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40화 (40/175)

040 부산 갈매기 (1)

1.

6월 19일 토요일 저녁 8시.

“와, 드디어 왔다.”

톨게이트를 지나 부산으로 들어가는 SUV차량 운전석에서, 서용태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로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뭐고? 벌써 왔나?”

뒷좌석에서 푹 자고 있던 김명길과 그의 옆자리에서 함께 자고 있던 최병천 변호사가 서용태의 감탄에 눈을 떴다.

“고향에 온 기분이 어때, 김 대표?”

조수석에 앉아 가만히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던 강철이 이어폰을 뽑으며 김명길에게 물었다.

“마, 작년에도 함 와가지고 별로 감흥은 없십니다, 고문님.”

“그때 어디어디 갔었지?”

“마 본가 있는 보수동에 갔다가 친구들하고 저기 태종대 가가꼬 조개 구이에 소주 한잔하고 했십니다. 고문님도 함 가실랍니까?”

“이번엔 일보러 온 거잖아. 다음에 한번 같이 와 보자고, 그땐 여행 삼아서.”

“고마, 맡겨만 주이소. 제가 마 풀코스로 자갈치부터 해운대까지 싹 대접해드리겠십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서용태가 김명길의 호언장담에 코웃음을 치며 개입했다.

“지랄하네. 3년 전인가 네 말 믿고 부산 왔다가 갈매기만 보고 갔었잖아. 갈매기 풀코스냐?”

“마 그때는 날씨가 안 좋아가 그란 거 아이가.”

“3박 4일 동안 해가 짱짱했다, 새끼야.”

강철은 그런 둘의 대화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친구라.’

서로의 사회적 격차가 존재하긴 했지만, 김명길과 서용태는 친구 사이였다.

그랬기에 강철은, 구태여 서용태를 향해 “상해탄 대표한테 말을 삼가라.”는 식으로 나무라거나 하진 않았다.

친구란, 그런 사회적 격차를 초월하는 관계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강철에겐 친구가 없었다.

이전 생에도 그랬고, 아마 지금 생에도 그럴 터였다.

‘괜한 믿음을 줘 봤자, 또 상처만 받을 뿐이지.’

유일하게 신뢰를 줬던 존재에게 결국 버림받았던 역사를 떠올리며, 강철은 갑작스럽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려던 감상적 상념을 떨쳐냈다.

“이봐, 해커 양반.”

강철의 부름에 김명길과 티격태격하던 서용태가 흠칫하며 곁눈질로 그를 바라봤다.

“여기서 해운대 그랑마인호텔까지 얼마나 걸리지?”

“한 30분 정도 걸립니다.”

“30분이라…….”

“그쪽으로 바로 가면 되겠습니까?”

“이봐, 김 대표. 우리 숙소가 어디라고?”

“아, 네. 그 진구에 시그니엘호텔입니다, 고문님.”

“거기서 그랑마인까진 얼마나 걸리지?”

“마 차가 안 막힌다고 하면 한 30분 정도 걸립니다.”

“흐음…… 이봐, 해커 양반. 일단 숙소 가서 짐 풀고, 밥 먹고 움직이지.”

“네, 알겠습니다.”

강철은 말을 끝마치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며 계획을 점검했다.

‘부산에선 주주 3명을 잡아야 해. 그중 가장 비협조적인 해운대 김상규를 먼저 잡고, 그다음으로 연산동 박규찬 마지막으로 감천항에 조준규를 잡으면, 여긴 마무리야.’

말은 쉽지만, 그 셋은 영남 한정으론 강대산이나 백두산보다 더한 세력을 자랑하는, 명실상부 지역 유지였다.

‘김상규랑 박규찬은 사이가 나쁘다지만, 조준규는 그 둘하고 사이가 원만하게 좋다고 했어.’

조민석이 전해준 자료를 토대로, 강철이 짠 작전 계획에 따르면, 결국 한 번은 무력 충돌이 크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조준규하고 감천항에서 싸우게 되겠지. 김상규가 박규찬에게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진 않겠지만, 조준규한테는 할 거니까. 그건 박규찬도 마찬가지고.’

