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사소한 악연 (3)
5.
김명길은 이 자리가 불편했다.
백두산은 그를 불러놓고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차만 마실 뿐이었다.
그리고 백두산과 자신의 배후에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둘씩 총 넷이 배치된 채, 마치 성벽처럼 혹은 감시자처럼 서 있었다.
“저기……”
그래서 김명길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그 물음에 백두산은 김명길을 힐끔 바라보더니, 찻잔에 든 차를 마저 털어내고는 티슈로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쓸어 넘긴 후, 김명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배후가 조민석인가?”
백두산의 물음에 김명길은 살짝 당황했다.
“네?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
“독단적으로 지금 이러는 건 아닐 거잖아.”
김명길은 살짝 당황했다.
‘이, 이 양반이 뭐 하자는 거고?’
그는 슬쩍, 방안에 전봇대처럼 서 있는 네 명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머리 굴리지도 말고, 어떻게 힘으로 빠져나갈 생각도 하지 마. 혼자서 4명을 어떻게 할 수나 있겠어?”
백두산은 여유로웠다.
‘보자…… 조민석이한테 뭘 얻어낼 수 있으려나?’
그는 고용택이 강철을 해치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분노한 아비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건달로서, 그리고 오랫동안 자기 일을 도운 노련한 해결사로서, 백두산은 고용택의 실력을 믿었다.
그랬기에 그는, 마치 승전국이 전리품을 챙길 궁리를 하는 것처럼, 김명길을 통해 조민석에게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돈을 빌리는데 고마 배후가 어데 있겠십니까?”
김명길은 어색하게 웃으며 백두산에게 말했다.
백두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표 취급해줄 때, 내가 좋게 말할 때, 그냥 말 하시게. 강동 스타일은 내가 잘 모르지만, 우리는 일단 손톱부터 뽑고 시작하거든.”
백두산은 김명길의 안색이 창백해지길 바랐다.
그러나, 의외로 김명길의 안색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표정만 조금 안 좋아졌을 뿐이었다.
백두산은 그것을, 김명길 개인의 깡따구 정도로만 여겼다.
“저기…… 백 회장님.”
김명길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백두산을 바라보며,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쪽에서 먼저 정중하게 돈을 좀 빌리고 싶다 했으면, 마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그래 말하면 그만 아입니까?”
백두산은 그런 김명길의 객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으나, 김명길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백 회장님 실수하시는 깁니다.”
“흐허허허허!”
백두산은 방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 순간,
[꽝-!]
여닫이 방문이 부서지며, 테이블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뭘 그렇게 쪼개시나?”
그리고 얼굴과 옷, 양손에 피를 한가득 묻힌 강철이 오른손으로 김명수의 뒷덜미를 잡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
[쿵-!]
강철은 김명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미 김명수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이 새끼가!”
4명의 사내가 강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빠바바박-!]
그러나 그들은 단숨에 강철의 주먹에 제압당해, 김명수처럼 바닥에 드러눕는 신세가 됐다.
“어이, 백 회장. 오늘 선을 아주 세게 넘으시네? 그러고도 웃음이 나오시나?”
강철은 백두산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김명길도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강철의 뒤로 가,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민 채 백두산을 보며 말했다.
“백 회장님. 내 말했지예? 실수하시는 기라고.”
그런 둘을 바라보는 백두산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6.
백두산.
1955년생으로, 강대산보단 3살 연상이었다.
그리고 스무 살에 건달이 된 강대산보다 6년 이른 열일곱에 생활을 시작했다.
“신군부가 한 번 싹 쓸어주면서 내 또래들이 제법 덕을 봤지. 우리 위에가 다 날아갔으니까.”
6월 18일 금요일 저녁 8시 50분.
강철과 백두산은 방을 옮긴 후, 술상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노태우 때 범죄와의 전쟁으로 내 또래들이 대부분 날아가서, 또 내가 덕을 봤고. 강대산이도 사실 그때 덕을 좀 많이 봤지. 자기 챙겨줬던 선배들 싹다 일러바쳐서 보냈으니까.”
백두산은 강철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강철도 병을 받아 백두산의 잔을 채워주었다.
“자네를 보면 말일세. 옛날에 나랑 같이 생활했던 형님이 생각이 나. 그 형님 이름이 오대산이라서, 괜히 나하고 친하게 지냈거든.”
한식당은 그 자체로 백두산의 소유였다.
그리고 한식당 종업원은, 일개 주방 아줌마까지도 모두 백두산 휘하 조직의 구성원이었다.
그랬기에 별채에서 일어난 살인과 폭행은, 깔끔하게 흔적이 지워진 뒤였다.
“그 형님도 자네랑 비슷했어. 잔혹하고, 냉정하고, 과감하고, 또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계산적이고. 만약 그 형님이 술 먹고 기찻길 위에서 자다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지금 내 자리나 강대산이 자리를 그 형님이 차지하고 있었겠지.”
강철은 잔을 비우지 않은 채 가만히 백두산을 바라보았다.
“10억. 빌려주겠네.”
강철은 여전히 백두산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자는 1금융권 대출 금리에 맞춰서 받을 거고, 대출 기간은 10년에 거치 기간은 5년으로 말이야.”
그제야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백두산의 말에 반응했다.
“뭐, 내가 자네에게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려면 그냥 주는 게 맞겠지만, 자네가 법인 간의 대출 형태를 고집하니, 어쩔 수 없이 이런 조건을 내거는 걸세.”
그 말에 강철은 피식 웃었다.
“대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치르면 되는 거 아니겠어?”
강철은 잔을 들었다.
그러나 백두산은 잔을 들지 않았다.
“뭘 원하나?”
