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잔당 (2)
4.
6월 28일 월요일 저녁 7시.
조민석은 직접 차를 몰고 길동 단란주점 ‘콜걸’로 왔다.
이번에도 그를 반겨준 건 풀무장한 김명길이었다.
“어, 왔구만.”
3번 방으로 들어서자, 피비린내가 조민석의 코를 찔렀다.
“으으으읍-! 으으읍-! 으으으으으읍-!”
의자에 묶인 박경채가 입에 손수건으로 만든 재갈을 문 채 무어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박 전무…… 아니…… 박 전무가 진짜 프락치였다는 말이오?”
조민석의 물음에 강철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눈이 왜 그렇게 퀭해? 무슨 일 있었어?”
대신 강철은 조민석의 눈부터 지적했다.
“아…… 그…… 이건 그냥…… 사적인 일 때문에 그런 거요. 아니, 그건 그렇고, 중요한 건 내 눈이 아니라, 박 전무가 정말 프락치였다, 그 말이오?”
“그래. 진짜였어.”
“아니…… 어떻게?”
강철은 조민석에게 박경채가 한동수 총경과 연결된 프락치였다는 사실을, 자신이 선병호와 백유진의 노트북에서 추출한 자료를 토대로 말해주었다.
“허어…….”
조민석은 그저 탄식할 뿐이었다.
“잠시 재갈을 좀 풀 수 있겠소?”
“왜?”
“직접 듣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오.”
“뭐, 풀어줄 순 있지만, 쓸모는 없을 거야. 하도 욕을 해대서 혀를 잘라버렸거든.”
“아…… 그럼 그냥 내버려 두시오.”
조민석은 천천히 박경채에게 다가갔다.
박경채는 온몸을 들썩이며 발악했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조민석을 노려봤다.
그 눈빛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다 네가 꾸민 짓이었어!’
그 메시지를 읽은 조민석은 피식 웃었다.
그는 박경채를 내려다보며 주머니에 손을 꽂고서 말했다.
“이거 참…… 묘하게 됐구만, 박 전무.”
“으으읍-! 으으읍-! 으읍-!”
“불과 이번 달 초만 하더라도 그쪽이 날 엿 먹이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내가 그쪽을 엿 먹이고 있으니까.”
“으읍-!”
조민석은 씩 웃었다.
“강 회장은 의리를 저버린 사람이야. 도 전무하고 나하고 셋이서 같이 맺은 의리의 맹약을 갖다 버리고, 꼴에 기업 회장이라고 당신 같은 민간인 출신들을 써먹으려고 했지.”
“으읍-!”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의리를 저버린 인간이 밀어주던 놈이, 정작 경찰 프락치였다는 게.”
조민석은 박경채의 허벅지에 난 상처를 바라봤다.
무언가로 긁고 찢어버린 자리에는, 정체불명의 약품이 뿌려져 있었다.
“이거 혹시?”
“어, 맞아. 과산화수소야. 통째로 부었지.”
“역시, 잔인하시구만.”
“염산을 부으려 했는데 없더라고. 사 오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있던 거 아무거나 부은 거야.”
조민석은 씩 웃으며 그 상처 부위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끄으으으으으으읍-!”
“아프지?”
“끄으으으으읍-!”
“내가 배신당한 걸 알았을 때, 딱 이것만큼, 아니 이것보다 더 마음이 아팠을 거야.”
그렇게 10초 동안 상처 부위를 누르던 조민석은 이내 손을 뗐다.
그리곤 시선은 박경채에게 둔 채 강철에게 물었다.
“이 인간도 하남 농장으로 보낼 생각이오?”
“뭐, 거기 말고 또 있나?”
“한 군데 더 있소.”
“또 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에 강철은 김명길을 바라봤다.
김명길은 모르는 일이라며 손과 고개를 저었다.
강철은 다시 시선을 조민석에게 돌렸다.
“거기가 어딘데?”
