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44화 (44/175)

044 두 여자 (1)

1.

서영은은 서해상에 버려졌다.

강철은 목포 건달 3인방을 통해 허름한 여관에서 40대 매춘부 둘과 알몸으로 자고 있던 목포 주주 우기태를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부산에서 일어난 일을 전해 들어 일찌감치 목포 시내 건달 전원에게 잠적할 것을 명령했을 정도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우기태는, 별다른 고문 없이도 강철에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6월 24일 오전 6시 30분.

마침내 강철은 지방 5대 주주의 대산 지분 35%를 모두 상해탄 천호본점으로 흡수했다.

강철은 목표를 완수하자마자 그대로 서울로 올라갔다.

서용태가 꽤 피곤해했기에, 중간에 휴게소에서 3시간 정도 쉰 끝에, 마침내 강철은 6월 24일 오후 2시, 강동구 천호동 상해탄 천호본점으로 복귀했다.

“이제부턴 김 대표 역할이 아주 중요해. 현 상황에서 대산그룹의 대주주는 상해탄 천호본점이고, 김 대표는 바로 그 대주주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서용태와 최병천을 모두 보내고, 강철은 김명길과 함께 대표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조 대행한테 이야기가 들어갔을 거야. 아마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김 대표 당신한테 조 대행 쪽에서 연락이 오겠지.”

“저, 저한테 말입니까? 아니, 고문님 냅두고 와 저한테?”

“나보단 김 대표가 조 대행 입장에선 상대하기 편할 테니까.”

“아…….”

김명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당하라고. 조민석이 이전에야 당신 윗사람이었고 인사권자였지, 지금부터는 아니니까.”

“마…… 저는 고문님만 믿고 있십니다. 고문님이 저를 마 뒤에서 든든하이 받쳐 주고 계시는데, 뭐가 쫄릴게 있겠십니까?”

김명길의 말에 강철은 씩 웃었다.

그런 강철을 보며, 김명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어차피 저야 고문님이 까라면 까고 자빠지라면 자빠질 거긴 한데…… 그…… 앞으로 조민석 대행하고는 그 관계를 우예 설정하실 생각이십니꺼?”

김명길의 물음에 강철은 살짝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빠르게 발전하는 타입인가?’

불과 1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단 건달패 조직원에 불과했던 김명길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김명길에게는 저런 질문을 할 능력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지금 김명길은 강철에게 고도의 정치적인 문제를 묻고 있었다.

“그거는…… 조 대행이 내 결정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 정해지지 않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내포한 강철의 대답에 일단 김명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척했다.

‘마 고문님이 우예 하시겠지.’

회사와 조직의 상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에 관한 질문을 할 능력은 이제 갖췄지만, 그 이상의 큰 그림을 스스로 그릴 능력까지는 아직 김명길에게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조만간 그럴 능력까지 생기겠어.’

그리고 그런 김명길을 보며, 강철은 자기만의, 더 큰 미래에 관한 계획을 그리기 시작했다.

2.

선병호에 관한 정보는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서 완벽하게 지워졌다.

작전을 주도했던 한동수 총경은 더 이상 백유진과 만나주지 않았다.

그랬기에 백유진은, 더 조급해졌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인 유아영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노력했다.

“언니.”

“응?”

“나 요즘 너무 행복해.”

“그래?”

“응. 마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같아. 이렇게 매일, 내가 보고 싶다고 할 때마다 언니랑 볼 수 있으니까.”

6월 24일 오후 4시.

청담동 인근 모텔 침대에서, 유아영은 백유진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그렇게 속삭였다.

백유진은 몸을 뒤로 돌려 유아영과 마주 보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춰 주었다.

“아영이…… 계속 행복하고 싶지?”

“당연하지. 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하루 종일 언니하고 같이 안고서 누워있고 싶어.”

“…… 그러면…… 아영이가 꼭 해줘야 할 일이 있어.”

그 말에 유아영의 표정이 순간 살짝 어두워졌다.

“…… 강철이랑 자야 해?”

“…… 꼭 잘 필요까진 없지만…… 그 사람이 너한테 빠지게만 할 수 있다면…….”

“……”

유아영은 그저 두려웠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백유진에게 그것은, 그녀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요소일 뿐이었다.

백유진은 유아영의 입술에 길게 키스했다.

그리곤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귀에다가 속삭였다.

“강철이랑 조민석이 사이만 틀어지게 만들어. 그래서 둘 다 서로를 죽이려고 들면, 그래서 둘 다 서로를 죽이면 그때 난 아영이 너랑 영원히……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거야.”

그 말에 유아영이 떨리는 눈으로 백유진을 바라보았다.

“우리 같이 살자. 이 일만 다 끝나면.”

백유진의 말에 유아영은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이나 우울함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유아영의 기대감이, 이제 백유진에게 남은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3.

6월 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동부지검 검사 피살 사건은 6월 21일 야당이 폭로한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이슈로 인해 완전히 덮여버렸다.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발판삼아 정권교체를 노리기 시작한 야권의 강한 공세에 정부의 모든 역량이 그것의 방어에 집중됐다.

덕분에 동부지검과 대산그룹의 유착 의혹부터 최창만 검사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미심쩍은 정황까지, 모두 완벽하게 동부지검과 대산의 뜻대로 처리가 됐다.

“강대산은 살인교사 및 횡령과 배임, 뇌물공여 등등, 아무튼 다양한 혐의를 모두 떠 앉게 됐소. 다만 뇌물공여는 받아먹은 대상이 죽어서 공소권 없음 처리가 될 거라, 공식적으로 그걸로 처벌을 받거나 하진 못하겠지만 말이오.”