백두산은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청산하고 싶어했다.
“보아하니 자네가 조민석이를 도와서 강대산이를 묻어버린 것 같은데, 그럼 사실상 대산은 자네 거 아닌가?”
백두산의 말에 강철은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백두산을 바라보기만 했다.
“자네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산에 비하면 난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야. 그냥 사채나 좀 굴리고, 이런 식당 몇 개 운영하고, 술집이랑 마사지 업소 몇 개 운영하는 게 다야.”
백두산은 그러면서 자신이 품고 있던 의문을 강철에게 말했다.
“사실 난 왜 자네가 나한테 10억을 빌리려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냥 조민석이한테 내놓으라 하면 그만 아닌가?”
백두산의 말에 강철은 팔짱을 풀었다.
그리곤 술잔을 한 손으로 집은 채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출 사유는 김 대표가 설명한 그대로야. 그리고 내가 그쪽한테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그럼, 뭘 원하나?”
“뭐, 사람이 필요하다 하면 사람 좀 보내주고, 누굴 찾아달라 하면 좀 찾아 주고. 그런 걸 원하는 거야.”
“한 마디로, 하청업체가 돼라?”
백두산의 말에 강철은 씩 웃으며 답했다.
“하청은 너무 자기비하적이고, 협력업체가 돼 달라는 거지.”
“전형적인 정치적 말장난이구만. 허허허. 이거, 앞으로 크게 될 사람이야. 허허허.”
백두산은 두 손을 아래로 내렸다.
식탁 아래에서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런 백두산을 향해 강철은 말했다.
“강대산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나?”
백두산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의 입꼬리는 점차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민석이한테 칼 맞고 죽었어. 조민석이가 원한이 많았는지, 20방을 찌르더라고.”
“……”
“그 뒤에 어떻게 했는지 아나?”
강철은 술잔을 들었다.
“기계로 갈아서 밭에다 비료로 뿌렸어.”
그리곤 술을 털어 넣었다.
백두산은 더 이상 웃지 못했다.
“아마 가게로 근처에 있는 달건이들 불러 모았겠지.”
강철은 술병을 들어 직접 잔을 채웠다.
“걔들이랑 같이, 그리고 이 가게랑 함께, 불타서 재가 되는 게 강대산이보단 명예롭게 죽는 거 아니겠어?”
“끄음…….”
백두산은 침음했다.
“처음에 우리가 제안했던 대로, 그냥 대출만 해 줬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거야. 이건 전부, 당신이 자초한 일이라고. 그러니, 마땅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어? 자, 선택해. 지금 여기로 오는 강서구 달건이들이랑 함께 타 죽을지, 아니면 나와 협력적인 관계를 맺을지.”
백두산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 잔을 비우곤 강철에게 말했다.
“협력 관계라면…… 내가 자네를 도와주듯이, 자네도 날 도와줄 수 있다, 뭐 이런 건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게 손해가 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백두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잘 부탁하네.”
“나야말로.”
그렇게 두 사람은 건배하며, 양자 간의 협력 관계 설정을 자축했다.
7.
6월 19일 토요일 오후 12시 30분.
“오-! 굿샷-!”
조민석은 동부지검 형사 3부 부장검사 강종석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검사장님이랑 차장님이 옷을 벗으시는 선에서 일단 마무리될 겁니다.”
“자리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검사장님이야 뭐 원래 내후년 총선 준비하시려고 고향 내려가실 생각 하고 계셨고, 차장님은 대서양에 스카웃 되셨으니까.”
“이거 면목이 없어서…….”
조민석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사장급 인사와 차장검사급 인사를 챙기기에는, 대산의 체급이 많이 후달렸기 때문이었다.
강종석은 말을 계속해서 이었다.
“일단 강대산 회장의 비서 증언도 있고, 또 뭐 이런저런 정황 증거라든가 제출받은 장부라든가 종합해서, 강대산의 개인 비리로 이번 사건을 일단락 지을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강대산 체포 영장이 발부되고, 전국적으로 수배령이 떨어질 겁니다. 그럼 그때, 대산에선 강대산을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발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법무팀에게 말해서, 철저하게 준비시켜 두겠습니다.”
그렇게 식사 접대가 끝났고, 조민석은 친히 강종석을 주차장까지 에스코트했다.
“앞으로 종종 이렇게 모시겠습니다.”
“뭐, 어차피 저도 올 연말에 검사복 벗습니다. TS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거든요.”
“어이쿠, 축하드립니다.”
“뭐, 축하받을 정도는 아니고. 아무튼, 조만간 새로 차장님 들어오시면, 한번 자리 마련해보겠습니다.”
강종석의 말에 조민석은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차에서 대기 중이던 박용수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러자 박용수는 강장제 선물세트 1박스를 들고 와서 강종석에게 건넸다.
“약소한 선물입니다. 피곤하실 텐데, 이거 마시고 힘내십시오.”
강종석은 처음으로 크게 웃으며, 선물세트를 받아들었다.
“하하, 이거 참, 잘 마시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조민석은 강종석을 보내곤 차에 올라탔다.
“회장님.”
그가 차에 타자, 박용수가 조수석에서 그에게 말했다.
“강 고문이 조금 전 부산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 빨리 간다더니, 좀 늦게 가네?”
“저기…… 근데 변호사를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조민석의 표정이 변했다.
“변호사?”
“네.”
“아니, 변호사는 왜?”
“파악 중에 있습니다.”
“…… 빨리 파악해 봐.”
“네.”
조민석은 웃음기를 잃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주주들 설득하러 가는 길에 변호사를? 왜? 진짜 대화로 설득할 건가? 그 인간이?’
강철 회귀