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두 여자 (2)
유아영은 호흡이 곤란한 가운데서도 눈을 부릅뜨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다.
안 그래도 커다란 그녀의 눈이, 인간의 안구가 어디까지 위아래로 벌어질 수 있는가 실험이라도 하는 양 커졌다.
강철은 오른손에 준 힘을 전혀 빼지 않은 채, 유아영에게 말했다.
“조민석이가 모른다고, 나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강대산과 최창만은 죽었다.
강서구 백두산과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으며 10억을 구했고, 또 그 과정에서 사소한 악연도 해결했다.
지방 주주로부터 대산 지분 35%도 흡수했고, 여러모로 대산과 관련된 일은 이제 거의 다 해결이 됐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선병호가 심어둔 ‘진짜’ 프락치의 존재를 찾는 것과 별도의 프락치 노릇을 하는 유아영의 처분이었다.
“케엑…….”
유아영은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다.
심장은 거칠게 뛰었지만, 피는 원활하게 돌지 않았다.
뇌에 공급되는 산소량이 급감함에 따라 어지러움과 함께 전반적인 인지능력이 떨어져 갔다.
‘주, 죽기 싫어…….’
그녀는 살고 싶었다.
살기 위해 발악하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휘젓는다는 생각만이 있을 뿐, 그 명령 자체는 제대로 손으로 전달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손은 그저 강철의 손목이나 힘없이 쓰다듬을 뿐이었다.
“큭……”
그녀의 입에서 침이 흘러 턱을 타고 내려와 그 목을 잡은 강철의 오른손에 묻을 무렵, 강철은 별안간 손에서 힘을 풀고 그녀를 놔 주었다.
“콜록-! 콜록-!”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린 채 기침을 해대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내가 사람을 언제 죽이는지 아나?”
강철은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손에 묻은 침을 유아영의 옷에다 닦아낸 후, 왼손으로 그녀의 턱을 붙잡아 얼굴을 들어 올렸다.
유아영은 눈물을 흘리며 빨갛게 충혈된, 두려움 가득한, 맹수에게 목이 붙잡힌 채 죽어가는 순간을 기다리는 초식동물과도 같은 눈으로, 강철을 바라보며 떨었다.
“나하고 사적인 원한이 있는 경우, 죽이는 게 살려두는 것보다 이득인 경우 그리고 선을 넘는 경우. 이 세 경우 중 둘 이상을 충족하면, 그때 죽여.”
“…… 살려주세요…….”
“살고 싶나?”
유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선을 넘었어.”
강철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는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굉장히 경멸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당장에라도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을 기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민석이 바보라서 네가 뭘 하고 다니든 신경 쓰지 않았을까? 아니야. 조민석은 널 믿은 거야. 네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은 거야.”
유아영은 소리 없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89년생 여자애가 63년생인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는 그 순진함이 널 살린 거라고.”
그대로, 강철은 유아영의 양쪽 볼을 손으로 잡았다.
별달리 큰 힘을 주진 않았지만, 유아영은 그 손이 금방이라도 자기 볼살을 찢고, 턱을 뜯어낼 것 같아 파르르 떨었다.
“증명해 봐. 너의 삶이, 너의 죽음보다 나한테 가치가 있다는 걸.”
4.
2008년.
유아영은 이태원 레즈비언 바에서 처음으로 백유진과 만났다.
유아영은 첫눈에 백유진에게 반했고, 그건 백유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날 관계를 가졌고, 그 관계는 곧 연인 사이로 이어졌다.
그리고 연애가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 백유진은 자신의 직업이 경찰임을 밝혔다.
그리고 백유진은 유아영에게, 동창의 삼촌이자 대산그룹 상무인 조민석에게 접근해 그의 애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럴려고 아영이 널 만난 건 아닌데…… 윗선에서 나하고 너랑 사귀는 걸 알고는…… 그렇게 시키더라. 미안해.』
백유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냥 같이 어디 해외로 나가서 살자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유아영은, 사흘간의 고민 끝에 백유진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거창한 이유도, 다른 어떤 거래도 없었다.
그저 백유진을 사랑한다는 유아영의 마음이 그런 결정을 내리도록 한 것이었다.
그렇게 유아영은 동창의 생일 파티에서, 술에 잔뜩 취한 조민석을 이끌고 모텔로 가 그와 잠자리를 가졌고, 이후로도 꾸준히 연락을 취하며 몇 차례 육체적 관계를 갖다가 마침내 그의 연인이 됐다.
처음엔 조민석도 의심했다.
89년생이 63년생인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말 그대로 조카 같은 여자의 애정 공세에 무너졌고, 마침내 그녀를 자신의 집 안방마님으로까지 만들어 주었다.
이후로 유아영은 꾸준히 백유진과 관계를 가지면서, 조민석의 곁에 있으며 수집한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거창한 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경찰에서도 알고 있을, 박용수가 조민석의 손발 노릇을 하는 최측근이라는 것과 조민석과 박경채가 사이가 안 좋다는 것 정도였다.
물론 아주 가끔, 고급 정보를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정보는, 대체로 술에 취한 채 그녀의 육체를 탐닉하던 조민석에게 오르가즘을 가장한 질문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저보고 그, 그쪽을 유혹해서…… 미, 민석 오빠하고 싸우게 하라고…….”
6월 25일 밤 11시 30분.
