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서영은 (2)
강철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여인을 따라갔다.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민무늬 베이지색 원피스에 클러치백을 들고 하이힐을 신은 채 도도하게 번화가를 걷는 여인의 자세는 당당했다.
술에 취한 사람들, 술에 취할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녀를 바라보며 수군거리기만 할 뿐, 헌팅을 시도하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여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기세는 대단했다.
‘이 느낌…… 그래…… 맞아.’
강철은 확신했다.
‘저 여자다.’
강철은 여자와 대략 5~6보 정도 거리를 둔 채, 발걸음을 죽이곤 그 뒤를 밟았다.
“가고 있어.”
그녀가 아주 우아한 스냅으로, 클러치백에서 애플망고사의 아담-1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을 때, 강철은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예지몽인가?’
강철은 자기도 모르게 씩 웃었다.
강대산을 잡았을 때보다 더 큰 기쁨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은신술.’
초능력 에너지의 향상만이 아니라, 그녀를 제거했을 때 얻을 은신술까지.
강철은 손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돌림빵 놓는 건 상관없으니까, 약은 먹이지 마. 상품가치 떨어지니까.”
전화를 끊고, 그녀는 폰을 클러치백 안에 집어넣었다.
‘응?’
그러다 그녀는, 뭔가 자신의 등을 향해 꽂히는 시선을 느끼곤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희열을 느끼며 상당히 감정적으로 고조가 돼 있던 강철이었지만, 그런 그녀의 미세한 변화는 놓치지 않았다.
강철은 그녀가 몸을 흠칫 떠는 순간, 군중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랬기에 그녀는, 그저 기분 탓인가? 하는 결론만 내린 채 다시 자기 갈 길을 갔다.
‘그냥 창녀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강철은 그녀와의 거리를 10보 정도로 더 벌린 채 그녀를 쫓으며 생각했다.
‘하기사…… 오길동이도 자기 커리어에 관해 구라를 쳤는데, 저 여자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그렇게 강철은 15분 정도 여자의 뒤를 밟았다.
여자는 번화가를 그대로 쭉 통과해 연안 부둣가로 들어갔다.
컨테이너 가건물로 가득한 곳에서,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클러치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어, 나 지금 부둣가에 다 왔어. 정확히 어디 있는 거야?”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두 북쪽 끝에 있는 컨테이너 가건물 문이 열리며 날티 나게 생긴 사내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그녀를 불렀다.
“여기여, 여기!”
“아, 봤다.”
여자는 전화를 끊고 북쪽 끝으로 걸어갔다.
부둣가는 제법 어두웠기에, 강철은 그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여자의 뒤를 마저 밟았다.
“아따 서 상무 쌔끈하구마이. 어째 가슴이 더 커진 것 같어?”
“커진 가슴에 질식해 죽어볼래?”
여자와 남자는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며 컨테이너 가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강철은 몰래 창가로 걸어가, 최대한 모습을 숨긴 채 내부를 살폈다.
“야이 씨방새들아.”
여자는 컨테이너 가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욕을 내뱉었다.
“내가 돌림빵 놓는 건 괜찮아도 약은 먹이지 말라 했지?”
“아따 뭔 약을 먹였다고 그런디야?”
“그럼 저 주사기는 무슨 헌혈 주사야? 이 씨방새들아? 이러면 이년 섬 말고는 팔 데가 없어진다고. 너네가 소화할래?!”
컨테이너 가건물 안에는 5명이 있었다.
먼 미래에 대모, 유령, 빨통마녀 그리고 창녀로 불릴 여인.
그 여인에게 ‘씨방새들’이라 욕먹는 날티 나는 남자 셋.
그리고 바닥의 매트리스 위에 벌거벗고 누운 채 정신을 못 차리는 상당히 어려 보이는 여자.
‘창녀가 아니라 포주였네. 멸망 전에도.’
강철은 씩 웃었다.
‘진짜 나 빼곤 다 자기 커리어 구라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철은 계속해서 내부 상황을 확인했다.
“지금 우리도 리스크 각오하고 나온 것이여. 시방 우리 영감님이 전부 잠수타라고, 안 타면 어선에 태워서 중국으로 보내불거라고 지랄 염병을 해대는디.”
“그건 그쪽 사정이고. 왜 애를 약을 먹여, 약을?”
“솔찬히 서 상무라서 우리라도 나와 준거여. 지금 다른 애들 죄다 PC방도 못가고 집구석에서 딸딸이나 치고 있어야.”
“아니, 그러니까, 그건 그거고. 왜 애 약을 먹이냐고 상품가치 떨어지게! 최하등품 됐잖아, 최하등품! 쟤 정도면 송파구 정도에는 팔 수 있었다고!”
세 남자와 여인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강철은 씩 웃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운이 좋네.’
[콰앙-!]
강철은 그대로 컨테이너 가건물 문고리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 뭐여?”
“저놈 뭐다냐?”
“짭새여?”
세 남자는 강철의 등장에 살짝 당황하면서도, 천천히 뒷주머니에서 스위치 블레이드를 꺼내 싸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여자는, 역시나 당황하면서도, 살짝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야릇한 미소를 지을 때, 함께 움직이는, 왼쪽 턱의 사마귀를 보며 강철은 씩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이전에 그가 지었던 것들과는 다소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그 웃음은, 트라우마가 떠올랐을 때 반사적으로 그가 짓는, 일종의 방어기제와도 같은 종류의 웃음이었다.
“어이, 포주 아줌마.”
강철의 얼굴에서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철은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여자에게 물었다.
“뭐? 아줌마?”
여자가 발끈하건 말건, 강철의 질문은 이어졌다.
“이름이 뭐야?”