다행인 점은, 부산의 세 주주 가운데 검찰이나 정치권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치권이야 5공 이후 정치 깡패가 모조리 와해됨에 따라 건달 세계에서 기피 대상이 됐고, 검찰과 인맥을 다지기에는 강대산만한 역량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수 쪽은 다르다고 들었는데, 일단 최대한 속도전으로 가야겠어.’

결국, 속도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서, 그렇게 강철은 점차 가까워지는 부산 시내를 바라보며, 마지막 작계 점검을 끝마쳤다.

2.

6월 19일 밤 11시.

해운대 그랑마인호텔 룸살롱 VIP룸.

“어으…….”

삼중 턱을 소유한, 두툼한 살집이 인상적인 장년 남성이 살짝 눈이 풀린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하의는 벗겨져 발목에 걸쳐져 있었고, 하복부에는 두 젊은 여자가 마찬가지로 눈이 살짝 풀린 채 달라붙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마 쪼매 있다가 영감님 약에서 깨시면, 저 가시나들 바로 빼고 새 가시나로 넣어야 한다. 알겠나?”

VIP룸 밖에선 지배인이 밑에 직원에게 그렇게 당부하며 시간을 체크하고 있었다.

‘오늘이 아들내미 결혼식인데, 참 대단하다, 대단해.’

자신의 보스이기도 한 장년 남성의 행태를 속으로 비웃으면서, 지배인은 살살 복도를 지나서 홀로 나왔다.

“오늘은 좀 조용하제?”

지배인의 물음에 홀에서 입구를 지키고 있던 남자가 씩 웃으며 답했다.

“마 영감이 개지랄 함 해주면 좀 시끄러워질 거 아이가?”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마라. 지난주에 그래가 가시나 하나 얼굴 술병으로 끍어뿌가꼬 성형시켜준다고 마 내 부랄에 땀띠나게 뛰 댕깄다.”

“니 부랄에 땀띠나지, 내 부랄에 땀띠났나?”

“하, 새끼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그렇게 두 사람이 만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탕탕탕탕-!]

굳게 잠긴 룸살롱 입구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오늘 영업 쉰다고 안 붙여놨나?”

지배인의 물음에 카운터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붙이 놨는데?”

“근데 점마는 뭔데 두들기고 앉았노?”

“짭새 아이가?”

“짭새가 여 와 오노? 즈그 서장도 와가지고 약 빠는데.”

[탕탕탕탕-!]

“새끼 거슬리노.”

지배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문을 살짝 열고는 밖을 바라봤다.

“오늘 영업 안 해요. 다른 데 가세요.”

지배인은 가능한 한 정중하게 응대하기로 했다.

“여기 김상규 씨 계신가?”

문을 두드린 손님의 질문에 지배인의 표정이 굳었다.

“니 뭐고?”

지배인의 반응에 손님은 씩 웃었다.

“제대로 찾아왔네.”

[빠악-!]

그리곤 망설임 없이 지배인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커헉-!”

지배인은 그대로 코가 주저앉았다.

거기다 주먹에 실린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그대로 뒤로 물러나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볼썽사납게 자빠지고 말았다.

“뭐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카운터를 지키던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이, 김상규 씨 어디 있어?”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 강철은 카운터 남자에게 물었다.

“이 새끼가…… 마, 니 뭐고?”

남자는 카운터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는 스위치 블레이드가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찌를 용기는 있나?”

강철의 말에 남자는 살짝 당황했다.

그 순간,

[까앙-!]

강철은 그대로 사내에게 달려들며 오른손으로 칼날을 잡았다.

칼날은 오거닉 메탈을 두른 그의 손에서 무기력하게 부러져버렸다.

[꽈악-!]

칼날을 부러뜨리자마자 강철은 사내의 목을 잡고 그를 들어 올렸다.

“켁-! 케켁-!”

사내는 허공에서 발버둥 치며 고통스러워했다.

사내의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이 뒤집히려 할 때쯤, 강철은 그를 바닥에 패대기치며 놓아주었다.

“김상규 어디 있어?”

남자는 손가락으로 VIP룸 방향을 가리켰다.

