산이 아니라 더 위로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대산은 그것을 위한 발판이자, 당장에 강철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괴가 2020년쯤에 한 1만 개 정도였었어.’

금괴 1만 개.

무게로만 따져도 무려 104t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전라도 도끼랑 경상도 작두가 보유한 금의 양이 합쳐서 1t이 안 됐던 걸 생각하면…….’

멸망 이후 세계에서 황금은 화폐이자 동시에 초인의 잠재력 그 자체가 됐다.

‘104t 중 절반만 연금술사한테 맡겨서 엘릭서를 추출하게 해도…… 흐음…….’

드래곤 하트 하나에서 추출되는 엘릭서의 양이 보통 금 10kg ~ 30kg에서 추출한 것과 비슷했다.

‘상상도 안 되는군.’

잘만 흡수하면 지구 최강의 생물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상상을 하며 강철은 씩 웃었다.

‘그렇게 하려면 한국은행이 영국에서 금을 찾아오게 해야 해. 그리고 한국은행을 움직이려면 재벌의 힘이 필요하고.’

재벌을 통제하여 그들을 통해 한국은행을 움직여 금을 국내로 다시 수송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구 인근에 지을 자신의 아지트에 보관한다.

아직은 상상이나 겨우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은 내 편이야.’

그러나, 강철에게는 12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연금술사가 될 사람도 하나 찾아두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금이 있다면, 마땅히 연금술사도 있어야 했다.

엘릭서는 초인 중에서도 특별히 연금술사가 피워내는 특별한 불꽃에 의해서만 금에서 추출할 수 있었다.

‘전라도 도끼 밑에서 일하던 놈이 제일 훌륭한 연금술사라고 들었는데…….’

강철은 이전 생의 기억을 더듬어 한반도 남부 최고의 연금술사 한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항상 존댓말을 쓰고, 왼쪽 눈에 흉터가 있는 놈이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순 있겠는데…… 이 인간도 이름이랑 멸망 전 뭘 했는가를 모르니…….’

2028년, 전라도 도끼의 성채에서 만났던, 70대 노인 연금술사를 강철은 떠올렸다.

‘미리 찾아내서 대구에다가 박아두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하지만, 일단은 연금술사를 찾는 일보단 재벌과 접촉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거목그룹을 시작으로 위로 올라가면 돼. 어차피 재벌들, 다 혼맥으로 엮여서 조금만 라인 타고 가면 금방 5대 그룹까지 이어질 거니까.’

그렇게 강철은, 미래에 대산을 이끌어 갈 세 사람과 함께 고량주 가득한 잔으로 건배를 하며, 차근차근 미래를 구상해 갔다.

3.

7월 2일 금요일 새벽 2시.

김명길은 단란주점 ‘콜걸’의 영업 상황을 살핀 후, 기지개를 켜며 상가 주차장에 대놓은 자신의 SUV로 향했다.

‘마, 대산 이사가 되면 여기도 딴놈한테 맡기야 할긴데…… 마땅한 놈이 안 보이네.’

차 후드를 손으로 짚은 채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김명길은, 이내 피식 웃으며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곤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생각했다.

‘대산 이사라꼬?’

오길동의 밑에서 삼류 건달로 살던 게 불과 2개월 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개월 하고도 며칠 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최상부로 올라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래가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기야.’

그와 함께 생활을 시작한 동기, 현봉태는 오길동의 복수를 한답시고 선병호와 손을 잡았다가 그와 함께 하남 대마 농장의 비료가 돼 버렸다.

그러나 강철의 강함에 매료돼 그를 형님으로 인정한 자신은 그야말로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잘 나가게 됐다.

‘마…… 내가 쫌만 더 잘하고 하면…… 어쩌면 고문님이 내를 갖다가 이 대산 회장으로 앉혀줄 지도 모르는 일 아이가?’

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 멀리서 우연히 강대산을 보고서 가슴 속에 품었던 꿈이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김명길은 전율했다.

그가 그렇게 꿈에 젖어 있는 사이, 상가 주차장에 승합차 한 대가 전조등과 후미등을 모두 끈 채로 들어왔다.

곧 승합차에선 세 명의 건장한 남성이 내렸다.

‘응?’

그리고 김명길이 그들은 인지했을 때,

[지지지직-!]

“끄으으으윽-!”

사내 중 하나가 그의 목에 전기충격기를 갖다 대며 그를 제압했다.

“으으윽…… 으윽……!”

그대로 바닥에 누워 간헐적으로 발작하는 김명길을 지켜보던 사내들은, 이내 그를 들어 승합차로 옮겼고, 김명길을 납치한 승합차는 그대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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