강철의 물음에 여자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여자는 눈으로 강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으면서, 세 건달에게 이야기했다.
“쟤 상처입히지 말고 붙잡아. 그러면 너네가 저년한테 약 먹인 건 그냥 넘어갈게.”
그러면서 그녀는 덧붙였다.
“쟤 정도면 대구 수성구나 부산 해운대 호빠에다가 팔면 돈이 좀 되겠네.”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철의 뇌리로, 지난 생에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갔다.
“오길동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하질 않았던 거구나. 세상이 멸망한 거랑 무관하게.”
그대로 강철은 양손에 오거닉 메탈을 둘렀다.
4.
여자는 강철에게 약을 먹였다.
초능력자라도 총 한 방에 죽듯, 연금술사가 아닌 이상에야 어지간한 초능력자는 약에 쉽게 당했다.
『어때? 온몸에 성감대가 타오르지? 전라도 도끼 밑에서 일하는 연금술사한테 얻은 합성마약인데, 코카인보다 수천 배는 더 각성효과가 있데.』
그 상태로, 그녀는 강철의 동정을 빼앗으려 했다.
『도대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혼전순결 타령하고 있어? 너 뭐 예전에 신부였니? 아니면 중이었어?』
첫경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는 것이 강철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신념 혹은 고집이 됐고, 세상이 망한 이후로는 강박이 됐다.
『같이 다니는 놈은 섹스에 미친 놈이던데. 넌 어떻게 걔랑 다니는 거니?』
그녀는 강철을 덮치려 했다.
강철은 굉장히 흥분한 상태에서, 최대한 초능력 에너지를 끌어모으려고 노력했지만, 온몸의 감각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에너지를 집중시키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랬기에 강철은 평상시 내는 힘의 10%도 안 되는 힘으로, 그녀를 상대해야 했다.
『너 내 몸에 상처 하나라도 나면, 그대로 폐인 만들어서 내 밑에서 일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누나 말 들어.』
하지만 10%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는 은신 능력이 대단했던 거지, 순수 전투 능력은 강철보다 한참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녀는 강철을 어떻게든 자빠뜨리려고 했기에 은신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강철은 싸움이 시작된 지 5분이 됐을 때,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목을 조를 수 있었다.
『야만적인 게 가장 최선이 된 세계에서…… 사랑은 니미…… 평생…… 동정으로 살다가…… 뒤져버리렴…….』
그녀는 강철을 저주하고, 그렇게 죽었다.
그것이 그녀와 강철 사이의 악연이었고, 강철이 그녀를 죽인 이유였다.
5.
세 건달은, 제대로 주먹조차 휘둘러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강철의 주먹에 턱을 맞아 기절해버렸다.
그제야 여인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단 것을 깨닫고는, 강철을 회유하려 했다.
“보니까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것 같은데…… 어때? 누나랑 한 번 할래? 오늘 밤새도록 해줄 수도 있어. 아까 누나가 농담한 게 기분 상했다면, 그렇게 풀렴.”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원피스 양쪽 어깨끈을 풀었다.
그러나 강철의 관심은, 그녀의 몸이 아니었다.
[콱-!]
“커억……!”
강철은 그대로 여인의 목을 잡고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
“크윽…… 이…… 이거…… 노…… 놓고…… 으윽……”
여인은 발버둥을 쳤다.
원피스가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철의 시선은 아래로 향하지 않았다.
강철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여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
“으윽…… 서…… 서영은…….”
“아…… 서영은. 서영은이었구만.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어.”
강철의 말에 여자는 살짝 안도했다.
그녀는 당장 강철이 자기를 풀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꽈아악-!]
“컥-!”
더 이상 그녀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점차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단 눈으로 강철을 바라봤다.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 죽을 짓 했잖아. 안 그래?”
강철은 씩 웃으며 손에 힘을 줬다.
어느덧 그의 손에는 오거닉 메탈까지 둘러져 있었다.
[우드득-!]
마침내, 여자의 목이 꺾였고, 그대로 그녀는 절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까뒤집고 죽는 그 순간, 강철은 느낄 수 있었다.
심장에서부터 차오르는 강렬한 에너지의 향연을.
“아아…….”
심장에서부터 시작해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초능력 에너지의 그 짜릿한 느낌에 취해 강철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털썩-!]
강철은 그대로 여자의 목을 놓았다.
여자는 바닥에 쓰러지며 모로 누웠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이 원피스에서 튀어나왔다.
“이거지. 이거야.”
온몸을 감싸는 에너지의 폭발적인 흐름 속에서 한동안 강철은 희열을 느꼈다.
그 희열 속에서 강철은 새로이 생겨난 초능력을 발휘해 보았다.
심장에서 피어오른 에너지가 전신으로 퍼져 나갔고, 강철은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됐어!’
다시 강철은 은신을 풀었다.
‘오길동이 초능력이랑은 달리, 거의 완벽하게 흡수가 됐어.’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었다.
‘지금 에너지로는 길어야 3분이 한계긴 한데…… 그거야 뭐 차차 해결해가면 될 문제고.’
흡수된 새로운 초능력-은신까지 확인한 강철은 이내 폰을 꺼내 김명길에게 전화했다.
“어, 김 대표. 나 지금 여기 부둣가 북쪽 끝에 있는데 해커 양반 좀 데리고 여기로 와 줘야겠어. 변호사 양반은 필요 없고. 그래.”
김명길과 서용태를 소환하고, 강철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담배를 꺼내 물고, 손가락으로 불을 붙인 후, 연기를 길게 허공에다가 뿜어댔다.
‘오늘따라 바람이 시원하네.’
강철의 입꼬리와 광대가 승천할 기세로 올라갔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