“여기서 멀지 않소. 고덕동 쪽에 동물사료 만드는 공장이 있는데, 우리 식품 소유라서 괜찮소.”
강철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사료로 만들어 버리시겠다?”
그 물음에 조민석은 강철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안 될 건 또 뭐 있소? 대마 비료나, 개돼지들 사료나. 어차피 누군가의 양분이 되는 건 똑같은데.”
그 표정은 너무나도 해맑아서, 마치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강철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안 될 건 없지.”
강철의 승낙이 떨어지자 조민석은 박경채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박 전무.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혹시 아나? 당신을 갈아 만든 사료를 처먹은 돼지가 내 뱃속으로 들어올지? 그렇게 된다면, 그때 내 위장에서 화해합시다.”
그리고 조민석은 박경채의 뺨을 두어 차례 툭툭 치다가 세게 한 차례 치고는 3번 방을 나섰다.
강철은 피식 웃으며 박경채의 목을 꺾어 그를 죽인 후, 김명길에게 시체를 잘 감쌀 것을 명령한 후 조민석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조민석은 상가 입구로 나가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강철이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자 조민석이 불을 붙여 주었다.
“잔당이라…… 분명히 잔당이라고 했었지. 안 그렇소?”
“그랬지.”
“그 말은 이제 대산에 경찰 프락치는 없다고 봐도 된다는 것이오?”
“100%라고 확언할 순 없지만, 99% 정도라곤 할 수 있겠네.”
“사실상 100%군. 허허.”
“속이 시원하나?”
“당연한 것 아니겠소?”
“프락치가 사라져서? 아니면, 유일한 경쟁자가 제거돼서?”
강철의 질문에 조민석은 대답 대신 너털웃음만 터뜨렸다.
‘그래, 지금을 즐겨 두라고.’
그런 조민석을 보며, 강철은 살짝 조소를 머금었다.
5.
6월 29일 화요일 오후 5시.
조민석의 요청으로 임시 이사회가 개최됐다.
의장석에 앉은 조민석을 중심으로 그의 파벌에 속한 이사 둘과 박경채 파벌에 속한 이사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박 전무는 어디 간 거지?’
그 질문은 모든 이사의 머릿속에 떠올라 있었다.
“그럼, 임시 이사회를 시작하겠소.”
조민석이 의사봉을 두드리려 했다.
“잠시만!”
그러자 박경채 라인 관리이사 하나가 거수하며 그것을 가로막았다.
“아직 박 전무님이 오시지 않았잖습니까?”
관리이사의 질문에 조민석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경채 전무는 일신상의 사정으로 금일 09시부로 대산그룹 내에서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셨소. 사무실 짐도 다 뺐는데, 못 보셨소?”
그 말에 관리이사는 물론, 박경채 라인 영업이사와 심지어 조민석 라인 이사들까지도 화들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그, 그런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
박경채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봐야겠다는 말을 하려던 관리이사는, 순간 조민석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고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직감했다.
‘미, 미친 새끼……’
관리이사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자리에 앉았다.
“이의가 없다면, 회의를 진행하겠소.”
조민석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조민석은 의사봉을 두드리며 회의 시작을 선포했다.
분명 형식은 회의였지만, 실질적으로 발언하는 사람은 조민석뿐이었다.
조민석은 이사들에게 검찰 수사 상황과 대산그룹 차원에서의 강대산 고발, 최근 주주 변동 등에 대해 제법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회장 권한 대행으로서, 비상사태가 다소 해소돼 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소. 그래서, 리더십 부재를 해소하는 한편, 새로운 대산의 10년을 그려보자는 의미에서 현 이사회 해산과 새 이사회 구성을 위한 임시 주총을 개최하려고 하오.”
설명이 끝나고, 조민석은 임시 이사회 소집 목적을 알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임시 주총 개최에 찬성하는데, 다른 이사님들 생각은 어떠하시오?”
조민석은 그러면서 4명의 이사를 하나하나 쳐다봤다.
“찬성합니다.”
“찬성입니다.”