집주인 조민석이 여전히 안방에서 코를 골며 자는 가운데, 강철은 거실 소파에 앉아 앞에 유아영을 무릎 꿇게 한 채 그녀로부터 진술을 받고 있었다.
“요, 용서해주세요. 저는…… 저는 그냥…… 그냥……”
눈물을 흘리며 유아영은 강철에게 빌었다.
“우엑-! 우욱-!”
긴장감, 공포, 생존 욕구 등이 그녀를 압박했고, 덕분에 그녀는 용서를 빌고 우는 와중에 헛구역질까지 했다.
강철은 감흥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조민석도 그렇고, 유아영도 그렇고. 딱 바퀴벌레 같은 커플이네.’
조민석은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고, 한 번 준 믿음은 또 쉽게 거두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조카의 친구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거짓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 2년 넘게 한 이불을 덮고 사는 것이리라.
그것은 유아영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레즈비언 바에서 만나서 사귀게 된 여자가 하필 경찰, 그것도 정보국 소속이다?’
누가 봐도 의도된 만남이었다.
‘이건 조민석이라도 의심하고 보겠지.’
그러나 유아영은 그러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의 애정 결핍 때문인지, 백유진에 대한 진심 때문인지는 강철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건, 백유진에 대한 유아영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이었다.
‘저걸 깨지 않으면, 유아영이 내 프락치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어.’
유아영을 당장 죽이지 않는 이유는, 그녀에게 아직 사용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유진의 존재는 그러한 사용 가치에 분명한 훼손을 가할 수 있다.
강철은 유아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폰.”
“…… 네?”
“폰 내놓으라고.”
“아…… 네.”
유아영은 충전 중인 폰을 빼내 와 강철에게 건넸다.
강철은 그녀의 폰에다가 자신의 번호를 찍어 남기곤, 자신의 폰으로 문자를 한 통 넣은 후 도로 돌려주었다.
“살고 싶다고 했지?”
“네, 네. 뭐,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여태껏 백유진한테 그랬듯, 나한테 똑같이 해. 조민석이한테 들은 일과 관련된 정보는,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다 나한테 보고를 하라고.”
유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아영은 따라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렸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 유아영을 내려다보며 강철은 말했다.
“너의 가치를 증명해. 내가 널 죽이는 것보다 살려두는 게 더 낫다는 그 가치를.”
유아영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강철은 현관을 나서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이사회 개편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면, 조민석은 분명 다른 마음을 품을 거야. 선제적으로 제압하려면, 곁에 프락치 하나는 심어 둬야 해.’
강철은 빠르게 오토바이를 타고 길동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피스텔에 도착하자마자 서랍에서 선병호의 경찰용 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백유진하고 유아영의 관계는 어떻게 청산해야 하…… 응?’
전원이 켜지고 10초 정도가 지났을 때, 15통이 넘는 메시지의 도착을 알리는 진동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백유진?’
강철은 메시지를 하나하나 살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읽었을 때, 강철의 입꼬리가 광대와 함께 위로 쓱 올라갔다.
5.
6월 27일 일요일 밤 10시.
송파구 거여동 대산그룹 소유 미완성 시멘트 공장.
경찰이 붙인, 출입금지를 알리는 테이핑을 넘어서 백유진은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갔다.
‘선배. 살아 있지?’
4시간 전, 백유진의 폰으로 문자가 한 통 왔다.
시간과 장소만 적힌, 굉장히 단순한 메시지였지만, 문제는 발신자였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거야. 그치?’
선병호로부터 온 문자를, 백유진은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그 누구의 지원도 없이, 심지어 작전의 입안자이자 지휘자였던 한동수 총경까지도 외면하면서 완벽하게 외톨이가 된 그녀로서는, 아주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선배?”
죽은 최창만이 발견된 장소에서, 백유진은 선병호를 불렀다.
“병호 선배?”
그녀의 목소리만이 공허한 메아리를 만들 뿐, 그 어디에서도 응답은 없었다.
“병호 선배. 어디 있어?”
백유진은 권총을 꺼냈다.
“선배, 나 유진이야. 백유진! 대답 좀 해 줘! 선배 어디 있어!”
점차 그녀의 언성이 높아져 갔다.
[달그락-!]
조그만 소음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총구를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돌렸다.
[찍-!]
쥐 한 마리가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폐자재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백유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별안간, 그녀는 총구를 위로 올린 채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공포탄을 쏜 그녀는, 빠르게 이동해 벽을 등진 채 사방을 경계하며 고함쳤다.
“누구야! 누가 병호 선배 폰으로 장난질하는 거야!”
그 어디에서도 응답은 없었다.
“공포탄 쐈어. 이제 실탄이야. 내가 찾기 전에 나와. 만약 내가 찾으면……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대로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어 버릴 거야.”
울분에 가득 찬 그녀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공장에 낮게 깔려 울려 퍼진 직후,
“그러면 되나? 적어도 미란다 원칙은 읊고서 정식으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 줘야지.”
어둠 속에서 강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유진과는 불과 5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너, 너…… 너!”
백유진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아주 침착하게 총구로 강철의 미간을 겨누었다.
‘…… 강철?’
백유진은 강철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입을 벌린 채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백유진을 바라보며, 강철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선병호의 경찰용 폰이었다.
강철은 그것을 들고서 마치 백유진에게 보란 듯 허공에서 흔들어 보이곤, 메시지함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그녀 앞에서, 그녀가 선병호에게 보낸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