6월 25일 금요일 저녁 7시.

잠실 펜트하우스에서, 강철은 조민석과 함께 식탁에 앉아 치킨에 와인을 먹고 있었다.

“형만이는 기소유예하는 걸로 결정이 났소.”

“잘 됐구만.”

“흑룡방 부두목이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하곤 있지만, 뭐 살해 도구에서 지문까지 나온 마당에 법정에서 그 주장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요.”

“그렇겠지.”

그러면서 강철은 잠시 조민석의 눈빛을 살폈다.

‘권총의 출처에 관해선 검찰 쪽에서 들은 게 없는 건가?’

그의 눈빛에선 딱히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갈 숨기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그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조민석이가 그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나진 않으니…… 하긴 뭐…… 정보경찰이 어련히 알아서 하셨겠지.’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닭 날개를 뜯었다.

조민석은 닭갈비뼈를 내려놓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강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방 주주들 설득하러 간다는 게 그 지분을 흡수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면 회사 차원에서 변호사를 붙여줄 걸 그랬소.”

강철은 피식 웃으며 와인 잔을 들었다.

“괜찮아. 좋은 변호사를 알고 있어서, 그 양반이 아주 깔끔하게 서류를 만들어 줬거든.”

“그렇소?”

조민석은 거기서 더 묻지 않았다.

그 모습에 강철은 피식 웃으며 와인을 한 모금 넘긴 후, 조민석을 향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그게 아니지 않나?”

그 말에 조민석은 멈칫했다.

그는 잠시 강철을 바라보았다.

강철의 입과 광대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차갑게 타오르고 있었다.

차갑게 타오른다는 그 모순적인 현상에, 조민석은 침을 꿀꺽 삼키며 살짝 시선을 아래로 내려 강철의 목젖에다가 고정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조민석은 와인을 쭉 들이켠 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강철은 손가락으로 거기에 불을 붙여주고, 병을 들어 조민석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우리 계약이 뭐였지?”

“…… 나를 회장으로 만들고, 그대는 고문이 돼 매년 대산 전체 매출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자문료 및 배당금으로 받는다는 것이었소.”

“지금 대산에서 조 대행 지분이 얼마지?”

“…… 순수하게 내 개인적인 지분만 놓고 보면 7% 정도요. 하지만 조만간 도 전무님 지분 15%가 들어오고, 또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합쳐도 최대 29% 아닌가?”

“…… 조만간 대산그룹 차원에서 강대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할 것이오. 시간은 걸리겠지만, 강대산의 지분을 대산 자사주로 흡수만 한다면……”

“그때까지 박경채가 가만히 늘어진 채로 기다려줄까?”

강철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조민석은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강철은 담배 연기를 코로 한 차례 내뿜은 후 조민석을 보며 말했다.

“그쪽이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지분 29%에 내가 이번에 상해탄으로 흡수시킨 지방 주주 지분 35%면 강대산 지분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대산을 지배할 수 있게 돼. 박경채가 뭘 꾸미건, 뭘 의도하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고.”

조민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행동은 모두 우리 계약의 이행을 위한 거야. 그러니까, 혹여나 쓸데없이 다른 걱정을 하고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돼.”

강철은 반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후, 마저 치킨을 뜯으며 말했다.

“법적인 문제가 수습되고 나면, 정식으로 회장으로 취임해야지.”

조민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때까지 박경채를 집중적으로 감시해.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쪽 라인에 선 이사들도 포섭하고. 뭐, 지분 자체는 코딱지 수준이지만, 상징성이란 게 있으니까.”

“알겠소.”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는 밤 9시까지 이어졌다.

그사이 조민석은 반 만취 상태가 될 때까지 술을 들이켰고, 그 상태로 대마까지 피워버리는 바람에 인사불성이 돼 버렸다.

강철은 그런 조민석을 안방 침대에까지 들고 가 집어 던진 후, 거실로 나왔다.

그리곤 거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폰을 보던 유아영에게 말했다.

“저기 탁자 좀 치우고, 가서 조 대행 옷이나 갈아입혀 줘. 그것까진 차마 내가 못하겠네.”

그리고 강철은 펜트하우스를 떠나려 했다.

“잠시만요.”

그런 강철을 유아영이 붙잡았다.

강철은 가만히 유아영을 바라봤다.

유아영은 어느새 소파에서 일어나 강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유달리, 오늘따라 유아영의 화장은 진했고, 몸에선 강렬한 향수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보랏빛 원피스는 몸매를 자극적으로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저번에 나한테 말했죠? 증거를 보여달라고. 내가 당신한테 마음이 있다는.”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아영은 그런 강철의 턱을 잡고는 천천히 그의 입술을 훔쳤다.

그녀의 혀는 뱀처럼 강철의 입술을 열고서 그 안으로 침범해 들어갔다.

강철은 그저 가만히, 그녀의 공세를 받아들이기만 했다.

1분 정도가 지나고, 유아영은 입술을 뗐다.

그녀의 입술과 강철의 입술은 한동안 누구의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침으로 연결이 돼 있었다.

그리고 그 침이 끊어졌을 때,

[콱-!]

그대로 강철은 유아영의 목을 오른손으로 잡고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

“크윽-!”

“선을 넘으시네?”

강철은 차갑게 타오르는 눈으로 유아영의 두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백유진 경위가 시키던가? 이렇게 하라고?”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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