조민석 파벌의 이사들은 대번에 찬성했다.
“그럼 참석자 과반 찬성인데, 다른 두 분 의견은 어떻소?”
박경채 파벌 이사 둘은 잠시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을 표했다.
“그러면 만장일치로 임시 주총 개최 안건을 통과시키겠소.”
의사봉이 휘둘러졌다.
“주총 날짜는 총무부와 상의해서 추후 공개할 것이오.”
그렇게 임시 이사회는 조민석 원맨쇼로 마무리됐다.
조민석이 먼저 이사회실을 떠났고, 뒤이어 그의 파벌에 속한 이사들이 떠났다.
“다 끝났네.”
제일 말석에 앉아 있던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하곤 이사회실을 나갔다.
‘젠장…….’
관리이사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멍하니 테이블만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곤 쓸쓸하게 이사회실을 떠났다.
6.
화요일 저녁 6시.
대충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기 위해 막 강철이 컵라면 사발에 뜨거운 물을 받았을 때, 유아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래, 마음은 좀 진정이 됐나?”
강철은 제일 먼저 그걸 물었다.
[…… 자상한 척하려는 거예요?]
유아영의 목소리는 약간 가라앉아 있긴 했지만, 어둡다는 느낌은 없었다.
강철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녀에게 경고했다.
“우리 사이의 관계를 착각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나하고 그쪽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야.”
[…… 죄송해요.]
“됐고, 그래 무슨 일로 전화한 건데?”
[당신 손에 안 죽으려면 조민석 마킹하면서 프락치 노릇 하라면서요?]
“그랬지. 근데, 뭐 벌써 나한테 보고할 만한 게 생겼나?”
강철은 살짝 의아해했다.
바로 전날 조민석과 함께 고덕동 사료 공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하루도 안 돼 유아영이 보고할 만한 비밀이 생겼을까?
그런 의문이 강철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질문은 할 수 있지.”
[나이가 어떻게 돼요?]
“왜? 그쪽보다 어리면 말이라도 놓으려고?”
[그게 아니라…… 사실은……]
유아영은 강철에게 조민석의 차 뒷좌석에서 습득한 그의 학생생활기록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민석 오빠가…… 개인적으로 당신 뒤를 캔 것 같아요. 그거 알려주려고 전화한 거예요.]
강철은 씩 웃었다.
“뭐,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오히려 안 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고.”
[…… 그냥 넘어가시게요?]
“뭐 겨우 신상정보 알아낸 것 가지고 내가 조민석이 뺨이라도 때릴까 봐?”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잖아요.]
“까불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죄송해요. 그런데…… 그러면 정말…… 92년생이에요?]
“생일은 지났어. 그러니 오토바이도 몰고 다니지.”
[…… 알았어요. 새로 뭐 보고할 거 생기면 바로 연락할게요.]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말고.”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나한테 완전히 협조하기로 했다고 봐도 되나?’
강철은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적당히 익은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한 입 먹고, 김치 한 조각을 라면이 든 입 안에 투하하며 강철은 생각했다.
‘내 개편안을 조민석이 보게 된다면, 분명 역정이 나겠지.’
이사회는 철저히 강철의 조종을 받도록 개편될 예정이었다.
거기에 조민석이 저항한다고 해서, 그가 그 개편안을 거부할 순 없을 터였다.
그러나, 조민석에게는 강철이 가지지 못한 무기가 2개나 있었다.
하나는 검찰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목그룹…… 재벌이 개입하면 당장에 어떻게는 못해도 장기적으로 목에 걸린 가시처럼 될 가능성이 높지.’
그렇기에, 유아영의 순응도는 중요한 요소였다.
‘백유진에게 해줬던 것만큼, 나한테도 순응해주면 좋겠는데…….’
백유진처럼 몸을 대줘가면서까지 포섭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보다는 조금 더 친밀하게 대해주면, 백유진에게 했던 것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는 만족할 만한 순응도를 보이려나?’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