“그냥 알려주면 될 걸, 왜 쓸데없이 힘을 쓰게 만든 거야?”

강철은 발로 사내의 턱을 차 그를 기절시켰다.

그리곤 복도를 지나 VIP룸 앞으로 향했다.

“응?”

VIP룸 앞을 지키고 있던 종업원이 강철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김상규 여기 있나?”

강철의 물음에 종업원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손이 막 바지 뒷주머니로 향하는 것을 보며, 강철은 말했다.

“그 칼 꺼내면 그 칼로 그쪽 허벅지를 찌를 거야. 처신 잘 하라고.”

강철은 성큼성큼 종업원에게 다가갔다.

종업원은 강철의 기세에 눌려 칼을 빼 들지 못했다.

“김상규 여기 안에 있나?”

종업원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은 피식 웃으며 손바닥으로 가볍게 종업원의 뺨을 두어 차례 친 후 VIP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허어, 이거 참.”

살집이 두툼한 장년 남성, 김상규의 모습과 그의 하복부에 들러붙은 두 여자의 행태를 보며 강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민석이가 약쟁이란 이야기는 안 해줬는데…… 대산에서도 파악하지 못했던 건가?’

강철은 폰을 꺼내 김명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금 해커 양반하고 같이 좀 들어와야겠어. 변호사 양반은 일단 차에 남겨 둬. 여기서 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까.”

잠시 후, 김명길이 서용태와 함께 VIP룸으로 왔다.

“씨빠라빠바!”

“어우.”

서용태와 김명길은 거의 동시에, 강철이 보였던 반응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며 인상을 찡그렸다.

“가서 여자애들 떼놓고, 영감 바지 입혀서 업어.”

강철의 명령을 두 사람은 그대로 실천했다.

“마, 좀 잘좀 업어 봐라.”

“네가 좀 잘 좀 들어 봐, 새끼야. 나보다 덩치도 큰 놈이 왜 나한테 이걸 업게 하는 거야?”

“말했다 아이가, 가오 상하면 안 된다고.”

“씨빠라빠바, 폼생폼사냐?”

김명길과 서용태는 아웅다웅하며, 어떻게든 김상규를 업는 데 성공했다.

“가자.”

강철은 그들을 이끌고 VIP룸을 나갔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복도 끝, 홀 입구에서 막히고 말았다.

“마! 니 뭐고!”

종업원의 연락으로 부리나케 달려온 건달 셋이 강철을 바라보며 험악하게 고함쳤다.

“겨우 셋이야?”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뭐? 겨우 셋?”

“새끼가 쳐 돌았나?”

“마! 니 몇 살이고!”

건달들은 그렇게 성질을 내며 허리춤에서 회칼을 꺼내 들었다.

“약쟁이 데리고 가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만.”

강철은 살짝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양손에 오거닉 메탈을 두른 채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쳐 돌았나!”

“마! 봐주지 말고 담가삐라!”

세 건달은 호기롭게 고함을 쳤다.

[빠악-!]

그러나, 중앙에 선 건달이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턱이 빠지며 기절하고,

[빠악-!]

좌측에 선 건달의 광대가 함몰되며,

[빠악-!]

우측에 선 건달의 안면이 그대로 뭉개지자 싸움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어이, 종업원 양반.”

강철은 카운터에 숨어 그것을 지켜보던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은 사색이 된 채 강철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안 때릴 거니까, 이리로 와 봐.”

종업원은 바들바들 떨면서 강철에게 다가갔다.

[빠악-!]

그대로 강철은 종업원의 관자놀이를 주먹으로 쳐서, 그를 기절시켰다.

“아, 안 때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모습을 보며, 서용태는 황당하다는 뉘앙스로 강철에게 물었다.

“이 새끼도 건달 부른다는 소리는 안 했잖아?”

“아 그건…….”

“됐고, 빨리 가자. 잔챙이들 더 오기 전에. 이거, 이 양반 약 깨고 하려면 오늘 밤새도 모자라겠네.”

“아, 네.”

그렇게 세 사람은 약에 취한 김상규를 데리고 그대로 해운대 그랑마인호텔 룸살롱을 떠났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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